[제주, 몽골을 만나다] 대규모 목마장 역사의 흔적 잣성

▲ '탐라순력도'의 '공마봉진' ⓒ김일우·문소연

고려 말부터 날이 갈수록 몽골의 잔존을 배척하고, 더 나아가 그들과 더불어 살았던 흔적 자체도 부정해갔던 제주는 조선시대 들어 몽골과의 만남에서 비롯된 현상들이 빠르게 사라져 갑니다.

조선 초기까지 원을 선향으로 삼은 성씨 그리고 명이 유배 보냈던 원 왕족과 후예들의 성씨를 지닌 주민들이 상당수 거주했지만, 어느 날부터인가 이들의 계보를 추적할 수 없게 됩니다. 몽골의 후원으로 위용을 자랑하며 조선 초기만 해도 280명이나 되는 노비가 소속되어 있을 만큼 큰 사찰이었던 법화사도 날이 갈수록 축소되고 허물어져 초가만 남게 됩니다.

▲ 고소리술 닦는 모습 ⓒ김일우·문소연
몽골과의 만남이 남긴 흔적을 떨쳐버리려는 경향은 그 후예들에 대한 중앙정부의 탄압과 더불어, 한족(漢族)을 중국지배의 정통인 화(華)로 간주하고 다른 종족은 오랑캐로 보는 화이론(華夷論)이 확산되었던 시대적 상황과도 맞물려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몽골과의 만남에서 비롯된 우마사육 규모의 확대와 아울러 몽골족 ‘하치’와 제주사람들의 교류를 통해 얻은 우마사육방식 경험은 조선시대에도 계속 이어져 제주는 조선 최대의 국립목장이자 ‘말의 고장’으로서의 명성을 누리게 됩니다. 이 시기를 대표하는 역사는 국가에 상당수의 말을 기증해 ‘헌마공신(獻馬功臣)’의 칭송을 받으며 대대로 부와 명예를 누렸던 김만일 일가의 이야기로 전해집니다.

100여 년 동안 몽골족과 제주사람들이 직접적이고 일상적인 교류를 통해 흡수되고 축적된 생활문화 역시 제주문화로 동화되며 이어져 오늘날까지 그 흔적을 남기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흔적은 제주향토주로 뿌리 내린 고소리술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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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규모 목마장 역사의 흔적  잣성

▲ 9소장 위미2리 하잣성 ⓒ김일우·문소연

제주사람들이 ‘잣’ 또는 ‘잣담’이라고 부르는 ‘잣성’은 조선시대 제주 중산간 목초지의 목마장 경계에 쌓았던 돌담입니다.

제주는 고려시대 몽골 간섭기에 대규모 목마가 시작되었지만, 조선시대 초까지만 해도 목장이 해안가 평야지대를 비롯한 섬 전역에 흩어져있어 농경지 피해가 이만저만한 게 아니었나 봅니다. 더불어 1429년(세종 11) 한라산 중턱으로 목장을 옮기게 되었는데, 숙종 때에는 국영목장을 10구역으로 나누어 관리하는 10소장所場 체계가 갖추어졌다고 합니다. 그리고 10소장 위·아래 경계에 돌담을 쌓았는데, 그것이 바로 잣성입니다.

잣성은 그 위치에 따라 상잣성, 중잣성, 하잣성으로 나눠집니다. 한라산 중산간 지대를 위, 중간, 아래로 크게 3등분해서 돌담으로 빙 둘러 쌓은 셈이지요.

▲ 가시리 갑마장 잣성 ⓒ김일우·문소연

▲ 가시리 중잣성 ⓒ김일우·문소연

가장 먼저 쌓아진 게 중산간 해발 150~250m 일대의 하잣성입니다. 15세기 초반부터 축조됐는데 애당초의 목적대로 말들이 농경지에 들어가 농작물을 해치지 못하게 하기 위한 것이었지요. 18세기 후반부터는 한라산 깊이 들어간 말을 잃어버리거나 얼어 죽게 하는 사고를 막기 위해 해발 450~600m 일대에 상잣성이 축조됩니다. 해발 350~400m 일대에 만들어진 중잣성은 상잣성과 하잣성 사이의 공간을 나누는 돌담으로 대체로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쌓아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잣성의 총 길이는 60㎞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모두 제주백성들을 부역형태로 동원해서 쌓았다고 합니다. 잣담을 이루고 있는 돌 하나하나에 제주선인들의 손길과 땀이 서려있는 셈이지요. 

우리나라에서 조선시대 목축과 관련된 잣성은 제주도에만 남아있고, 단일 유적으로는 가장 긴 선형線形 유적일 뿐만 아니라, 조선시대 제주도 중산간 지역에 설치됐던 국영목마장의 실체를 입증하는 역사유적이자 제주도의 전통목축문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표적인 유적입니다.

▲ 상하창 공동목장 상잣성 ⓒ김일우·문소연

▲ 수망리 중잣성 ⓒ김일우·문소연

남원읍에 가면 상·중·하 잣성의 흔적을 모두 찾아볼 수 있습니다. 수망리에 남아있는 중잣성과 한남리에 남아있는 상잣성, 위미리에 남아있는 하잣성 등이 그것인데요. 모두 제법 길게 남아있고 주변에 여전히 목장이 형성돼 있거나 풍광이 좋아 둘러볼만 합니다.

표선면 가시리에는 갑마장 잣성의 흔적이 남아있습니다. 조선 선조 때 의귀리 김만일이 말 500필을 국가에 헌납하자 정부는 10소장 내에 동·서별목장을 설치하도록 했는데요. 가시리 갑마장 잣성은 바로 그 유적이라고 합니다. 가시리 중잣성은 정석항공관 뒤편 소록산과 대록산을 경계로 쭉 뻗어 있는 겹담으로 확인해볼 수 있습니다.

안덕면에도 잣성이 남아있습니다. 안덕면 공설공원묘지로 들어서는 도로변에서 최근에 조성된 트레킹 코스를 따라 병산오름까지 길쭉하게 연이어져 있는 돌담이 7소장 상잣성의 흔적입니다. 중잣성과 하잣성은 상잣성 아래로 1㎞씩 건너뛰면서 있었다고 전해지는데, 지금은 띄엄띄엄 일부만 남아있습니다. / 김일우·문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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