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섬의 숨, 쉼> 버찌가 떨어질 때 1

진나라의 거문고 달인 유백아는 자신의 연주를 들으며 마음까지 읽었던 고향친구 종자기가 죽었을 때 거문고 줄을 끊어버렸다. 이 세상에 자기의 거문고 소리를 들어줄 사람이 없다면서. 여기서 유래된 지음(知音)은 마음까지 통하는 아주 가까운 관계를 뜻한다.


뭐, 지음(知音)까지는 못되지만 나를 믿고 자신의 시(詩)를 읽어주길 원하는 친구가 있다. 내가 사랑하는 그 친구의 작품 가운데 하나가 ‘버찌가 떨어질 때’ 이다.

몇 년전 내가 고민하는 일이 있어 수목원을 함께 산책한 적이 있었는데.. 못된(?) 이 친구는 나의 고민을 흘려들으며 이런 멋진 시를 세상에 내놓고야 말았다.

버찌가 떨어질 때

초여름
벚나무 숲길을 거닐자니
버찌들 뛰어내린다.
마음 단단히 먹고
두 눈을 꼭 감고
뛰어내린다.
더 크고 더 멋진 벚나무로 태어나려고
풀숲으로
풀썩
긴 여행을 떠난다.

내가 여기서 가슴이 쿵한 부분은 풀썩 에서다. (내가 여러 차례 요 부분만 연을 나누든가 굵은 글씨로 하자는 의견을 내놨지만 기각됐다. )

여기서 받은 느낌은 ‘절정의 순간‘.
굳이 설명 안 해도 이 작고 예쁜 버찌의 마음을 알 수 있으리라. 끝과 죽음이 아니라 새로움으로 나아가기위해 기꺼이 몸을 내 던지는 열정이 예쁘다는 것을. 그러나 이면에는 그 만큼이나 엄청난 두려움과 갈등이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 마음 단단히 먹고 / 두 눈을  꼭 감고’ 뛰어내리는 것이다.

▲ 비틀즈의 실질적인 마지막 앨범이 된 <아비로드>의 표지사진은 멤버가 아비로드의 횡단보도를 지나가는 장면으로 되어 있다. 존 레논, 링고 스타, 폴 매카트니, 조지 해리슨 순. 지금도 런던에 있는 이 횡단보도에서 많은 여행객들이 <비틀즈 따라하기>를 한다고 한다.

이런 비슷한 쿵 하는 느낌은 지지난해 겨울 비틀즈의 고향 리버풀시티에 있는 비틀즈 스토리에서 벽면 가득한 한 사진을 보았을 때도 비슷하게 다가왔다.  그 유명한 아비로드(Abbey Road)를 건너는 사진. 끝이 없을 것 같은 골목길을 따라가며 양 옆에있는 여러 가지 전시물을 보게 된 비틀즈 스토리는 말 그대로 비틀즈의 모든 이야기를 차례로 보여준다. 그 이야기의 절정이 아마도 ‘아비로드’가 아닐까. 녹음을 위해 런던에 있는 EMI 레코드사를 들어가는 그 순간, 비틀즈는 모두 행복했고 공동으로 미래에의 꿈을 꾸었을 것이다. 리버풀 촌놈들이 세계적인 레코드회사에서 녹음을 하게 되다니. 행복한 상상을 하며 기운차게 이 길을 걸었을 것이다.

여기서 내가 전문가처럼 비틀즈를 논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거다.
이 절정의 느낌, 결정적 순간.
그것은 버찌가 나무에서 땅으로 낙하하는 그 찰나와 같은 순간이다.
그것은 앙리 까르띠에 쁘레송의 ‘결정적 순간’과 같은 느낌이다.

누구에게나 결정적인 순간은 있다.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비틀즈에게도,
제주도 수목원 입구에 사는 벚나무의 버찌에게도.
비틀즈에게나 버찌에게나 ‘ 결정적 순간’은 공평하게 다가오고 똑같이 중요하다.
그리고 나에게도 ‘결정적 순간’이 있다.

나는 한때 삶의 결정적 순간이란 불타오르는 청춘 언저리에 있는 줄 알았다.
(중학교 2학년때 쓴 메모장을 보니 나이 마흔이 넘어서 사는 삶은 치욕이라고 적힌게 보인다.  앗 , 내가 왜 그때 그런 말도 안되는 생각을 했었는지.
지금 마흔을 훨씬 넘겼는데도 난 아직도 어떻게 앞날을 살아갈 것인가 고민하고 있는데.)
결정적 순간이란 말이 주는 강력한 울림이 청춘의 열정과 닮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청춘을 훌쩍 넘겨 삶의 후반부로 가는 길목에 서보니 ‘결정적 순간’이란 꼭 한 번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매 번 하루에도 열 번씩, 혹은 일년에 열 번씩 우리는 ‘결정적 순간’과 만난다. 이때 중요한 것은 ‘ 결정적 순간’이 왔음을 영리하게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중요한 순간일지라도 인식하지 못하면 그냥 흘러간다. 그 순간을 확실히 포착하기 위해서 우리는 평소에 끊임없이 지혜롭고 현명하게 사는 연습을 해두어야 한다.  그래서 그 연습량이 가득 차 넘쳐 흐를 때, 그때가 바로 우리 삶의 결정적 순간이 되는 것이다.

▲ 앙리 까르띠에 쁘레송의 ‘ 결정적 순간’. 1932년 파리에서 찍은 이 사진은 사진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교과서처럼 보고 또 본다고 한다.

앙리 까르띠에 쁘레송은 자기가 원하는 컷을 잡기 위해 열시간이고 스무시간이고 한 자리에서 집요하게 피사체를 관찰했다고 한다. 그러다 순간 원하는 컷을 잡으면, 그 컷은 영원이 된다고 했다.
우리도 우리 삶의 결정적 순간을 영원으로 남기기 위해 기꺼이 오랜 기다림과 훈련의 시간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태풍 카눈도 짧은 시간 엄청난 폭우를 뿌리며 제 존재를 인식시키더니 휙 떠나가 버렸다.  이제 햇볕 쨍쨍한 여름날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덥다 덥다 하며 만들어 놓은 냉방으로 몸을 식히지 말고 당당하게 한여름 햇볕 길을 걸어보자.
뜻밖에 그 길에서 절정의 느낌, 결정의 순간을 만날 수도 있으니. /홍경희

           
▲ 홍경희(바람섬). ⓒ제주의소리
글쓴이 바람섬은 “그랬다는 것이 아니라, 바라건대 청춘 이후의 내 삶은 독서와 요가로 채워졌다고 말하고 싶다. 요즘은 아들 딸의 강력한 사춘기 에너지를 갱년기 에너지로 힘겹게 맞서며 하루하루살아가고 있다. 좋은 부모 만나 서울에서 사회학을 공부하고 고향에 돌아와 10년 언론사에서 일했다. 그 후 이제까지 제주교재사를 운영하며 (아무도 알아주지 않겠지만)행복한 교육으로 가는 작은 다리가 되고 싶다는 마음으로 교재 교구를 판매하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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