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으멍 보멍 들으멍](10) 한치물회에 깃든 생각 / 정신지

▲ 50년 넘게 만들어 오신 한치물회의 비결은 “아무 것도 없다” 라고 할망은 말씀하신다. 진정한 손맛의 대가이다. 이 정갈하게 차려진 한치물회 가격은 놀라지마시라. 단돈 6000원.  / 사진=정신지 ⓒ제주의소리

자전거를 타고 제주 애월항에 갔다. 타이어도 녹일 듯한 무더위에 한 시간 남짓 페달을 밟아 애월항으로 향한 목적은 단 하나. 그곳에서 50년 넘게 식당을 경영하고 계신 한 할망, 그녀의 이야기가 듣고 싶어서가 아니라, 얼마 전 처음 맛본 할망의 한치물회가 다시 먹고 싶어서였다.

지난 십여 년간, 가난한 유학생으로 남이 주는 밥만 먹고 살아온 나에게는, (다행히도)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인 ‘식욕’이 평균치 이하로 결여되어있다. 그런 나의 빈곤한 혓바닥에 살맛을 불어넣어 준 음식! 그것이 바로 이번 여름 재회한 제주의 한치물회다. 쫀득쫀득 씹히는 맛이 일품인 한치의 싱싱함이 식초도 아닌 빙초와 어우러진 그 맛. 먹어보지 않고는 도저히 형용할 수 없는 한여름의 별미다. 

한 그릇 뚝딱 먹어치우고 숨을 돌리고 있자니 할망이 내 앞에 와 앉았다. 자전거를 타고 한치물회를 먹기 위해 왔다는 나를 보시고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무사(왜) 영(이리) 날도 싹싹 더운디(엄청 더운데) 사서 고생햄시냐게(고생이냐)? 너네(너희) 집 근처엔 물회가 어서냐? (없더냐)” 순간, 온몸을 땀으로 적셔가며 식욕 하나 믿고 먼 길을 달려온 내 모습이 위대할 정도로 사치스럽게 느껴졌다. 그래서 난 “게난 마씸(그러게 말입니다)!”하고 웃으며 맞장구쳤다. 제 버릇 남 못 준다고, 결국 나는 지난 50여 년간 애월항의 터줏대감으로 살아온 식당 할망의 옛날이야기 삼매경에 빠져들었다.

1937년생의 그녀는 스물한 살 되던 해, 두 살 연하의 남편과 결혼을 했다. 마을의 소문난 요리사였던 남편과 함께 그가 군에서 제대하자마자 식당을 차렸다. 읍 소재지인 애월에는 일찍부터 학교가 들어섰고, 급식이 없던 그 시절에는 사람을 써서 학교에 점심배달을 가는 것이 가장 큰일이었다. 정식 백반, 육개장에 해물탕, 게다가 짜장면, 짬뽕, 우동까지 만들어 팔았으니, 손님은 늘 북적였다. 고기잡이를 마친 뱃사람들과 가족끼리 먼 시골에서부터 찾아오는 이들까지,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식당에서 허기를 채웠다. “예전에는 지칠 줄을 몰라나서(몰랐어).”라고 말씀하시는 할망은 숨 가빴던 지난 시절의 기억을 털어놓으며 살짝 흥분하신다.

일 잘하는 그녀는, 돈을 벌러 일본에도 다녀온 적이 있다. 다른 사람들이 열 시간 일하는 것을, 할망은 서너 시간 요리를 하며 남보다 돈을 더 많이 벌었다. 하지만, 공기 좋고 물 좋은 고향 앞바다가 그녀는 늘 그리웠고, 오래가지 못해 다시 애월로 돌아왔다.

“할머니, 이 식당은 언제까지 하실 거에요?” 라고 내가 물었다. 그러자 할망은 이제라도 관둘 거라고 하신다. “읍에서도 시에서도 나신디(나에게) 상 주켄(상을 주겠데). 오래 해부난 게(했으니까)…. 겐디(그런데), 어떵(어떻게) 나도 식당만 허당(허다가) 죽을 수 이시냐게(있느냐)? 확 관뒁(빨리 관두고) 놀아보잰(놀아보려고). 산에도 가곡(가고) 물에도 가고게, 경해야(그렇게 해야) 남들 추룩(처럼) 젊게 살아질 거 아니냐게. 이젠 막 버쳐게(힘이 들어). 남편도 손을 다쳐부난(다쳐버려서) 자리나 옥돔 닮은거 잘 뽀시지도(빻지도) 못허곡 게(못하고 말이야).”

 

▲ 할망의 오래된 보물. 이 도마는 50년 넘는 할망의 오래된 보물로 그녀의 손맛과 어우러져 부두식당 음식 맛을 이어온 비결이다. / 사진=정신지 ⓒ제주의소리

 

▲ 이 차림표의 메뉴로 바꾼지도 벌써 30년이 넘었다. 하지만 이제 힘이 들어서 모두 만들지는 않는다고. 얼른 식당을 관두고 놀거라 하신다./ 사진=정신지 ⓒ제주의소리

할망이 식당을 관두면 이 맛있는 물회를 어디 가서 또 먹을 수 있느냐고, 괜스레 서글퍼진 내가 물었다. 그러자 그녀가 자랑스럽게 한마디 한다. “기지이(그렇지)? 어디 가도 이 맛이 안 나와. 여기서 한번 먹어본 자리물회는 딴디(다른 곳에) 강(가서) 절대 못 먹는다게.” 하지만 내일이라도 당장 관둘 것이라는 말을 짓궂게 되풀이하는 그녀. 그러고 있는데 창문 밖에서 할망 하르방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다 먹어시냐(먹었느냐)? 게민 나영(그러면 나랑) 고치 글라(같이 가자). 저 뒤에 가민(가면) 노인들 모영(모여서) 놀암쪄(놀고있어).” 급기야 나는 그녀의 손에 이끌려 식당 문을 열어둔 채 밖으로 나갔다.

평균 연령이 여든에 가까운 대여섯 명의 어르신들이 커다란 소나무 밑에 앉아서 즐거운 오후의 한 때를 보내고 있었다. 갑자기 찾아든 나에게 자기소개를 시키시고는, 재미난 이야기를 해보라 하신다. 시원한 그늘 한편에 자리를 잡고 앉아 나도 나만의 이야기보따리를 펼쳤다.

그들이 살아온 이 지역은 지난날 ‘애월 육백 호’(가장 인구가 많던 옛 시절의 애월을 일컫는 말)라 불렸었다. 사람과 고기를 실은 배가 밤낮으로 왕래하던 항구마을에서, 그들은 힘껏 일하며 젊은 날을 보냈다.

그 시절을 살아오신 할망 하르방의 삶과는 비교도 안 되는 나의 이야기이지만, 다른 마을, 다른 지역, 다른 나라를 누비며 만나 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또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하르방이 전쟁이야기를 하고 있자면, 옆에 앉으신 할망이 손주 이야기를 하신다. 또 다른 하르방이 독도문제를 논하고, 그 앞에 하르방은 4.3이야기를 꺼낸다. 그러다가 한 할망이 내게 말했다. “야이는(얘는) 젊은 소름(사람)이 취미도 괴상허다. 늙은이들 곧는(말하는) 말이 무시거 (뭐가) 재미나댄(재미있다고)….” 바닷바람이 솔솔 불어오는 소나무 밑 그늘에서 모두가 웃었다.

 

▲ 식당 뒤의 소나무 그늘에 동네 할망 하르방이 모인다. 지나온 이야기에 시간갈 줄 모르는 그들만의 시간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천천히 흐른다. 마을 곳곳에 슬로우라이프(Slow Life)가 있다. / 사진=정신지 ⓒ제주의소리

문득, 서두 없는 이야기들이 여러 명의 목소리를 싣고 항해하는 작은 통통배 같다는 생각이 든다. 우연히 그 배에 올라탄 나는 글쓰기를 좋아하는 어린아이이고, 나의 역할은 그들이 가는 길을 소박하게 기록하는 일에 불과한 것.

호주출신의 저명한 역사학자 그레그 데닝(Greg Dening, 1931-2008)이 말했다. “글을 쓰는 작업이란 극장에서 연기하는 것과도 같다. 작가(=배우)의 최종 목표는 관객을 웃게 하고, 울게 하고, 화나게 하며 반응을 자아내는 것에 있다. 그는 연기를 하고있는 동안 그것을 행하나, 늘상 약한 입장에 선다. 언젠가 나는 친구에게, ‘글을 쓰는 일은 깊은 우물에 작은 돌멩이를 던져서 물이 튀는 소리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과도 같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러자 친구는 아니라고 부인했다. 그는, ‘쓴다는 작업은, 그랜드 케니언에 장미꽃 한 다발을 떨어뜨리고 그것이 폭발하기를 기다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걸으멍, 들으멍, 보멍’을 연재하며 벌써 열 번째 이야기를 쓰고 있다. 천성이 게으르고 놀기를 좋아하는지라, 늘 어디에 가는지도 모른 채 무작정 집을 나섰고, 무계획 속에서 할망 하르방들을 만나 왔다. 글을 쓰려는 목적이 있어서가 아니라, 만남의 과정 속에서 새로운 이야기들이 태어나고 있다. 걷고, 보고, 듣는 과정의 결과가 비로소 글이 되는, 정말 별 것 아닌 나의 철학. 하지만 문득 생각난 한 역사학자의 말에 살짝 기운이 솟는다.

 “글쟁이가 만들 수 있는 가장 가치 있는 효과는 창조적 독자의 탄생이다.” 라고도 멋진 말을 남긴 데닝 하르방의 말에 의하면, 나 역시, 제주의 푸른 앞바다에 장미꽃 한 다발을 떨어뜨리고, 그것이 폭발하기를 천천히 기다리고 있는 사람은 아닐까 하고 말이다. 더 많은 이들이 더욱 다양한 꽃다발을 제각각의 방식으로 제주바당(바다)에 던져주기를 기대하며, 나는 오늘도 자전거를 타기로 했다.

할망의 한치물회는 올여름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 여름이 가기 전에 서둘러 애월항에 가자. 내천 옆 ‘부두식당’에 할망이 있다. <제주의소리>

<정신지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정신지는 ?

   

이 여자, 택시 기사들과 대화 나누길 즐기는 ‘수다쟁이’다. ‘역마살’도 단단히 타고났다. 거기에다 ‘촌스러움’까지 좋아하는 독특하고 야무진 여자다. 그녀의 이름은 정신지(32). 파주·부산 출신의 부모님 아래 서울서 태어나 여섯 살에 제주로 이민(?) 왔지만 스무살에 다시 서울로 나갔다가 일본의 대학과 대학원에서 ‘지역연구학’이라는 인문학을 전공했다. 그동안 세계 17개국의 섬·지방·대도시를 떠돌며 사람과 집단, 그 사회에 대한 이해를 넓혀왔다. 지난 봄, 일본의 국립 홋카이도대학(北海道大學)에서 문학박사 과정도 수료했다. 이제 12년간의 지구촌 유목 생활을 마치고, 태어난 곳은 아니되, 자신을 성숙하게 키워준 ‘진짜 고향’ 제주로 지난 봄 돌아와 부모님이 살고 있는 제주시 애월읍 유수암에 짐을 풀었다.  매주 한차례 <제주의소리>를 통해 제주와 그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고 듣고 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