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길의 숨, 쉼] 추석을 맞이하는 우리들의 자세

 “여기 오다 보난 예, 은행이 완전 색이 바랬습디다.”
 ‘이게 무슨 말이지? 은행색이 바래?’ 순간 머릿속이 멈췄다.
 ‘우리 집까지 걸어오는 길에 농협이 하나 있고…  은행 건물 색이?’까지 생각하고 있을 때 그 분이 또 한마디를 더한다. 이젠 초록색이 많이 빠졋슨게마시.
아, 그 은행! 그제야 나는 은행이 그 은행인 줄 알았다. 그리곤 바로 면박을 주었다.
 ‘은행이 익었다’ 내지는 ‘노랗게 물들다’ 같은 낭만적인 표현도 많은데 하필이면 ‘물바랬다’ 뭐냐고.
 하지만 나의 면박에 아랑곳 않고 그 분은 맞는 말 아니냐고 반문한다. 맞기야 맞는 말이다. 하지만 누가 감히 가을에게 이토록 부정적인 표현을 쓴단 말인가? 사람이 아닌 온갖 열매들은 ‘늙었다’는 표현 대신 ‘익었다’고 하고 울긋불긋 단풍도 ‘초록색소가 빠졌다’고 아니 하고 ‘물들었다’고 표현한다. 이것은 뜨거운 여름을 건너온 가을에게 건네는 기본 예의다.
여하튼 무뚝뚝하기로 어느 동네 못지않은 제주 남정네의 표현이니 이쯤에서 넘어가기로 하자.

  이렇게 건강하게 잘 성장해서 익은 자연물에게 우리는 무르익었다와 같은 아름답고 따뜻한 표현을 써 준다. 그런데 사람들에게는 건강하게 잘 살아온 사람들이나 건강하지 못하게  살아온 사람이나 머리가 하얘지면 그저 다 늙었다고 한다. 이제 늙어가려니 그것이 새삼 유감이다. 나는  정말로 익어가고 싶기 때문이다.
우리 아들이 말을 막 배우기 시작할 무렵으로 기억한다. 어느 날 보리밥을 했는데  그것이 아기의 입에는 거칠었던 가보다. 

 “나는 늙은 밥 싫어요!” 하는 게 아닌가? 보리밥이라는 낱말을 모르는 아기가 만들어낸 늙은 밥, 아기가 느끼는 세상에서도 늙는다는 것은 그리 긍정적이지 않은 것 같다.
 

▲ ⓒ김희정

 우리들의 한가위가 다가온다. 올해는 날도 맑아 큰 보름달을 덩실 띄우고 온단다.
 바야흐로 차례 상 위에 무르익은 것들의 향연이 펼쳐 질 게다. 초록빛 청춘의 색이 빠져나가는 것을 후회하지 않았으며, 작렬하는 여름 태양을 그대로 끌어안아 녹여내었고, 살이 찢어질 듯한 비바람을 견디어낸 열매들이 줄줄이 무대에 올라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 에너지에 엎드려 예배한다. 그들처럼 치열하게 살다간 조상들의 얼과 더불어 그들 또한 마땅히 공경 받을 존재들이니까.

  내가 제주의 며느리로서 온 몸으로 명절 노동을 감수해야하는 것처럼 당신들 가운데는 명절 때마다 담금질을 당해야 할 이들도 있을 것이다.

시집 안 간 게 아니라 못 가고 있는 노처녀에게
 “시집 언제민 시집 갈 거니 게? ”
공부라면 그저 그런 놈에게
 “너 공부는 잘 햅나?”
 죽어라고 안 크는 키 때문에 주눅 든 녀석에게
 “ 야, 넌 아직 그 키가?”
 늙는 것도 서러운 어른에게
 “무사 영 늙었수까?”

누군가 이렇게 당신의 속을 뒤집어 놓을지라도 절대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마시라.
 어디 그 뿐이겠는가.

 “형님, 영영해서 섭섭했수다.”
 “어머니, 무사 그램수까?”
 “니 잘한 건 뭐 이시니?”

따위의 말 폭탄이 오고 가더라도 여름날 태풍을 견디듯 잘 견뎌보시라. 그리하면 한가위 차례 상 위에 당당히 오른 저 과일들처럼 당신도, 나도 인생의 한가위쯤 되었을 때 당당히 무대 위에 올라 뭇 존재들의 공경을 받을 것이다. /산길

    
▲ 산길(김희정). ⓒ제주의소리
        글쓴이 산길은 “연꽃을 좋아하고 닮고 싶어합니다. 어른뿐만 아니라 아이도 읽고 공감할 수 있는 시를 쓰고자 정진하고 있지요. 제 시를 좋아해주고 저와 이야기 나누기를 좋아하는 바람섬과의 인연이 인터넷신문 <제주의소리>로 이끌었네요. 컴퓨터와 별로 친하지 않은 제겐 참 놀라운 일이지요”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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