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태욱의 지질기행] 28 60만 년 넘게 분화구 속에 작은 오름 감춰온 당산봉

▲ 고산리 해안에 자리 잡은 당산봉의 전경이다. 높이 148m의 작은 응회구로, 지금부터 약 60만 년 이전에 형성된 것으로 알려졌다.

태풍 산바가 지나간 지 난지 한 달이 넘었는데, 그 후로 비가 내리지 않는다. 가뭄이 오래 지속되니  가을농사를 준비하는 농심은 조급하기만 하다. 마늘과 배추는 파종을 끝냈고, 양파는 새로 어린 모종을 심는 중이다. 혹여나 새로 심은 작물이 말라 죽지나 않을까하는 근심에 농민의 마음은 들녘 못지않게 말라간다. 땅에 물을 대느라 애꿎은 스프링클러만 분주하다.

이른 아침에 고산 들녘이 훤히 내다보이는 당산봉에 올랐다. 고산이 제주의 서쪽 끝에 끝단에 자리 잡고 있어서, 새벽 해는 한라산과 산방산 사이로 떠올라 고산들녘을 흔들어 깨운다.

당산봉은 고산 바다에 인접한 높이 148m의 나지막한 오름인데, 과거에 주민들은 이 오름을 차귀악이라 하였다. 이 오름에 차귀당이라 부르던 당이 있었는데, 당산봉이란 당이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조선 숙종 5년(1679)에 제주안핵어사겸순무어사에 임명되어 제주에 왔던 이증(李增)은 ,남사일록(南槎日錄)>에 "차귀당은 차귀악의 기슭에 있는데, 뱀 귀신을 위한 무속사당이다. … 차귀(遮歸)는 사귀(邪鬼, 사악한 귀신, 뱀신)의 잘못된 표기이다"고 기록했다. 하지만 도내 향토사학자들은 '차귀'는 고산리 일대를 '자구내', '자귓벵뒤'에서 부르든 데서 유래한 것이며, '사귀'와는 다른 것이라고 말한다.

당산봉은 송악산․하논 분화구․두산봉과 같이 이중화산 구조를 띠고 있다. 응회구의 분화구 안에 분석구(알오름)가 자리 잡고 있는데, 알오름의 높이가 분화구 외륜만 못하여 산체 밖에서 보면 알오름이 드러나지 않는다.

▲ 당산봉은 응회구의 분화구 안에 분석구(알오름)가 자리 잡고 있는 이중화산체다. 가운데 둥근 모습을 띠고 있는 것이 분석구이다.

지난 1998년 안동대학교 황상구 교수는 당산봉의 지질을 조사하여 논문 <제주도 당산봉 화산의 화산과정>을 발표했다. 황교수의 논문에 따르면 당산봉 화산체는 말굽모양의 응회구와 그 안에 자리 잡고 있는 분석구 및 분석구 상단과 북부에 있는 용암으로 구성되는데, 이는 표선리 현무암이라고 부르는 용암대지보다 이른 시기에 형성된 것이다.

표선리 현무암은 유동성이 큰 현무암질 마그마가 다량 분출하여 형성된 용암대지로, 제주도의 대부분 지역을 덮고 있다. 표선리 현무암의 형성 시기가 지금으로부터 약 40만 년 전~60만 년 전인 것으로 알려져 있어서, 당산봉의 형성시기는 60만년 이상 거슬러 올라간다. 당산봉 화산체의 구조가 송악산․하논 분화구․두산봉 등과 유사하면서도, 나이는 이들 화산체보다 훨씬 많은 산이다. 

▲ 응회구의 외륜에 주민들이 '거북바위'라는 이름을 붙여 놓은 바위가 있다. 당산봉 응회구의 구성물질과 사층리 구조를 관찰하기에는 더할나위 없이 좋다.

당산봉 산책로의 초입을 벗어나면 둥근 분화구 외륜이 나오는데, 남쪽에 주민들이 '거북바위'라는 이름을 붙여 놓은 바위가 보인다. 잠시 쉬어갈 수 있도록 의자도 마련되어 있는데, 의자에 몸을 의지해 탁 트인 서쪽 바다를 바라보니 참으로 시원하다. 과거 이 바위 옆에 앉아서 누군가는 외구가 들어오는 것을 보며 긴장했을 것이고, 누군가는 서쪽 바다 너머 너 넒은 세상을 향해 나아갈 꿈을 꾸었을 것이다.

기왕 앉았으면 거북바위를 자세히 들여다보는 것도 좋다. 수십 만 년 전에 맨틀에서 솟아오르던 마그마가 물과 만나니, 물이 폭발적으로 끓어오르면서 화산재․모래․자갈 크기의 화산쇄설물을 하늘로 날려 보냈다. 그리고 그 화산쇄설물은 물기를 흠뻑 흡수하니 축축해져 끈적끈적한 반죽이 되어 사면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 흔적이 남은 것이 응회구의 사층리인데. 이 거북바위는 사층리의 구조를 가까이서 확인하기에 안성맞춤이다.

▲ 새벽 햇살에 고산평야가 깨어나는 장면은 차귀일몰 못지 않은 장관이다.

▲ 당산봉에서는 차귀도가 바로 코 앞이다.

해발 148m의 최고봉은 남쪽에 자리 잡고 있다. 수치상으로는 별게 아니지만, 고산의 들녘이 낮은 자리에 넓게 뻗어 있기 때문에 148m의 고도만으로도 상당히 넓은 시야를 확보할 수 있다. 가까운 차귀도와 수월봉은 물론이고, 북쪽으로는 비양도와 남동쪽으로 송악산․산방산까지 훤히 볼 수 있다. 당산봉에서는 차귀도 너머로 가라앉는 저녁 해가 일품이라 하지만, 너른 들판이 새벽잠에서 깨어나는 장면 역시 '차귀일몰' 못지않은 장관이다.  /장태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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