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훈의 제주담론] 12-下 2012 대선 앞두고 광해, 다시 호출되다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는 광해 사후 380여 년이 지난 오늘, 조선의 반쪽, 대한민국 전국의 극장가에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천만 관객이면, 우리나라 총 인구수가 5천여만 명이니 전 국민 다섯 명 중 한 명이 보았다는 것이다. 이 수치는 대단한 것이다. 적어도 성인인구의 1/3이 보았다는 것인데, 역사에서 가장 뒤안에 있던, 묘호도 없는 폐주에 대한 영화가 21세기에, 한반도 남부의 현대판 국왕을 뽑는 대선을 앞두고 개봉되어 천만 관객몰이를 한다는 것은 분명 작은 일은 아닌 셈이다.


특히 1인 2역을 통해 광해의 두 측면을 그려내는 극본의 참신함과 감독의 연출력도 대단한 것이지만, 주인공 ‘하선’과 ‘광해’를 소화해 낸 이병헌의 이름이 허명이 아님을 보여준 영화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보다 더욱 압권인 것은 카사노바 연기로 물이 오른 매력적인 배우 류승룡의 연기다.

 

▲ 두 명의 왕, 진짜 왕과 가짜 왕, 광해와 또 다른 광해. 광해와 하선은 시간대를 달리한 광해군의 모습이기도 하다.

그의 카리스마 있는 연기는, 실제 혁명을 꿈꾸었던 개혁가이기도 한 허균의 면모를 마치 잘 맞춰 입은 핸드메이드 정장처럼 일체감 있게 연기해낸다. 또 다른 볼거리는 호위무사인 도부장을 연기한 김인권이다. 워낙 코믹연기 쪽으로 얼굴이 알려진 배우에게 전혀 어울리지 않는 역을 맡긴 데서 오는 낙차감 때문일까? 묘한 앙상블이 느껴진다. 그는 코믹과 엄숙의 영역을 오가며 역할을 훌륭히 소화해낸다. 이들로 인해 영화는 디테일한 즐거움과 감동을 준다.


영화 속 광해, 즉 진짜 광해는 《승정원일기》의 ‘사라진 15일간의 기록(가상 설정)’을 위해, 이미 폐주의 상을 지닌 화신으로 그려진다. 특히 영화의 초입부, 중전의 오라버니인 유종호의 처벌을 위해 상소를 올리는 유생들이 광해가 가는 길목마다 엎드려 자신을 밟고 가라며 읍소할 때, 한 발자국도 나서지 못하는 광해의 모습은 당시 그가 처한 한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영화는 광해군 8년의 상황을 그렇게 표현한 것이다. 또한 독살 위협의 망상으로 시달리는 광해의 모습은 실제 역사에 있어서 광해가 왜 대북파의 계책에 놀아날 수밖에 없었는가를 설명해주기에 충분하다.

 

▲ 류승룡이 연기한 ‘허균’과 김인권이 연기한 ‘도부장’.

그리고 ‘하선’이 등장한다. 하선은 감독이 원하는 임금이거나, 광해를 호출한 이 시대가 원하는 지도자상이다. 조선시대 천민 캐릭터 중 하선의 역할을 그리기엔 역시 광대가 제격이다. 이는 전적으로 극본의 힘이다. 애초에 연기자인 광대를 화자로 설정함으로써 능란하게 진화해야 하는 하선(천민·서민)-광해(서민이 꿈꾸는 왕)로의 역할을 성장시킬 수 있는 것이다. 파격과 능청스러움, 그리고 영화의 피부가 되는 코믹함은 하선과 함께 엔딩까지의 긴 여정 속에 관객들에게 던져주는 달콤한 호박엿이다.


영화는 광해의 급작스런 의식불명으로 인해 급반전된 상황을 맞는다. 즉, 광대 하선의 가짜 왕 역할에서 진짜 왕 역할로 바뀌면서, 극중 긴장감을 증폭시키며 관객의 시선을 몰입시킨다. 그리고 그 몰입된 긴장의 시간대 속에서 “봐! 왕이란 이래야 하는 거야!”라고 속삭이듯, 때론 거침없이 ‘광해 스타일’을 만들어 낸다. 그런데, 이 스타일은 원래 실제 역사에 있어선 즉위 초의 광해왕의 모습이기도 했다. 그가 당쟁과 왕권 수호를 위해, 신경질적이고 독선적으로, 그리고 대북파에 휘둘리는 왕으로 바뀌기 이전의 모습 말이다.

 

▲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의 초입부 한 장면으로, 독살 위협에 시달리는 신경질적인 광해의 모습을 보여준다.

극중에서 중전에게 끝까지 지켜주겠다고 약속했던 시절의 왕 말이다. 집권 초기, 탕평적으로 인재를 등용하고, 대동법을 펼치고, 서적 간행사업을 벌이고, 전후 복구에 앞장서서 백성들을 위해 온 정력을 쏟았던 시기의 왕이었다. 그리고 그 잃어버린 왕의 모습과 시간을, 진짜 광해가 몸져누운 15일간 하선이 연기한 진짜왕놀음의 시간대에서 복원한다. 그리고 좀 더 나아가 그 왕을 넘어선 조선왕의 궁극의 모습, 조내관과 허균, 그리고 죽음으로 그를 지키는 도부장마저 감동시키고 마는 왕의 모습을 그려낸다. 이 와중에 하선과 광해왕, 백성과 왕의 경계, 정치와 비정치의 경계는 스르르 지워진다.

사실 이 영화의 백미는 이렇게 영화의 시간대 속에서 스스로 진화하는 성장의 시간대가 만들어내는 경계 지우기의 진리, 그중에서도 정치의 경계 지우기라는 메시지와 아름다운 조명을 능수능란하게 사용한 영상이미지가 직조해내는 영화언어에서 빛난다. 그리고 그 지점에서 우리는 역사 속의 지도자상을 반추해내고, 화면 속 하선이 이야기하고 연기하는, 있어야 될 왕의 모습, 백성-국민이 원하는 지도자의 모습과 병치시킨다.

이 짧은 시간, 정치의 본이 백성-국민을 위하는 것이고, 그들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진정성 있는 마음이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간파해낸다. 그 지점이 정확히 감독이 그려내고자 하는 광해의 민낯, 명시적이진 않지만 작품에서 던져낸 올가미에 정확히 관객들의 마음이 포획당하는 순간이기도 할 것이다. 또한 이때쯤이면, 아 이번 대선에 저런 대통령이 나오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에게도 진짜 하선 같은 지도자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욕구가 밀려온다. 문화가 정치가 되는 순간이다. 예술이 현실의 힘이 되는 순간이다.  

추 감독은 “정치적 메시지는 분명히 있지만 특정 인물이나 사안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고 역설하며 “특정 인물과 연계되는 걸 오히려 경계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거대 담론에서 시작한 영화가 결코 아니다.”라며 “광해를 재조명한 영화가 아니라 왕에 관한 영화”라고 설명했다. “천민이 왕이 되었을 때 과연 어떤 행동을 하게 될지, 우리가 원하는 왕은 어떤 사람일지, 인본주의적 관점에서 이런 왕이면 좋겠다는 바람을 경쾌하고 재밌게 우화적으로 담았다.”고 했다. 그는 “가르치려 들지 않고 유머를 통해 전달하는 데 역점을 뒀다.”고 밝혔다.(경향신문, 2012년 10월 21일자 기사)

이런 감독의 의도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가장 가까운 시절의 어느 지도자를 떠올리게 하고 만다. 그도 그럴 것이 원작자인 황조윤 작가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노 전 대통령의 인간적 부분을 드러내려는 의도는 있었다.”고 밝혔다.

영화의 후반부와 끝 장면에서, 가짜 왕을 지키기 위해 죽음을 불사하는 도부장과 배를 타고 떠나는 하선을 나루에서 배웅하며 정중히 목례하는 허균의 모습에서 관객들은 진짜 지도자상을 보여 준 광대 하선의 존재감에 감정이입 되기 마련이다. 


광해와 노무현의 오버랩

광해는 여러모로 고 노무현 대통령을 닮았다. 광해의 모습에서 우리는 노무현과 겹치는 부분을 상당 부분 발견할 수밖에 없다. 문재인 민주당 대선 후보가 이 영화를 보는 내내 눈물을 흘렸다고 했는데, 대한민국 역사상, ‘왕이 된 천민 광해’를 가장 빼어 닮은 지도자가 바로 노무현이었기 때문이리라.


영화 광해에서 가짜 광해인 하선이 신하들에게 호통치는 모습을 보자. 전시작전통제권 반환논란과 관련해,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라는 말로 유명한 당시 연설에서 “군대 작전 통제도 제대로 할 수 없게 만들어 놓은 군 수뇌부는 직무유기 아니냐.”며 자주국방으로서의 전시작전통제권 이양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호통치던 모습과 겹친다.

▲ 노무현과 광해. 시대는 달리했지만, 새로운 나라를 꿈꾸었다는 측면에서 둘은 공통점이 많다. 특히, 그들의 이상이 아직 실현되지 않았다는 측면에서 그들은 지속적으로 호출될 수밖에 없는 운명의 소유자들이다.

또한 그는 하선과 마찬가지로 사회시스템의 가장 밑바닥 현실을 아는 대통령이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 중 유일하게 사병으로 군대를 마친 군필자다. 보온병을 포탄으로 알고 쇼를 하던 안상수 코미디가 기억나는가? 21세기 한국의 집권세력들의 표상이었다. 400년 전 주전파들을 쏙 빼어 닮은.

2007년 12월 삼성중공업의 충남 태안 기름 유출 사건 현장을 방문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해당 해양 경찰청장으로부터 복구 상황을 보고받는 자리에서 날씨를 복구 어려움의 이유로 들자 “그런 게 어디 있느냐? 날씨가 나쁜 경우에도 장담을 해줘야 국민들이 안심을 한다, 그런 각오로 막아야 한다.”며 “(사고) 첫날 날씨가 너무 나빠서 감당하기 좀 어려운 점 있었는데 라고 하면 이제는 국민이 용서하지 않는다.”라고 말해 피해 상황 복구에 있어 최우선이 국민의 안녕임을 역설했는데, 하선이 어린 사월이를 안고 뛰어가던 모습과 겹치고 만다. 안철수 후보가 영화를 보고 나서 약자를 대하는 지도자의 진정성을 생각한다고 한 지점이다.

광해는 서자 출신이라는 점 때문에 재위기간 내내 불안한 정쟁의 소용돌이 속에 살았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역시, 민주당 적자가 아니라는 것 때문에, 학벌에 있어서 한국사회의 메인스트림이 아니라는 것 때문에 부대껴야 했다. 2003년 3월 ‘전국검사와의 대화’에서 나왔던, “이쯤 되면 막가자는 것이지요?”라는 말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만든 최고의 유행어다. 노 대통령이 이런 서민적인 용어를 쓰면 언론은 대통령이 경박하다는 투로 공격했고, 이 사회 주류들은 그에 부응해 대통령스럽지 못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렇게 그를 둘러싼 시간은 다분히 서자 광해의 불안한 정치적 배경을 닮았다.

그리고 그 둘에게는 수도 이전을 추진하려 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광해군은 당시 풍수지리에 따라, 파주 교하가 군사적으로 방어에 유용할 뿐 아니라 중국 대륙과의 해상 교역이 가능해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이기에 적당한 곳이라고 생각하고 수도를 교하로 옮길 계획을 세웠으나, 계속 미루어지다가 결국 시행되지 못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서울시의 집중을 해소하고 균형발전을 위해 수도 이전을 실행코자 했으나, 탄핵으로 국정을 중단당하기도 하면서 결국 수도 이전은 행정도시 조성으로 바뀌고 만다.

또한 영화 후반부에 유생들이 “나를 밟고 가십시오.”라고 엎드려 읍소하자 광해가 기꺼이 그들의 등을 밟고 중전에게 달려가는 모습은, 노 전 대통령이 과거 대선 후보 경선시절에 장인 좌익 전력시비를 두고 보수언론이 공격하자 “그러면 아내를 버리란 말인가?”라고 되물으며 반박하던 모습 그대로다. 

하지만, 광해의 실책들처럼,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도 실책이 많았다. 특히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무리한 졸속 추진, 한국군의 이라크 파병, 스크린쿼터의 포기, 제주해군기지건설, 너무 늦었던 남북정상회담의 안타까움 등이 그렇다. 이러한 국민의 민생과 직접적인 사안들에 대한 참여정부의 판단에는 분명 반국민적인 오류가 존재하며, 이는 결국 범국민적인 저항을 불러일으켰다.

또한 이러한 참여정부시대의 정책들은 MB정부 들어 더욱 악화되는 방향으로 계승되었다. 참여정부의 실책들이 MB정부 들어 극단적으로 확장되면서, 폐해는 더욱 커진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은 광해와 닿아 있다. 백성들의 신망을 잃어버리게 한 폐모사건이나 과도한 궁궐 중건이 그렇다. 이 측면에서 광해-노무현의 공과가 겹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광해가 당대에는 실패한 군주였다는 점에서, 부엉이바위에서 몸을 던진 노 대통령의 삶과 오버랩 된다. 또한 광해의 중립외교 등 지도자로서의 업적에 대한 새로운 평가가 일어나는 것처럼, 노무현 전 대통령 역시 사후에야 그 진가를 알아보는 국민들이 늘고 있다. 그들은 당대에는 실패했지만 그들이 지향했던 정치적 지향점은 미래와 연결되어 있으며, 갈수록 한국사회 지도자상의 일면모로 지속될 것이라는 측면에서 닮아 있다.


결국, 미완의 새로운 조선을 꿈꾸던 국왕이었던 광해와, 새로운 대한민국을 꿈꾸었던, 건국 이후 가장 당당했던, 권위를 포기한 서민 대통령 노무현과의 겹치는 부분은 향후 대한민국 정치권이 가야 할 분명한 이정표이기도 한 것이다. 그 이정표는 하선이 신하들에게 던진, “내 나라 내 백성들이 죽음을 당하는데 허울뿐인 명분이 그렇게 중요한가?”라는 질문에 들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영화가 던져 주는 메시지는 노무현을 넘어서서, 광해를 넘어서서, 성공한 지도자를 원하고 있다. 성공할 수 있는 지도자를 원하고 있다. 그들이 행했던 지도자로서의 덕목과 철학을 가지고 있되, 국민들은 그들을 넘어선 새로운 대통령을 꿈꾸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남는 문제, 정치(政治)의 정치(定置)

 

   

광해군의 치적으로 평가되는 국제정세에 대한 깊은 이해와 균형 잡힌 실리적 중립외교는 21세기를 사는 우리들에게도 현실적인 문제이며, 차기 대통령이 반드시 지녀야 할 덕목이다.

최근 동아시아의 정세는 참여정부 당시 북핵문제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던 동북아의 갈등의 고리가 이명박 정부 내내 동남아시아지역까지 점차 확대되면서 동북아에서 동남아를 아우르는 군사외교의 전략적 재편이 이루어지고 있다. 세계의 시장이면서 공장인 중국이 경제·군사적으로 성장하면서 초강대국으로 부상하자, 아시아로의 복귀를 선언한 오바마 행정부는 중국의 영향력 확장을 제1열도선 내로 묶어 두려는 봉쇄전략으로 대응하고 있다.

중국 역시 미국 중심의 이러한 초승달 벨트를 회피하기 위한 군사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이 와중에서 남한과 북한, 일본은 가장 복잡한 얼개를 형성하고 있다. 아시아를 대상화한 ‘탈아입구전략’을 버리고, 아시아의 일원으로 복귀하는 ‘입아탈구전략’으로 변경할 것 같던 일본은, 다시 한미동맹에 결착해 근대 이후의 해양동맹으로 돌아섰다. 남북의 분단상황은 냉전시대 이후의 군사전략체제를 여전히 고착화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세상은 변할 수밖에 없다.

유일 초강대국에서 점차 쇠락하기 시작한 미·중의 지정학적·군사적 큰 축을 중심으로, 두 개의 전략, 즉 미국의 중국봉쇄전략과 이를 돌파하려는 중국의 회피전략이 대치하고 있으며, 이 축을 중심으로 대치전선이 구축되고 있다. 바로 그 틈바구니에서 주변국과 동맹국 그리고 국제정세의 변화에 가장 민감할 수밖에 없는 분단국가인 대한민국이 있다. 이 형국은 마치 후금이 부상하던 시기처럼, 향후 백년을 규정할 새로운 국제질서가 창출되어가는 와중이다.

특히 세계 초강대국들이 지질학에서의 대륙의 판들처럼 서로 맞물려 있는 지각변동을 몰고 오는 시대인 것이다. 이런 시기가 우리 민족에게는 조선시대, 바로 광해의 시대와 대한제국시절 그리고 해방공간에 있었다. 다시 맞이하는 이 대격변의 시대는 국제정치지형학 상으로 같은 본질의 시대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 역사를 돌이켜 보면, 우리는 언제나 그런 시대에 실패해 왔다.

그때마다 어느 쪽에겐가 이용당하고, 침탈당하고 말았다. 순진한 것인지 멍청한 것인지는 몰라도, 장기국면의 초입, 세력재편기마다 우리는 여러 가지 이유로 실기(失期)했다. 광해 이후 우리 민족은 단 한 번도 이러한 변화의 시대에 적응하거나 주도하지 못한 채 늘 당하기만 해왔던 것이다. 이번의 경우도 그렇게 될 것인지 두고 볼 일이다.

마침내 한국이 세계무대에 복귀했다. 앞으로 다가올 10년 동안 (세계 정세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올) 결정적인 지정학적 요충의 하나로. 한국은 중국과 일본, 미국의 미래, 그리고 아마도 러시아의 미래에까지 중요하게 영향을 미칠 것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한국의 미래는 주로 그 자신에게 달려 있다. … 만약 중도좌파 세력이 승리한다면 북한에서는 어떤 반응이 나올 것인가? 아무도 알지 못한다. 하지만 (북한의) 새로운 지도자 김정은이 부친(김정일)의 정책과는 다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다. 김정은은 일반 북한 주민의 실제 소득을 올리는 데 더 신경을 쏟고 변화에 대해 보다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남한에서 오는 햇볕을 환영할 것 같다. … 만약 중도좌파 세력이 남한에서 집권하고 북한의 새 지도자가 사실상 햇볕에 더 개방적이라면, 세계는 향후 10년 동안 남과 북이 중국·미국의 실질적 공포를 무시하고 낮은 단계의 연방을 구축하는 것을 보게 될 것 같다.(<월러스틴의 ‘논평’>, 2012년 10월 3일자 프레시안)

월러스틴은 중도좌파(안철수, 문재인을 그는 그렇게 분류하고 있다.)가 승리한다면, 남과 북이 10년 내에 낮은 단계의 연방을 구축하게 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통일 한국(낮은 단계의 연방국가)은 세계의 지정학적 상황에 새로운 충격을 가할 것이며, 중국과 일본 사이의 중재 역할을 하면서 3개국의 공동구조를 실현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즉, 이번 대선에서의 정권교체가 한반도 긴장완화와 남북관계에 획기적인 분기점이 될 것이라는 점을 명확히 하고 있는 것이다. 김대중 정부의 트레이드마크인 ‘햇볕정책’의 진정한 성과와 참여정부가 핵심전략으로 잡았던 ‘동북아균형자론’이 그들 사후에 실현될 수 있다는 전망이기도 하다. 즉, 때를 잘못 만난 두 정책이 본격적으로 개화할 시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광해의 중립외교가 임란 직후, 후금의 급부상으로 인한 국제정세의 지정학적 변화의 시기에 발휘되었던 것을 떠올리면, 이제 이번 대선에서는 이러한 국제전략을 잘 이해하고 구사할 수 있는 ‘광해의 권력’이 창출되어야 할 것이다. 북인은 빼고.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는 대권후보들에게, 대선을 치를 국민들에게 지금 고민해야 할 과제를 던지고 있다.

▲ 박경훈 제주민예총 이사장. ⓒ제주의소리

최근 3명의 대선주자들이 연일 공약사항들을 쏟아내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친서민정책들을 발굴하고 자신만이 서민들의 진정한 해결사가 될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하지만 오래된 역사 속의 조세제도였던, 광해의 대동법에 버금가는 대선주자들의 공약은 없는 듯하다. 하선이 “땅 열 마지기 가진 이에게 쌀 열 섬을 받고, 땅 한 마지기 가진 이에게 쌀 한 섬 받겠다는데 그게 차별이오?” 하는 그런 제도 말이다. 버핏세니 부자세니 다 그의 한 파생상품일진대, 차라리 <신대동법>으로 대선 주자 중 누가 공약 좀 하면 어떨까?

하선이 또 보탠다. “이 좋은 제도를 왜 하지 않는 거지?”라고. /박경훈 제주민예총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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