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으멍 보멍 들으멍](20) 귤 밭 하르방의 말 없는 가르침 / 정신지

 

▲ 하르방의 귤나무에 잘못해서 불이 붙었다. 40년이 넘게 가꾸어 오신 자식 같은 나무다. 이 나무를 길러 거두신 자손은 무려 스물다섯 명. / 사진=정신지  ⓒ 제주의소리

듣고 싶은 이야기들이 한층 많아져 가는 가을, 제주는 참으로 분주하다. 살랑살랑 몸을 흔들기 시작한 어린 억새꽃이며, 흐드러지게 핀 코스모스, 노랗게 영근 귤은 단맛이 땅 끝에가 닿을 듯 주렁주렁 열려있다. 보이는 모든 풍경이 분주하고, 귤을 따고 콩을 타작하는 사람들의 손끝은 더더욱 쉴 새가 없다. 그래서인가, 오늘따라 앉아서 한가로이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길 끝으로 하르방 한 분이 뚜벅뚜벅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모른 척 그의 곁으로 다가가 길이라도 물을까 하며 발밑만 보며 걸었다. 그러다 고개를 들었는데 이런, 그가 사라지고 없다. 길옆 귤 밭에서 부스럭 소리가 들린다.
“쓰레기를 태우당이네(태우다가) 어떵(어찌 된 게) 이 귤나무가 반쪽 타부러서(타버렸어). 허이고.” 하며 그는 군귤(?)이 되어버린 열매와 타버린 가지들을 잘라내고 있다.

올해 77세인 하르방은 집안 대대로 이 동네에서 나고 자란 농사꾼이다. 하지만 태생은 일본 오사카다. 일본강점기에 아버지 식구가 모조리 강제노동자로 바다를 건넜다. 하지만 그의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그가 태어나던 해에 아버지는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의 귤나무 옆에 쪼그리고 앉아 이것저것 물어대는 내 성화에, 하르방의 대답은 “응”, “그렇지”가 전부다. 말 수가 없으시다. 그도 그런 것이, 그는 지금 바쁘고 나는 그의 일을 방해하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그의 곁을 떠나는 것이 아쉬워 가만히 앉아 턱을 괴고 하르방을 지켜보았다. 철이 없어도 한참 없다.

그러고 있는데 밭담 사이로 아주머니 한 분이 지나가시다 하르방을 보며 환하게 웃는다. 묻지도 않았는데 하르방이 큰 목소리로 그녀를 향해 말했다. “똘이 하나(딸아이 한명이) 놀러 완(놀러왔어).” 무뚝뚝하던 하르방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돈다.
“할아버지 부인마씨(부인이에요)?”라고 내가 묻자, 아주머니의 뒷모습을 즐겁게 바라보며 “아니, 동네 어린 아이덜게(아이들이지).” 하신다. 하르방의 옛이야기로 향하는 튼튼한 철문이 끼익 소리를 내며 열리는 것만 같다.

하르방의 귤나무는 100그루가 조금 넘는다. 40여 년 전 새마을 운동이 전국각지에서 일어나며 제주에 귤 농사 붐이 일어났을 때, 그는 큰맘 먹고 귤 농사에 뛰어들었다. 사람의 나이로 치면 대강 불혹을 넘긴 귤나무들을 그는 아직도 자식처럼 돌보고 있다.

귤뿐만이 아니다. “내가 자손이 스물다섯 명이야.” 라시며 목소리에 힘을 주던 하르방은, 농사도 짓고 목수도 했다. 돌담을 쌓는 일도 하고, 가축도 기르며, 한집안의 가장으로 한 마을의 일꾼으로 평생을 살았다. 하지만 이내, “내가 초등학교도 못 나온 사람이야.” 하신다.
 

▲ 나의 손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내가 돕겠다는 것을 마다하시고는 귤이나 까먹으라고 하나 따주신 귤. 까는 김에 콩도 까봤다.  / 사진=정신지  ⓒ 제주의소리

 

▲ 이번 가을, 그리고 겨울. 할 일이(혹은 돈이) 없다면 귤밭으로 나가자. 제주의 바쁜 풍경 속에 몸을 담고 바쁘게 살자. 그것이야말로 제주에서 살 길. 제주가 사는 길.  / 사진=정신지  ⓒ 제주의소리

침묵과 침묵의 사이에 고랑을 파듯 그는 짧고 굵은 말들을 툭툭 내뱉는다. 그리고 나는 그것들을 바구니에 주어담듯 총총걸음으로 하르방을 따라다니며 이야기를 들었다.
“옛날엔 사람들이 이 나무를 ‘대학나무’ 랜(라고) 해나서(했어). 이 나무 한 그루민(한 그루면) 대학교를 한다고 행이네(보낸다고 해서). 그 정도로 되어나신디(되었었는데), 지금은 열 그루 해봐도 대학교 못허여(못해).”

그가 초등학교 일 학년이 되던 해 나라가 해방되었다. 일본식 소학교가 한국학교로 바뀌고, 일 년 남짓 들뜬 마음으로 학교에 다녔다. 하지만 이듬해 4.3사건이 터졌다. 그리고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집이 불에 탔다. 학교도 사라졌다. 그의 인생에 ‘공부’라는 단어가 사라져버린 슬픈 순간이었다고 하르방은 회상한다. 삼 형제의 장남이었으나, 동생들 역시 일찍 세상을 떠났다. 그는 4.3사건의 ‘4’자도 듣고 싶어 하지 않는 눈치다. 그래서 나도 더는 묻지 않았다. 물어서는 안 된다. 그렇게 순식간에 소중한 것들이 파괴되고 사라진 그곳에 하르방은 대학나무를 100그루 심고, 콩, 보리, 조를 심어 돌담을 쌓아가며 삶을 일구어오셨다. 자식들을 대학에 보내고 결혼시키며 스물 다섯 명이나 되는 자손을 거느린 한집안의 대장님. 그 커다란 사람이 내 눈앞에서 열심히 일을하고 있는데, 무슨 질문이 더 필요하랴.
 
그가 훌쩍 자리를 떴다. 타버린 귤나무를 정리하고는 옆에 있는 콩밭으로 가신다.
“할아버지 콩도 하셤구나예(하시는군요)?”
“해야지게(해야지).”
“태풍에 많이 날아가불지 않안마씨(날아가버리지 않았어요)?”
“날아가고 남은 것만 허는 거주게(하는 거지).”

수확이 끝난 마른 콩 가지가 밭 여기저기에 둥그렇게 쌓아져 있다. 그것을 경운기 뒤에 한 뭉텅이씩 실어다가 한쪽에 옮겨 놓는 일이 오늘 그가 해야 할 일이다. 덜덜거리며 천천히 경운기가 움직이고, 그가 일하는 동안 나는 콩깍지를 하나 집어다가 벗겨보기도 하고, 그가 따준 귤을 하나 까먹기도 한다. 불혹의 나이를 넘긴 늙은 나무의 귤인데, 속살은 갓 태어난 강아지 털처럼 보드랍다. 맛은 이루 말할 수도 없이 달콤했다. 

 

▲ 예전에는 굶지 않으면 돈을 벌 수 없었다고 하르방은 말씀하셨다. 이제 굶는 일은 없는데 하르방은 일을 관둘 수 없다.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그는 밭에 나가 일을 한다. / 사진=정신지  ⓒ 제주의소리

 

▲ 귤을 수확하고, 거두어들인 콩을 말려 타작하고, 제주의 가을은 바쁘다. 하지만 일손이 없어 하르방 혼자 그 일을 다하신다 / 사진=정신지  ⓒ 제주의소리

농사 중에 가장 쉬운 것이 귤 농사다. 그가 그랬다. 귤나무는 사람이 주는 물을 먹고 자라는 것이 아니다. 비가 오면 비를 맞고, 물이 없으면 땅 밑의 돌이 머금고 있는 물까지 힘껏 빨아 먹으며 열매를 맺는 것이라고 하르방은 말했다. 비료를 주고 농약을 치는 것은 다른 곡식들과 별반 차이가 없다. 하지만 지금 그에게 가장 힘든 일은 귤을 따놓고 그것을 운반하는 일이다. 그것조차 그는, “허당(하다가) 버치민(힘들면) 내부러뒁(내버려두고) 집에 가. 경행(그러다가) 또 나와지민(나오게 되면) 허는 거라(하는 거지).” 라신다.

60년이 넘게 농사꾼으로 살아온 그에게 이제 서두를 일은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쉴 핑계도 없이 계절은 돌아오고, 귤나무처럼 그도 나이를 먹어간다. 굶어 죽지 않기 위해 일을 했던 지난날과는 사뭇 다른 이유이지만, 밭에 나와 일을 해야 한다는 그의 마음은 언제나 한결같은가보다.

그렇게 나는 하르방 곁에서 한나절을 보냈다. 바지에 묻은 콩깍지를 털고 일어나 마지막으로 그에게 가 물었다.
“할아버지, 사람이 일을 하면서 가장 중요한 게 뭐라고 생각하셤수과(생각하세요)?”
그랬더니 경운기 소리에 내 말이 잘 안 들렸는지, 아니면 갑자기 괴상한 질문을 받아 어이가 없으셨는지 이렇게 말씀하신다.
“요즘은 밀감 따는 일이 돈을 젤로(가장) 많이 줘.”
“아니, 할아버지 그게 아니고예(아니고요), 일을 할 때 가장 중요한 게 뭐냐고마씨(뭐냐고요)?”
“아아. 그건 이녁(자기) 마음이지.”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마씨(말이죠)?”
“그렇지.”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다음부터 다시는 이런 멍청한 질문은 하지 말아야지’, 하고 다짐을 하는데 하르방도 나를 보며 피식하고 웃는 것 같다. 부끄러운 마음에 쥐구멍이라도 찾듯 잽싸게 인사를 하고 콩밭을 빠져나왔다.
제주도의 가을을 사는 이들은 바쁜 게 정상이다. 나도 힘껏 바빠져야 할 일이다. / 정신지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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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지는 ?

   

이 여자, 택시 기사들과 대화 나누길 즐기는 ‘수다쟁이’다. ‘역마살’도 단단히 타고났다. 거기에다 ‘촌스러움’까지 좋아하는 독특하고 야무진 여자다. 그녀의 이름은 정신지(32). 파주·부산 출신의 부모님 아래 서울서 태어나 여섯 살에 제주로 이민(?) 왔지만 스무살에 다시 서울로 나갔다가 일본의 대학과 대학원에서 ‘지역연구학’이라는 인문학을 전공했다. 그동안 세계 17개국의 섬·지방·대도시를 떠돌며 사람과 집단, 그 사회에 대한 이해를 넓혀왔다. 지난 봄, 일본의 국립 홋카이도대학(北海道大學)에서 문학박사 과정도 수료했다. 이제 12년간의 지구촌 유목 생활을 마치고, 태어난 곳은 아니되, 자신을 성숙하게 키워준 ‘진짜 고향’ 제주로 지난 봄 돌아와 부모님이 살고 있는 제주시 애월읍 유수암에 짐을 풀었다.  매주 한차례 <제주의소리>를 통해 제주와 그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고 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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