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숙의 제주신화 이야기] (46) 가믄장아기 원형 5

발 막아 누울 아들이나 하나 보내 주시오

가믄장아기 원형은 실용적이면서도 호기심 많고, 습관이나 타성에 젖어 있지 않은 진취적인 기질의 여성 원형이다. 당돌한 호기심과 관심은 자신과 세상을 바꾸는 첫걸음이다.

이 재 넘고 저 재 넘고 신산만산 굴미굴산을 넘고, 달빛도 없이 미여지벵뒤 만여지벵뒤 허허벌판을 고달프도록 걷던 가믄장은 쓰러져 가는 마퉁이의 집을 발견하고 하룻밤 머물게 해달라고 한다. 그 와중에도 세 아들 마퉁이들의 성품을 자세히 관찰하고 부모에게 진실된 마음을 가지고 있는 막내마퉁이를 눈여겨본다. 밤이 되자 ‘발이 시리니 발막아 누울 아들이나 하나 보내 주십사’ 요청한다. 육체적인 욕구와 정서적인 외로움에 대한 욕구가 내재된 대목이다.
 
초록은 동색이라고, 결국은 그녀의 남편이 되는 막내마퉁이 역시 실용적이면서도 호기심 많고 습관이나 타성에 젖어 있지 않은, 당돌한 가믄장아기의 성향을 일부분 가지고 있다.

자신을 받아들여 준 것이 고마워 가믄장아기는 기름이 반지르르 흐르는 밥상을 준비하여 들여간다. 평생 마만 먹고 살던 부모님과 아들들은 ‘이건 한 번도 본 적 없고, 들은 적도 없고, 먹어 보지도 않았던 것이다.’며 상을 물린다. 그러나 막내마퉁이는 받아먹었다. 

마찬가지로 ‘발이 시리니 발막아 누울 아들이나 하나 보내 주십사’ 청하는 가믄장의 당돌한 요청에 마퉁이 어머니는 감짝 놀라면서도 아들을 셋이나 둔 어미로서는 반가운 소리라, 아들들에게 권해 본다. 큰마퉁이와 둘째마퉁이는 ‘근본도 모르는 여자에게 보내서 공연히 아들들을 죽여 먹으려 한다.’고 화를 낸다. 그러나 이번에도 막내마퉁이는 기뻐하며 가믄장아기의 방으로 들어가 연분을 맺는다.

막내마퉁이와 함께 부자가 되는 대목도 마찬가지다.
막내마퉁이와 한방에서 잠을 자고 다음날 아침 가믄장아기는 마 파는 곳을 따라나선다. 따라가 보니 큰마퉁이가 마 팠던 데는 똥만 물컹물컹 쥐어지고, 둘째마퉁이가 마를 파던 데는 지네, 뱀, 짐승들만 가득하고, 막내마퉁이가 마를 팠던 곳에는 쓸모없는 것이라 여기저기 던져버린 자갈들만 가득했다. 그걸 주워, 겉에 묻은 흙을 박박 쓸어 자세히 보면 금덩이이고, 또 박박 쓸어 보면 은덩이였다.

편견이나 타성에 젖지 않는 열린 마음

자신의 운명을 바꾸는 것, 부자가 되는 것 역시 지금껏 해 온 방법 그대로를 답습하며 농사를 짓고 아무 생각도 없이 관례적으로 일처리를 해오는 방법으로는 어려운 일이다. 쉽고 새롭게 마를 파내는 방법들을 궁리하지도 않고, 필요한 것만 쏙쏙 빼내면서 제대로 치우지도 않고, 정작 중요한 것은 몰라보고 당장 눈앞의 필요한 것만을 취하는 마퉁이들이 새로운 삶을 맞이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하찮게 생각해 왔던 것들에 관심을 가지고, 본 적도 들어본 적도 없는 새로운 방법으로 일과 인간관계를 들여다보면서 막내마퉁이처럼 운명이 바뀌고 삶과 생활이 바뀌고, 부자가 되기도 한다. 제도화되어 있는 것들에 의문을 제기하고, 공기처럼 자연스럽게 존재해 왔던 것들을 다시 생각해 본다는 것은 중요하다.

가믄장아기가 인연과 운명에 좋은 전상을 가지는 여신일 수 있었던 것은 편견이나 타성에 젖지 않는,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과 사물과 현상들을 남다른 호기심을 가지고 바라보았기 때문이었다. 호기심과 관심은 숨어있는 문제를 보게 한다. 다른 발견을 하게하고 새로운 해결 방안을 궁리하게 한다.
막내마퉁이 역시 부모님이나 형님들과는 다르게 편견이나 관습, 타성에 젖어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래서 가믄장아기라는 커다란 기회를 잡을 수 있었던 것이다.
  
세상의 중요한 일들 중에는 운이 따라 주고, 요행이 있어야만 정복할 수 있는 것이 많다. 
그러나 내 앞에 아무렇게나 내던져진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잡을 수 있는 것은 형님 마퉁이들처럼 편견이나 관습, 타성에 젖어 있는 사람들에게는 힘든 일이 될 것이다. /김정숙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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