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숙의 제주신화 이야기] 49 당연하다고? 이상한 건데!

세상을 바라보는 실질적인 감각, 실용주의, 자아지향적인 욕구, 감성보다는 이성적 판단을 중요시하는 선택, 건조하고 딱딱한 태도, 본질적인 가치에 대한 강한 희구, 약자에 대한 배려는 가믄장아기 여성들이 가진 특징이다.


여신 가믄장아기는 종들을 거느리고 사는 부잣집의 딸, 귀여움을 받는 막내의 자리가 자신이 생각하는 인간 존재의 진실과 어긋나자 친근한 관계를 털고 집을 나가버림으로써 고난을 감수한다.

가믄장이 원한 것은 개체로서의 인간에 대한 존중이었다. 일어나는 일, 나타나는 현상, 만나는 관계들마다 여성비하의 가부장적인 관습이 존재했으니 가믄장 여성들은 그 모든 것들에 부딪혀야 했다.

▲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사진출처. 네이버캐스트). 최초의 여성주의자 가믄장인 그녀는 1792년, 이성이 모든 것의 화두가 되고 있던 그 때, 「여성의 권리옹호」에서 여성도 남성과 동등한 이성을 갖고 있으며, 여성이 복종해야 할 대상은 아버지나 남성이 아니라 인간 고유의 이성(理性, reason)”이라고 주장했다.

인간으로서 가지는 신뢰를 바탕으로 별반 의심 없이 발랄하게 살아 온 가믄장 여성들은 부모와 형제, 어른과 아이라는 사회적 관계나 생물학적인 여성, 사회문화적 여성과 관련되며 만들어지는 사회현상 모두에 이상한 차별이 숨어 있음을 점점 느끼게 된다.


밖에 나가 놀다오고 싶은 가믄장 아이에게 부모님은 ‘여자 아이가 싸돌아다니지 마라’ 일침한다. 청바지에 티셔츠 차림으로 나가는 가믄장 처녀에게 부모님은 ‘여자 아이가 머리도 좀 기르고 치마도 입고, 좀 예쁘게 하고 다녀라’ 잔소리한다.

사실은 오늘까지 마감인 공과금 처리도 깜빡하여 스스로도 머리를 쥐어박고 있는 중인데, ‘생수 떨어진 것도 몰라?’ 남편에게 구박받는다. 공과금까지는 전연 헤아리지도 못하고 있을 테니, 놓친 구박도 꽤 있으련만 오늘만도 가믄장 아내는 여러 번 구박을 당한다.

환경생태모임에 다녀오느라 아이를 늦게 데려와야 했던 그녀는 ‘도대체 머리가 어떻게 된’엄마가 된다. 어쩌다가 남편이 아이를 찾으러 가면, 참 좋은 아빠고 남편이라 찬사를 건네는 어린이집 원장님의 미소 뒤에 어머니 가믄장은 쉬 의심받는다. 퇴근하며 총총히 저녁 찬거리를 사러 간 가믄장 아내에게 반찬가게 주인은 설핏 마뜩치않은 표정을 짓는다.

불평등의 내용과 형식을 온몸으로 새기며 받아내다가 ‘나는 제사가 싫다’ 했더니, 나댄단다. 그 말은 토픽감이 되고 동성의 선배와 동료, 친구, 심지어 자녀들도 버거워한다. 수고 하는 것 다 알고 있으니 칭얼대지 말라 핀잔만 듣는다. 심지어 ‘이혼감’이란다.

남자의 성욕구를 주인으로 두고, 어느 때고 마늘과 쑥만 먹으며 얌전하게 대기상태로 있는  곰인거냐, 참으면 복이 온다 했거늘 그 새를 못 이겨 뛰쳐나간 호랑이인거냐에 따라(유숙렬의 이야기) 순수와 불순, 마리아와 창녀를 오가며 입맛대로 대한다. 남편들이 나도는 까닭은 나이 들어가는 아내 때문이란다.  

 
똑같은 상황인데 다른 잣대가 적용된다. 모두들 하기 싫어하는 일들이 왜 여자들에게로만 미뤄지고 있는 것일까? 이상한 것을 이상하다고 인식하고 그에 저항하는 건 페미니스트 가믄장의 본질이다.


자아지향적인 욕구가 강하고 가치의 본질에 대한 희구가 강한 그녀는 사사건건 트집을 잡는 여자로 인식되기 쉽다. 부모님이 아무리 잘못했다 해도 친밀한 가족관계를 과감히 끊어버리는 그녀는 일반적이지 않은 인식의 창을 가진 사람이다.


그러나 가믄장의 남다른 인식의 창은 가치의 본질적인 면을 치열하게 찾아내고 좀 더 나은 미래에 대한 소통을 전제하는 싸움이며 소란스러움이다. 그녀는 자신을 비인간적으로 대하는 부모님을 떠나왔지만 부모님 스스로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게 하면서 세상에 대한 개안을 돕는다. 부모님 말이면 무조건 순응하는 관례적인 효는 거부했지만, 좋은 것을 보거나 맛있는 것을 보면서 부모님 생각으로 먹먹해지는 효를 체험하면서 효의 내포를 넓히고 ‘거지 잔치’를 열어 세상의 어른들에 대한 효로 그 외연을 확장시킨다. 


감성에 빠지지 않는 이성적인 모습으로 자신이 생각하는 바의 가치들을 확장시켜 가는 모습은 마퉁이와 관계를 맺는 과정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가난과 무지에 머물렀던 마퉁이들에게 들어본 적도, 본 적도, 먹은 적도 없는 것들을 권하고, 가믄장이 귀신인지 생인인지 종을 잡지 못해 망설이는 상대들에게 자신을 통째로 권하면서 그녀는 자신을 내보인다. 그렇게 같은 영역에 속한 사람을 적극적으로 찾아내고 인연을 맺어, 열심히 밭을 일구고 부자가 된다. 그리고 그 부를 세상과 나눈다. 

▲ 이수정 감독의 다큐. 깔깔깔 희망버스(사진제공/제13회 제주여성영화제). 인간에 대한 예의를!
▲ 가수·문화연구자 지현 인터뷰(출처. 대전일보 2012.8.2). "가부장제 권력이라면 여성과 아이들이 소수자가 되고, 자본주의 체제라면 노동자 빈민이 약자가 되겠죠. 그들에게 관심을 갖고, 부당함에 저항하는 목소리를 내는 이들이 진정한 페미니스트가 아닐까요?"


춥고 낯선 곳으로, 가난 한 곳, 무지한 곳에서 밥을 나누고 발가락의 온기를 나누는 그녀가 열악한 조건의 다문화 가정, 우리말을 모르는 베트남 아내, 입시에 내몰린 학생들, 쫓김을 당하는 도시빈민들, 해고당한 쌍용차의 가족들의 편이란 건 당연한 일이다. 페미니스트 가믄장의 본질은 인간주의의 길 안에, 평화와 반전, 생태주의의 요구도 그 길 안에 있다.

세상의 약자와 밥을 나누고, 발가락의 온기를 나누며 걸어가는 것, 그것이 그녀들이 택하는 길이다. 페미니즘은 역사, 시공간의 다양한 진행 속에서 나타나는 무수한 약자들의 친구다. /김정숙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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