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운호 연재칼럼>(6) 만델라-링컨-도쿠가와가 보여준 ‘통합과 관용’의 정치 

    2012년은 전 세계 29개국에서 대선이 치러진 ‘글로벌 선거의 해’였습니다. G2체제 양축인 미국은 오바마 2기 체제를 열었고, 중국은 시진핑 10년을 출범시켰습니다. 일본은 자민당이 정권을 탈환해 극우파 아베 신조를 총리로 선출했고, 러시아에선 푸틴이 다시 정권을 잡았습니다. 박근혜 후보를 대통령으로 뽑은 대한민국과 함께 한반도 주변 6개국 모두 새로운 지도자를 선출했습니다. 글로벌 경제위기 속에 2013년은 지금과는 전혀 다른 정치적 경제적 격동의 해가 될 것입니다. 동북아 중심이자 아주 작은 섬 제주에겐 ‘위기이자 기회’가 될 새해 벽두에 <제주의소리>는 새로운 의제를 던지고자 합니다. 이 글은 고운호 제주내일포럼 공동대표가 6개월에 걸쳐 준비해 온 원고지 819장 분량의 방대한 제언으로, <제주의소리>는  매주 1회씩 10여차례에 걸쳐 싣습니다. 다소 논쟁적일 수도 있지만 민선 자치단체장 ‘20년 체제’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체제를 준비하는 제주사회가 한번은 반드시 넘어야 할 ‘도전과 응전’의 담론을 독자여러분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편집자  주

  요즘 우리리 사회는 부의 편중으로 인한 극심한 빈부격차와 기회불균등의 심화에 따른 사회 공동체 분열 위기가 방치할 수 없는 수위에 이르렀다.

역대 정부가 한결같이 국민화합과 단결을 강조했음에도 소기의 성과를 달성하지 못한 데는 통합의 시대를 이끌 탕평 리더십이 결여돼 있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 정치의 고질병인 '복수(復讐)의 정치'가 국민통합을 저해하는 사회악이 되고 있다.

이 ‘복수 정치’가 청정 제주에서 재현되고 있다면 어떻게 될까? 승자의 독주를 경계하고 반대세력을 껴안아야 도정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는 건 불문가지다. 지도자는 선거 공신들을 중심으로 한 진영논리에서 벗어나 도정의 성공을 도울 사람을 공정하게 등용하는 탕평 리더십을 발휘해야 비로소 화해와 관용의 대통합을 이룰 수 있게 된다.  다산 정약용이 “나라를 다스리는 일이 사람 쓰는 일에 달려 있다”고 이야기 한 것도 복수의정치 진영의 논리를 경계하는 대목이다. 

오늘 제주사회가 바라는 건 어제에 대한 '보복정치'가 아니라 내일을 향한 '통합정치'다. 지역사회 갈등을 조정하고, 통합하는 책임은 지도자인 도지사에게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위대한 지도자는 국민을 통합하는 탕평 리더십을 발휘했다.

제주 지도자들은 이 탕평 리더십, 통합의 리더십을 보여주고 있는지, 아니면 복수의 정치를 아직도 놓지 못하고 있는건 아닌지. 남아공화국 만델라 대통령은 제주사회가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리더십을 보여준다.  

 # 만델라 “치졸한 복수보다는 연민과 자제력과 관대함이 백인들을 놀라게 하는 방법”

27년간 투옥됐던 그는 대통령이 된 후 차별과 억압의 주역이었던 백인들에게 ‘당한 만큼 갚아주기’보다는 ‘용서와 화해와 관용’을 통해 흑백통합을 이뤄 내려는 리더십을 발휘했다.

만델라는 정치적 자유와 경제적 기득권을 보장해 백인들의 땅을 빼앗거나 공직에서 쫓아내지 않았다. 선거에서 승리했지만 지난 정권 인사들을 정부 요직에 기용, 연립정부를 세웠다. 흑인들에게도 용서와 이해를 역설했다. 모두가 동등한 국민이 되는 것만이 비극의 역사를 치유할 유일한 해법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럭비는 영국이 발상지이자 부유층의 스포츠다. 백인과 흑인사회가 극명하게 갈라선 남아공에서 럭비는 열광과 증오의 대상이었다. 흑인들이 좋아할 리가 없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흑인 선수라곤 한 명밖에 없던 남아공 국가대표 럭비팀이 다른 나라와 시합을 하면 흑인들은 으레 상대팀을 응원했다.

인종차별 정책 철폐 후 남아공에선 럭비팀의 이름은 물론 유니폼까지 바꾸자는 여론이 비등했다. 하지만 만델라는 과감하게 럭비 월드컵을 유치하고 흑인들을 설득해 팀의 명칭이나 유니폼을 바꾸지 않은 채 흑백 간의 통합을 통해 1995년 6월 24일 럭비 월드컵 우승을 일궈냈다.

백인들은 관중석에서 흑인들의 저항 노래 ‘응코시 시키렐레’를 불렀고, 흑인들은 백인들의 그런 모습에서 용서와 하나됨의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만델라는 럭비팀 우승을 통해 갈등과 증오, 무기력의 늪에 빠져 있던 남아공 국민들을 일으켜 세웠다. ‘치졸한 복수보다는 연민과 자제력과 관대함이 백인들을 놀라게 하는 방법’이라는 만델라의 신념이 기적을 일으킨 것이다.

만델라는 국민이 스스로 변화의 의지를 갖도록 영감을 주는 지도자였다. 용서와 화해를 무기로 적을 무력화시켰다. 만델라가 자신의 조국에 안겨 준 가장 값진 선물은 용서와 화해, 관용과 타협의 문화를 심어준 것이었다.

# 남북전쟁 갈등 끊고 ‘共治’ 실현한 링컨...전국시대 혼란 극복 천하통일한 도쿠가와  

오늘 제주에도 만델라와 같이 ‘용서와 화해’ ‘관용과 타협’의 문화를 보여주는 지도자·정치인은 있을까?

지금 제주 사회가 바라는 시대정신은 화해와 통합일 것이다. 도정 운영이란 다양한 목표와 가치를 복합적으로 추구해야 하는 고도의 예술적 행위다. 그러나 작금의 지역 정치는 여전히 분열과 대립을 조장하고, 갈등구조를 이용해 도민들의 표를 모으려는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닌지 좌절이 앞선다.   

지금까지 역대 제주도정은 전임 도정의 주요 정책을 일단 부정하고 보는 치졸한 전통을 답습하는데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다. 역사란 과거의 성찰과 극복을 통해 진화해나가는 것이지만, 그것이 지나치면 이른바 ‘샤워실의 바보’가 된다. 전임 도정과 현 도정 편을 가르고 보복심리를 부추기는 방법으로는 깊어져가는 불황의 굴레 속에 빠진 서민들의 고통과 절망감을 해소할 수는 없다.

역사상 공치(共治)에 성공한 대표적 정치가로 미국의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을 꼽는다. 그는 남북전쟁 갈등을 풀며 성공적인 국가경영을 위해서는 온건한 중도적 정책과 인사가 요체임을 인식했다.

링컨은 대담하게 자신의 정치적 반대자와 경쟁자들을 내각에 등용했다. 이들의 지혜와 경륜을 모아 나라를 다스리는 공치를 실현함으로써 그를 비판하고 반대하던 많은 사람들이 진심으로 찬탄하는 미국 역사상 최고의 지도자가 됐다.

일본 역사상 가장 뛰어난 국가 지도자로 평가받는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는 16세기 일본 전국시대의 혼란을 극복하고 천하를 통일했다.

정권을 장악한 도쿠가와는 주위의 무인 세력을 배척하고 새로운 국가건설에 필요한 학자, 신진관료, 상공인, 재정전문가 등을 과감히 발탁해 민생에 최우선 순위를 두는 그의 비전을 실천했다.  전국시대의 지도자로서는 드물게 뛰어난 통합과 관용과 화합의 통치를 행해 도쿠가와 집단의 단결과 정권의 안정에 크게 기여했다.

 # 제주도민도 이젠 통합과 포용의 지도자를 가질 때가 됐다

링컨과 도쿠가와 리더십은 지도자의 비전과 절제, 포용의 자세가 성공적인 국가 경영의 필수 덕목임을 잘 보여준다.

지방자치가 부활하면서 수십년간 대립과 갈등으로 점철된 이 땅에 넬슨 만델라, 에이브러햄 링컨, 그리고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보여준 통합의 리더십은 앞으로 나타날 새로운 지도자의 표상이다. 

미래 제주를 이끌 지도자는 용서와 화해와 관용의 통 큰 정치력으로 고통받는 도민들을 보듬는 수호자가 돼야 한다. 화려한 정치 슬로건과 수백 가지 정책이 우선이 아니다. 고통과 좌절에 빠져 있는 서민들의 마음을 달래고 치유에 나설 수 있는 정치력이 우선이다.

지금 제주 사회는 도민 개개인이 잠재력을 폭발시킬 수 있도록 비전과 영감을 제시할 수 있는 지도자를 요구하고 있다. 도민 한 사람 한 사람이 더 많은 역량과 지혜를 모을 때, 더 나은, 더 강한 제주를 이룰 수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전임 시절 중용됐다는 이유로 한직으로 밀리거나 보이지 않는 손으로 사퇴 압박을 가하는 복수의 정치는 이제 끝나야 한다. 대신 “그래도 당신이 필요하다”며 중용하는 지도자가 나와야 한다.

도민들은 진심 어린 말과 가식 없는 행동으로 고통에 처한 사람들을 감싸는 지도자의 모습을 보고 싶어 한다. 제주 도민은 큰바위 얼굴같이 묵직하고 올곧은 신뢰감을 주는 지사를 가지고 싶어 한다. 이제 제주도민도 그런 지도자를 볼 때가, 가져도 될 때가 됐다. 지난 시간으로 우리의 좌절과 고통 희생은 충분하기 때문이다. /고운호 제주내일포럼 공동대표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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