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섭 칼럼> 일본 도발에 과감히 대응하는 강온 외교 병행돼야

일본 아베 신조(安倍晋三) 내각의 역사 왜곡이 노골적이다. 아베 총리 본인이 작심한 듯이 과거사를 부인하는가 하면 아소 다로(麻生太郞) 부총리 겸 재무상을 비롯한 각료들은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기도 했다. 더구나 여야 의원 160여명이 집단으로 야스쿠니 참배에 가담하는 등 일본 정치권이 전반적으로 극우 보수화로 치닫고 있음을 보여준다. 지난날 일본의 침략으로 고통을 당했던 주변국들에게는 폭거나 다름없다.

우리 정부가 윤병세 외교장관의 방일 계획을 전격 취소하는 등 단호한 입장을 취한 것은 당연한 대응이다. 제국주의의 과거로 회귀하는 듯한 일본의 빗나간 역사인식을 용인하지 않겠다는 의지다. 아베 내각이 극우정책을 발판으로 70퍼센트 이상의 높은 지지율을 과시하고 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과거사의 책임을 회피하는 망동으로 동북아 질서 체계의 중요한 축을 이루는 한국과 중국에 침략의 근성을 다시금 내비친 셈이다.

이 기회에 우리 정부도 대일 정책의 기본 방향을 확실히 전환할 필요가 있다. 일본의 과거사 왜곡이 있을 때마다 경고성 대응에 그치곤 했으나 그런 조치로는 효과를 거둘 수 없다는 사실이 명백히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독도 영유권 문제나 위안부 강제동원 문제가 그러하다. 과거사를 부인하거나 왜곡한 중등 역사 교과서 문제도 마찬가지다. 일본의 도발적 충동감을 억제하기에는 우리의 대응이 너무 원칙적이고 미온적인 탓이었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독도 영유권에 대한 ‘조용한 외교’ 정책이다. 일본 정치 지도자들이 엉뚱한 망언으로 싸움을 걸어온다고 해서 일일이 맞대응하다가는 오히려 저들의 속셈에 말려들어 자칫 독도를 분쟁지역으로 만들 것이라는 우려가 그 밑바닥에 깔려 있었다. 따라서 의도적인 도발에 대해 될수록 감정을 자제하고 차분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름대로는 타당한 논리였다.

하지만 일본측의 공세가 전혀 누그러들지 않았을 뿐더러 결과적으로 우리가 잃은 것이 더 많다는 것이 문제다. 세계 각국이 독도를 한국 영토로서가 아니라 일본 영토로 인식하거나 아예 분쟁지역으로 간주하는 경우가 더 많은 것이 솔직한 현실이다. 독도 영유권 문제와 동일선상에 놓여 있는 동해의 표기에 있어서도 우리가 열세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일본의 공세에 대해 대응을 회피하는 듯한 태도로 스스로 판정패를 초래했을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독도를 둘러싼 논란이 확대된다면 국제사법재판소에 회부될 것이라는 우려도 국민 감정을 무시한 소극적인 인식이다. 우리가 응하지 않는다면 국제사법재판소 절차가 진행될 수는 없다. 일본측이 일방적으로 제소한다고 해서 거기에 따를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일본측의 독도 망동에 맞선다고 해도 사태가 더 이상 악화될 소지가 별로 없다는 얘기다. 부자 몸조심 하듯이 입을 다물고 있을수록 우리의 손해만 커질 뿐이다.

특히 아베 총리의 자민당이 집권하면서 일본의 공세는 갈수록 거칠어지는 양상이다. 일본 정부는 최근 외교청서에서 독도가 일본땅이라는 주장에서 한발짝도 물러나지 않았으며, 독도와 센카쿠(尖閣·중국명 댜오위다오) 열도, 북방영토의 영유권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한 전문가회의를 설치하기도 했다. 오는 7월의 참의원 선거에서는 독도 영유권 문제를 공약에 포함시킬 것이라는 얘기도 들려온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독도 경비를 강화하기 위해 울릉도에 해양경찰서를 설치하기로 했다는 방침에 공감을 느낀다.

박근혜 정부 출범과 함께 5년 만에 부활한 해양수산부가 업무계획의 중요 과제로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그 의지와 비중이 엿보인다. 영해 및 배타적경제수역 관리 강화를 위해 해양영토관리법 제정을 추진하겠다는 계획도 마찬가지다. 실제로 시행되기까지는 구체적인 논의과정을 거쳐야겠지만 일단 방향만큼은 충분히 확인된 셈이다.

최근 교육부가 동북아역사재단과 공동으로 독도전시회를 개최하거나 국가보훈처가 독립기념관에서 독도학교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는 것도 경우는 비슷하다. 그동안 ‘조용한 외교’를 표방하는 외교부의 주도에 따라 독도 문제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있던 다른 부처들이 서서히 발언권을 행사하기 시작한 것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외교부 일각에서는 미국 광고판에 독도가 한국 땅임을 알리는 광고가 나가는 데 대해서조차 못마땅한 눈길을 보내곤 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독도에 대한 국민적인 감정은 조용히 억누르기에는 벌써부터 상당히 민감해진 상황이다. 지난 2005년 민간인에 대한 독도 입도규제가 완화된 이래 벌써 100만명 이상의 관람객이 다녀갔을 만큼 독도에 대한 인식은 높아가고 있다. 울릉군은 실효적지배 사업의 일환으로 독도 방문객들에게 명예주민증을 발급하고 있기도 하다. 독도 의용수비대원을 국립묘지 안장 대상자로 인정하자는 주장까지 대두되고 있을 정도다.

그렇다고 해서 박근혜 정부 들면서 독도 외교의 방향이 완전히 바뀐 것이라고 장담하기는 아직 이르다. 하지만 최소한 지금껏 유지되어 왔던 수동적이며 방어적인 자세에서는 벗어나게 된 것이 아닌가 판단된다. 박 대통령은 지난 3.1절 경축사를 통해서도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역사적 입장은 천년의 역사가 흘러도 변할 수 없는 것”이라며 일본에 대해 역사를 올바르게 직시하고 책임지는 자세를 갖도록 촉구한 바 있다.

물론 우리가 앞서서 일본을 과도하게 자극하거나 흥분시킬 필요까지는 없을 것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지난해 8월 독도를 방문했던 것이 결코 잘못됐다고 할 수는 없더라도 그때까지 양국 군사동맹까지 거론하며 유화책을 표방하던 입장에서는 그다지 현명한 선택은 아니었다. 더욱이 일왕의 사과 얘기까지 거론되면서 양국 관계가 갑자기 경색됐던 것이다. 일본 관계에 있어 즉흥적인 포퓰리즘보다는 단계별로 효율적인 대응전략이 마련돼야 한다.

▲ 허영섭 칼럼니스트. ⓒ제주의소리
이제 독도 전략도 ‘조용한 외교’를 추구하는 차원에만 머무를 수는 없다. 일본측 도발에 대해 과감히 대응할 수 있는 강온전략이 병행돼야 마땅하다. 해수부의 방침대로 올해 안에 울릉도에 해양경찰서가 설치된다면 우리의 의지도 한층 돋보일 것이다. 독도 실효지배를 강화하면서 동시에 외부의 망동에 위축되지 않고 국가적 자존심을 지켜나갈 수 있기를 국민들은 기대하고 있다. / 허영섭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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