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주의 책놀이책 Q&A] (6) 아이들 맘속에 크고 작은 분노가 자란다

# 에피소드6

“ 엄마, 이 책 언제 끝나?”
준서는 책 읽는 시간을 싫어한다. 아니, 책을 싫어한다. 지금 준서가 손에 들고 있는 책은 특별히 신경 써서 고른 책이었다. 매일 동물로 도배된 책을 읽는 것보다 이야기가 담겨 있는 책을 읽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에 동네에서 책이 많기로 소문난 집에 찾아갔었다. 준서가 읽는 책을 보여 주었더니, 그 집 엄마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닌가!
“ 이대로 가다가는 아이가 다른 아이에게 뒤처지고 평범한 아이가 돼서, 평생 남의 뒤치다꺼리만 할 수 있어요!”
무시무시한 말이었다. 그리고 ‘아이가 좋아하든 싫어하든 무조건 읽히면 도움이 된다.’며 마음을 독하게 먹으라고도 충고했다. 나는 덜컥 겁이 나서 얼른 어린이 문학 전집을 사서 읽히기 시작했다. 그 후로부터 책 읽는 시간이 되면 준서와 싸우는 일이 잦아졌다. 아이가 즐기지 않는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때마다 책값 생각도 나고 주변의 충고도 생각나서 억지로 읽게 했다. 그러다가 결국 사달이 나고 말았다.
“ 나 책 읽는 거 싫어!”
“ 알았어. 그럼 이 책들 말고 준서가 좋아하는 책 읽자.”
“ 그림책도 싫어! 다 싫어!”
준서의 반응에 놀라 책 읽는 것을 중단했고, 며칠 뒤 다시 책을 읽자고 하자 더욱 거칠게 반항했다. 당분간 책 읽는 것을 포기해야 할 것 같아 가슴이 답답했다.

책이 스트레스가 되어서는 안 된다

필자는 세 살(민서)과 다섯 살(민준) 두 아들을 키우고 있다. 민서는 오히려 책을 좋아해서 곧잘 가져와서 읽어달라고 하는데, 다섯 살 민준이는 뛰노는 걸 더 좋아한다.

아이들에게 어떻게 책을 읽힐 것인지는 신중하게 접근하는 편이다. 너무 신중하게 접근한 나머지 아기 엄마로부터 “당신은 명색이 독서 전문가면서 자기 아이들 책 읽는 데 이렇게 무심하냐?”고 핀잔을 듣기도 했다. 독서전문가 할아버지가 와도 할 수 없다. 중이 자기 머리는 못 깎는 법이니까. 아이를 키우는 아빠 입장에서 가장 두려운 것은 ‘책’이 아이에게 폭력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아이들이 재밌게 책을 찾아 읽고, 스스로 가지고 와서 읽어달라고 말하는 모습을 볼 때는 참으로 행복하다. 책의 주인은 아이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우리 아이들에게 ‘책’은 폭력이 되기 십상이다. 그것은 대학생들의 독서 습관을 보면 알 수 있다. 아이들이 고등학교 졸업해서 대학에 들어가는 순간 책에게 할 만큼 다 했다는 마음으로 멀리 한다. 책을 읽더라도 수필이나 소설책 등 베스트셀러 위주로 읽으면서 한국의 독서 시장이 왜곡되기도 한다. 고전과 양서를 멀리하는 풍토는 유년 시절의 ‘책과의 만남’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준서 엄마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많이 안타까웠다. 어떻게 해서든 도움을 주고 싶었다. 책을 거부하는 아이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몇날 며칠 고민을 하다가 문득 사마천의 <사기>를 펼쳤을 때 ‘혹리열전’이라는 글에 흥미로운 이야기가 실렸다. 장탕이라는 관리가 어렸을 적에 쥐가 고기를 훔쳐간 일 때문에 아버지에게 매질을 당한 일이 있었는데 장탕이 쥐를 찾아내 조서를 꾸며 판결문을 쓰고 형을 집행했다는 이야기였다. ‘분노 놀이’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 그림 김라연(blog.naver.com/gomgomHUG).

# 솔루션6. 분노를 건강하게 표현하게 해주세요

“ 준서는 이 책이 얼마만큼 싫어?”
“ 몰라!”
“ 바다만큼 싫어? 산만큼 싫어? 하늘만큼 싫어?”
“ 음, 하늘만큼 싫어!”
“ 왜 그렇게 싫어하는지 말해 줄 수 있어?”
“ 고래도 없고, 곰도 없고, 공룡도 없잖아. 심심하고 재미도 없고 갑자기 읽으라고 하니까 그렇지!”

짐작은 했지만 준서의 입을 통해서 직접 들으니 마음에 더욱 와 닿았다. 준서의 생각을 존중하자고 몇 번씩 마음을 다잡고는 했지만 ‘다섯 살 아이가 읽기에 좋은 책’이라는 글이나 신문기사를 보면 귀가 솔깃해지고 꼭 읽어줬으면 하는 욕심을 누그러뜨리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고래가 나온 책을 유난히 좋아해서 고래가 외롭지 않게 다른 동물 그림책을 사 달라고 했던 준서의 순수한 마음을 왜 모른척했을까?

[편지] 준서에게
준서야, 안녕. 얼마 전에 책 때문에 엄마랑 싸웠을 때 많이 속상했지?
엄마가 미안해. 엄마는 욕심 많은 엄마인가 봐.
엄마 욕심 때문에 준서한테 피해를 준 것 같아서 속상해. 엄마도 어릴 때에는 책 읽는 것보다 친구들하고 재미있게 노는 게 좋았어. 중학생이 돼서야 책이 재미있다는 걸 알았는데 이제 겨우 5살인 준서한테 엄마가 왜 그랬을까? 나중에 준서가 엄마를 원망하면 어쩌나 겁도 덜컥 나.
준서는 고래를 참 좋아하지. 그래서 고래가 요만큼이라도 나오는 그림책은 다 샀던 것 같아. 고래만 있으니까 외로울까 봐 엄마가 다른 동물 친구들이 나온 책을 사 왔을 때 재미있게 읽어 줘서 좋았어. 특히 북극곰을
좋아했지. 요즘은 공룡에 빠져 있고. 덕분에 엄마도 공룡이 좋아졌어.
이렇게 준서에게 편지를 쓰니 마음이 편해진다. 준서랑 같이 책보고 놀이터에서 놀 때는 참 좋은데 가끔 다른 엄마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너무 불안해.
하지만 이제는 준서의 생각을 더 중요하게 생각할게. 엄마가 아니라면 준서가 고래와 공룡이랑 친구가 된 걸 누가 알겠니?
우리 더 멋지게 살아 보자.
엄마가 소개한 책이 마음에 들면 환하게 웃어 줘.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내 아들 준서, 사랑해!

아이의 감정에 대해서 진지하게 접근하기

<책 놀이 책>을 쓰면서 수많은 육아책을 보았는데 거기서 얻은 것도 꽤 많았다. 특히 아이가 화가 났을 때 그 모습이 귀여워서 부모가 웃거나 볼을 잡아 당기는 행동은 위험하다는 말이 참 일리가 있었다. 둘째 민서의 경우 화가 났을 때 눈과 표정이 귀여워서 웃음이 나오지만 우리 부부는 최대한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민서의 화를 존중해 주려고 노력한다. ‘부모의 진지한 접근’이 아이의 감정을 누그러뜨려 주고 분노를 잠재워 준다.

여기서 “부모로서 항상 아이를 진지하게 대하고 있다”고 항변하는 부모가 있을지도 모른다. 육아를 장난으로 생각하는 부모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가 부모에게 대하는 진지함과 부모가 아이에게 대하는 진지함을 한번 비교해 볼 것을 권하고 싶다. 부모는 ‘아이의 진지함’을 따라 갈 수가 없다. 나아가 아이가 부모에게 대하는 진지함의 반만큼이라도 부모가 진지할 수 있다면 아이와의 관계가 훨씬 좋아질 것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분노놀이는 책뿐 아니라 여러 가지 상황에 적용해 볼 수 있다.

아이 자신을 화나게 한 책이나 상황, 인물 등을 순서대로 쓰게 하고, 어떤 부분에서 화가 났는지를 설명한다. 그리고 나서 ‘판결문’을 함께 써보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판결문’은 아이 자신을 속상하게 했던 것들에 대한 단죄와 자신의 화난 감정에 대한 존중을 담았기 때문에 감정 환기가 될 뿐 아니라 자존감도 상승하는 효과를 준다. 판결문 자체가 무척 논리적인 글이기 때문에 논리력과 사고력, 판단력 등이 생긴다. 준서 엄마는 준서에게 진솔한 마음을 담아서 편지를 썼는데, 그것은 분노 놀이의 후속 조치라고도 할 수 있다.

대개 아이를 화나게 한 원인은 부모의 어떤 행동 때문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준서 역시 엄마가 글밥 많은 책을 준 것이 화의 발단이 되었다. 부모가 아이의 감정을 진지한 자세로 관찰하기 시작한다면 이제까지는 보이지 않았던 새로운 세계가 펼쳐질 것이다.

   

/오승주 독서지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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