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씨종친회, 제주도-재단 상대 소송...판사 “삼성혈은 제주도민 모두의 것”

삼성혈(三姓穴)의 역사를 두고 벌어진 고․양․부 종친회의 법적 다툼에 판사가 “서열이 그렇게 중요하냐”며 재단과 양씨종친회 모두의 양보를 주문했다.
 
20일 제주지방법원 제2민사부(재판장 안동범 부장판사)는 양씨중앙종친회가 제주도와 고양부삼성사재단(대표 고창실)을 상대로 제기한 이사회결의 무효확인 소송 2차 공판을 열었다.

양씨종친회가 법적 다툼을 불사하고 재단과 맞선 이유는 다름 아닌 ‘명칭’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고․양․부’의 재단 성씨 순서가 전국 50만명의 양씨중앙종친회의 심기를 건드렸다.

애초 삼성혈재단의 명칭은 ‘삼성시조제사재단’이었다. 문제는 1962년 재단이 명칭을 ‘고․양․부 삼성사재단’으로 변경하면서 불거졌다. 3년 뒤엔 재단 명칭을 법원에 정식으로 등기했다.

불만을 제기하던 양씨종친회는 급기야 1986년에는 ‘고․양․부 삼성사재단’ 명칭 등록을 취소해달라며 제주도를 상대로 소송에 나섰다. 결과는 원고 패소였다. 증거불충분이 이유였다.

이후 30년 가까이 잠잠하던 명칭 논란이 지난해 다시 불거졌다. 재단 이사회가 ‘한국기록원의 인증서에는 양․고․부 순서로 표기된 것은 잘못된 것’이라며 인증 취소를 결의했기 때문이다.

한국기록원의 삼성혈 인증서에는 ‘제주시 이도1동 1313번지의 삼성혈(三姓穴)은 BC 2373년에 양, 고, 부의 삼을나 삼신인(三神人)이 탄생(誕生)한 삼개(三個)의 구멍(穴)’으로 명시돼 있다.

이사회는 재단 명칭이 ‘고․양․부’인 만큼 인증서에 ‘양․고․부’가 아닌 ‘고․양․부’ 순서로 서술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고씨가 삼성혈에서 먼저 나온 만큼 서열을 달리하자는 의미도 담고 있다.

고서인 고려사와 탐라기년에는 삼성혈 역사를 ‘양․고․부’로 서술하고 있다. 반면 영주지와 탐라지에는 ‘고․양․부’로 명시돼 있다. 역사책마다 고씨와 양씨의 서열이 달라 판단마저 쉽지 않다.

재판부는 서열의 중요성 보다 삼성혈 유적 자체에 큰 의미를 뒀다.

안동범 주심판사는 “고양부나 양고부의 서열이 그렇게 중요하냐”며 “세 성씨 모두 공평하다. 차라리 재단 명칭에서 성을 빼고 ‘삼성사 재단’으로 변경하는 것이 서로에게 좋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

이어 “삼성혈은 종친회만이 아니라 제주도와 도민들 모두의 것을 판단된다”며 “서로 뚜렷하게 우열이나 서열을 둘 필요는 없지 않느냐. 다음 공판까지 합의하라”고 주문했다.

재판부는 7월18일 결심공판을 열어 양씨종친회와 재단의 최후 변론을 듣고 합의에 이르지 못할 경우 선고공판을 다시 열어 최종 판단을 내리기로 했다.

사적 제134호인 삼성혈은 제주 원주민의 발상지다. 고(高)·양(良→梁.)·부(夫)씨의 시조인 세 신인(神人)이 솟아났다는 신화 속 배경이자 현존하는 세계 유일의 삼혈(三穴)로 기록돼 있다.<제주의소리>

<김정호 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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