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단체, 소설가 현길언씨 “4.3은 남로당의 반란” 왜곡에 “지식인의 추락” 맹비난

▲ 제주출신 현길언씨(사진)가 자신이 발행하는 「본질과 현상」(여름호)에 4.3특별법과 4.3진상조사보고서 등을 폄하하는 글을 게재해 물의를 빚고 있는 가운데 4.3관련 단체들이 “양식을 버린 노(老)작가의 추락을 보는 듯하다”며 강한 톤으로 그를 비난하고 나섰다. ⓒ제주의소리

제주출신 원로소설가가 최근 자신이 발행하는 잡지에서 ‘4.3=남로당의 반란’으로 규정한 것과 관련해 4.3단체들이 “양식을 버린 노(老)작가의 추락”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사)제주4.3연구소와 (사)제주민예총, 제주4.3도민연대는 28일 공동으로 논평을 내고 “현길언씨의 글은 4.3의 역사적 사실이나 과정의 팩트에 근거하지 않은 졸문이며, 의도적 곡필이자 악필”이라고 주장했다.

제주출신 현길언씨(소설가, 전 한양대 교수)는 최근 발행한 「본질과 현상」(여름호)에 ‘과거사 청산과 역사 만들기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를 중심으로’제하의 글에서 “제주4.3은 의로운 저항이 아니라, 남로당이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방해할 목적으로 일으킨 반란”이라며 진상조사보고서가 이를 왜곡했다고 주장했다. 「본질과 현상」의 편집 발행인이 바로 현길언씨다.

이들 4.3단체들은 “이번 「본질과 현상」(여름호)에 실린 그의 글은 인문학자이면서 양식 있는 교수출신 소설가의 글이라고는 도저히 믿기 힘든 사실왜곡과 편파적이고 악의적인 의도에서 쓰인 글”이라고 평가 절하했다.

현씨는 한때는 4.3작품을 쓰기로 했다. 지금도 왕성한 활동을 벌이는 원로 문학인이로, 대한민국문학상, 현대문학상, 녹원문학상 등 다수의 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4.3단체들은 “글의 논조가 그동안 군경 측과 수구세력들이 줄기차게 주장해 온 바를 재탕 삼탕하고 있는 데서 그의 오랜 인생의 경륜과 식견을 재고하게 한다”며 “이 글에서는 그동안의 중도보수적인 지식인으로서의 면모조차 찾아보기 힘들다”고 꼬집었다.

이어 “현씨의 글은 시종일관 4.3진상규명과 명예회복사업을 노무현 정부가 추진한 ‘잘못된 역사 바로잡기’의 한 사업으로 몰아세우면서, 모든 것을 노무현 지우기와 연결시켜 논지를 전개함으로써 억지 꿰어 맞추기로 일관했다”고 주장했다.

현씨가 쓴 글에는 팩트 자체가 잘못된 부분도 상당하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자신이 생각하고 싶은 대로 ‘팩트’라고 설정해놓고, 이를 비판하면서 수구세력이 주장해 온 논지를 전개해 나가는 데서 가장 큰 오류가 있다”고 지적했다.

대표적인 것으로 4.3진상조사보고서 작성사업이 노무현 정부 들어 과거사 청산 차원에서 추진됐다고 한 점(사실은 김대중 정부 때부터다)과 2003년 10월31일 노무현 대통령의 ‘제주4.3사건에 대한 대통령 담화문’ 내용의 왜곡을 꼽았다. 현씨는 글에서 “태어나지 말아야 할 정부에 대해서 저항해 일어난 제주4.3사태라는 표현을 썼다”고 했지만, 이는 육성파일을 통해서도 확인되지 않은 명백한 허위사실이다.

그러면서 이들은 “현씨는 ‘그래도 사실(史實)은 역사적 평가가 되풀이하는 과정에서 걸러지고 다듬어져 진실에 다가간다고 믿는다’면서 팩트에 입각할 것을 요구하고 있지만, 정작 자신은 사실(史實)이전에 사실(事實) 자체의 확보에도 실패하고 있다”며 “이는 단순 실수가 아니라 날조해낸 것이기에 더욱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특히 “현씨는 ‘4.3사건을 의로운 저항이 아니고 남로당이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을 방해할 목적으로 일으킨 반란’이라고 규정했지만, 그가 증거라고 내세운 문건들은 4.3무장봉기 이후에 이를 추인하는 정치적 문건에 불과하다”며 “이는 그 동안 군경 측과 수구세력들이 북한과의 연계설을 끌어내기 위해 주장해온 바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고 맹공했다.

4.3단체들은 또 “주민 희생의 문제를 트집 잡는 것, 미리 결론을 정해 놓았다는 점, 사학전공자들이 없는 것처럼 호도하는 문제 등 지적할 대목은 한두 가지가 아니”라고도 했다.

이어 이들은 “그의 가족사와 4.3당시 9세였던 그가 겪은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볼 때 전혀 예상하지 못할 바는 아니”라면서도 “하지만 그는 지식인이다. 그렇다면 좀 더 엄중하고 세심하게 주장해야 할 필요가 있으나 사려 깊지 못했음에 안타까울 따름”이라고 연민했다.

이들은 또 “우리는 그가 온전히 제주가 낳은 양식 있는 원로문학인으로 남길 바랐지만, 최근 몇 년간 그가 보여온 행보를 볼 때 이제는 양식 있는 중립적인 학자, 소설가라는 순한 양의 탈을 벗어버린 괴물처럼 느껴진다”고 날을 세웠다.

그러면서 “그동안 도민사회에서 제주의 자랑으로 인정해 온 보람도 없이 이렇게 인생의 말년에 자신이 쌓은 모든 업적을, 이 불충분하고 악의적인 글로써 그 뿌리부터 무너져 내리게 하는 것을 보면서, 부실한 지식인의 면모에 한 줌 서글픔을 느낄 뿐”이라고 말을 맺었다.

앞서 4.3유족회는 27일 낸 성명에서 “대학 교수까지 지낸 제주출신 소설가가 4.3을 왜곡하며 4.3유족들의 가슴에 깊은 상처를 안겼다”며 분노를 감추지 않았다.

유족회는 “시대의 지식인이라는 자가 역사를 폄훼하는 발언을 어떻게 응징할 것인가”라고 반문하고는 “현씨는 제주출신임을 포기하고 역사를 폄훼하는 글쓰기를 중단하고 4.3유족회의 반응에 주목하기 바란다”고 밝혔다.

유족회는 또 문제의 이 잡지에 협찬광고를 한 제주도 등 대해서도 “4.3흔들기에 앞장서고 있는 잡지에 제주도와 개발공사 등 공공기관 협찬 광고를 실어 이런 논조에 부화뇌동하고 말아 유족들의 가슴을 더욱 아프게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제주의소리>

<좌용철 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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