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으멍, 보멍, 들으멍](39) ‘어이고, 기여.’ 한 마디에 담긴 아흔 할망의 메시지 / 정신지

꽃순이 할망   지난 겨울에도 이곳을 찾았건만, 할망의 머리에는 내가 이미 지워지고 없다. 온다고 해 놓고 너무 늦게 온 내 탓이다.  / 사진=정신지  ⓒ 제주의소리

 

할망이 파리를 잡는다. 문을 꽁꽁 잠그고 사는데도 파리는 틈만 보이면 들어와서 할망주위를 맴돈다. 할망은 대부분의 시간을 꾸벅꾸벅 졸며 보내지만, 깜빡 잠이 들었다가도 파리를 발견하면 매섭게 눈을 부릅뜨고 파리채를 잡아든다. 침묵 속에서 들려오는 윙윙거리는 파리의 날갯짓 소리에 나까지 덩달아 긴장이 된다. 화창한 봄날 마루에 앉아 파리사냥에 여념이 없으신 그이는 올해 아흔하고도 한 살이다.   

마지막으로 내가 이곳을 찾은 것은 아직 귤이 남아있었을 무렵이었다. 길을 가다가 화장실이 급해서 찾아온 할망의 집에서 나는 동네 장수 할망들을 만났더랬다. 약장수가 약 팔듯 할망들 앞에서 재롱을 떨며 함께 전기장판 위에서 귤을 까먹던 것도 어느덧 지난겨울의 일. 유쾌하기 짝이 없는 분위기 메이커이자 장수할망모임의 대장이기도 했던 할망에게, 나는 꽃순이 할망이란 별명을 붙여드렸었다.

할망의 파리채    파리만 발견하면 매섭게 눈을 뜨고 파리채를 잡는 할망. 덩달아 나도 긴장이 된다. / 사진=정신지  ⓒ 제주의소리

하지만 다시 찾은 꽃순이 할망의 머릿속에는 이미 내가 없다. 다음에 올 적에는 잠도 자고 가라며 귤도 한 아름 챙겨주셨거늘, 그 기억이 사라져버린 지금 나는 또다시 낯선 이가 되어있다. 서럽지만 어찌할 도리가 없다. 이렇게 불쑥 찾아온 나를 기억해주기를 바랐던 것도 어리석었고, 온다고 해 놓고 너무 늦게 온 것도 내 잘못이다. 자기소개부터 새롭게 다시 시작이다.

“게난(그러니까) 할머니 이름이, ◯◯◯ 아니꽈예(아니에요)? 지난번에 경(그렇게) 고라주셔신디(말씀하셨는데).”
“어이고, 기여(그래). 나는 다 잊어부런(잊어버렸어). 혼저(어서) 딴디 강(다른 곳에 가서) 볼일 보라.”
“할머니, 그제는(그때는) 나신디(저에게) 잠자러 오랜도(오라고도) 고라나신디(말씀하셨는데), 무사(왜) 막 쫓아내젠 하셤수과(쫓아내려 하세요)? 호끔 섭섭한게 마씨(조금 섭섭하네요). 저예(저 말이죠), 종교 믿으랜(믿으라고) 하는 사람도 아니고, 물건 훔치래(훔치러) 온 사람도 아니고, 할머니 얼굴 보래(보려고) 이디(여기) 세 번째 오는 거라마씨(거에요).”
“어이고, 기여. 늙으난 이추룩(이처럼) 다 잊어부러. 확 죽어부러살건디(죽어버려야 할 것인데). 어이고, 기여…”

무슨 말을 물어도 "어이고 기여."라고 밖에 대답을 안 하시기에, 장난기가 발동한 나도 할망을 따라, "어이고 기여~, 어이고오~ 기여~" 를 노래처럼 불러댔다. 그러자 어이없는 눈으로 나를 보던 할망이 씩 웃으시고는, "어이고, 기여게!" 소리치셨다.
"경해도(그래도), ‘어이고 기여’ 허멍(하면서) 숨을 쉬민(쉬면) 가슴이 쑥 내려가는 것이 호끔 편허주게(편하지). 게난, 너가 안경을 끼고 오난(오니까) 나가 몰라봤쪄(몰라봤네). 이제 알아지킁게(알겠다). 우뜨르(윗마을)에서 온 약장시(약장사) 아니가? 그제도 너신디 커피 줘샤(줬었나)? 글라(가자), 안이 강(안에 가서) 커피나 먹자."

‘어이고 기여’ 하며 장난을 치는 내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시던 할망이 드디어 날 기억해내신 것이다. 먹구름이 걷히고 환한 햇살을 맞은 것 마냥 기분이 좋다. 할망을 따라 집으로 들어가니 가지런히 정돈된 살림은 여전하다. 물을 끓여 내게 줄 커피 봉지를 까다가 손이 떨려 바닥에 설탕가루가 떨어졌다. 그것들을 손가락 끝으로 콕콕 찍어 컵에 넣고는, 쏟아진 것은 당신이 마실 것이라며 잽싸게 당신 컵에 설탕을 두 스푼이나 더 넣으셨다.

밖거리 살림    할망이 예전에 살던 밖거리는 이제 창고로 쓰인다. 오래된 농구를 하나하나 살피며 옛살림을 발견한다. / 사진=정신지  ⓒ 제주의소리
밖거리의 나를 지켜보는 할망    밖거리를 구경하는 내 일거수일투족을 보며, 무엇에 쓰는 물건인지 농구를 집어들어 물으면, 그녀가 몸동작으로 대답해준다.  / 사진=정신지  ⓒ 제주의소리

할망이 사는 안거리 건너편에는 밖거리가 있다. 아무도 살지 않아 쓰러질 것 같은 밖거리가 나는 늘 궁금했었다. 그래서 할망의 허락을 받고 밖거리를 구경하기로 했다. 삐걱거리는 문을 열고 들어가 이것저것 구경하는 나를 할망은 저 멀리 안거리에서 지켜보신다.

밖거리의 마루를 할망은 창고로 쓴다. 오래도록 쓰지 않아 구멍이 숭숭 뚫린 농기구들이 있고, 말려놓은 마늘도 한 꾸러미다. 신기한 농구들을 하나하나 집어 올리며 할망을 바라보면, 할망이 몸동작으로 그것을 어떻게 쓰는지 설명을 하신다. 둥글넓적한 나무토막에 손잡이가 달린 것은 곡식을 타작할 적에 쓰이는 것, 기다란 막대기 역시 콩이나 조의 껍데기를 벗길 적에 쓰이는 것, 창문 옆에 소복이 쌓여있는 것은 기름을 짜기 위해 놔둔 동백나무 씨, 우리는 게임이라도 하듯 말없이 밖거리 살림에 관한 몸동작을 주고받는다. 그러다가 또 파리가 거슬렸는지 할망은 파리채를 집어 들었다.

“할머니, 파리 그만 잡고 노래나 들으카마씨(들을까요)?”
“노래가 어디서?”
밖거리 투어를 마치고 돌아온 나는 스마트폰으로 제주민요를 찾다가 ‘웡이자랑’이라는 제주 자장가를 틀었다. 조용한 안거리에 묘하게 자장가가 울려 퍼진다. ‘왜 하필 자장가를 틀었지? 흥겨운 노래나 틀 것을…’, 하며 다른 노래를 들으려는데 할망이 갑자기 웡이자랑을 부른다. 조용하고 얇은 목소리로 울러 퍼지는 제주의 자장가에 나도 모르게 울컥한다.

자랑자랑(자장자장) 웡이 자랑, 금도자랑 호도자랑(효도자랑)
우리 아기 자는 소리, 곤밥(쌀밥) 먹엉(먹고) 자는 소리
놈의(남의) 아기 우는 소리, 고치(같이) 먹엉 우는소리
저래(저리) 가는 감동개(검둥개)야, 우리아기 재와도라(재워주어라)
느네(너네) 아기 재와주마(재워주마), 이래(이리) 오는 감동개야
아니 재와주민(안 재워주면), 솔진솔진(날카로운) 촐 베려당(풀 베어와서)
손발 꽁꽁 묶엉이네(묶어서), 지푼지푼(깊고깊은) 천주솔(?)에
들이쳤다 내쳤다 허켜(할 것이다)

꽃순이 할망은 시집을 와서 줄곧 저 밖거리에서 살았었다. 할망 홀로 살고 있는 안거리에는 시부모님들이 살기도 했었고, 자식들 가족이 살기도 했었다. 이곳에서 아기를 낳아 기르며 몇백 번도 더 불렀을 자장가를, 텅 빈 안거리에서 파리를 잡다가 부르게 될 줄이야. 아마 할망도 그렇게 생각을 하셨는지 노래를 멈추고 크게 한숨을 쉬며 말씀하셨다.
"어이고, 기여. 이디(여기) 계속 이서도(있어도) 너신디(너에게) 아무것도 줄 것이 어따(없다). 옆집 할망신디 가보카(갈까)? 그 할망 걷질 못허난(걷지를 못하니) 혼자 심심행 이실 거여(심심해하면서 있을 거야)."

두할망    꽃순이할망과 옆집할망은 서로의 몸상태 마음상태를 매일 확인하며 자매처럼 지낸다. 두 할망의 곁에 나도 앉아 수다를 떤다. / 사진=정신지  ⓒ 제주의소리
아흔다섯 할망 손    다리가 불편한 할망은 방석을 깔고 앉아 손으로 이동한다. 하지만 정신이 맑고 말수가 많은 옆집 할망, 올해로 아흔다섯이시다.  / 사진=정신지  ⓒ 제주의소리

할망과 함께 집을 나서 옆집으로 향했다. 꽃순이 할망보다 네 살이 많은 옆집 할망은 거동이 불편하다. 다리가 마비되어 쓸 수 없는 그녀는 엉덩이에 방석을 깔고 앉아서 두 팔로 조금씩 이동을 한다. 비가 그치고 볕이 나니 마당에 홀로 나와 앉아계시던 할망의 곁에, 꽃순이 할망과 내가 나란히 앉아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몸은 다소 불편하시지만, 옆집 할망은 정신이 맑다. 아흔다섯 살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지난번 내가 이 동네에 다녀간 것도 기억하시고 꽃순이 할망보다 말수도 많다. 이 두 분은 매일 같이 서로의 몸 상태 마음 상태를 돌보며 자매처럼 살고 있다. 옆집 할망이 자리를 잡고 앉은 방석 밑으로 개미떼가 기어 다니는 것을 꽃순이 할망은 유심히 바라본다.

“그디(거기) 트멍(구멍)으로 개미가 나왐시난(나오니까), 옆으로 비켱 아즙써게(비켜 앉으세요).”
“아이고, 기냐(그래)? 무시거(뭐) 먹을 것이 있짼(있다고) 개미가 들엄신고(나오는거야)? 아이고, 겐디(아 그런데) 너 발 밑에 벌이 아잤다게(앉았다).”

꽃순이 할망이 발밑의 벌을 발견하고는 잽싸게 신 한 짝을 벗는다. 그것을 높이 치켜들어 벌을 내리치려던 순간, 내가 “안돼요!!!” 하고 할망의 팔을 잡았다. 그도 그런 것이, 나도 아까부터 꽃순이 할망 발밑의 벌을 보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죽을 때가 다 된 늙은 벌은, 날지도 않고 아까부터 비실거리며 할망의 발밑에서 꼼지락거리고 있었다. 생의 마지막 순간을 맞이하고 있는 늙은 벌을 처음으로 목격하게 된 순간인 것이다. 그러니 그 벌을 신으로 내려치려는 할망을, 나는 손을 뻗어 멈추게 할 수밖에 없었다.

“할머니 이거 봅써(보세요). 야이(이 아이) 이제 막 죽잰햄서(죽을 것 같은데). 그추룩(그렇게) 죽이지 않아도 곧 지냥으로(저 스스로) 죽습니다게.” 그러자 할망은, “무사(왜) 죽이민 안돼?”하며 크게 눈을 뜨고 발밑의 벌을 자세히 바라보기 시작했다.
“어이고? 게메. 야이 일어나지 못행(못하고) 발라젼(뒤집어져서) 버드랑버드랑햄쪄(파닥파닥거린다).”

뒤집혀서 아등바등하다가는 또다시 일어나고, 벌은 그렇게 몇 걸음을 가다가 끝내 파르르 떨던 미동마저 멈추었다. 
“어이고, 죽어부렀쪄(죽어버렸네).”
“죽어샤(죽었어)?”
“어? 죽었네, 정말.”

벌의 최후    벌은 그렇게 제 할일을 다하고 늙은 몸으로 떠났다. 곤충이 노사하는 모습을 처음으로 본 것은 좋았으나, 옆에 계신 두 할망이 무슨 생각을 했을련지… / 사진=정신지  ⓒ 제주의소리

두 할망과 나는 우연하게도 늙은 벌의 최후를 함께 지켜보았다. 할망 두 분이 각자 “어이고.” 하고 크게 한 숨을 내 쉬는 것을 들으며, 나는 등골이 오싹하리만큼 죄책감을 느꼈다. 거동이 불편하고 기억이 가물거리는 아흔 넘은 할망들에게 벌이 노사(老死)하는 것을 보게 하다니, 의도한 것은 아니었으나 바보 같은 짓을 한 것 같다. 어차피 죽을 벌의 목숨이었거늘, 나는 그것을 모두의 구경거리로 만들어 버린 것은 아닌가? 꽃순이 할망이 때려죽이게 그냥 놔둘 걸 그랬나? 괜스레 죽은 벌한테도 미안하다. 나의 소심함이 벼랑 끝까지 나를 내몰아가 미안한 마음이 극에 치닫는 순간이었다.
 
“지금 몇 시가(몇 시냐)?” 하고 옆집 할망이 묻는다. 벌써 다섯 시다. 시간은 빨리도 간다. 벌써 두 시간이 넘도록 이곳에 있다. 별 이야기도 하지 않은 채, 큰 나무 밑에 앉아 노는 아이처럼 할망의 집과 마당에 죽치고 앉아있다. “아무것도 어신(없는) 할망들이영(이랑) 있지 말앙(말고), 혼저(어서) 강(가서) 벗이라도 만나라게.” 꽃순이 할망이 말했다. 내가 있어도 없어도 그만이실 텐데 왜 자꾸 나보고 가라하시나. 늙은 벌의 죽음을 억지로 보게 된 것이 싫으셨던 걸까? 아니면 내가 정말 파리처럼 귀찮으신 걸까?

“예. 이제 정말 가쿠다(갈게요).” 자리를 털고 일어난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무도 전처럼 다시 오라는 말을 건네지 않으신다. 나 역시 다시 오겠다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가는 막혀버린다. 두 할망과 크게 한번씩 포옹을 하고, ‘할머니, 건강하세요.’ 하고 말하려는데 그 말도 턱 하니 막혀 나오질 않는다. ‘귀찮게 해서 죄송합니다.’, ‘머물다 가게 해 주셔 감사합니다.’ 기타 등등, 할 말이 한 가득이지만 쉽게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모든 질문에 ‘어이고, 기여’ 하고 대답하던 꽃순이 할망의 맘을 이제야 조금 헤아릴 수 있을 것 같다. 나오지 않는 말 대신 찡하게 마음이 저리다.

작은 몸으로 태어나서 또다시 작게 죽어가는 인간의 모습처럼, 말이라는 것 역시 짧게 태어나서 다시 짧아지는 운명을 가졌나 보다. 노인들이 툭툭 던지는 짧은 말 한마디에 담긴 굵고 깊은 메시지를, 나는 여태껏 얼마나 잘 이해해 온 것일까? 가라고 하는 것이 정말 싫어서가 아니고, 내일이라도 죽고 싶다 말하면서도 마당에 꽃을 심는 할망들의 모습에서 배운다. 부질없는 말이 많고, 오지랖만 드넓은 나에게, 꽃순이 할망의 ‘어이고, 기여.’가 시사하는 바는 참으로 크다. 

올렛길 끝으로 사라져가는 나를 두 할망이 지긋이 바라보신다. 그 눈빛으로 수많은 메시지를 던져주시는 것 같아 뒤를 돌아 다시 한 번 고개 숙여 인사했다. 두 시간이나 나를 곁에 머물게 해주신 할망의 넓은 마음에 감사해야 할 뿐, 나그네인 주제에 애써 기억되려 노력할 필요는 없다. 할망 방 열린 문틈으로 들어가 그이 주변을 윙윙 맴돌다가, 그저 운이 좋아 맛있는 음식을 얻어먹고 나가는 운 좋은 파리처럼(?) 나는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집에 도착해 가방을 여니, 꽃순이 할망이 가방에 넣어준 싯게(제사) 떡이 눈에 들어온다. 할망의 말 없는 친절함에 또다시 감사하며 맛있게 떡을 먹으려는데, 어디선가 ‘어이고, 기여.’ 하는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 정신지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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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지는 ?

이 여자, 택시 기사들과 대화 나누길 즐기는 ‘수다쟁이’다. ‘역마살’도 단단히 타고났다. 거기에다 ‘촌스러움’까지 좋아하는 독특하고 야무진 여자다. 그녀의 이름은 정신지(32). 파주·부산 출신의 부모님 아래 서울서 태어나 여섯 살에 제주로 이민(?) 왔지만 스무살에 다시 서울로 나갔다가 일본의 대학과 대학원에서 ‘지역연구학’이라는 인문학을 전공했다. 그동안 세계 17개국의 섬·지방·대도시를 떠돌며 사람과 집단, 그 사회에 대한 이해를 넓혀왔다. 지난 봄, 일본의 국립 홋카이도대학(北海道大學)에서 문학박사 과정도 수료했다. 이제 12년간의 지구촌 유목 생활을 마치고, 태어난 곳은 아니되, 자신을 성숙하게 키워준 ‘진짜 고향’ 제주로 지난 봄 돌아와 부모님이 살고 있는 제주시 애월읍 유수암에 짐을 풀었다.  그리고 <제주의소리> '걸으멍 보멍 들으멍'이란 코너를 통해 제주와 그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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