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무병의 제주, 신화] (14) 세경본풀이 2

#. 자청비는 청미래덩쿨 귀에 찔러넣어 정수남이를 죽이다.   

겨울이 가고 봄은 왔지만, 기다리는 문도령은 오지 않고, 남의 집 종놈들이 땔감을 싣고 가는 쇠머리엔 진달래가 꽂혀 있었다. 저 꽃이라도 얻어 시름을 달랠까 하여 밖으로 나오다 정이으신(정이 가지 않는) 정수남이를 만났다. 정수남이는 바지허리를 뒤집어 이를 잡고 있었다. 

“정이으신 정수남아, 다른 집 종들은 땔감을 하러 갔다, 진달래꽃도 꺾어 오는데, 너는 밥 먹고 할 일 없이 이 사냥만 하기냐? 더럽고 추접하다.” “상전님아, 그리 말고 소 아홉, 말 아홉, 소 길마∙말 길마 차려 주면 저도 내일은 나무하러 가오리다.” 정이으신 정수남이는 점심을 차려 소 길마에 싣고 굴미굴산 올라가 소와 말을 매어 놓고 우선 한잠을 잤다.

몇 날 며칠을 잤는지 소 아홉과 말 아홉이 애가 말라 소곡 소곡 죽어 가고 있었다. 죽은 삭정이를 쌓아 놓고 청미래덩쿨로 불을 붙여 주걱 같은 손톱으로 쇠가죽을 벗겨 고기를 구웠다. 익었는가 한 점, 설었는가 한 점, 먹다 보니 소 아홉, 말 아홉을 다 잡아 먹어 버렸다.

집에 돌아와 정수남이는 꾀를 내어 대답하였다. 굴미굴산 올라 보니 하늘 옥황 문도령이 궁녀 시녀 데리고 놀음놀이하고 있기에 정신없이 구경하다 내려와 보니 소 아홉 말 아홉 온 데 간 데 없고, 오리를 잡으려다 옷을 도둑맞았다는 것이었다.

“정말 문도령이 왔더냐? 언제 또 오겠다고 하더냐?” “모레 사∙오시(巳午時)에 또 오겠다고 합디다.” 자청비는 정수남이를 따라 점심을 차리고 굴미굴산에 올라갔다. 그러나 결국 산에는 문도령은 없었다.

정수남아. 어디 물 있는 데 좀 가르쳐 주라. 하도 목이 말라 걸어갈 수가 없구나. 정이어신 정수남아. 어디 물이라도 있거들랑 가르쳐 다오. 목이 말라 죽어도 걸어갈 수 없구나 하니, 그제야 물을 찾아 “상전님아. 이 물을 먹으려면, 위 아래로 옷을 몬들락호게(홀랑) 벗어두고, 손발 적시지 말고 하늘 위로 궁둥이 내어놓고, 엎드려 물을 먹어야지, 손발을 적셔 물에 들어가 물을 먹게 되면, 더 목이 말라 살 수가 없습니다.” 하니, 얼마나 목이 마르고 얼마나 물이 먹고 싶었던지, 자청비는 옷을 모두 홀랑 벗어 버리고 엎드려 물을 먹는 순간에, 정이어신 정수남이는 자청비 옷 모두 가져다가 높은 나무 위로 던져버렸다. 자청비의 옷은 높은 나무 가지에서 바람 부는 대로 흔들흔들 하고 있었다.

“정수남아. 제발 내 옷 내려 달라.” “못 내려 드립니다. 상전님대로 내려 입으십시오.” “아이구. 내가 저놈에게 속았구나.” 자청비는 정수남이에게 속았음을 알고는 꾀로 달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두루외 정수남이가 야수처럼 할딱거리며 달려들려 할 때마다 부드러운 소리로 달래었다. 드디어 밤이 왔다. 정수남이에게 움막을 짓게 했다. 움막을 지으니, 담 구멍을 막게 했다. 밖에서 다섯 구멍을 막으면, 안에서 두 구멍을 빼며 시간을 벌었다. 먼동이 트기 시작했다. 그제야 두루외 정수남이는 자청비에게 속은 줄 알고 달려들었다.

“정수남아, 화만 내지 말고 내 무릎을 베고 누어라. 머리에 이나 잡아 주마.”

정수남이는 지청비의 은결 같은 무릎을 베고 누웠다. 잠을 못 잔 정수남이는 그만 잠에 빠지고 말았다. 자청비는 이때다 하고 청미래덩굴을 꺾어 두루외 정이어신 정수남이의 왼쪽 귀로 오른쪽 귀에 찔러 댔다. 구름산에 얼음 녹듯 정수남이는 죽어 갔다. 말을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언덕 위에 세 신선이 바둑을 두고 있었다. “저리 가는 저 비바리 바람 밑으로 지나가거라. 부정이 많다.” “어찌 처녀를 조롱하십니까?” “말고삐 앞을 보아라. 더벅머리 총각놈이 청미래덩굴을 귀에 찌르고 유혈이 낭자하여 서 있지 않느냐?” 자청비는 말을 달려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부모님께 종을 죽인 사연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정수남이가 하는 일 다 제가 하여 죄 값을 갚겠다고 하였다.

부모님은 넓은 밭에 좁씨를 닷 말 닷 되 뿌려 놓고, 그 좁씨를 하나 남김없이 주워 오라고 하였다. 자청비는 좁씨를 다 줍지 못하고 한 알을 빠트렸다. 개미 한 마리가 그 좁씨 한 알을 물고 있었다. 너도 내 간장을 태우느냐 하며 좁씨를 빼앗으며 허리를 발로 밟았다. 그래서 개미허리가 홀쭉하게 가느다란 법이 생겨났다. 자청비는 좁씨를 부모님께 갖다 바쳐 두고, 남장을 하고 다시 집을 떠났다.

▲ 제주 큰굿 중에서 제장의 부정을 쫓아내는 제차인 '새도림'. ⓒ제주의소리

#. 서천꽃밭 환생꽃 따다 정수남이를 살려오다

서천꽃밭 아랫녘 마을에는 아이들이 부엉이를 잡고 다투고 있었다. 돈 서푼을 주고 그 부엉이를 사고 서천꽃밭으로 말을 달렸다. 서천꽃밭에는 꽃을 지키는 꽃감관 황세곤간이 있었다. 꽃감관은 서천꽃밭에 밤이면 부엉이가 날아와 “각시 말다 부엉, 서방 말다 부엉”하고 울어 서천꽃밭 꽃들에 멸망을 주고 있는데, 부엉이를 잡아 주면, 사위를 삼겠다고 하였다. 자청비는 아무도 몰래 노둣돌 위에 옷을 홀랑 벗고 누워 정수남이의 혼령을 불렀다.

“정수남아, 혼령이 있거든 부엉이 몸으로 환생하여 원(怨)진 내 가슴에 앉아라.” “각시 말다 부엉, 서방 말다 부엉” 하며, 부엉새 한 마리가 울면서 날아와 자청비 젖가슴 위에 앉았다. 자청비는 부엉이 두 다리를 꼭 잡고 화살 한 대를 찔러 윗밭으로 던졌다. 날이 세자 꽃감관 황세곤간이 왔다. 간밤에 부엉이 소리가 났는데 어떻게 됐느냐는 것이다. 자청비는 하도 고단해서 누운 채로 화살 한 대를 쏘았으니 찾아보라 하였다. 찾아보니 부엉새는 살에 맞아 떨어져 있었다. 꽃감관 황세곤간은 크게 기뻐하며 자청비를 막내 사위로 삼았다.

자청비는 황세곤간의 막내딸과 새 살림을 시작하였다. 그런데 꽃감관 막내딸 아기 여자(女子)이고, 자청비도 여자니 한 이불 속에서 잠을 자도 손도 한번 잡지 않은 체 하루 이틀 삼일 일주일이 되었다. 꽃감관의 막내딸은 아버지께 찾아가 이르기를, 아버님아. 우린 너무 도도한 사위(婿) 한 것 같습니다. 어째서냐. 일주일을 한 이불 속에 잠을 자도 손도 한번 잡지 않고 봄사랑(春情)도 한번 못해 봤수다.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요 하니, 꽃감관은 자청비를 찾아가 따졌다. 우리 딸 뭐가 부족해서 손도 한번 아니 잡느냐고. 아이구 아버님아, 그런 게 아닙니다. 자청비는 모레 서울로 과거를 보러 가야 하기 때문에 몸 정성으로 그런 것이니 염려하지 마시라고 안심시키고, 과거를 떠나기에 앞서 자청비는 부인을 데리고 서천꽃밭을 구경하였다.

살 오르는 꽃, 피가 살아 오르는 꽃, 죽은 사람 살아나는 도환생꽃을 구경하며 자청비는 꽃을 따서 주머니에 놓았다. 자청비는 서천꽃밭을 하직하고 정수남이 죽은 곳을 찾아갔다. 꽃을 뿌려 정수남이를 살려 함께 부모님께 돌아 왔다. 그러나 부모님은 계집년이 사람을 죽였다 살렸다 하니, 집에 두었다 무슨 일이 닥칠지 모르니 어서 집을 떠나라 하였다. 이렇게 자청비는 정수남이를 두 번 죽이고 한번 살렸다.

▲ 문무병 시인·민속학자. ⓒ제주의소리

자청비는 성욕으로 공격해오는 남성, 정수남이를 죽였다. 그리고 자신의 몸을 탐하다 죽어 원령이 된 “각시 말다 부엉, 서방 말다 부엉‘하며 부엉새가 되어 서천꽃밭을 멸망시키는 부엉새, 정수남이의 영혼을 한 번 더 죽인 뒤에야 자청비는 정수남이를 도환생시켜 부모님께 보내드렸던 것이다.  /문무병 시인·민속학자

* 아래아는 'ㅏ'로 표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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