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코어멍 동물愛談] (4) 모든 동물은 반려 동물이다

반려동물을 만나 인생관이 바뀐 사람. 바로 코코어멍 김란영 교수입니다. 그는 제주관광대 치위생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사람보다 더 사랑스러운 반려동물 이야기를 코코어멍이 <제주의소리>에 풀어냅니다. 기대하셔도 좋을 듯 합니다. 격주 토요일 <코코어멍의 동물애담> 연재가 이어집니다. [편집자주]

코코를 만나기 전에는 동물이라면 겁을 먹었다. 동물이 귀엽고 예쁘긴 한데 그건 멀리 있을 때 얘기고, 가까이 오면 질색을 했었다. 강아지가 손을 핥기라도 하면 찜찜한 표정을 지었던 내가 누군가에게 딱히 뭐라 할 입장은 못 된다.

무슨 특별한 일이 있던 것도 아닌데 코코를 만날 즈음에 이상스레 강아지를 키우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었다. 그 노래가 하늘에 닿았던 걸까? 친구가 강아지 한 마리가 있는데 키울 상황이 아니라며 팔랑 귀인 내게 전화를 해서는 무작정 찾아와 손에 안긴다. 이름이 코코란다.

▲ 동그란 눈망울, 반짝이는 코, 살짝 내민 혀, 단단한 발, 활기찬 꼬리, 보드라운 털 완벽한 모습이다. ⓒ김란영

손에 안긴 코코는 바들바들 떨며 불안해한다. 왜 그런지 친구에게 묻자 태어난 지 한 달이 조금 지났는데 그 사이 가족이 세 번 바뀌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일주일에 한 번씩 이곳저곳을 돌고 돌아 내게로 온 거다. 세상의 따스함을 알기 전에 차가움을 먼저 알아버린 코코다.

동물과 함께 하는 사람을 보면 ‘뭐 저렇게까지 하지?’, ‘사람이 우선 아닌가?’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이해가 안됐었다. 유별난 사람들로 보이고, 그들의 취미로만 느껴졌었다. 그런데 코코를 만나 동물에 대한 나의 생각, 행동이 완전히 바뀌었다. 그들도 우리의 가족이고, 인간 중심의 세상에서 배려가 필요한 생명임을 안거다. 강하게만 느껴졌던 동물이 보살핌이 필요한 약한 존재일 수 있다는 걸 말이다.

흥부와 놀부전에서 제비 다리를 고쳐준 무조건적인 사랑에서 꼭 물질적 보은이 아니어도 그 선의만으로 흥부는 행복감에 빠졌으리라. 선녀와 나무꾼에서 노루를 살려준 나무꾼이 노루의 인도로 천상의 배필을 만나지 않았어도 생명을 보살핀 것만으로도 행복했으리라. 나같이 매정해 보이는 사람도 마음 한 곳에는 흥부가 혹은 나무꾼이 존재한다는 걸 코코를 통해 알게 되었다. 이 얼마나 기분 좋은 변화인지! 

▲ 하늘 위 구름에 닿을 듯한 코코가 시원스런 바람을 즐기고 있다. ⓒ김란영

전 세계 천재들이 모인다는 스위스 제네바에 위치한 유럽핵입자물리학 연구소 수석 연구원인 이론물리학 박사 존 엘리스는 말한다.

“우리는 정말 겸손해져야 합니다. 인간은 우주의 일반물질 중 단지 4%만 알고 있습니다. 그 외 25~30%는 암흑물질이며 우리는 그것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천문학자와 우주론자들에 따르면 나머지 75%는 암흑 에너지이며 이 역시 우리는 전혀 모릅니다.”

겸손이란 무엇일까? 모른다는 것에서 출발을 한다면, 모르기 때문에 조심 또 조심해야하는 게 아닐까? 어떤 결정도 인간만이 아닌 자연, 지구 입장에서 판단해야하는 것은 아닐까? 만약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오만하고, 이기적인 인간으로 머물게 되는 것은 아닐까? 거기에 과연 우리가 추구하는 행복이 있을까? 질문이 꼬리를 문다. 그 시작은 위대한 물리학자의 말처럼 우리가 모르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면서, 겸손하지조차 못 하는 것에서 비롯된 것이다.

▲ “까르르 까르르. 내 웃음소리가 들리나요?” 마사지를 좋아하는 코코.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 ⓒ김란영

그럼에도 우리가 결정한 모든 것이 단지 인간의 편의만을 두고 생명을 함부로 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무엇이 되었든 제고되어야 한다. 생명은 되돌릴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생명을 앗아가는 그 모든 행위는 우리의 권한 밖이기 때문이다. 또한 어떠한 이유를 내세워서도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숲에서 길을 잃어본 사람은 알 것이다. 사람들은 결코 들을 수 없는 고귀한 야생의 소리를 따라 능숙하게 움직이는 한라산 노루를 우리는 결코 따를 수 없다는 것을. 자유를 갈망하는 사람은 알 것이다. 경계를 고집하는 인간과 경계가 존재한 적이 없는 동물 중 누가 더 진정한 자유를 느끼고 있는지를. 경계를 고집하는 고립과 단절 속에서 우월과 열등을 구분하며 마치 한라산의 제왕처럼 군림하는 우리 자신을 돌아봐야만 한다.

▲ 코코의 별명은 ‘추들이’다. 풀어 쓰자면 ‘추위타는 들개’. 추위를 타 몸을 달달거려도 눈 덮인 들을 질주하길 좋아하는 코코 그 뒤를 깡총깡총 따르는 이호. ⓒ김란영

모든 동물은 코코, 백구, 야옹이, 누렁이다. 애틋한 마음으로 반려 동물을 돌보는 것처럼 한라산 동물이 원하는 방식에 귀를 기울였으면 한다. 언젠가 한라산 어느 자락에서 한 번은 마주칠 노루의 선한 눈망울을 보면 즐거움에 탄성을 지를지 모른다. 우리는 잊고 지내는 고귀한 야생인 한라산을 돌보고 있는 동물들에게 감사해야 할 것이다. 길 잃은 우리의 빛이 될지 모르니 말이다. /김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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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코어멍 김란영은 제주관광대 치위생과 교수로 일하고 있다. 그는 단짝 친구인 반려 강아지 코코를 만나 인생관이 완전 바뀌었다고 한다.

동물의 삶을 통해 늦게나마 성장을 하고 있고, 이 세상 모든 사람과 동물이 함께 웃는 날을 희망하고 있다. 현재 이호, 소리, 지구, 사랑, 평화, 하늘, 별 등 반려동물과 함께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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