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운호 칼럼> 지도자 트라우마 (2) 앞장서 편 가르고 싸우는데 어찌 창조와 융성이 있겠나?

결코 믿고 싶지 않았던 일이었다. 
성범죄 전력과 불출마 약속을 했던 우근민 제주도지사가 사실상 내년 도지사 선거 출마를 선언했다. 도민의 기대를 서슴지 않고 내팽개쳤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셈이다. 최근 우 지사가 보여준 기행(奇行)은 막장 드라마를 의심할 정도였다. 도민을 보호하기보다 내치는 리더십은 강정에서, 재선충 방재작업 사고로 사망한 도민 영결식에서 여전했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이 공들여 쌓고 있는 ‘4대악 근절’의 옹벽을 거침없이 허물고 새누리당에 입성해 국민들을 어이없게 했다. 성범죄자 입당 승인은 박 대통령을 무장 해제시킴으로써 국정 수행에 두고두고 걸림돌이 됨은 물론 제주사회에도 많은 분란을 초래할 것이다. 여기에 지난 한해 제주도 가구 평균 소득이 전국 꼴찌라는 통계청의 최근 발표는 우 지사의 리더십과 도정 운영에 대한 우려와 함께 제주 사회를 더욱 절망케 할 것이 자명하다.

충청지역 일간지 <충청투데이> 한 칼럼(2013.11.14)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탐라도가 '비울 줄 모르는' 한사람 때문에 시끄럽다. 칠순을 넘긴 제주도 도백이 당적을 또 옮겼기 때문이다. 우근민 지사는 다섯 차례나 제주도 수장을 맡고 있다. 그런데 지난 3년간은 민주당을 친정이라고 읊조리다가, 이번엔 새누리당이 친정이라고 말하고 있다. 벌써 일곱 번째 털갈이다. 어른스러운 정치를 보여주리라 기대했던 탐라 사람들은 그의 '변절'에 끌탕을 한다. 불현듯 2013년 8월, 세 번의 시장직을 끝으로 정치무대에서 용퇴한 염홍철 대전시장의 결단이 오버랩 된다. 하나는 제주의 '봄'을 말하는 것이고, 하나는 대전의 '봄'을 말하는 것이다.....”

급변하는 대내외 환경이 녹록치 않은데 제주는 시간이 정지되어 버린 듯하다. 도민 여망에 아랑곳없이 원로지도자의 군림 정치와 이익투쟁만 보일 뿐이다. 그들이 시도때도 없이 피어 올린 흙먼지를 맨 먼저 뒤집어쓰는 건 제주도민이다. 청정 제주를 오염시키며 도민의 현재와 미래를 좀먹는 만성적 고질의 원인이 되고 있다.

# 믿었던 도끼에 발등 찍힌 제주사회...가속화되는 퇴행, 누구의 책임인가? 

총체적 정치력 부재 속에 오로지 지도자의 말에 따라 움직이는 제주도정은 민심을 얻기보다는 교란시키고 있다. 계층 간 격차는 갈수록 심화되고, 도민들은 갈라져 허구한 날 분란과 패싸움이다. 어느 편에도 속하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의 설 땅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여기에 갈등의 해결보다 유발을 하며, 참신함과는 거리가 먼 ‘제주판 3김’의 재귀환 소식에 도민들의 허탈과 탄식이 이어진다. 안타깝게도 제주는 이런 외풍과 혼란에 꿋꿋이 버티며 홀로서기에는 역부족인 여전히 작은 사회이다. 자칫 헛발질하면 주변의 멸시받으며 영영 낙오의 길로 접어들지도 모른다.

이런 위기의 제주사회를 더욱 절망케 하는 것이 다름 아닌 원로 정치인들의 사익추구로 인해 실종된 정치다. 제주사회와 도민을 위해 일해야 할 정치가 패거리를 만들어 싸우면서 도민을 분열시키고 지역사회를 싸움판으로 만들어 버리고 있다. 도민 역량을 다 끌어 모아도 위기 극복이 어려운 판에 죽자살자하며 제주사회를 나락으로 추락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로 인한 사회와 경제와 민생에 가해지는 기회비용은 엄청날 것이다.

이럴 때마다 어김없이 등장하는 것이 현 지도자, 우근민의 퇴행적 행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다. 우 지사는 도민 대통합을 약속했지만 반대세력에 대한 배려와 포용보다는 배척함으로써 지역 갈등과 분열의 골은 갈수록 깊어만 간다. 일방적 지시만 있지 도민과의 쌍방향 소통은 안 보인다. 지역사회 내부엔 숨막 힐 듯 한 침묵만 이어진다.

이런 분위기에서 제주사회의 창조적 혁신과 융성을 논함은 어불성설이다. 이제 제주사회는 새로운 가치를 찾기 위해 종전의 익숙한 것들과 결별할 수 있는 용기와 도전정신이 있어야한다. 그래야 혁신의 길로 나아가 값진 결실을 거둘 수가 있다. 새로운 패러다임 하에서 제주가 선진사회로 진입할 수 있을지 여부는 당대를 사는 우리들이 어떤 리더십을 선택하느냐에 달려있다. 그 실마리는 ‘지도자 논란 트라우마’의 중심에 있는 현직 우근민 지사에서부터 찾아야 할 것이다.

우 지사는 새누리당 입당을 통해 자신이 누군인지 또 한 번 전국에 드러냈다. SNS 등에선 2002년 제주도지사 집무실 성범죄 사건을 박근혜 대통령 방미길에 성추행한 윤창중 사건에 오버랩시켰다. 시도 때도 없이 당을 바꾼 철새 전력 소유자인 우 지사의 입당은 제주 사회를 희화화함은 물론 또 다시 나라 전체에 성희롱 전력을 헤집어놓았다.

성범죄 처벌 강화 등 최근 사회적 인식의 변화 등을 감안할 때 우 지사가 안고 있는 주홍글씨 멍에는 쉽게 벗어버리기가 힘들 것 같다. 전 경찰대 교수 표창원 박사는 “과거 성추행으로 한창 문제된 사람. 어떻게 아직도 도지사하고 있는지...”라고 자신의 트윗에 의견을 남겼다.

역사는 우리에게 어떤 방향성을 가져야 하는지를 깨우치며 삶의 가치를 높여 준다. 역사에서 깨달음을 얻지 못하면 역사에 보복 당한다. 우리는 역사를 통해 삶을 변화시켰고 새로운 원동력을 얻는다. 이제 제주사회는 역사를 함께 반추하며 트라우마를 치유할 수 있는 혜안을 찾아야 한다.

독일과 일본은 과거사를 바라보는 국가적 자세와 그 사죄 방법이 너무 다르다. 독일은 과거사를 진정으로 반성하며 새로운 국가로 태어났다. 사죄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일본 지도자들은 침략 역사를 부인하고 망언으로 세계인으로부터 조롱 받고 있다. 슈뢰더 전 독일 총리는 "독일은 부정적인 역사를 인정하면서 사죄했고, 그랬기 때문에 국제적으로 더 인정받았다. 일본도 이런 방식으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 갈등과 분열의 땅 제주에서 ‘창조적 혁신과 융성’을 기대할 수 있을까?

우 지사는 이 역사의 교훈에서 자신의 거취에 대한 혜안을 찾아야 한다.

첫째, 우 지사는 대법원 판결 이후 아직까지 진정성 있는 사죄를 외면하고 있다. 사회 모범이 돼야 할 지도자가 성범죄 판결에도 불구하고 아무렇지 않게 출마 해 지사에 오르고, 이제는 또 불출마 약속을 헌신짝처럼 내 던져 재출마하려 하고 있다.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부끄러워해야 할 과거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너무나도 당당한그 모습에 도민들은 성범죄자를 지사로 뽑았다는 트라우마에서 나오질 못하고 있다. 우 지사가 제주사회 중심을 점하고 있는 한 트라우마는 지속적으로 도민들을 괴롭히게 될 것이다.

둘째, 박근혜 대통령은 성폭력, 가정파괴범, 학교폭력, 불량식품 등 ‘4대 악(惡)’만큼은 확실하게 새 정부 임기 내 반드시 뿌리를 뽑아서 국민들의 안전한 삶을 지켜내겠다고 다짐했다. 여성 대통령으로서 박 대통령은 특히 성범죄 근절에 대한 인식이 그 누구보다 강경하다. 이러한 새 정부의 국정기조 하에서 성범죄 전력을 가진 우 지사가 박 대통령과 호흡을 같이 하며 국정에 참여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셋째, 성범죄에 대한 시대적 여망을 직시해야 한다.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급증하고 있는 성범죄에 성인 여성과 여중고생 2/3가 극심한 트라우마에 휩싸이는 등 성범죄를 바라보는 국민의 시각이 크게 달라지고 있다. 성범죄는 우리사회 곳곳에서 만연되고 있다. 최근 4년간 60% 이상 급증하고 있으며 가해자에는 사회의 고위 지도자는 물론 성직자까지 포함되고 있다.

이에 정부는 윤창중 사건의 후속 조치로 성폭력 범죄를 저지른 공무원에 대한 징계를 크게 강화하고 있다. 성폭력 범죄를 저지른 공무원에 대해선 파면을 할 수 있도록 강화했다. 성범죄를 친고죄에서 제외해 피해자의 고소 없이도 처벌할 수 있게 했다.

얼마 전 미국 법원은 아동 음란물을 다운로드 한 혐의로 기소된 방송사 사장에게 ‘징역 1000년’을 선고했다. 사회적 지위에 맞게 행동하지 않은 게 중형 선고 이유였다. 최근들어선 우리나라 정치권에서도 성범죄에 대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해 성희롱 발언으로 논란을 빚은 당시 한나라당 모 의원은 만장일치로 출당이 결의됐다. 또 새누리당은 지난 총선 당시 특정인을 공천했다가 5년 전 여성 비하 발언으로 논란이 일자 공천을 취소했다.

정치권의 이 같은 변화의 근저에는 도덕성 상실과 구태에 대한 국민의 날선 지탄과 준엄한 질책에 따른 궁여지책 끝 선택이라고 볼 수 있다. 사회 일각에선 선출직 공직자의 자격정지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이제 성범죄는 정치인의 정치적 생명을 치명적으로 끊는 엄격한 윤리 기준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러나 제주 정치권은 여전히 딴 판이다. 더욱이 그 논란의 중심에 제주지도자가 있어 우리를 당혹스럽게 한다. 파사현정(破邪顯正)의 지휘를 해야 할 리더가 바로 그 굴레에 갇혀 있으니 누가 그의 권위를 인정하겠는가?

# 프렌시스 후쿠야마 “한 국가의 경쟁력은 그 사회 신뢰수준에 의해 결정”
  도산 안창호 “지도자의 약속이 국가 신뢰와 사회 신용향상에 큰 역할
” 

넷째, 도민과의 불출마 약속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
지도자의 언어는 엄중해야 한다. 신뢰와 일관성, 그리고 언행일치는 지도자 최고의 덕목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불통 이미지에도 불구하고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는 근간에는 박 대통령의 약속 이미지가 있다. 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응답자의 55.2%가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는 것이 소통(43.6%)보다 더 중요하다고 했다.

대부분의 도민들이 알다시피 우 지사는 지난 선거에서 ‘이번이 마지막 출마’라며 마지막 지지를 읍소했다. 민주사회에서 선거 공약은 약속의 교환을 의미하며 신뢰의 최소 요건이다.  불출마 공약 실천이 불가능한 상황을 알고도 약속했다면 이는 허위 또는 사기 계약이 된다. 도민의 기억을 우습게 아는 행위다. 지도자를 자처하면서 상황과 유불리와 편의주의에 따라 말 바꾸기를 거듭하며 도민과의 약속을 헌신짝 버리듯 내팽개친다면 어느 도민이 따르겠는가.

한 가지 거짓말을 감추기 위해서는 일곱 가지 거짓말이 필요하다는 영국 속담처럼 우 지사는 불출마 번복의 그럴듯한 핑계를 만들어 도민들을 이리저리 끌고 다닐지 모른다. 제주의 파수꾼이여야 할 지사가 핑계거리를 만들어 변명에 몰두하는 동안 제주 공동체가 허물어지고 깨지는 건 시간문제다.

미국의 정치사상가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한 국가의 경쟁력은 한 사회가 고유하게 지니고 있는 신뢰의 수준에 따라 결정된다"고 했다. 안창호 선생은 지도자의 약속 준수가 국가의 신뢰와 사회의 신용을 향상시키는데 큰 역할을 한다고 가르쳤다. 자신의 목숨을 걸고, 한 소년과의 약속을 지키려 한 안창호 선생까지는 아니더라도, 약속을 소중히 여기는 도지사로 기억되었으면 한다. 더 이상 허황된 기만의 말로 도민을 기망하려는 행태를 멈춰야 한다. 신뢰의 출발점은 구성원들이 법과 약속을 지키는 것이다. 불신의 사회적 비용이 얼마나 큰지는 밀양 송전탑과 강정 사태를 보면 알 수 있다.

다섯째, ‘제주판 3김’에 얽혀 사사건건 대립하고 꼬이는 정국과 그로 인해 피해보는 도민을 치유하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하고 위중한 시대적 과업이다.

요즘 제주 도민은 같은 하늘 아래 산다고 말하기 부끄러울 정도다. ‘제주판 3김’ 패거리끼리 갈려 서로가 서로를 증오하고 있다. 어느 한 쟁점에서도 도민여론을 한 곳으로 몹지 못하고 있다. 강정해군기지, 7대 자연경관 선정 문제에 이르러서는 도민 분열이 최고조에 달했다.

이의 여파로 도민은 끝없이 부딪치며 갈등과 분란의 늪에 빠져들고 있다. 제주사회 구석구석에서 벌어지고 있는 갈등과 분란은 그 정도가 너무 심각해 어떤 트라우마 같은 것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을 정도다.

거기엔 타협이나 양보의 여지가 없다. 이들은 '보고 싶은 것' 유혹에 빠져 '함께 봐야 할 것'을 외면하며 무조건 상대를 배척하고 있다. 상대 잘못은 확대하고 업적은 무조건 지워버리려 한다. 도민 이익을 위해 '배제의정치'를 타파하고 '공존의정치'를 실현할 길을 함께 찾아야 함에도 불구대천 원수 대하듯 서로 굴복시키려만 한다. 결국에는 서로에 대한 험한 꼴이 부메랑 되어 바로 자신들에게 돌아오고 있다.

제주의 퇴행적․구조적 고질은 ‘지도자 논란 트라우마’의 중심에 있는 우근민 지사가 먼저 풀어나가야 한다. 현 권력자에게는 가진 것을 내놓으면 양보가 되지만, 상대자 입장에서는 패배가 되어 어렵기 때문이다.

여섯째, 지금의 상황이 유지되는 한 6개월여 남은 우근민 도정은 잇따른 실정과 권위 상실로 정상적인 도정 수행이 어려울 것으로 본다.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것 없이 허송세월만 하는 도정”이라고 소리가 이어지고 잇다. 최근 실시한 17개 광역시도 단체장 평가에서도 우 지사는 꼴찌로 나타났다.

민선 5기 제주 사회는 강정 제주해군기지 문제 등 각종 현안이 제자리에서 지지부진하면서 말 그대로 ‘시계 제로’인 상태다. 올라가야 할 것은 전부 내려만 가고, 내려가야 할 것은 모두 올라만 가면서 한랭전선이 확대일로다. 정책은 엉뚱한 번지수로 배달된 우편물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된다”는 프랑스 루이 16세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의 엇박자처럼 민심과 동떨어진 정책으로 일관하기 때문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세계 7대 자연경관 선정 논란, 경기침체 장기화와 극심한 민생고, 계층간·세대간 갈등 심화, 인구구조의 급격한 노령화로 인한 경제활력 저하, 치솟는 청년실업률, 도민 삶의 질 추락 등 믿고 싶지 않은 소식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이제 서민들의 생활고 소식은 더 이상 뉴스가 아니다. 혼란과 갈등은 도민들을 어둡고 참담한 좌절과 절망의 긴 터널 속으로 내몬다. 앞으로 더욱 쉽지 않은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우울한 암시를 드리우고 있다.

# ‘누가 옳은가’보다 ‘무엇이 옳은가’를 봐야...양심세력.지식인 ‘시대 성찰’ 목소리 내야

 
앞으로 우근민 도정이 마주해야 할 진실이란, 진정한 도민합의가 없으면 풀기 어려운 수많은 난제가 쌓여있는 데다가 어두운 제주 경제에 또 다른 난관이 설상가상으로 중첩해 밀려올 것이란 것뿐이다. 지금 우리에게 덤비듯 밀려오는 경제 위기의 파도는 예전의 경제 중심 단일 위기와는 달리 경제에 정치·사회적 이슈들이 서로 얽히고 얹혀 굴러가며 몸집을 불리는 상시적․복합적 양상을 띠고 있어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특히 지역 내 갈등은 날로 복잡․심화되어 가고 있다. 우 도정은 웬만한 갈등엔 손을 대고 내 문제로 끌어안아 씨름하려 하지 않는다. 난마처럼 얽히고설킨 지경에 이르러서야 나서곤 했다. 우 도정 출범 이후 매듭 하나 제대로 푼 게 없고 오히려 새로운 매듭을 만들고 있을 뿐이다. 여기에다 풀리지 않으면 내 탓 아닌 남 탓하기 바빴다. 갈등관리 능력이 부족한 우 도정엔 세월이 약이라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갈등은 더 깊어만 가며 퇴행의 길을 뒤쫓아갔다. 이런 상황들이 제주 사회를 ‘멘탈붕괴’ 소용돌이에 몰아넣고, 우 도정 정책을 무용지물로 만들어 버리고 있다.

작금의 제주도지사는 그 어느 때보다 뛰어난 리더십과 돌파력이 요구된다. 도민의 마음을 읽어 주눅든 자존감을 세워주고, 시대 흐름과의 조화 속에 혼란과 좌절의 고리를 끊어 지평을 더 넓혀 줄 지도자 말이다.

제주 도민들도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
엄밀히 말해 윤창중 사건은 윤창중 개인 문제로도 볼 수 있다. 그러나 비난의 화살이 청와대로 향한 건 이런 대변인을 발탁한 사람이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성범죄 도지사를 뽑아 제주 사회를 희화화시키고 있는 제주도민 자신들이 곱씹어야 할 대목이다. 이제 더 이상 ‘누가 옳은가’문제에 집착하지 말고 ‘무엇이 옳은가’를 실천할 깨어 있는 시민의식을 보여줘야 한다. 

그러나 막상 제주에는 어른거리는 불길한 그림자를 경고하는 언론이나 지식인들도 안보인다. 양심의 소리는 거의 사라지다시피 하고 양심의 소리를 내야할 인사들 일부는 아예 '3김호위세력‘으로 나서고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제주사회 진영간 장벽이 더 높고 단단해지면서 도민 대부분이 '우리 편 저쪽 편' 하는 진영논리 수렁에 빠져 들어가고 있다. 

진영의 골이 점점 깊게 패이면서 자신의 솔직한 생각을 내보이는 것은 위험하다는 걸 체득한다. 지척에 있으면서도 반대편과는 소통을 거부하고, 반대편 목소리를 아예 담 너머 개 짖는 소리로 치부해 버린다.

용기와 양식을 갖췄던 제주 인사들 대부분 이렇게 물들어가는 중이다. 이들의 언어에는 우리를 성찰케 하는 새로운 관점이나 깊은 식견이 빠져있기 마련이다. 추종자들의 환호 속에 고장 난 레코드판처럼 이들의 늘 똑같은 소리는 제주사회를 대결 국면으로만 몰고 갈 뿐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가치가 오로지 이것밖에 없는 것처럼 말이다.

양식을 갖고 과거를 올바로 보고 제주 공동체의 미래를 도모하려는 양심 세력이라면 원로 지도자들의 탐욕과 주장의 허구성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제주의 양심세력이 이대로 허무하게 주저앉아 버리면 제주 도민은 영원히 고통과 번민의 나락에서 헤어나질 못할 것이다. 퇴행의 세계로 떠밀려 가고 있는 제주의 양심세력이 다시 일어나 건전하고 정의로운 사회 구현에 앞장서야 하는 이유다. 우리 내부에서의 치열한 비판과 각성이 있지 않은 한 철옹성 장벽은 결코 허물어지지 않을 것이다.

# 과거 행적 놓고 도민과 줄다리기 이제 그만...스스로 흐르는 물에 몸 실어야
 
히틀러 개인의 그릇된 기행과 탐욕은 독일 국민을 죄의식 굴레에 갇히게 했다. 그러나 빌리 브란트 독일 총리 한 사람의 진정한 사죄는 나머지 독일 국민을 당당히 일어설 수 있게 하기에 충분했다.
 
우 지사 역시 제주인의 자긍심을 헤집을 만큼 헤집었다. 진정한 사죄를 통해 제주 도민이 트라우마에서 벗어나 일어날 수 있도록 결자해지의 자세를 보여야 한다.

우근민 지사는 제주의 한 시대를 상징하던 인물이다. 돌아보면 지금까지 11년 우리가 우 지사를 붙들고 놓아주지 않았던지, 우리가 그에게 붙들려 풀려나지 못했던지 간에 그는 계속 제주 정치권의 중심에 있었던 셈이다. 그도 이제 고희(古稀)를 넘어섰다.

역사는 흐르는 물과 같아 돌이킬 수 없다. 그도 앞으로의 인생을 아름답게 장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이제는 과거로 흘러가야 한다. 잘못된 과거사를 반성하며 스스로 과거로 떠내려가는 모습을 보여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지도자로서 일말의 자존이 있다면 더 이상 과거의 행적을 놓고 도민과 줄다리기를 하지 말아야 한다. 진정 고향 제주를 사랑하고 제주 미래를 생각한다면 흘러가는 역사의 물에 스스로 몸을 실어야 한다.  결자해지 심정으로 결단을 내려야 한다. 

이제는 도민들도 흘러갈 때를 다소 놓친 우 지사가 자연스레 역사의 뒤편으로 흘러가게 물길을 터주어야 한다. 그렇게 할 수 있도록 그의 주변 인사들도 도와야 한다. 시대마다 시대적 과제가 있고 여기에 적합한 지도자가 있는 법이기 때문이다.

▲ 고운호 전 한국은행 제주본부장
“정상배는 다음 선거를 생각하지만 진정한 정치가는 다음 세대의 미래를 생각한다”는 미국 성직자 J F 클라크의 지적을 귀담아 들어야 한다. 

제주의 현재와 미래를 좀먹는 만성적 고질인 ‘지도자 논란 트라우마’에서 벗어나는 길을 빠르고 확실하게 뚫을 수 있는 자는 바로 현직에 있는 우근민 지사다. 제왕의 권력 속에 몸을 숨기기 말고 민낯의 정치를 해야한다. 그리고 민심을 두려워해야 한다. 당나라 때 위징은 백성들의 민심을 물에 비유했다. 물은 배를 띄우지만 배를 뒤엎기도 한다. 이는 민심에 역행하면 언제든지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의미이다. 우 지사의 혜안을 기대한다. 고운호 전 한국은행 제주본부장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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