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시장, 걸으멍 보멍 들으멍] (9) 부부정육점 박귀종·엄시옥 상인회장 부부 

<제주의소리>의 주말 코너 ‘걸으멍 보멍 들으멍’에서 제주 곳곳을 누비며 할망 하르방들의 소박한 삶의 이야기를 전해온 인터뷰 작가 정신지가 이번엔 제주 전통시장에서 걸으멍 보멍 들으멍 글을 쓴다. 그녀는 일본에서 12년간 유학생활을 했고, 그 사이 유목민처럼 세계 17개국을 떠돌며 사람과 사회, 지역에 대한 이해를 넓혀왔다. 일본 홋카이도대학(北海道大學)에서 문학박사(지역연구학) 과정을 수료한 그녀가 타고난 역마살을 내려놓고 지난해 초 고향 제주로 돌아와 할망 하르방들을 만나는데 부지런히 발품을 팔아왔다. 이제 그 발길을 잠시 전통시장으로 돌려 올해 문화관광형시장에 선정된 제주서문공설시장에서 상인들과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그녀의 펜 끝이 전하는 시장사람들의 사람냄새 진한 이야기를 들어본다. [편집자] 

▲ 가난했던 신혼 시절, 결혼식을 올리고도 신혼여행을 가지 못한 것이 박귀종 씨에게는 사무치는 한이 되었나보다. 딱 10년만 더 일하고 아내 손 꼭 잡고 대한민국 방방곡곡을 누리겠다는 포부하에 오늘도 열심히 부부는 고기를 썬다. 부부라는 이름이 있었기에 함께 할 수 있었던 지난날에 감사하며, 이 부부는 앞으로도 쭉 알콩달콩, 먼 길을 함께 걸어가겠다고. / 사진= 프리랜서 포토그래퍼 Simon Powell(영국, 한국명 박사민) ⓒ 제주의소리

바쁨 속에서도 기쁨이 가득한 정육점이 있다. 제주서문공설시장상인회 회장을 맡고 있는 박귀종 씨(1960년생)와 그의 아내 엄시옥 씨(1962년생)가 경영하는 부부정육점이 바로 그곳이다. 소문난 서문시장의 잉꼬부부다. 이른 새벽부터 커다란 고깃덩어리를 실어 나르고 그것을 손질하는 일부터 판매하는 일까지, 온종일 바쁘게 움직여도 부부가 해야 할 일은 태산이다. 늦은 밤이 되어야 집으로 돌아가 몇 시간 자고 일어나면 또 새벽이다. 고기를 보관하는 냉장고 쇼케이스 앞에 하루 종일 서서 손님을 맞이해야 하는 일은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다. 일 년 내내 손발이 시리다. 그래도 이 부부는 일하는 것이 마냥 즐겁다. 이유는 간단하다. 즐겁게 일하는 상인에게는 바쁨이 곧 기쁨이기도 하고, 부부가 늘 함께 하고 있기 때문이다.

 

▲ 365일 중 명졀 연휴 나흘을 제외한 361일 일을 하며, 24년을 쉬지 않고 가게에 나와 있다는 이들 부부다. 서문시장이 육고기특화거리로 지정되면서 2011년부터 그들은 더더욱 바빠졌다. 하지만, 손님이 끊겨 위기가 닥쳤던 지난날을 생각하면 너무나 꿈 같은 일인지라 지금껏 힘든 것도 모르고 달려왔다. / 사진= 프리랜서 포토그래퍼 Simon Powell(영국, 한국명 박사민) ⓒ 제주의소리

올해로 개업 24주년이라는 부부정육점은 이들 부부가 살면서 이루어 놓은 커다란 보물이다. 아들과 딸, 두 자녀와 함께 말이다. 부부라는 이름이 없었으면 시작하지도 않았을 정육점이고, 부부가 함께했기에 오늘까지 힘들어도 버텨올 수 있었다. 전라남도 장흥 출신의 아저씨와 경상북도 안동 출신의 아주머니는 부산에서 일하다 만나 3년의 연애 끝에 결혼에 골인했다. 까마득히 지난 옛일 같지만 생각할 적마다 마음이 짠해진다는 그 시절의 이야기라며 박귀종 씨가 말문을 연다.

“영호남 커플이잖아요, 저희가. 당시(1980년대) 부산에서 전라도 출신인 제가 일을 할 적에는 참, 말 못할 억울함이 많았어요. 똑같이 일해도 경상도 직원은 진급하는데 나는 늘 제 자리이고. 그래도 참으면서 10년을 일했는데 돈도 모이지도 않고, 많이 속상했었죠. 그땐 바쁘게 일해도 직장생활이 전혀 기쁘지 않았으니까. 그러다가 애들 엄마랑 결혼하고, 돈을 벌기 위해서 사우디에라도 가려고 했는데 막상 발령이 나니까 이 사람이 못 가게 하더라고요. 떨어져 있으면서 돈을 많이 버는 것 보다, 좀 덜 벌어도 좋으니 같이 알콩달콩 살아야지 않겠느냐고. 부부는 항상 함께 있어야 부부라 그러면서…. 그래서 뭐, 한 방에 설득 당했죠.

아무튼, 결혼 초에는 지지리도 가난했어요. 양가 모두 원래 돈이 있는 집안도 아니었고, 어찌어찌 벌어서 힘들게 결혼식은 했는데 신혼여행 갈 돈이 없는 거예요. 그래도 아무 곳도 안 갈순 없어서 버스 타고 제 아버지 산소에 갔다 왔어요. 그게 저희의 신혼여행이었죠. 아이고 참, 지난 이야기 나오니까 마음이 울컥하네! 버스를 탈 거였으면 아버지 산소 말고 경주라도 갔어야 했는데, 그죠? 허허허.”
그렇게 말하며 웃음 짓는 남편의 싱거움을, 아주머니 또한 어린 아들 바라보듯 생긋이 웃어넘긴다.

그렇게 결혼생활을 시작하고 7년째에 접어들던 어느 날 그들 부부의 삶에 커다란 전환기가 찾아왔다. 터무니없는 스트레스를 굳이 애써 참아가며 몸과 마음을 회사에 바치느니, 뭐를 하더라도 자신의 힘으로 일구고 살아보자는 결의로 아저씨가 갑자기 회사에 사표를 던진 것이다. 한 마디 상의도 없이 내린 결정이었기에 아내는 당황했다. 하지만 남편의 뜻을 믿기로 하고 부산을 떠나 그들 가족은 제주도로 향했다. 다섯 살 난 어린 아들을 업고 제주로 향하는 길, 엄시옥 씨는 많이도 울었다. 보이지 않는 미래가 두렵기도 했고, 아무것도 모르는 땅에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든 것이 막막하기만 했었기에. 하지만 그 울음이 이제는 마음 짠해지는 추억거리가 되었다는 엄시옥 씨다.

▲ 서문시장을 대표하는 꽃미녀 엄시옥 씨(52). 항상 곱게 화장을 하고 단정한 모습으로 가게를 지키신다. 남편이 상인회 일로 바쁜 요즘, 가게 일을 맡아 하시는 것은 주로 엄시옥 씨. 작은 체구에 말수도 별로 없지만, 섬세하고 배려심 깊은 마음씨 때문에 그이를 찾는 단골의 발길은 끊이지 않는다./ 사진= 프리랜서 포토그래퍼 Simon Powell(영국, 한국명 박사민) ⓒ 제주의소리

“처음에는 애들 아빠가 퀵서비스 하면서 돈을 벌었어요. 당시에 구제주에서 신제주까지 가는데 2000원씩 받으면서 하루에 4~5만원 정도 벌었었나? 대단한 거죠. 아무것도 없이 와서, 그래도 이 사람이 맨발로 뛰면서 번 돈으로 우리가 살아남은 거니까. 그러다가 정육점을 하게 되면서 나도 한 이 십 년 정말 열심히 일해 왔는데, 구도심 상권이 죽으면서 서서히 위기가 닥쳐오기 시작했어요. 대형마트가 생기면서 장사가 어려워지기 시작하더니, 손님이 딱 끊긴 거예요. 아이들은 둘 다 대학생인데 통장에 돈은 없고. 당시에는 ‘정말 이러다가 망하겠구나’ 하면서 심각하게 다른 장사라도 할까 생각하고 있었어요. 살면서 가장 힘들었을 때가 그때였던 것 같아요. 그게 바로 3~4년 전이었는데, 때마침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난 거예요. 사람들이 서문시장에 고기를 사 먹으러 오는 붐이 일어나고, 2011년부터 정육형식당들이 늘어나면서 정육점에 하나둘 사람이 몰리기 시작했어요. 그러고 나서 정말 너무나 바빠졌는데, 한편으론 꿈같기도 해서 지금까지 힘든 것도 모르고 달려왔어요.”

남편이 상인회 일로 바쁜 요즘, 가게 일을 맡아 하는 것은 주로 아내 엄시옥 씨다. 작은 체구에 말수도 별로 없으시지만, 섬세하고 사려 깊은 착한 마음씨 때문에 그이를 찾는 단골들의 발길은 끊이지 않는다. 엄시옥 씨는 특히 제주시 서쪽의 시골마을 할망들에게 인기가 좋다. 왜 하필 서쪽 할망들일까? 그 이유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서문시장의 문화적인 배경을 잠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 새벽부터 커다란 고깃덩어리를 실어 나르고 그것을 손질하고 판매하는 일까지, 온종일 움직여도 정육점의 일은 끝이 없다. 하지만, 이 고깃덩어리 덕분에 자식들 대학도 보내고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하셨다는 사장님은 일하는 것이 마냥 즐겁기만 하다. / 사진= 프리랜서 포토그래퍼 Simon Powell(영국, 한국명 박사민) ⓒ 제주의소리

제주사람이라면 거의 아는 이야기. 예부터 서문시장은 제주도를 반으로 딱 갈라 제주시 서쪽에 사는 사람들이 주로 장을 보러 오는 시장이었고 동쪽 마을 사람들은 주로 동문시장으로 갔다. 걸어서 15분이 채 안 걸리는 동·서문시장이지만, 이렇듯 제주도는 동과 서, 그리고 제주시와 서귀포로 그 상권이 확연하게 나누어져 있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며 사람들은 시골을 떠나 도시로 몰렸고, 시장을 찾던 손님들은 시장을 떠나 마트로 갔다. 그러나 여전히 ‘덤’이 있고 ‘정’이 살아 있는 전통시장을 찾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특히 제주시 서쪽 시골 할망들에게는 60년 전부터 왕래하던 서문시장이 아직도 건재하다는 것이 다행이고, 상인들에게는 그런 단골손님이 남아있다는 사실이 적잖은 희망이 되어 왔다.

“할머니 손님들은 정말 감동적이에요. 저를 딸처럼 여겨주시고 오랫동안 좋은 관계를 유지해주시는 손님들이 몇 분 계세요. 제사나 잔치가 있을 적마다 전화하셔서 일일이 이것저것 조언을 구하시는 할머니. 육지사는 자식에게 보내 줄 고기를 사러 오는 할머니. 다리도 불편하신데 시에 나올 때마다 고사리며 뭐며 한 아름 꺾어다가 저에게 가져다주는 할머니. 정말 너무 고맙죠. 그래서 뭐 하나라도 더 얹어드리고 싶은데, 그거 아세요? 제주도 어르신들은 공짜를 좋아하지 않으세요. 부담스러운 걸 싫어하시거든요. 그러니까, ‘고기 덤으로 더 드릴게요!’라고 말하지 않고 살짝 더 얹어드리는 센스가 중요해(웃음). 그런 게 제주사람들의 정이거든요. 말 대신 행동이 우선이 되어야 한다는 거죠. 할머니들 보고 있으면 ‘이제 나도 언젠가 저렇게 늙어가겠지’ 하는 생각도 들고, 시장에 있으면서 배우는 게 참 많아요.”

조용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가시는 엄시옥 씨. 마음씨도 곱고 얼굴도 참 곱다. 이런 예쁜 아내를 평생의 반려자로 두신 남편은 ‘참 행복하겠구나’라고 생각하는 찰나 박귀종 씨가 말을 잇는다. “그나저나, 우리 마누라 자랑 좀 해도 돼요?” 하시며 남들은 팔불출이라고 하려 들지 않는 아내 자랑을 즐겁게도 늘어놓는다.

“집사람이 사실은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쭉 일등만 하던 유명한 수재였어요. 공부도잘 하고 성격도 좋고 그래서 친구도 많았죠. 저도 뭐 친구 많기로 따지면 누구에게도 지지 않지만 말입니다, 하하하. 제주도에 산다는 이유로 친척들이나 지인들이 놀러 오면 저는 주로 차를 몰고 제주도 구석구석을 안내하거나 하지만, 우리 집사람은 안 그래요. 가게를 떠날 수가 없으니까. 그러니 친구들이 와도 늘 앞치마를 입은 채로 시장 안에서 만나곤 하지요. 그럴 때마다 내가 얼마나 미안한지, 남편 잘못 만나서…. 이 사람 어릴 적 친구들은 누구보다 이 사람이 멋지게 성공해서 잘 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을 터인데, 이렇게 시장에서 고기 썰고 있는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 현실이 참 마음이 안쓰러운 적도 많았어요. 그런데도 이 사람은 눈 하나 까딱 안 하고 당당하게 사람들에게 자기 사는 모습을 보여주거든요. 참 대단한 여자예요.”

   
▲ / 사진= 프리랜서 포토그래퍼 Simon Powell(영국, 한국명 박사민) ⓒ 제주의소리
▲ 부부정육점의 질이 좋기로 유명하다. 매일 신선하게 배달되어 오는 한우며 제주산 돼지를 사기 위해 많은사람들이 그들의 정육점을 찾는다. 단골손님에게는 말없이 살짝 고기를 더 얹어주는 센스도 겸하신 엄시옥 씨는 그때문에 늘 손님들에게 인기가 좋다.  / 사진= 프리랜서 포토그래퍼 Simon Powell(영국, 한국명 박사민) ⓒ 제주의소리

365일 중 명절 연휴 나흘을 제외한 361일을 꼬박 일을 하며, 24년을 쉬지 않고 가게에 나와 있는 이들 부부다. 동네 정육점이라면 쉬고 싶은 날 쉬어버리면 그만이지만 시장에서는 그럴 수가 없다. 모든 상인과 상점이 하나의 톱니바퀴처럼 물리어 돌아가야 하는 공동운명체이기 때문에, 시장 상인은 웃어도 함께, 울어도 함께다. 이제 딱 10년만 더 이 일을 하고는 신 나게 남은 인생을 즐기고 싶다는 이 부부. 일을 관두면 무엇을 할지, 남편 박귀종 씨에게 묻자 기다렸다는 듯이 이런 대답이 돌아온다.

“당연히 여행이죠! 마누라 손 꼭 잡고 둘이서 일단 한 6개월 우리나라 방방곡곡을 여행할 겁니다. 신혼여행 못 간거, 쉬는 날 없이 고생시킨 거, 여행하면서 다 싹 풀어버리고 와야죠. 자식들도 다 건강하게 자라줘서 제 갈 길을 가고 있으니, 우리도 조금만 더 고생하고 이제는 즐기며 살 겁니다. 그래도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저희 부부가 다른 곳이 아닌 제주도에 있다는 사실. 산과 바다가 늘 곁에 있고, 올레길도 있고. 일이 힘들어도 이곳이 제주도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기분이 좋죠. 아직 갈 길은 남았지만, 남은 길도 함께 즐겁게 가야죠.”

 

▲ 정신지 인터뷰작가

밝고 믿음직스러운 얼굴로 아내를 보며 그는 말한다. 시장의 앞날에 관해서도 마찬가지. 상인회 회장으로서 역시 그는 책임감 있고 긍정적인 태도를 일관하고 있는 듯, 이렇게 말을 이었다.
“비록 예전 같지는 않아도 전통시장의 미래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어둡지만은 않아요. 장사가 잘 안 되는 것처럼 보여도, 사실은 여전히 사람들의 끈끈한 정으로 무엇보다 강하게 이어져 있는 것이 시장이니까요. 앞으로 더 잘 될 겁니다!”

박귀종 씨가 시장상인회장을 맡고 있는 올해, 제주서문공설시장은 중소기업청과 시장경영진흥원의 문화관광형시장으로 선정돼 다시 활력을 찾으며 분주해지고 있다. 보다 많은 사람이 다양한 관계로 맺어지며 새로운 모습으로 흥겨워질 서문 시장의 모습을 상상하니 벌써 부터 가슴이 설렌다. 거기에 아름다운 잉꼬부부가 있어 더욱 설렌다. / 정신지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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