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추념일 하루 전날 ‘4.3특별법 개정안’발의…“폭거” “4.3상처에 소금 뿌리나” 반발


국가행사로 치러지는 4.3국가추념일 행사를 하루 앞두고 4.3진상규명의 성과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4.3특별법 개정안이 발의돼 파문이 예상된다.

6.4지방선거를 60여일 앞두고 보수·우익 진영의 목소리를 대변한 ‘악법’이라는 평가가 많아 매번 선거 때마다 4.3민심의 이반으로 곤욕을 치렀던 새누리당이 또 한번 궁지에 몰릴 전망이다.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이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하 4.3특별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 개정안은 4.3중앙위원회가 신청 사건의 심의를 완료한 뒤에도 새로운 사실이 발견되는 등 종전의 결정을 변경할 중대한 사유가 발생했다고 판단될 경우 직권으로 재심의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다.

사실상 그 동안 국무총리가 위원장인 4.3중앙위원회의 심의·결정 내용까지 뒤집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의미다.

공교롭게도 이날 새누리당의 유력한 제주도지사 후보인 원희룡 예비후보는 기자회견을 갖고 “4.3특별법이 규정한 모든 사업을 법대로, 정상적으로 추진할 것을 약속한다. 법은 생색이 아니라 정부의 의무다. 법이 정한 사업이 법대로 추진되지 않은 것은 비정상”이라며 4.3의 완전 해결을 약속했다.

특히 원 후보가 희생자 인정범위를 확대하겠다고 공약한 상황에서 이미 총리가 위원장인 4.3위원회에서 희생자로 결정된 내용까지 뒤집겠다는 법 개정을 추진하겠다는 것이어서 파장이 만만찮을 전망이다.

개정안을 발의한 하태경 의원은 과거 운동권 출신으로, 이후에 전향한 ‘뉴라이트’ 인사다.

하태경 의원은 개정안을 발의하면서 “현대사의 아픔을 덮고 치유하기 위한 4.3추념식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면서도 “그러나 화해와 상생이라는 것도 시(是)와 비(非)를 가린 다음에 진행하는 것이 순서”라고 주장했다.

하 의원은 4.3희생자 가운데 재심의가 필요하다며 4명의 명단을 공개하기까지 했다. 그 동안 4.3정립연구유족회가 중심이 돼 재심의가 필요하다고 밝힌 6명의 연장선상이다.

하 의원은 “제주4.3사건과 관련해서 누가 어떤 이유로 희생자로 선정됐는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그들을 추념하고 화해할 수 있다는 것인지 의아하기만 하다”며 “당시 4.3위원회가 자신들의 부실한 심사과정을 감추기 위해 일부러 비공개로 지정해 놓은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기까지 하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4.3특별법’ 개악 시도에 대해 도민사회는 격하게 반응하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제주도당은 긴급 성명을 내고 “4.3국가추념일을 앞두고 새누리당이 일으킨 폭거”로 규정하고 “지난 20일 ‘불량 위패’ 운운하며 4.3평화공원 앞에서 극렬 시위를 벌인 바 있는 보수단체들의 문제제기에 이은 것으로, 국가 차원의 추념일 지정마저 부정하려는 의도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맹비난했다.

이어 “새누리당 이명박 정권 하에서도 이뤄진 희생자 심사결과를 두고 정부가 직권으로 재심의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법안 발의는 전형적인 ‘4.3흔들기’에 다름 아니”라며 “새누리당은 하태경 의견이 발의한 개정법안 추진을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특히 “이번 법안은 6년 전 원희룡 새누리당 제주도지사 예비후보가 서명한 4.3위원회 폐지법안과 맥을 같이 하는 것으로, 원 후보 또한 이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밝혀야 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제주참여환경연대도 성명을 내고 “이번 특별법 개정안은 극우보수집단의 주장과 맞닿은 상식 이하의 내용”이라고 평가절하한 뒤 “극우보수집단의 논리대로라면 무고한 양민을 학살한 군경은 어찌해야 하나. 아물어가는 4.3의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행위를 당장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참여환경연대는 박근혜 대통령의 4.3국가추념식 불참과 관련해서도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이 보여준 최근의 행보는 진정으로 4.3의 아픔을 치유하겠다는 것인지 의심스러울 따름”이라며 “보수집단의 뒤에 숨지 말고, 4.3에 대한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의 생각이 뭔지 정확히 밝혀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태경 의원을 향해서는 “추념의 진정한 의미를 왜곡하고, 4.3을 폄훼하려는 하태경 의원은 개정안을 즉각 철회하고, 국민들에게 사죄할 것”을 요구했다.

제주주민자치연대 또한 2일 성명을 발표하며 “66주기를 맞아 첫 국가추념일 하루를 앞두고 이러한 시도를 하는 것은 도도한 역사의 흐름에 반하는 행위”라며 “4․3유족들과 제주도민들을 우습게 여기는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다”고 규탄했다.       

4.3위원회 전문위원을 하며 정부보고서인 ‘4.3진상조사보고서’ 작성의 산파 역할을 했던 김종민 전 위원은“이명박 정권 때도 똑같은 내용의 법안이 발의됐지만 14명밖에 서명을 받지 못했다. 흘러간 레퍼토리”라고 규정했다.

그러면서 김 전 위원은 “새누리당의 전신인 이명박 한나라당 정권에서도 같은 내용으로 6차례 헌법소원 및 행정소송이 제기됐지만 전부 기각·각하됐다”면서 “박근혜 대통령이 대통합을 얘기하고 있고, 이미 제주에서는 경우회와 유족회가 화해한 마당에 왜 외부에서 4.3을 흔드나. 자제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제주4.3사건 발발 66년 만에 국가추념일로 지정돼 화해와 상생의 기틀을 마련했다는 평가가 나온 직후 발의된 ‘4.3특별법 개정안’이 6.4지방선거 국면에서 어떤 변수로 작용할 지 지방정가와 도민사회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제주의소리>

<좌용철 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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