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훈의 제주담론] 이번 선거 열쇳말은…

[박경훈의 제주담론] (25) 이번 선거 열쇳말은 '자치도 바로 세우기'라야

저무는 한 시대에 대한 평가와 반성의 기회가 증발해 버린 선거판

우근민 제주도지사가 ‘6․4 지방선거’ 불출마를 선언했다. 지난달 15일, 새누리당의 제주도지사 후보 경선 불참을 선언한 뒤 한 달 만이다. 우 지사는 그러나 새누리당을 탈당하지 않고 잔류, 선거관리 지사의 역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이로써 1991년 관선 제주지사로 부임, 제주도정에 참여한 이래 24년여의 정치인생을 마무리하는 셈이다. 물론 즉각적으로 정치일선을 떠나는 것은 아니라지만, 제주도 지방자치의 역사에서 한 시대가 저물고 있다.

이번 선거는 역대 선거와 본질적으로 다른 구석이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공무원지방자치시대가 막을 내리게 되는 선거일 가능성이 높다는 점 때문이다. 정부 수립 후 시행되다 없어진 지방자치제가 1995년 34년 만에 부활, 역사상 처음으로 4대지방선거가 치러지면서 다시 지방자치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게 되었으나, 소위 ‘제주판 3김 시대’라는 ‘공무원지방자치시대’를 맞이한다.

고위 행정관료들은 정치인으로 진화해야 했고, 고위 관료였던 덕에 누구보다 도민사회에 인지도가 높았으며, 검증받은 후보처럼 비쳤다. 또한 관료조직을 통해 확보했던 인맥과 먹이사슬구조는 도민들로 하여금 도정의 수장으로 선택받기 쉬운 구조를 만들어냈다. 결국, 지방자치가 개막했지만, 세 명의 고위행정관료 출신의 공무원 도지사 시대를 맞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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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판 3김 시대의 주역들. 좌로부터 우근민 현 지사(민선 2기, 3기, 5기), 신구범 전 지사(민선 1기), 김태환 전 지사(민선 3기, 4기). 사실 우 지사와 신 전 지사는 관선시대의 마지막 시기에 한 번씩 번갈아 도지사를 지낸 바 있어, 관선 민선을 두루 재임한 진기록의 지사들로 남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 두각을 나타내는 경쟁력 있는 도지사 후보들의 면면과 선거 양상을 보건대, 이번 선거만큼은 비공무원 출신의 순수민간인 도지사가 탄생할 확률이 그 어느 때보다도 높다. 확률적으로 새누리당 원희룡 후보와 아직 최종후보가 확정 안 된 새정치민주연합의 김우남 고희범 신구범 후보 중 신 후보를 제외한 나머지 후보들이 모두 비공무원 출신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임 도정과 공무원지방자치시대에 대한 평가와 비판은 만나기 힘들다. 공무원들이 지난 19년을 경영하게 된 것은 그들의 능력이 출중해서였을까? 아니면, 관선에서 민선시대로의 이행기의 필연적인 현상이었을까? 또한 이러한 정치경험이 제주도를 위해서는 약이었을까? 독이었을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이번에 선출될 가능성이 높은 도지사 후보는 포스트공무원자치시대의 도지사이기에 당연히 고위 공무원들이 돌아가면서 이끌었던 제주도가 어떻게 되었는가에 대한 면밀한 검토와 논의가 있어야 한다. 무엇이 잘 되었고, 무엇이 안 되었는가를 시시콜콜 따져서 손익계산서의 대차대조표를 뽑아내야 하는 선거이기도 하다는 말이다.

그런데, ‘원희룡’이라는 제주출신 중앙정계의 ‘잠룡’이 ‘거룡들의 전쟁터’에서 나와 ‘소룡들의 싸움터’에 등장하면서, 현 도정과 역대 공무원자치시대에 대한 비판과 단죄가 실종되었으며, 또한 그에 따라 민선자치 초기의 한 시대에 대한 평가와 반성 그리고 대안 모색의 기회 역시 실종되어 버렸다. 모든 후보군들이 그냥 앞으로 어떤 일을 하겠다는 공약(또는 空約)만 남발하고 있다. 어쩌면 선거공학에 의해 도내 최대의 공조직이면서 “우리가 남이가?”의 조직체인 공무원집단을 단죄해봐야 득 될 게 없다는 판단들인 모양이다.

선대에 대한 평가가 빠진다는 것은 미래에 대한 오류를 과거 족적에서 찾아내 미래의 자양분으로 써야 한다는 지극히 당연한 역사의식의 부재 또는 미비를 의미한다. 이것은 원 후보뿐만이 아니다. 여당의 도지사후보로 나섰다가 사퇴를 하였건, 경선에서 패배해 승자의 보조자로 위상이 바뀐 후보건, 또는 야당의 경선주자들이건 간에 마찬가지다.

정치공학적인 표계산과 거대집단과의 싸움을 피하기 위한 꼼수로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이번 선거는 박근혜 정부의 국정 수행에 대한 중간평가적 성격과 함께, 제주지역에 국한했을 때는 근 20년에 가까운 공무원지방자치시대를 평가하고, 새로운 방식의 도정 운영과 제주의 미래를 그리는 중요한 선거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이 문제는 반드시 선거 국면에서 공론화 과정을 거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이 문제 말고도 도지사후보들이 반드시 정면돌파해야 할 화두가 하나 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특별자치도에 관한 것이다. 우리는 이미 특별자치도가 도입된 2006년 7월 이후 제주특별자치도의 도민들로 살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일반 주민들은 과거의 제주도와 특별한 자치도의 차이가 무엇인지 잘 모른다. 중앙권한이 대폭 이양되었다는데, 전문가가 아닌 이상 그에 대해 아는 바도 없고, 일상생활에서 크게 느끼는 바도 없기 때문이다. 물론 관광업계나 부동산시장 관련 업자들은 그 변화상을 누구보다도 현저히 느끼겠지만 일반 도민들은 먹어볼 수 없는 그림 속의 떡이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특별자치도의 의미나 가능성, 실제에 대한 정보 역시 부족하다. 특별자치도란 무엇이며, 특별자치도의 권한이양과 그 권한 이용을 통해 제주도를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공론화 역시 제대로 이루어진 바 없기 때문이다.

도민들이 확실히 느끼는 것 한 가지는 특별자치도로 바뀌면서 기초단체인 시군이 없어졌다는 것과 허수아비 행정시장을 거느린 막강한 제왕적 도지사의 출현이었다. 그렇다면 이번 선거는 특별자치도에 관한 담론이 형성되어야 하는 선거이기도 하다. 건강한 담론이 올바른 정책을 생산한다. 공개적이고 투명한 공론의 형성만이 일반도민들의 바른 판단, 집단지성의 우월성을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1국 2체제의 고도의 자치권을 쟁취하자는 최초의 자치도 구상자의 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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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특별자치도는 2006년 7월 1일 오전 10시 30분 제주국제컨벤션센터에서 한명숙 국무총리, 이용섭 행정자치부 장관,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 등을 비롯한 정부 주요인사와 김태환 도지사 등 3,500명이 참석한 가운데 출범하면서 전국 최초의 자치와 분권 시대를 열었다.


이런 상황에서 특별자치도에 관해 목소리를 높이는 도지사 후보는 신구범 전 지사다. 호불호가 많은 그이지만, 역시 ‘자존’에 관한 한 여야를 막론하고 신구범 전 지사를 넘어서는 안목과 비전을 지닌 후보는 없는 듯하다. 이번 선거를 통틀어 도지사 후보자들 중 특별자치도에 대해 실질적으로 자치를 완성시키는 전략과 목표, 로드맵을 그리고 있는 후보자는 그 외에는 없는 듯하다.

또한 그는 민선 1기 도지사 재임 시 ‘시범자치도’라는 이름으로 현재의 특별자치도의 모태가 되는 자치도 구상한 바 있다. 제주섬의 자치도로서의 미래비전을 최초로 구상하고 설계한 도지사였던 것이다. 이번에 도지사 후보 중 그에게서만 특별자치도의 미래 비전에 대한 구체적인 제안이 이루어진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1국 2체제’, 홍콩이나 마카오도 아니고 얼핏 보면 “뭥미!”, “무신 소리!”, “탐라독립론이라?” 라고 반문하면서 “이 양반 너무 나가네!”, “이 무슨 분리독립론이라?” 또는 “이제는 막 가네!”라고 할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반응을 보이는 분들은 그저 고만고만한 자기인식의 틀을 넘어서지 못한, 상상력이 아주 빈곤한 이들일 뿐이다.

도지사 후보자들도 대부분 특별자치도에 관한 한 정서적 피곤감과 “내리는 비는 일단 피하고 보자.”라는 전략에서인지, 어정쩡한 행정시에 대한 논의도, 과거 김태환 도정에서 잔뜩 물올랐던 대동제 이야기도, 특별자치도의 완전한 자치에 대한 비전도 언급이 없다. 괜히 건드려 보아야 벌집 쑤신 듯 득 될 게 없다는 정치공학이 작용한 모양이다.

하지만, 이번 선거에서 특별자치도의 완성을 위한 로드맵과 미래비전의 공론화는 사실상 가장 중요한 선거쟁점이어야 한다. 왜냐하면 이 ‘의제(Agenda)’는 강력한 중앙집권국가인 대한민국의 역사상 최초로 ‘고도의 자치권을 허용’하겠다는 지방자치 실험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중차대한 논의가 전면적으로 공론화되지 못하는 것은 제주의 미래를 대비할 때 그리 바람직한 모습은 아니다. 정면돌파할 것들을 전면에 내세워 돌파하지 못하는 격이기 때문이며, 걸러야 할 것을 거르지 못하고 넘어가면 반드시 그 후유증이 도래하기 때문이다.

또한 특별자치도의 도지사가 되겠다는 사람은 당연히 미완의 특별자치도를 임기 내에 제도적으로 완성하는 일을 재임기간의 중요한 정치와 제도개선의 목표로 삼아야 한다. 신 전 지사의 말처럼 제주특별자치도가 출범한 지 벌써 8년째가 되고 있다. 당초 외교, 국방, 사법을 제외한 국가사무의 이양에 대한 수준과 속도를 살펴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법 제정 이후 벌써 5단계의 제도 개선이 이루어지고 있으나, 아직도 진정한 의미의 특별자치권에 속하는 자치입법권, 자치행정권, 자치재정권은 이양하지 않고 움켜 쥔 채, 대부분 신자유주의적인 정책과 테스트 베드용 규제 완화와 투자자의 특례 규정에 관한 것들만 이양하고 있다.

이 말은 뒤집으면, 제주도의 진정한 자치의 실험엔 관심이 없고, 대한민국 국가주의 현행법 체계 내에서 해소하지 못하는 규제 완화와 특례를 통해, 제주도의 자원을 도민들로부터 분리시켜 내고, 제주의 알짜배기 자원들은 고스란히 한국의 대기업들과 외국인 투자자들이 맘껏 이용할 수 있게 하겠다는 심보인 것처럼 보인다. 다음은 제주특별자치도 홈페이지에 게재된, 2006년 출범 이후 4차례의 제주특별법 제․개정을 통해 진행된 제도개선 추진내용 요약이다. 이 과정에서 총 3,839건의 특례 등 권한을 이양받았다고 한다.

(1단계) 특별자치도 출범(‘06.7.), 자치분권 확대 등 자치모범도시 기반 구축(1,062건, ’06.2.21.)
(2단계) 4+1 핵심산업 중심 규제완화, 국제자유도시 여건 확대(278건, ’07.8.3.)
(3단계) 관광3법 일괄이양, 영어교육도시 지정 및 국제학교 설립·운영의 자율성 확보(365건, ’09.3.25.)
(4단계) 119개 법률 일괄이양, 국제학교 내국인 입학 대상 확대, 민·군복합형관광미항 관련 지역발전계획 수립근거 마련(2,134건, ’11.5.23.)

그런데 각 단계별 제도개선 내용을 보면 특별자치도의 완성을 위한 핵심권한의 이양이나, 도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핵심적인 제도 개선 내용은 보이지 않는다. 대부분 국제자유도시 투자유치를 위한 규제완화 관련 권한이 대표적이다.

결국 정부가 던져 주는 특별한 자치 권한은 제주도민 스스로 자치를 통해 미래를 개척해 나가는 데 필요한 자율적 권한보다는 “사람-상품-자본의 이동이 자유로운” 국제자유도시를 만드는 데 필요한 자치권(사실 중앙정부의 규제를 벗어나 대자본의 투자와 유연성이 자유롭게 발현될 수 있는)만 이양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상황이 이렇게 된 데는 제주도의 비전과 지위에 애초부터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즉, ‘국제자유도시 제주특별자치도’라는 이 해괴한 조합이 문제인 것이다. 진정 “전국 어디보다도 높은 삶의 질을 누릴 수 있는” 도민들의 삶이 중심이 실린 비전이라면 ‘특별자치도’에서 끝나야 한다. 즉, 제주의 미래는 자치에 의해 선택되는 것이다.

그런데, 선험적으로 정부가 제시한 ‘국제자유도시’가 자치도의 앞에 붙으면서 “국제자유도시 실현을 위한 제주특별자치도”가 되어 버린 것이다. 현재 특별자치도의 법적 근거인 「제주특별자치도 설치 및 국제자유도시 조성을 위한 특별법」이라는 명칭에서 드러나듯, 국제자유도시 조성에 방점이 찍혀 있다.


제주특별자치도의 자치권이라는 것(?)

특별자치도라는 제주도의 현실을 최근 벌어지는 중국인 투자자이민제도를 통해 들여다보자. 최근에 중국인 투자 열풍에 따른 제도적 문제점이 가시화되면서 도민사회에 중국자본의 융단폭격과 토지잠식에 대한 위기감이 팽배하게 되자, 제주특별자치도는 영주권 총량제 도입 등을 골자로 하는 ‘부동산 투자이민제도’ 개선 방안을 확정하고, 이를 소관 중앙부처인 법무부에 건의한 바 있다.

영주권 총량제 도입은 ‘부동산투자이민제도’에 의한 영주권 투자자 수를 현재 제주인구 60만의 1%인 6000건 수준으로 제한하는 것이다. 또한 투자자 1인당 최소 투자금액 기준을 기존의 5억 원에서 10억 원으로 상향 조정하고, 영주권 부여대상 콘도를 취득하고 5년을 보유해 영주권을 받은 자가 이를 되팔 시, 이 물건을 산 후속 매입자에게는 영주권을 미부여하는 방침이다. 즉, 최조 부동산 취득자 1명에게만 영주권을 부여한다는 것이다. 현행 제도에는 이 부분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없다.

제주도는 1단계 조치에도 불구하고 도민 우려가 진정되지 않을 경우에는 부동산 투자이민제도를 일정지역(핵심프로젝트, 유원지, 기 개발승인지역 등 개발유도지역)에 한정하는 2단계를 내년 이후에 법무부와 협의해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법무부 관계자는 24일 “중국 등 해외 자본 투자가 확대되면서 제주도가 외국 자본에 의해 난개발된다는 여론이 있고 제주도 차원에서 영주권 총량제, 국가별 할당제, 투자가능 지역제한, 매매중단 장치 도입 등을 제안했지만, 제주도에 적용되는 투자 영주권 제도는 2018년 일몰제 방식으로 재논의되기 때문에 현재 따로 기준을 만드는 것은 실익이 없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또한 “제주도가 난개발로 인해 문제가 생기면 2018년 투자이민제도 관련 규정을 재손질하면 된다.”라며 “추가로 규제를 만드는 것에 반대하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또 “현재 제주도가 제안한 방안은 별도의 위원회를 통해 구체적인 내용을 논의하겠지만 법무부 입장은 사실상 실익이 없다고 판단했다.”라고 말했다.(<조선비즈>, 2014. 3. 34.)

자치입법권이 왜 필요한가를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즉, 제주도민들은 당장 위기감을 피부로 체험하면서 이에 대한 자구책을 내놓았으나, 정작 서울에 앉아 팔짱 낀 법무부는 “난개발로 문제가 생기면”이라면서 2018년쯤 가서 문제를 해결하면 된다는 안일한 생각인 것이다. 도민들의 상황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그야말로 권위적인 통치의 강권을 보여주는 후안무치의 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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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박 터지는 면세점과 투자설명회에 몰려든 중국인 투자자들. 신라면세점의 중국인 관광객 쇼핑 모습과 라온레저개발(주)에서 중국상하이지역 부동산 투자자를 대상으로 한 투자설명회 현장.


현재 도민들이 중국열풍이라 부르는 이 사태에 즈음하여 느끼는 위기감은 중국인 자본에 대한 거부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자본에 무슨 국경이 있겠는가? 다만 문제는 투기에 가까운 과열상황 때문이다. 2010년 처음 도입될 당시 5만㎡였던 토지 매입이 2013년 9월 말 301만㎡로 무려 61배나 급격히 늘어나고, 특히 중산간 생물권 보전지역까지 침범하면서 중국인 자본의 침투가 위험수위를 넘고 있다고 가시적으로 느끼는 위기감 때문이다.

이렇게 이미 탄력이 붙기 시작한 중국자본의 투자열풍은 현재의 속도감에 비추어 예견해 보면, 법무부에서 얘기하는 향후 4년이면, 제주도 내 그나마 남은 땅은 모두 매입해버려도 충분한 시간이다. 외국인 투자자라고 하지만, 이는 과열된 부동산 땅 투기일 뿐인 것이다.

국민의 재산과 안위를 먼저 걱정해야 할 법무부라는 데가 ‘외국인 땅 투기’를 보장하겠다고 에두르고 있는 상황이다. 현행 법체제상 법무부가 이렇게 나온다면 제주특별자치도 개선안을 내놓아보았자 아무 소용없는 일이다. 자치의 실종이다. 고도의 국방 외교의 문제도 아닌, 지역의 땅 투기 열풍을 막고 선순환적인 투자자이민제도를 운영하겠다는 특별자치도의 자치가 무색해지는 대목인 것이다. 하지만, 소위 선진국이라는 다른 나라의 예를 보자.

캐나다는 이러한 제도의 시행과정에서 문제가 보이자 즉각적으로 위기 대응에 나섰다. 위기에 대한 대응은 즉각적이며 단호해야 한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제도운영을 보여준다. 캐나다의 경우는 1989년부터 운영해 온 투자자이민제도를 올해 2월 11일(현지 시간) 전격적으로 폐지했다. 그동안 중국 부자들의 투자이민 신청 폭증으로 심각한 비자 심사 적체 현상을 겪어온 캐나다가 결국 투자비자 제도를 폐지한 것이다.

캐나다는 그동안 160만 캐나다달러(약 15억 5000만 원)의 자산을 보유하고 5년간 캐나다에 80만 캐나다달러(약 7억 2600만 원)를 무이자로 투자하는 사람에게 투자 비자를 발급해왔으며, 지금까지 이 제도를 이용해 18만 5000여 명이 캐나다로 이주했다. 특히 최근에는 중국 부자들이 대거 투자이민 신청에 나서면서 심각한 비자 심사 적체 현상이 빚어졌다. 투자비자 심사를 기다리던 5만 9000여 신청자 중 70%인 4만 6000여 명이 중국인이었다. 이 때문에 투자비자 신청 접수를 잠시 중단했다가 결국 제도 자체를 폐지하기에 이른 것이다.


2012년 11월 호주 정부는 500만 호주달러(약 57억 원)를 투자하면 호주 영주권을 부여하는 ‘주요 투자자 비자 제도’를 실시하기로 했다. 호주 비자를 발급받으려면 500만 호주 달러를 호주 정부나 지방채권, 호주 민간기업이나 호주증권투자위원회가 4년간 감독한 호주 자산투자 펀드에 투자하면 된다.

비자를 받기 위해서는 최소 160일을 호주에서 거주해야 한다. 호주 정부의 이 같은 영주권 프로그램은 주로 중국인을 겨냥한 것이다. 최근 들어 해외 부동산에 투자하는 중국인이 급증하고 있고, 미국이나 캐나다, 호주 등으로 투자이민을 선택하는 이들도 많아졌다.(월스트리트저널) 호주의 경우는 부동산에 투자하더라도 직접 투자보다는 현재 호주의 경제체제 내에 선순환적으로 연착륙시키는 제도 운영을 마련한 것이다. 제주도의 상황과 대조를 보이는 대목이다.

강철준 한국금융연수원 교수는 제민일보 칼럼을 통해 “현행제도는 부동산투기를 부추길 수 있으며 콘도 등 영주권 부여대상이 되는 특정 부동산개발만을 조장하는 허점이 있다.”라고 말하면서, “홍콩도 부동산투기붐이 일자 지난 2010년에 부동산투자만을 하는 경우는 영주권 대상에서 제외시켰다.

바람직한 것은 제주지역기업에 투자하는 펀드를 만들어서 이 펀드에 투자하는 경우에 영주권을 주도록 하는 것이다.”라고 현 투자자이민제도가 부동산투기열풍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와 제도의 문제를 명쾌하게 짚어내고 있다. 그러면서 그는 “제주기업투자가 안정성이 떨어진다는 결점은 일정부분 국채나 제주지방채를 편입하고 투자의무기간을 현행 5년보다 2~3년으로 짧게 하는 것으로 보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이렇듯 현재 제주특별자치도에서 시행하고 있는 투자자이민제도는 부통산투기과열을 불러올 만한 개연성을 처음부터 안고 있었던 것이다. 또한 외국의 경우 중국자본이 이런 비정상적인 열풍에 악용되지 않도록 즉각적으로 제도를 폐지하거나 선순환적인 자본유입이 되도록 제도를 개선하고 대응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이미 투기열풍으로 몸살을 앓기 시작했고, 이러한 가시적이고 정서적인 위기감이 팽배해 도민사회가 불안감에 떨고 있는데도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이다. 중앙정부의 소관부처에서는 이런 지역의 현실엔 별로 관심이 없다. 제도개선 하나 스스로 못해내는 자치도를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당장 내 집 안방에서 벌어지는 사태에 대해, 필요할 때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하는 자치권이란 제줏말로 ‘허맹이문서’에 다름없다. 결국 정부는 ‘자치’라는 겉옷가지만 던져 줬지 알짜배기 몸뚱어리는 움켜쥐고 쥐락펴락하는 것이다. 이게 무슨 특별자치도란 말인가? 그나마도 언제 끝날지 모르는 제도 개선이 다 이루어지고 특별자치도의 완성에 이르려면, 어쩌면 우리 세대는 그날을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결국 이는 제주도민에 대한 기만이며 국가가 지방에 대해 저지르는 사기행각에 불과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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