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종 권씨 가족 안타까운 사연, “사고 하루 전 제주 귀농 올 예정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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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호 침몰사고로 가족이 실종된 여섯살 권◯◯ 어린이의 사연이 온 국민을 가슴 아프게 하고 있다. 아빠 권재근 씨가 가족들과 함께 귀농의 꿈을 안고 제주의 새보금자리로 향하던 중 일어난 침몰사고여서 더욱 가슴을 미어지게 한다. 18일 찾아간 제주시 모 읍 소재의 권씨 가족 집에는 주인 잃은 빈 의자가 쓸쓸히 내리는 봄비를 맞고 있었다. <제주의소리 문준영 기자>

귀농의 꿈을 안고 제주에서 인생2막을 펼치려 했던 세월호 실종자 권재근(52)씨 가족이 마련한 제주시 모 읍 소재의 주인 잃은 보금자리에는 쓸쓸한 봄비만 내리고 있었다.  

[제주의소리]가 18일 수소문 끝에 찾아간 권 씨의 집에는 아직 정리가 덜 된 짐들이 마당 곳곳에 놓여 있었고, 주인을 기다리는 자전거와 훌라후프, 빈 나무의자와 뜰에 지어진 오두막이 쓸쓸한 모습으로 권씨 가족의 온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운명의 장난이었을까. 당초 권씨가 제주에 내려오려 했던 날이 사고 하루 전인 지난 14일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주위를 더욱 안타깝게 하고 있다.

권 씨 가족이 귀농으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하려 했던 제주도의 이 집은 20년을 친형제처럼 지냈던 지인 민성기(64) 씨가 권씨 가족의 귀농을 위해 마련해준 곳이다. 오랜 지인과 함께 여유롭고 행복한, 제주에서 자연과 함께 하는 전원 생활을 꿈꿨던 것.

민 씨는 이날 [제주의소리]와 통화에서 권 씨 가족이 불과 하루 차이로 일정을 미루면서 사고를 당했다며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다.

당초 권씨가 제주를 향하려던 날은 14일. 그러나 이전에 살던 전셋집 처리 문제로 하루 일정이 미뤄지면서 15일 저녁 세월호를 타게 된 것이다. 그의 아내와 딸과 아들, 1톤 트럭에 이삿짐을 가득 실은 상태였다.

권씨는 15일 저녁 민씨에게 전화를 걸어 출항이 지연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하며 “안개가 짙어 배가 과연 제대로 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게 마지막 통화였다.

민씨는 “월요일날 내려오려다가 어떻게 일이 이리 되려고 화요일날 배를 타게 된 거냐”면서 안타까워 거듭 말을 잇지 못했다.

권씨는 지난 2002년부터 2008년까지 제주에서 감귤농사를 짓다가 베트남 출신인 부인 한윤지(29)씨를 만나면서 서울 성북구로 거처를 옮겼다. 민씨는 권씨가 삭막한 도시생활에서 저축이 쉽지 않은 것을 보고 제주에서 좀 더 여유롭게 살 것을 권했다. 집을 마련하고 감귤밭에서 일할 수 있도록 돕겠다고 하자 권씨는 제주로 돌아오기로 결심한 것이다.

이미 앞서 몇 차례 제주를 넘나들며 짐도 일부 옮기고 전정작업도 했다. 남은 짐을 싣고 정말 새로운 출발을 하려던 참이었다. 하지만 뜻하지 않은 사고를 만났고, 18일 오후 딸 권◯◯(5) 어린이만 다른 승객들 손에 구조돼 실종된 아빠·엄마·오빠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사고 소식을 듣고 바로 다음 날 오전 진도를 향한 민씨는 지금까지 잠도 한 숨도 못 잤다고 했다. 다만 해운사와 정부의 사고처리에 대해서는 화가 잔뜩 난 상태였다.

“다 구조했다고 오보를 하고 실종자 집계도 못하고 도대체 이게 뭐냐”며 “온통 거짓말쟁이 투성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어떻게 승객들에게는 꼼짝말라고 해놓고 선장이 먼저 빠져나올 수 있냐”며 “국제적인 조롱거리가 될 것”이라고 울분을 터뜨렸다.

민씨는 지난 며칠 간 권씨에게 서울로 떠난 후 밀감시세가 많이 올랐다며 영농인의 삶을 추천했던 일, 근처에 유치원이 있는 보금자리를 마련했으니 어서 (제주로)오라고 권유했던 일 등 함께 꿈꿨던 행복한 여생에 대한 생각들이 자꾸 떠오른단다.

“(권씨) 얘기를 할 때마다 가슴이 울컥하고...가슴이 답답하다”며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한 민씨는 지금도 진도체육관에서 마지막 희망을 기다리고 있다. 권씨가 지금이라도 "형님"하면서 달려올거라 믿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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