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제주전통목기연구소 김동필 소장

30년 넘게 제주전통목기들을 제작해 오고 있는 제주토박이가 있다. 제주전통목기연구소 김동필 소장. 나막신부터 농기구들까지 벌써 1000점 넘게 쌓였다. [제주의소리]는 어린시절 그와 가족들의 경험과 역사에서 비롯된 작품들을 매주 하나하나씩 소개해나갈 예정이다. 이에 앞서 김 소장이 이렇게 목기구에 매달리는 이유, 그 사연을 들여다봤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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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전통목기연구소 김동필 소장. ⓒ제주의소리

제주시 오라동의 한 실내농원. 문을 열고 들어서니 화분보다 온갖 목기들이 눈에 띤다. 나막신, 떡본, 빨래방망이 등 생활용품부터 각종 농기구에 이르기까지 한 눈에 보기에도 양이 상당하다.

이 곳은 제주전통목기연구소 김동필(67) 소장이 제작해 온 목기 1000여점이 비를 피하고 있는 임시거처다.

그의 제주전통목기 사랑은 1960년대로 돌아간다. 중문 대포에서 살며 가족들과 함께 농사를 짓던 그는 유난히 눈썰미가 좋았단다. 따로 배운 적도 없었으면서 자연스레 눈에 익은 대로 쇠질메와 구루마를 만들어 쓰기도 했다.

동시에 ‘우리 아버지 할아버지가 쓰던 물건을 보존하고 싶다’는 마음, 전통을 지키려는 생각도 갖고 있었다. 그의 유년기에 새마을운동이 찾아왔다. 마을마다 초가집이 양철지붕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그때 중고 카메라를 빌려 철거되기 직전 전통초가의 모습을 기록해 보관해왔다.

그러던 그가 본격적으로 전통 목기를 만들기 시작한 것은 1983년 즈음. 제주시 삼도일동에서 쌀 가게를 하던 시절이었다. 우연히 다시 잡게 된 나무와 톱. 어린시절의 실력은 녹슬지 않았다. 오히려 유년기 기억들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베어져 썩기 직전의 나무들을 몇 개씩 가져다 각종 농기구, 생활용품, 어머니가 집안에서 쓰던 물건들을 닥치는 대로 만들기 시작했다.

누가 알아주지도 않았지만 차츰 차츰 하다보니 30년이 넘었다. 그는 ‘책을 보거나 누구한테 따로 배운 게 아니’라고 누누이 말했다. ‘그럼 도대체 뭘 보고 만드는거냐’고 물었더니 ‘어린시절 기억’이라고 바로 답했다. 어제그제 일은 금방 까먹지만 이상하게도 어린시절 가족들과 농사짓던 기억들은 너무 강렬하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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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전통목기연구소 김동필 소장이 직접 그린 그림. ⓒ제주의소리
이 기억들은 그림으로 옮겨지기도 한다. 혹시나 모를 방문객을 위해 목기들 밑에는 해당 기구의 쓰임새를 스케치로 표현해냈다. 이해를 돕기 위해 명칭들과 함께 실제 사람들이 어떤 방식으로 사용했는지 그림으로 재현해낸 것.

돈 벌자고 한 일은 아니니 큰 대가를 바라지는 않지만 그가 개인적으로 아쉬운 게 있다면 이 작품을 당장 보관할 곳이 마땅찮다는 것.

지금 보관중인 비닐하우스는 지인이 운영하는 실내농원. 화분에게 늘 물을 공급해줘야 하기 때문에 습기가 늘 가득찬다. 나무에게는 치명타일 수 밖에 없다. 이미 적지 않은 작품들에 금이가거나 강도가 약해져 본래 모양을 잃었다.

“사실 보관할 공간만이라도 있었으면 좋겠어요. 구 제대병원 인근에 예술가 거주를 위해 빈 점포 10개가 나와서 서류를 구비해 신청했는데 안되더군요...매일 애쓰게 만드는 게 깨지고. 알아주는 사람이 희망이 있어야 인력도 있고 앞으로 아직까지 능력이 있으니 얼마든지 만들 수 있는데. 일은 하고 싶은데...”

사실 그는 이전에도 무형문화재 신청을 했지만 번번이 떨어지고 말았단다. 그는 “제주도 지역 마다 다 특색이 있는데 박물관 기준에 벗어났다고 떨어뜨리는 건 너무하지 않냐”고 말한다.

그럼에도 그는 그의 어린시절부터 눈과 손에 익은 물건들을 계속 만들어나갈 계획이다. “때로는 불태워버리고 다 벗어던지고 싶다”면서도 그 매력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모양새다. 과연 올해는 그가 원하는 소원들이 이뤄지고, 그의 작품들이 제 집을 찾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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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전통목기연구소 김동필 소장. ⓒ제주의소리

[김동필 소장은?] 김 소장(67)은 서귀포 중문 대포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쌀가게를 운영하던 1983년부터 본격적으로 목기를 제작하기 시작했으며 지금은 숙박업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오늘도 제주 전통 목기를 제작하는 동시에 당시 생활상을 기록으로 남겨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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