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훈의 제주담론] (31) 세상의 모든 일보다 급한 일, 제주어 살리기 ②
-언어는 자연히 죽는 것도, 자살하는 것도 아닌 ‘말살’당하는 것

일제의 식민지배 수단으로 시작된 표준어정책의 역사

제주사람 이방익의 중국 표류행적을 들은 정조가 그의 글이 시원치 않자, 당시 명문장가였던 박지원에게 명을 내려 짓게 한 표류기 《남유록》에는 “탐라인으로 외국에 표류한 자들이 거짓으로 본적을 칭하기를, 영광 전주 강진 남해 등의 지방 사람이라고 핑계 댄 것은 속전(俗傳)에, 유구 상선이 탐라사람에게 해를 입었기 때문이라고도 하고, 혹은 말하기를, 그것은 유구가 아니고 안남이라고도 한다.”라는 내용이 실려 있다.

물론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제주에 표착했던 배에서 죽은 사람은 왕자가 아닌 슈리귀족(유구왕국의 슈리성을 말함)의 자제였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어쨌거나 당시 출륙여정에서 폭풍을 만나 표류한 제주인이 자신의 본적을 숨겨 타지 출신이라 속이고 살아 돌아온 일화가 많았던 듯하다. 그런데 제주사람들은 표류를 당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자신의 본적을 숨겨야 했을 때가 있었으니, 바로 서울 가서 사투리를 쓰지 않으려는 태도가 그것이었다.

하지만 이는 서울사람을 죽여서도 아니고 그들이 제주에 왔을 때 못되게 굴어서도 아니다. 다만 나라에서 시킨 공교육을 열심히 받은 탓에 몸에 밴 소위 ‘사투리콤플렉스’ 때문이었다. 이러한 사정은 제주사투리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지만 가장 심했던 것은 사실이었다. 

우리나라에서의 방언의 소멸 위기는 정부정책과 그에 따른 방언에 대한 국가적 관념 그리고 해당 지역의 방언에 대한 인식 등이 크게 작용했다. 국가주의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한 국가 내에서의 다양한 언어의 사용은 국가를 매개로 한 일체감 형성과 귀속감에 걸림돌로 작용한다고 중앙정부 차원에서 판단해왔다.(이는 외국의 경우도 대동소이하다.) 이런 인식이라면 방언은 부차적인 것으로 취급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국가=표준어, 지방=방언 사용으로 정책의 대척점이 형성된다. 그리고 그것은 국가주의의 입장에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듯 보인다. 하지만 주지하다시피 최근 여타 국가들의 방언정책은 바뀌고 있다. 즉, 제국주의 시대부터 시작된 언어말살의 시대를 거친 19세기에서 20세기에 이르는 동안의 언어에 대한 인식과 국민국가 구성원들의 언어의 가치에 대한 재발견 등에 의해, 새로운 정책을 요구받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의 표준어는 일제가 식민지 조선을 더욱 효율적으로 지배하기 위해 식민지의 언어를 규범화하는 역사의 아이러니 속에 등장하였다. 결국, 우리나라의 표준어는 식민지배의 수단으로 시작된 것이다. 일제는 교육을 통해 소위 ‘황국의 신민’을 양성할 수 있다는 판단 아래, 초등학교의 교과서를 학생들이 쉽게 받아들이게 하기 위한 단일한 통합철자법을 만들어야 했다. 이러한 그들의 식민지 조선의 언어정책이 우리나라 표준어정책의 시발이었다.

하지만 조선어의 표준어정책이 진행되면서도 일본어와의 관계에서 조선어는 일제강점기 내내 일본어가 소위 ‘고쿠고(國語)’의 지위를 누린 데 반해 일본제국의 방언의 지위만 허용된다. 대동아공영을 주장하던 일본제국의 언어정책은 식민지들과의 차등적 관계가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일본어를 표준어로, 홋카이도의 아이누어, 오키나와어, 조선어 등은 방언으로 취급하는 정책을 취했다. 하지만 이와는 달리, 나중에 진출한 남양군도의 경우는 공용어로 인정했다. 

1911년 ‘조선교육령’이 공포되면서 일본어는 ‘국어’, 한국어는 ‘조선어’가 된 이후, 조선의 언어는 식민지어로 전락하고 만다. 조선어 교육 자체는 금지되지 않았지만, 이미 일본어가 주류언어의 위상을 점유하면서 조선어는 교육을 동한 언어보급의 경쟁에서 열세에 놓이고 만다.  

일제가 행한 언어정책은 동시대 세계적 차원에서도 가혹한 것이었다. 1931년 만주사변 이후 소위 내선일체화론이 등장하면서, 특히 1937년 중일전쟁 발발 뒤인 1938년의 3차 교육령 개정에서부터는 조선어병용을 폐지하면서 본격적인 조선어 말살정책이 이루어진다. 모든 한국어로 된 출판이 금지되고, 개인의 이름마저 일본어로 고쳐 쓰게 한 이른바 ‘창씨개명(創氏改名)’을 강제적으로 시행했으며, 심지어 거리에서의 한국어 사용을 금하기도 했다.

‘창씨개명’은 조선과 대만에서 이루어졌는데, 조선의 창씨개명은 상당한 강제성을 띤 ‘신고제’였으나, 대만의 경우 ‘허가제’였다. 또한 이 허가제의 조건 중 하나는 일본어 상용의 여부였다. 그 결과 1940년 2월 11일 창씨개명이 실시된 후 조선인은 호적 총수의 7할 9푼 3리에 달하는 사람들이 개명한 데 반해, 대만에서는 그해 말까지도 그 허가 건수가 1,180건에 불과했다.(최유리)

일제는 강점 초기에는 식민지동화정책의 하나로 교육을 통한 언어정책을 시도하였으나, 1940년대 들어 대대적인 ‘조선어말살’과 ‘일본어보급운동’을 실시한다. 그 결과 방학을 이용해 귀향하는 중등학생들을 ‘국어전해운동추진대’로 선발, 일본어 미해득자(解得者)를 대상으로 단기간의 일본어 강습과 기초적인 숫자 등을 가르치게 하고, 국어강습회, 간이국어강습회, 야간강습회 등의 일본어강습회의 개최 및 표창제도(국어전해마크 패용을 통한 일본어 이해 여부 구별, 일본어 완전득해가정이나 애국반에 대한 표창을 통한 경쟁 유도, 해득 정도에 따른 학생들의 입학우선권 부여 등의 언어차별정책)를 시행한다.(배종각, 2008)

또한 ‘국어전해운동(國語全解運動)’과 함께 관공서, 각종 단체, 상점직원들의 집무시간 일본어 상용, 조선어 사용 고객들에 대한 거래 불가, 조선어 사용 전화통화 중지, 출판 영화 연극 방송 레코드 등의 조선어 사용금지정책을 골자로 하는 ‘국어상용운동(國語常用運動)’을 펼친다. 물론 이는 1944년에 실시될 조선인징병제 도입을 위한 사전작업이기도 했다.

표준어라는 말은 서구의 개념으로, 1890년 일본에 의해 수입되었다. 물론 이 말은 영어의 ‘스탠다드 랭귀지(Standard Language)’와 독일어의 ‘게마인 슈프라헤(Gemein Sprache)’라는 말의 일역(日譯)인 것이다.(야스다 도시아키, 《언어 제국주의란 무엇인가?》)

이 말이 우리나라에서 처음 쓰인 것은 1912년으로, 표준어정책의 기본이 되는 표준어에 관한 규정에 있어서 조선총독부 주재 아래 만든 <보통학교용 언문철자법>에서 처음으로 “경성어를 표준으로 한다.”라고 밝힌 데에서 출발한다. 위의 내용을 수정한 1921년의 <보통학교용 언문철자법대요>에서는 “용어는 현대의 경성어를 표준으로 한다.”라고 명시하였는데, 표준어에 대해 ‘현대’라는 시대적인 조건이 추가되었다.

그 후 우리나라 사람들에 의한 표준어 작업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는데, 1933년 ‘조선어학회’의 <한글맞춤법 통일안>에서 “표준말은 대체로 현재 중류 사회에서 쓰는 서울말로 한다.”라고 상세하게 규정하면서 한국어의 표준어는 정의되었다. 특히 ‘조선어학회’는 《조선어사전》을 편찬하기 위해 1929년부터 ‘조선어표준어사정위원회(標準語査定委員會)’를 만든다. 이 위원회에는 73명의 위원(서울 출신 26명, 경기 11명, 각 도 대표 36명)이 참여하여, 표준어의 어휘를 사정(조사하여 그릇된 것을 바로잡음)한 후에 따로 선발한 수정 위원인 김윤경, 방종현, 이극로, 문세영, 이희승, 이윤재, 정인승 등이 최종으로 결정에 참여한다.

이들은 여러 차례의 독회를 거쳐 <사정한 조선어 표준말 모음>을 마련한다. 이 사업의 성과인 조선어학회의 사전 편찬 원고가 1930년부터 시작돼 1942년에 완성되어 조판에 들어갔지만 이른바 ‘조선어학회 사건’이 터지면서 중단되고 만다. 조선어학회의 중단된 《조선어사전》 편찬 작업은 해방 후인 1947년 《조선말 큰 사전》 1권이 나오기 시작하여 1957년 최종 6권이 완간되면서 마침내 이루어졌다.

‘큰 사전’은 우리말의 표준을 세우고 표준어 연구에 큰 획을 긋는 빛나는 업적이며, 공통어의 기틀을 마련하는 데에 크게 이바지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것이 우리나라 최초의 표준어 모음집이며, 해방 후에도 남과 북에 그대로 계승된다. 남한에서는 1988년의 ‘표준어 규정’이 나올 때까지 광복 이후 50여 년 동안 표준어의 기준이 되었다.

지속적인 표준어정책의 성과, 소멸 위기에 처한 방언

해방 후 우리나라의 표준어정책은 초기에 ‘조선어학회’의 <사정한 조선어 표준말 모음>이 기준이 되었으나, 이후 표준어 규정 개정의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1970년부터 표준어, 맞춤법 수정 작업, 표준어 수집 작업 등이 진행되어, 1988년 문교부에서 ‘표준어 규정’을 고시한다. 하지만 1988년에 고시된 표준어 규정에서도 “교양 있는 사람들이 쓰는 현대 서울말”이 표준어로 규정됨으로써, 표준어 규정은 역사적으로 커다란 변화 없이 지금까지 유지되어 오고 있다.

1999년 완간된, 정부가 직접 편찬한 최초의 사전인 《표준국어대사전》에서 ‘표준어’는 “한 나라에서 공용어로 쓰는 규범으로서의 언어. 의사소통의 불편을 덜기 위하여 전 국민이 공통으로 쓸 공용어의 자격을 부여받은 말로, 우리나라에서는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로 정함을 원칙으로 한다.”라고 되어 있다.

그러니까 우리나라의 표준어는 일제가 정한 “용어는 현대의 경성어를 표준으로 한다.”라는 규정에서  해방 이후 현재까지도 한 발자국도 더 나아거나 바뀐 게 없는 셈이다. 문제는 이 규정이 상당히 모호하고 모순투성이라는 데 있다.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로 정함을 원칙으로 한다.”라는 문장에서, ‘교양’을 측정할 방법이 없고, 현대의 시기 개념은 언제부터 언제까지인지를 확정할 수 없으며, ‘서울말’의 세대와 범위가 어디까지인지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특히 가장 핵심적인 개념인 ‘현대 서울말’의 실체에 대한 규명이 불가능하다. 현대 서울말이 무엇인지 모호한데 그것을 표준어라 하면, 표준어의 표준점이 사라지는 모순을 안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규정이 초래하는 표준어와 방언 간의 언어 위계에 따른 언어이데올로기가 형성된다는 점에서 부정적인 영향이 크다.

그 논리에 따라, 표준어가 가진 우월의 기능은 훨씬 힘을 얻을 수 있었다. 현실의 언어를 순화시킨 것이 표준어이며, 이를 사용하게 되면 인격이 도야되고 고상해진다는 것이 표준어가 가진 우월의 기능이다. 이는 곧 로컬의 언어를 포함하여 현실의 언어는 순화되어야 할 언어라는 부정적 의미를 갖게 되며, 언어를 통한 문화적 독립을 위해서는 이상적인 언어인 표준어를 통한 언어적 통일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논리를 뒷받침해주기 때문이다.

표준어의 이상적 기능에 대한 강조는 표준어를 지나치게 이상화시킴으로써 표준어의 신화 창조에 기여하는 한편, 현실의 다양한 로컬어는 부정적 가치를 지닌 언어로 평가절하되기에 이르렀다. 실제 지금까지도 일반 언어사용자들은 표준어가 아닌 말, 특히 로컬어를 사투리로 인식하고 세련되지 못한 순화해야 할 말로 받아들이고 있다.(차윤정․장세룡, 2012)

표준어와 방언의 관계에 대해 《표준국어대사전》에는 “표준어와 방언은 서로 공존하는 것이며, 이는 마치 각국어(各國語)와 국제어와의 관계와도 비슷하다. 따라서 방언은 그 나라 각지에서 발생한 지역어이며, 표준어는 그 방언 차에 의한 불통을 없애고 서로 소통에 쓰이게 하려고 만든, 그 나라 국민의 공통 공용어다. 요컨대, 표준어는 있어야 할 말이며, 방언은 있는 그대로의 말이다. 또 표준어는 이념적인 말이며, 방언은 실재적인 말이다.”라고 나와 있다.

하지만 표준어정책에 따른 방언에 대한 부정적인 측면은 ‘실재하는 지역어’임에도 불구하고 지역주민 스스로가 방언은 ‘교양 없는 촌스런 것’, ‘방언은 불통의 언어’, ‘소통을 위해서는 표준어를 반드시 사용해야 한다.’라는 강박증 등을 서울 이외의 지역에 사는 사람들에게 유포시킨다. 특히 정교한 초중등교육체계 내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그 영향력은 막대한 것이었다.

작년 초 부산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김모(27. 여) 씨는 그해 4월 유통기업체에 응시했다가 면접관에게 “영업직 일을 하려면 사투리부터 고치라.”라는 지적을 받았다. 김씨는 “내게는 상당히 충격이라, 당장 40만 원을 들여 강남권 학원에서 사투리 강좌를 수강했다.”라고 말했다. 표준어 억양으로 “밥 먹었어?”를 발음하는 데만 꼬박 일주일이 걸렸다는 김씨는 “두 달간의 사투 끝에 사투리를 고쳐 작년 하반기 대기업 계열 유통회사 입사에 성공했다.”라고 말했다.(차윤정의 칼럼, <지역어를 바라보는 또 다른 시선-권리로서의 언어>에서 인용)

위의 사례처럼 표준어와 방언의 차별은 사회활동에 있어서 불이익을 직접적으로 조장하는 단계까지 나아간 상태다. 의사소통이라는 언어의 기능적 측면에서는 전혀 문제될 것이 없는데도 생계를 위한 취업에 있어서 불이익을 당한다는 것은 우리의 표준어정책이 사회생활에서의 장애를 유발하는 단계까지 진전되었음을 보여준다.

한 개인이나 사회가 두 언어를 쓰는 상태, 즉 2개 언어 병용상태를 영어로는 ‘바일링구얼리즘(bilingualism)’ 또는 ‘다이글로시아(diglossia)’라고 한다. 전자는 라틴어에 뿌리를 두고 있고 후자는 그리스어에 뿌리를 두고 있는 말이지만, 둘 다 어원적으로 ‘두 개의 혀’라는 뜻이다. 바일링구얼리즘은 한 개인의 언어구사 능력이나 습관을 주로 가리키고, 다이글로시아는 한 사회의 언어 분포에 초점을 맞춘다는 뉘앙스 차이가 있긴 하지만, 이 두 낱말은 개인과 사회에 두루 쓸 수 있는 말이다.

개인이든 사회든 2개 언어를 쓰고 있으면 그는, 또는 그 사회는 바일링구얼리즘이나 다이글로시아 상태에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표준어정책은 바로 이 ‘다이글로시아사회’를 조장했다. 즉, 공식언어(표준어)와 비공식언어(방언)로 언어상용을 위계화시킨 것이다. 그 결과 방언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형성되는데, 즉 ‘방언은 촌스러운 것’, ‘사적인 것’으로 인식된다. 일제 강점기의 ‘일본어와 조선어의 관계’가, 해방 이후 ‘표준어와 방언의 관계’가 다이글로시아 상태인 것이다. 표준어와 방언 사이의 ‘이중언어생활’은 일종의 다이글로시아로 볼 수 있다.

2012년 10월 제주발전연구원 ‘제주학연구센터’가 제주에 거주하는 성인 36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자녀에게 제주어 사용을 권장하는지 묻는 질문에 112명(31.8%)이  ‘그다지 권장하지 않는다’, 33명(9.4%)이 ‘전혀 권장하지 않는다’라고 대답해, 응답자의 41.2%가 권장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대체로 권장한다’(12.8%), ‘적극 권장한다’(9.9%) 등 제주어 사용을 권장한다는 응답은 22.7%에 그쳤다.

일상생활에서의 제주어 사용 정도에 대한 질문에는 41.4%가 사용한다고 응답했으며, 23.9%는 사용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제주어를 사용하지 않는 이유로는 ‘표준어 교육을 받아 제주어 사용이 어렵다’라는 응답이 31.4%로 가장 많았다. ‘제주어를 쓰면 소외되는 것 같다’(22.1%)와 ‘제주어를 쓰면 촌스러워 보인다’(19.8%)라는 응답도 적지 않은 것은, 표준어를 중심으로 한 언어정책이 방언을 말살하는 데 가장 크게 작용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해방 후 60년이 지난 현 시점에서 ‘다이글로시아사회’의 특징마저 현저하게 줄어들면서, 표준어가 방언을 말살하는 단계에 이르게 된 것이 현재 제주어의 절멸 위기로 드러난 것이다. 이미 두 세대를 넘긴 표준어 중심의 언어 정책으로 인해, 지역에 실재했던 방언은 점차 사용 빈도수가 줄어들고, 세계화의 시대에 불통의 언어로 평가절하되면서 세대 전승마저 봉쇄되며, 일상에서도 점차 쓸모없는 언어로 인식되는 경향이 팽배해지고 말았다.

결국 우리나라의 표준어를 중심으로 한 언어정책은 국민국가의 공통어의 보급과 확산이란 측면에서 국가 단위의 언어문화권을 형성했다는 성과를 얻었지만, 한국어의 언어다양성의 보고인 방언에 대한 말살정책의 효과를 수반한다는 데서 큰 과오를 저질렀다.

제주어보전회 허성수(69) 이사장은 “표준어 교과서로 공부를 하다 보니 학교에서 제주어 사용을 금지했다. 선생님이 교단에서 사투리를 사용하면 장학 지도에서 주의를 받았고 학생들도 선생님에게 지적을 받았다. 그러다 보니 제주 사투리는 저급한 언어라는 인식이 생기고 사용하지 말아야 할 언어가 됐다. 제주어에 아이들이 흥미를 갖도록 하기 위해 선물도 주고 만화도 만들어보고 별짓을 다하지만 반응이 없다.”라며 안타까워했다.(주간조선)

결국 제주어가 ‘절멸 위기’에 처하게 된 배경에는 제주어의 위기를 조장하는 시대의 변화, 미디어의 발달 등 여러 동인들이 존재하겠지만, 가장 큰 요인은 정부 주도의 표준어정책임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제주어의 소멸 위기는 자연적인 현상이 아니라 국가 주도의 언어정책에 의한 인위적인 산물이라는 인식이 중요하다.

또한 현재 절멸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제1의 책임은 바로 정부에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제주어는 제주도민의 문제’로 방치하는 것은 무책임하고 몰염치한 일이다.

그러므로 제주특별자치도청은 현재 절멸 위기에 처한 제주어 살리기에 정부가 앞장서야 함을 당위적으로 요구해야 한다. 또한 제주어를 살리기 위한 정책적․제도적․재정적 특단의 노력을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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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경훈 제주민예총 이사장.

이러한 요구는 우리 제주도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용인구가 더 많은 방언들, 즉 충청 전라 경상 등의 방언들 역시 내적으로는 이미 소멸 위기의 언어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¹에서, 표준어 중심의 단일언어정책에서 각 지역의 방언들이 동등한 지속 가능성을 보장하는 언어정책으로의 변환을 촉구하는 정책적 연대를 통해 제주어를 포함한 지역어들의 생존을 위한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 박경훈 제주민예총 이사장

¹ : 사실 한국어 방언 전체도 문제는 심각하다고 한다. 정승철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위기에 처한 것은 경상도, 전라도 방언 등도 마찬가지”라며 “지금까지는 의사소통을 염두에 두고 표준어로 한국어를 통일하는 것이 정부의 국어 정책이었다. 이번 위기의 언어 등재를 계기로 한국어의 다양성을 보호하기 위해 방언의 가치를 인정하고 보존하는 쪽으로 정책을 전환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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