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일홍의 세상사는 이야기 ⑪]

세상에는 오묘하고 신비한 일이 참 많지만, 소생이 보기에 가장 기막힌 일은 세계 70억 인구의 얼굴이 제각각이라는 사실이다.(물론 쌍둥이도 다르다) 손바닥으로 감쌀 수 있는 좁은 면적에 눈·코·입이 다 다르게 어떻게 70억 개의 작품을 만들 수 있을까?

소생은 이걸 이렇게 해석한다. 첫째, 이건 분명히 창조주의 전능한 능력이 아니고선 불가능하다. 둘째, 창조주가 그리한 것은 인간은 각자 다른 소질과 적성을 갖고 태어난다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그러니까 이걸 찾아내 길러주는 게 교육의 기능이고 부모의 역할이다. 셋째, 사람은 모두 신에 의해 선택된 존재이다. 한번 사정할 때 나오는 정자의 수는 1억 이상 최대 7억 개라고 한다. 이 중 하나가 난자와 만나 수정됨으로써 새 생명이 잉태되는 거다. 그래서 우리는 7억 대 1의 무서운 경쟁률을 뚫고 세상에 나온 행운아이다.

그런데 신이 우릴 선택한 이유는 무언가 가치있고 보람있는 일을 하라고, 말하자면 사명을 주고 세상에 보냈다. 그 사명이 무어냐? 그건 사람마다 다를 테지만 공통적인 사명은 이웃에 대한 사랑의 실천이다. 그래서 알베르 까뮈는 “생의 저녁이 찾아 왔을 때, 우리는 이웃을 얼마나 사랑했는가를 두고 심판 받을 것이다”라고 했다.

자신의 사명을 깨닫고 완수하는 사람이야말로 선택된 인간으로서의 책임을 다 하는 것이다. 독일작가 토마스 만의 ‘선택된 인간’은 이걸 말하려는 거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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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일홍 극작가.

이처럼 모든 인간의 탄생이 신의 은총이고 선택이라면 선천성 장애인도 신의 선물이란 말인가? 답은 성서에 있다. 성서에 따르면 예수의 제자들이 맹인에다 앉은뱅이인 거지를 가리키며 묻는다. “랍비여, 이 사람이 이리 된 것은 그의 죄입니까, 부모의 죄 탓입니까?”

예수가 대답한다. “그의 죄도, 부모의 죄도 아니다. 이 사람이 이리 된 것은 그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려 하심이라” 그러니까 장애인이나 거지, 창녀와 고아들이 실은 ‘인간의 얼굴을 한’ 신의 현현(顯現)이다. 그러므로 그들을 사랑하는 일이 신의 영광을 드높이는 일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 장일홍 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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