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사람 레코드 (18) 백야 / 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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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야 / 짙은 (2011)

명찰이 형광등 불빛에 반짝거려서 이름을 확인할 수 없었다. 병맥주는 깨질까 봐 불안했다. 한낮에도 불안했는데 검은 비닐봉지를 들고 걷다가 휘청거려 넘어지기라도 한다면 병 조각들이 햇빛처럼 부서질 게 아닌가. 재수 없다고 침을 퉤 뱉거나 심하면 신세타령까지 하겠지. 캔맥주와 쥐포를 샀다. 바코드를 찍는 알바는 전혀 졸린 눈이 아니었다. 동그란 눈으로 현금영수증이 필요한지 물었다. 블루블랙 단발머리가 유리창에 반사된 불빛에 빛났다. 밤에 최적화된 사람 같았다. 한 입 문 삼각김밥이 안나푸르나 같았다고 하면 분명히 억지인 밤. “오늘은 고구마깡은 안 사세요?” 알바가 내게 아는 체하는 게 싫으면서도 좋았다. 깊은 밤에 내 얼굴을 기억하는 사람을 만나기란 쉽지 않은 일 아닌가. 격렬비열도에 갔다가 아는 사람을 만날 확률만큼. 그런데 나는 알바의 얼굴이 낯설었다. 이름을 확인하고 싶었으나 명찰이 형광등 불빛에 반짝거려서 이름을 제대로 확인할 수 없었다. 알바가 나를 기억하고 있으니 나도 알바의 얼굴이 낯익은 것 같다는 생각마저 뒤늦게 들었다. 어렴풋하게 아는 게 나을 때가 있다. 전혀 모르는 사람으로 지내는 건 너무 어두컴컴하다. 아주 잘 아는 사이로 지내는 것은 눈부셔 간혹 눈을 찌푸려야 한다. 감자깡보다 고구마깡을 좋아하는 것 외에 지갑은 왼쪽 호주머니에 휴대폰은 오른쪽 호주머니에 넣고, 전자레인지에 핫바를 익힐 때는 1분 30초로 하고, 새벽 2시를 넘기면 밤을 새우게 되는 것까지는 알 지 못하겠지만. 유니폼이 조금 커서 점장에게 몸에 맞는 유니폼을 달라고 건의를 했는지, 심야의 라디오에 신청곡을 보낸 적이 있다면 어떤 노래를 신청했는지, 근무가 끝나면 낮에 몇 시간 자는지 물을 수는 없지만. 지나가는 자동차 불빛들이 오로라처럼 퍼져나갔다. 도대체 이 밤에 얼마나 많은 수요가 있어서 백야의 편의점들은 문을 여는 걸까. 도대체 이 밤에 대해 누가 알고 있으며, 묻고 싶어도 아침을 위하여 주저하는가. / 현택훈(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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