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사람 레코드] (22) 동화의 성 / 산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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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0집 / 산울림 (1984)

영화 ‘아메리칸 뷰티’에서 무력한 중년의 전형적 인물 케빈 스페이시가 대마초를 피우거나 근육 단련을 하며 듣는 음악은 핑크 플로이드였다. 대마초는 청년 시절부터 시작했다면 아직 끊지 못한 너절한 사랑 같은 거라고 말해도 되겠다. 영화 ‘골든 슬럼버’는 아예 ‘비틀즈’의 노래를 영화 제목으로 하고 있다. ‘'Once there was a way to get back homeward'라고 읊조리는 총리 암살범. 그래, 예전에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하나 있었지.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그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눈치 챘겠지만, 예의 두 영화에서 음악의 위치는 기억 속 멜로디라는 점이다. 소년소녀 시절 들었던 음악은 나이가 들어서도 계속 귓가에 맴돌기 마련이다. 사춘기 소년의 귓불을 붉게 만들었던 노래 ‘벌써 이 밤이 다 지나고’ 의 안혜지는 1988년 비 오는 날 정류장에 서 있던 소녀의 모습으로 남아있다. 비에 젖은 교복 블라우스가 매미 날개처럼 얇고 투명했다. 주구장창 ‘비지스’의 노래가 흘러나오던 ‘작은 사랑의 멜로디’는 또 어떠한가. 첫사랑과 함께 했던 ‘비지스’에 대한 앤솔로지 아닌가.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 한석규가 차창 밖을 바라볼 때 흘러나오던 음악 ‘산울림’의 ‘창문 너머 어렴풋이 옛 생각이 나겠지요’처럼 때론 음악은 옛 동네로 가는 마을버스인걸. FM라디오는 소년소녀나 노인이 주로 듣는다. 청년이나 중년은 라디오를 들을 상상의 여력이 없다. 소년소녀는 라디오를 통해 아직 완성하지 못한 사랑을 꿈꾸고, 노인은 라디오를 통해 지난 사랑을 추억한다. ‘산울림’의 ‘동화의 성’은 음악이 곧 꿈이라는 인식의 압권이다. ‘들어 가고파 내 어릴 적 놀던 동화의 성으로 / 지친 몸으로 돌아와 / 잡초 우거진 성문 밖에 나 지금 홀로 서서 / 꿈이었던가 온갖 것이 살아 얘기하던 때는 / 동화책 속으로 숨어 / 돌아갈 수 없는, 아름다운 다 지난 어린 날은 / 먼 훗날 그대 성숙한 여인으로 / 나 푸른 양복 신사가 된다 해도 / 건초더미 위 따뜻한 봄볕 / 무심코 누운 들판의 흙내 민들레 / 솟아오르는 새 저 깃털 /가슴 속 피어나는 내 꿈 / 내 동화의 성은’이라는 노랫말을 청년 김창완은 격정 뒤의 한숨처럼 부른다. 노래로만 보면 이제 막 소년에서 청년이 된 사람의 꿈에 대한 신세한탄이다. 지금도 새벽에 방송하는 라디오 프로그램 ‘세월따라 노래따라’처럼 정말 세월 따라 노래 따라 간다. ‘솟아오르는 새 저 깃털’에서 ‘깃털’을 ‘기타’로 들으며. / 현택훈(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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