잭슨 홀은 미국 와이오밍 주 그랜드티턴 국립공원에 있다. 미국 12개 연방준비은행 중 하나인 캔자스시티 연준이 매년 경제정책 심포지엄을 주관하고 있는 곳이다. 낚시를 좋아하는 폴 볼커 연준의장을 위해 이곳으로 장소를 정한 지 30년이 넘었다. 볼커 의장은 2차 오일쇼크 직후 미국의 10%가 넘는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기준금리를 연 20%까지 높였다.

연준의 기준금리가 1년 사이에 몇배씩이나 뜀뛰기를 하자 참석자들은 불커 의장의 입술 모양이라도 보기 위해 잭슨 홀로 몰려 들었다. 달러금리의 향방을 예측하는 것이 그만큼 중요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한동안은 연준 관측가(Fed watcher)라는 직종이 생길 정도였다. 세월이 바뀌어 이제는 6년째 바닥을 기고 있는 기준금리를 언제 다시 올릴 것인지를 눈치채기 위해 사람들은 잭슨 홀을 찾는다. 지난 주말에 열린 올해 심포지엄은 "노동시장의 역동성 재평가"라는 의제를 내걸었다. 재닛 옐런 의장이 평소에 노동시장의 개선을 금리 인상의 조건으로 자주 언급했기 때문이다. 연준 은행장들의 의견은 경기회복이 어느 정도 진행되었으니 금리를 조기 인상해야 한다는 매파와 아직 회복을 장담하기 어려우니 금리인상의 시기를 늦춰야 한다는 비둘기 파로 나뉘어져 있었다.

판정은 옐런 의장의 금요일 오전 연설에서 내려졌다. 실업률이 6.2%로 낮아졌다고 하지만 저임금의 시간제 근로자들이 취업자로 분류되어 있는가 하면 구직을 포기한 사람들은 아예 실업자로도 취급되지 않는 실업률 통계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하면서 앞으로 고용 및 물가상승 추이를 더 지켜 보자고 제안했다.

금리 인상의 시기에 대해 구체적인 암시를 기대했던 사람들은 실망했지만 저금리 기조가 한동안 지속될 것을 기대한 국제금융시장은 일단 이번 심포지엄의 결과를 반기는 것 같다.

"금리 조기인상은 없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유럽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의 향방도 관심거리였다. 유럽중앙은행의 마리오 드라기 총재는 이제까지 미국과는 다른 방식의 양적완화를 시행해 왔다. 엄격히 말해 통화증발 그 자체가 목적인 양적완화는 하지 않았다. 유동성이 부족한 은행에 저리 자금을 지원했고 신용도가 추락한 나라들의 국채 가격을 안정시키기 위해 이들 채권을 시장에서 사주었다. 그러나 이번 심포지엄에서 그는 그런 방식의 양적완화의 한계를 인정했다.

인플레이션은 타깃 2%에 훨씬 못 미치는 0.4%에 머물러 있고 실업률도 11.5%에서 더 내려가지 않는다. 경기호전의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이제는 정말로 "동원 가능한 모든 수단을 사용하겠다"고 했다. 그 의미가 미국 연준이 했던 통화증발 목적의 채권매입임을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한편 일본중앙은행의 쿠로다 총재는 진퇴양난에 처했다. 아베 총리의 뜻을 받들어 미국 연준을 능가하는 강도 높은 양적완화를 시행했는데 그 결과가 엉뚱하게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엔화는 20%나 평가절하 되었지만 무역적자는 오히려 늘어났고 지난 2분기중에는 GDP마저 연율 -6.8% 성장으로 뒷걸음쳤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에너지의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해야 했고 자동차를 비롯한 제조업의 생산기반이 해외로 이미 대거 이주한 상태이기 때문에 엔화 평가절하가 수출에 별 도움을 주지 못했던 것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인플레이션이다. 아베 총리가 취임했던 2012년 12월에 0.1%, 그리고 2013년 중0.3%이던 인플레이션이 금년 4월부터 갑자기 3%를 넘기 시작하여 최근 3.6%를 기록하고 있다. 인플레이션 목표 2%를 훌쩍 초과해 버렸다.

인플레이션 타깃을 초과해 버린 일본

애당초 미국과 일본은 처해진 상황이 달랐다. 미국의 양적완화는 금융기관의 파산을 막기 위해 불가피했다. 만일 돈을 찍어내지 않아 대형 금융기관이 몇개 더 무너지면 전체 시스템이 흔들릴 수도 있었다. 유럽의 경우도 여러 나라들의 국채가격이 곤두박질 치고 있어 시장 개입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일본은 장기적으로 경제가 나른한 상태였을 뿐 대형 금융기관의 파산으로 시스템이 흔들리거나 일본 정부의 신용이 시장에서 의심을 받는다거나 하는 상황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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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국주 전 제주은행장.
금리도 이미 바닥 수준이었고 일본 국채의 발행 비용은 미국이나 유럽 여러 나라 보다 오히려 저렴했다. 돈을 찍어내어 경기를 진작시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반성하기엔 늦었다. 이제 와서 방향을 선회할 수도 없을 것이다. 너무 눈치가 빨라 남들을 섣불리 따라 하는 것도 병이다. / 김국주 전 제주은행장

* 이 글은 <내일신문> 8월 27일자 '김국주의 글로벌경제' 에 실린 내용입니다. 필자의 동의를 얻어 <제주의소리>에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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