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개발의 미래를 말하다> 중국투자논란, 본질적 접근 통해 근본적 해결 모색해야

5천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중국은 이 지구상에서 가장 오랜 문명국 중 하나로 14억여 명의 인구가 살고 있다. 중국은 또한 자타가 공인하는 바와 같이 역사상 대부분의 시기에 사회·경제 영역에서 세계최고의 수준을 자랑해왔다. 그렇지만 19세기에 산업혁명의 기회를 놓침으로써 유럽 열강의 식민지배의 침략을 받으면서 급속도록 국력이 쇠락하였다.

20세기 초반 내란을 겪은 이후 중국은 공산당 지배체제가 들어섰고, 1978년에 개혁개방을 단행하였으며 그 후 중국은 눈부신 경제발전을 이루어 나가고 있다.

오토 샤머 미국 MIT대 교수는 그의 최근 저서에서 “중국이 개혁개방 이후 30여년에 이룩한 경제발전은 인류역사상 그 유례가 없는 것으로, 종전 영국이나 미국의 산업화나 일본의 메이지유신, 그리고 2차 대전 이후 독일이 거둔 경제발전 양상을 뛰어넘은 것이다”라는 극찬을 아끼지 않고 있다.

더욱이 중국의 경제시스템 자체가 다른 선진경제대국, 예컨대 우리나라를 포함한 OECD 국가들의 경우에 비추어 일부에서는 고도로 발달된 시장경제체제가 작동하고 있고, 다른 일부에서는 전통적인 국가주도의 경제체제가 돌아가고 있는 특수상황에서 이뤄낸 성공적 결과라는 점에서도 세계민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 중국 개혁개방은 급진적으로 농촌문제 해결로부터 시작되었다.

제프리·디 삭스 하버드대 교수에 따르면, 중국은 식량부문의 급진적인 시장개혁 및 농업생산의 폭발적인 증가와 함께 개혁개방을 본격·착수하였다. 즉, 1977년부터 1979년 사이 마오쩌뚱 사후 권력에 공백이 생긴 틈에 소위 농촌지역의 인민공사가 상명하달식의 명령에 의해서가 아니라 전국 마을 단위에서 상향식 의견전달 방법을 통해 자연발생적으로 해체되면서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물론 이 변화는 급진적으로 이루어졌다.

그 결과 농촌지역의 7억 명의 농민들은 소위 “가계책임제” 하에서 할당된 농토를 매개로 자가 영농을 하게 되었다. 이로 인하여 농민들은 보다 열심히 일하고, 더 높은 생산성 향상을 위한 방법들을 활용함으로써 더 많은 수확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식량증산이 이루어졌고, 도시지역으로 식량공급량도 우려했던 것과는 정반대로 줄어들기는커녕 늘어나기 시작했다.

# 1980년대와 1990년대 초의 제조업 중심 중국개혁개방 긍정적이었다.

1980년대와 1990년대 초에 이루어진 중국 개혁의 다음 단계도 시속하게 이루어졌을 뿐만 아니라 아주 긍정적인 효과를 낳았다.

첫째로 농민들은 자유롭게 농촌지역에 기반을 둔 소위 향진기업(TVE)이러는 공장에서 일할 수 있게 되었음은 물론 수십만 개의 공장들에서 수백만 개의 일자리들이 갑자기 생겨났다. 

둘째로 경제특구(SEZ)로 알려진 특별히 지정된 자유무역지구를 시발점으로 국제무역과 투자가 자유화 되었다. 외국투자자들과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이들은 외국의 기술과 자본을 들여와 중국의 저임금 노동자들을 고용하여 세계시장을 상대로 노동집약적인 수출품을 생산하는데 주력하였다.

이렇게 되자 농촌지역에서 노동자들이 자유무역지구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농업부문의 자유화가 수출부문의 제조업을 위한 노동력을 제공하게 되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자유무역지구를 설치한지 몇 년 만에 중국은 의류·직물·신발·플라스틱·장난감·전자조립품 등 노동집약적인 생산품에 기반을 둔 수출 붐이 조성되었다.

더욱이 놀라운 사실은 주권적 선택에 의하여 지정된 소수의 특혜적 자유무역지구가 아편전쟁 이후 19세기 중반 중국경제의 최초개항지들과 일치했다는 것이다. 그 결과 자유무역지구의 정당성을 더욱 높여주었으며 개혁을 한층 심화시킬 수 있게 만들었다. 이런 결과 개방 후 겨우 20년 만에 제조업 수출규모가 1980년 수십억 달러에서 2000년에는 2천억 달러 수준으로 증가했다.

셋째로 일본이나 싱가포르 등에서 검증된 바 있는 공업투자를 촉진할 지역을 선별하고, 공업화의 핵심중심지역들을 발전전략기지로 하는 구상을 제시하여 투자자들로부터 긍정적 평판을 얻을 수 있었다.

# 경제특구를 중심으로 다양한 루트의 외국인 직접투자가 성공의 원천이었다.

중국이 제시한 경제특구들은 중국의 역사적 이륙을 뒷받침하는 디딤돌이 되었다. 게다가 여기에 아주 낮은 비용의 노동력, 국제기술의 강요성, 점차 늘어나다가 급물살을 타게 된 투자기금 등을 하나로 묶어 주었다. 국내저축에서도 투자기금이 조성되기도 하였지만,

1990년대에는 외국인 직접투자가 점점 더 투자기금의 원천이 되기 시작했다. 외국인 직접투자는 세 가지 부분으로 이루어졌다.

첫째로 유럽과 미국의 공업 및 금융 중심지에서 들어온 원격 국제자본이었다. 둘째로 아시아에 흩어져 사는 중국인 교포로부터 들어온 투자자금이었다. 그 결과 중국인 교포지도자들은 좋은 사업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셋째로 왕복자금(round-tripping money), 즉 국영기업 계좌에 있던 자금이 중국 밖으로 나갔다가  홍콩의 금융 중개기관들을 거쳐 중국 내 기업들에 다시 투자되는 자금이었다.

어떻든 이런 직접 투자 자금 등에 의하여 수억 명에 이르는 저임금 노동력과 현대적 기술, 안전하고 건전한 사업 환경 등이 결합되어 현대 중국 역사에 한 획을 그을 만한 국부창출의 기회가 마련되었다는 것이 일반적 정설이다.

# 국영기업 개혁 점진적인 개혁을 선택하였다.

중국은 중국경제의 구조적 문제를 고려하여 1980년대와 1990년대에 국영기업을 점진적으로 개혁하였다. 물론 내용적으로는 부분적으로 자유화했지만 사유화는 결코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1990년대 말에 이르러 비로소 국영기업에 대한 개혁을 진지하게 시작하였다. 그 결과 국영기업 노동자들이 정리해고 되면서 도시 실업률이 상승하였다.

# 중국의 경제적 성공 계속될 전망이 우세하다.

제프리·디 삭스 교수에 따르면, 1978년 이후 중국은 꾸준히 1인당 연평균 약 8%로 성장하였다. 이 같은 경제성장률에 힘입어 1인당 평균소득이 9년마다 2배 증가하였고, 1978년 대비 2003년에는 거의 8배나 증가하기도 하였다. 그 결과 1981년 인구의 64%가 하루 1달러 이하의 소득으로 살았던 중국의 극단적 빈곤층도 극적으로 감소하였다. 2001년에는 그 수치가 17%로 줄어들었다.

일반적으로 중국처럼 급속하게 성장한 나라는 시간이 지나면서 성장세가 완만해지는 추세를 보이기도 하나, 전문가들은 3.0 단계(이해당사자 주도형 자본주의)에 들어선 중국경제의 성장을 향한 엔진은 여전히 강력할 것이라는 믿음을 버리지 않고 있다. 더욱이 중국이 새로운 리더십을 중심으로 현재 제12차 5개년계획(2011-2015)을 통해서 경제성장과 혁신을 동시에 이루어 낼 것이라는 확신을 세계민들에게 심어주고 있다.

여기서 이해당사자 자본주의는 부의 재분배와 사회보장, 환경규제, 농업 보조금 및 개발 원조를 통해 전통적인 부정적인 외부경제 효과를 비교적 관심을 갖고 해결하려고 한다. 그러나 기후변화, 자원부족, 인구변화와 같은 세계적 문제에 대하여는 적의 대처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한다. 특히 특정집단에 편향되어 있는 것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아울러 전문가들은 미래의 4.0단계(생태계 주도형 공동창조경제)의 중국경제와 사회의 참 모습은 어떤 형상을 드러낼 것인지, 중국이 시스템 전체를 혁신할 수 있는 전체 중심적 경제의 원형을 만들어 낼 것인지에 대한 관심을 표명하는 것에 대해서도 주저하지 않고 있다.

여기서 4.0 단계 경제에서는 경제주체들이 자기의 이익이 자연스레 전제의 공통된 인식으로 확대 발전한다. 전체적인 인식은 한 시스템 내에의 서로 다른 이해당사자들의 견해와 관심사가 내면화 된 것이다. 그런 상태에서 사람들은 각종 문제를 다른 사람들의 관점에서 보는 능력을 키운다. 그 결과 시스템의 일부가 아닌 전체의 이익에 부합되는 결정과 결과들이 나오게 된다. 이런 예로는 윤리적 소비 운동, 공정무역운동, 사회적 책임을 생각하는 투자운동 등을 들 수 있다.

여타 세계 경제부국들과 마찬가지로 중국 또한 환경문제, 심화되는 소득불균형, 높아지는 기대치, 둔화되는 성장률, 세계경기침체에 따른 후유증 등과 같은 만만치 않은 도전과제에 직면해 있는 것도 주지의 사실이다.

# 제주 개발문제, 중국을 알고 중국에 대처하는데서 출발해야 한다.

지난 제주개발 연대, 특히 2002년 이래 제주도 또는 제주자치도에 있어서 정책적 의제로서 중국문제는 주로 내도(來島)관광객 수의 확장이나 이를 수용할 숙박시설 또는 유락시설의 건설, 이런 시설 등에의 투자유형·규모 등을 중심으로 다루어 왔다. 민선6기 도정 또한 최근의 행태에 비추어 역대도정의 대중국투자정책 기조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 듯하다. 다만 취임 후 도의회를 찾은 자리에서 그는 중국인의 제주도지역에의 투자문제를 화제로 삼으면서 종전의 투자유인정책을 개선할 것이라는 정책적 의지를 피력했을 뿐이다.

그는 “앞으로 제주도지역에 대한 중국인투자가 이루어질 경우 신중하게 옥석을 가려 진행하겠다.”고했다. 즉, “제주도지역의 청정 환경을 보전하는 일에 최우선 가치를 두고, 숙박시설과 카지노에 집중된 투자가 아니라 제주도지역의 청정 자연, 휴양, 교육, 신재생에너지 등과 같이 제주도의 가치를 더 높이는 영역에 대한 중국인의 투자에 대하여는 대환영할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제주국제자유도시 조성을 위한 제주개발에 있어서 제주자치도 또는 도정(JDC 포함)과 중국 또는 중국인(화교 포함)의 관계는 항상 제주관광의 진흥을 위한 모객대상 또는 이들을 위한 시설개발에 필요한 재원조달을 위한 투자유인대상으로 한정하여 관계하여야 하는가?

전혀 그럴 필요는 없을 것이다. 물론 기존의 관계를 건설적으로 유지하는 것은 당연하나 제주발전을 위한 유용한 것이 있다면 무엇이든지 이를 과감하게 받아들이는 검토조치를 강구하는 것 또한 필요해 보인다. 제주발전을 위하여 유용한 벤치마킹 할 필요가 있는 대상이라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1978년 시작된 중국 개혁개방이 왜 성공을 거두었는지를 알아볼 필요가 있다. 왜 중국이 일취월장해 왔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그 본질내용을 집중·발굴하여 이를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왜 중국이 제주에 투자하기를 원하는지를 분석해봤으면 한다.

그 결과 아마도 2002년 본격 시작된 제주개발이 왜 무늬만 제주국제자유도시 조성을 위한 개발이 지속되는지를 깨닫는 계기가 마련될 것이다. 현재와 미래 도민 중심의 제주개발이 정상적으로 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가는 것이 최선의 방책인지를 감지하게 될 것이다.

현재 제주개발은 도민이 기대하는 만큼 정상궤도를 그리지 못하고 있다. 비정상 상황이 정상인 것처럼 호도되는 상황이다. 어쩌면 중국자본 의존에 따른 부수적 문제들로 인하여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불안한 지경으로 빠져들고 있는 느낌이다.

마치 중국문제가 제주개발의 알파요 오메가인 것처럼 호도되는 그런 아이러니가 국내외 언론보도를 통하여 연출되고 있다. 그럼에도 이 문제해결에 관한 한, 강력한 정책적 의지에 입각한 정책의제가 아직도 구체적으로 드러나 있지 않다. 설상가상으로 제주미래비전을 새롭게 만들어 내야 제주개발의 그럴 듯한 미래를 예단할 수 있다는 어설픈 상황도 드러나 있다.

종종 우리는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는 뜻으로“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불태(百戰不殆)”라는 고사성어를 되뇌곤 한다. 왜나면 적도 나를 알고 대처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밖에 없음이다. 지금 제주개발의 상황이 이런 상황이 아닌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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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승주(행정·지방자치·지역개발·환경·협동조합이론 전문가) C&C국토개발행정연구소 소장.
현 시점에서 중국투자 문제를 우쭐대면서 다루어 나가거나 관심을 표명하는 것보다는 제주개발의 미래를 위하여 중국을 소상히 알고, 중국의 성공의 요인을 이해하면서 장기적 관점에서 제주개발의 정상화를 위한 알찬 밑그림을 차분히 그려나가는 일이 우선이 아닌가한다. 물론 이런 추측이 필자의 잘못된 인식으로 인한 괜한 노파심이기 바랄뿐이다. / 백승주(행정·지방자치·지역개발·환경·협동조합이론 전문가) C&C국토개발행정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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