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범 칼럼] 뜻 깊은 사학공청회

이례적으로 지루했던 늦여름의 비가 맑게 개이고 말끔한 초가을 하늘이 특별히 푸르고 높았던 날, 제주도 의원회관에서는 이날 날씨만큼이나 모처럼 뜻 깊은 공청회가 열렸다.

지난주 목요일(9월 12일) 대학조례 개정을 위한 원탁회의 (원탁회의)가 열린 대회의실에는 십여 명의 토론자들을 제외하고도 사립대학 관계자들을 비롯한 수많은 방청객들이 회의실 뒤편에 마련된 방청석을 빈틈없이 채움으로써 대학조례의 쟁점들을 둘러싼 첨예한 이해관계와 뜨거운 관심을 보여줬다.

이번 공청회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것은 토론자들의 구성이었다. 제주도가 중앙정부에서 사립대학 감독권을 이양 받은 이래, 관련조례를 제정 및 개정을 위해 지금까지 여러 차례에 걸쳐 실시됐던 공청회는 토론 참석자들 대부분이 사립대학 재단과 운영자 측 의견을 대변하는 인사들로 채워졌기 때문이다. 반면에 이번 원탁회의에서는 처음으로 사립대학 주요 보직교수들뿐만 아니라 교육의 일선에 종사하는 일반 교수들의 대표들도 함께 참석해서 다양하고 생생한 교육현장의 목소리를 대변했다.

어느 도의원의 숨은 노력

이 원탁회의가 열리기까지는 주최자였던 행정자치위원회(행자위) 고정식 위원장의 수고도 많았지만, 현 농축수산위원인 박원철 도의원의 임기와 소속을 뛰어넘는 사명감 넘치는 헌신적 노력이 숨어 있었다. 박 의원이 이 공청회를 성사시키기 위해 애를 쓰게 된 것은 이전 지방의회 회기에서 행자위 소속으로서 못 다한 임무를 이번 회기에서라도 완수하려 했던 남다른 투철한 사명감에서 비롯됐다. 그는 기존의 사립대학 조례에서 교육의 본질이 실종된 심각성을 인식하고 새로 시작된 이번 임기에서도 소속 위원회의 변경에도 불구하고 미비점들을 개선하기 위한 원탁회의를 끝까지 성사시키는 강한 뚝심을 발휘한 것이다.

사익에는 밝지만 자신의 직분에는 눈을 감는 요즘 정치판이다. 국가의 근본은 국민이라고 하지만, 세월호 특별법 논란에서 보듯이 최고 권력자의 심기보다 사회적 약자의 억울한 호소에 귀를 기울일 줄 아는 소신 있는 정치인을 찾아보기 힘들다. 그러나 박 의원은 지방 정치판에서 진정으로 도민을 위해 끝까지 책임을 다하는 아름다운 정치인의 귀감을 보여줬다고 평가하고 싶다.

원탁회의의 주요 쟁점

이날 원탁회의는 대학조례에 대한 많은 사항들이 논의됐지만, 크게 간추리면 정원외 전형 문제와 학교 재산의 재단 재산으로의 전환 문제로 압축시킬 수 있다. 이것들과 관련된 지방조례의 규정들은 상위법인 고등교육법을 무시하고 졸속으로 제정 및 개정된 탓으로 이미 심각한 문제점들을 노출하고 있다. 정원외 입학은 입시경쟁의 공정성을 해칠 위험을 지닌다. 또 학생들의 수학능력과 교육시설의 학생 수용능력을 배제함으로써 결국 학생들의 학습권을 중대하게 훼손하고 나아가 지역사회의 실무현장에서도 심각한 부작용을 낳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더욱이 무분별한 정원외 전형은 교육의 질적 향상을 저해함으로써 국제화를 위한 대학지방자치조례의 근본 취지에도 오히려 역행하는 처사다.

학교 재산의 전환 문제도 마찬가지다. 학교 재산은 따지고 보면 결국 학생들의 등록금에서 나온 것임으로 알찬 교육과 복지를 통해 그것에 대한 응분의 혜택을 학생들에게 돌려져야 하는 게 당연한 이치다. 재단이 특별한 재테크 능력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닐 것인데, 학교재산을 재단으로 양도해서 재단이 운영해야 할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 설사 그럴 능력이 있다 하더라도 위탁 방식을 취하면 충분하다. 재단의 수익용으로 전환된 재산을 다시 학교로 되돌리기가 불가능했다는 타지 사립대학의 한 토론자가 들려준 실제 사례는 대학조례가 새롭게 개정됨에 있어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또 다른 세월호

사립대학 측 참석자들은 점차 치열해지는 대학들 간 경쟁 속에서 생존을 위한 재정 확충을 이유로 정원확충과 수익용 재산 증대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여기에서 상반되는 의견들의 대립점이 분명하지만, 양측의 공통분모는 어디까지나 교육이 돼야 한다. 어느 경우든 교육의 본질이 훼손돼서는 안 될 것이다. 또 사립대학 조례의 근본취지가 단지 도내 사립대학의 생존이 아니라 국제적 수준으로 도약하기 위한 것임을 감안해서도 사립대학의 발전방향은 시설의 양적 확대보다 교육의 질적 향상을 이루는데 개정의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이다.

세월호의 참극은 기업적 이익의 극대화에 있었다. 제주의 눈부신 미래를 짊어질 학생들을 이윤을 향한 끝없는 욕망으로 질주하는 또 다른 세월호의 희생물로 삼아서는 안 된다.

무한질주에 시급한 제동장치

마지막으로 대학조례가 개정되는 과정에서 정원외 전형 확대와 수익용 재산 전환요건 완화 등 학교 운영자 및 재단의 권한에 대해서는 특혜를 베푼 반면, 학교 운영의 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는 시스템은 외면해 버렸다는 비판을 빗겨갈 수 없다. 그 동안 세 차례에 걸친 대학조례 개정이 과연 누구를 위해서 이뤄졌는가를 시사해주는 대목이다.

물론 대학 발전을 위해서 강력한 리더십의 중요성을 굳이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견제 없는 권력은 독단적이고 자의적인 조직 운영으로 흐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국가기구에는 삼권분립이 있고 지방자치에는 도의회가 존재하는 것이다. 그동안 석연치 않은 이유로 억울하게 해직을 당했다가 사법기관의 판결로 복직한 교협 교수와 노조지부장의 사례들은  브레이크가 부재한 채 무한질주하는 제주 사학의 현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교협과 노조, 그리고 대학평의원회 등에 대한 법적 보장뿐만 아니라 이들 견제장치가 실질적인 힘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교직원의 신분안정을 담보하기 위한 규정이 필요하다.

고등교육법은 대한민국의 교육 및 법률 전문가들이 오랜 기간 시행착오와 고심을 거듭해서 도출된 각고의 산물이지만 사학 운영과 소유에 대한 제동장치에 있어서는 심각한 미비점들이 지적 받은 지 오래다. 이것은 사학비리가 전국 각지에서 심심치 않게 발생하는 데서도 분명히 입증되고 있다. 이번 새롭게 추진하는 대학조례 개정은 고등교육법의 이러한 미비점을 보완하는 것에도 특별한 신경을 써야 할 것이다.

한줄기 눈부신 햇살

마지막으로 고등교육법은 교육이라는 이상과 경영이라는 현실 사이에서 최선의 접점을 찾기 위해 각고의 나날을 보냈던 교육 전문가들의 깊은 고민이 들어있다. 그 규정이 있는 데는 그럴만한 중요한 취지와 이유가 깔려 있다. 치열한 생존경쟁을 겪는 것은 비단 도내 사립대학들만이 아니다. 도내대학들은 지방조례와 재정지원 등 외부 지원에만 기대지 말고 교육의 본질에 충실한 내실 있는 성장에 힘써야 한다. 지방조례의 규정들은 상위법의 근본취지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선행돼야 하며 제한규정들이 단지 비효율적이라는 이유만으로 섣불리 무장해제 시키는 태도로 접근하는 것은 금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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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특별했던 공청회를 위해 특별한 정성을 보여줬던 도의원들과 관계자들에게 다시 한 번 깊이 머리 숙여 감사를 드린다. 어두운 하늘을 검게 드리운 먹구름을 뚫고 한줄기 햇살이 세상을 환하게 비추는 것은 자신을 앞세우지 않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일하는 여러분들이 있기 때문임을 새삼 깨닫는다. / 김헌범 제주한라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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