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은 ‘의원 1인당 20억 배정’…원희룡 도정 첫 예산편성부터 ‘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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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와 제주도의회가 새해 예산안 편성과 관련해 파열음을 내고 있다. 14일에는 각자 기자회견을 통해 공개적으로 치고받기까지 했다.

선공은 제주도의회가 날렸다. 구성지 의장이 직접 나서 ‘예산의 협치 시대’를 열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제주도는 기획조정실장을 대타로 내세워 “법률적으로 분리된 예산 편성권과 심의권을 한꺼번에 행사하는 것은 모순”이라며 도의회의 제안을 사실상 거부했다.

물론 “도의원 개개인의 지역별 민원사업에 대해서도 우선순위와 균형의 원칙에 따라 반영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며 여지를 남겼지만, ‘립 서비스’가 될 공산이 커 보인다.

이날 양측의 공중전은 ‘의원별 20억 배정’요구가 발단이 된 측면이 강하다.

도의회는 최근 간부회의를 통해 내년 예산에 반영할 수 있는 의원들의 공약인 지역현안사업을 의원별 10억원 범위 내에서 파악하기로 했다. 이와 별도로 흔히 ‘재량사업비’로 불리는 주민숙원사업비를 현행 3억3000만원에서 10억원으로 상향 조정해줄 것을 제주도에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도의원 전체(41명)로 치면 820억원의 예산반영을 요구한 것이다.

지금까지는 집행부가 예산안을 편성하면, 의회는 이를 심사하고 의결해왔다. 즉, 예산 편성권은 제주도가, 심의권은 의회가 행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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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성지 제주도의회 의장은 14일 오전 10시 제주도의회 도민의 방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새해 예산편성과 관련해 원희룡 도정에 ‘협치 시대’를 열자고 제안했다.오른쪽은 이선화 의회 운영위원장. ⓒ제주의소리
문제는 지금까지 도지사 공약 중심으로 예산을 편성되던 관행.

구성지 의장은 “도민의 대의기관인 도의회 의원들이 지역주민 의견수렴의 결과를 토대로 예산편성을 요구하면 예산 편성권 침해라며 비토하거나 지역구 챙기기라고 하고, 선심성 예산이라고 매도해버렸다”고 성토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의회는 심의권을 활용(?)해 제주도가 편성한 예산안을 심사하면서 대폭 손질해 자기 몫을 챙기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결국 공직시스템을 잘 알고 있는 구성지 의장은 예산 편성단계 이전 협의를 통해 의원들의 요구사항이 충분히 예산에 반영될 수 있도록 하자는 ‘예산 협치’를 제안하기에 이른다. 원희룡 도정의 제일 기치인 ‘협치’를 내세워 의원들의 공약도 챙기자는 계산이 깔린 제안인 셈이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다양한 제안과 요구를 했지만, 결국은 예산 편성 이전에 도의회와 정책협의를 하라는 주문에 다름 아니었다.

제주도는 도의회의 기자회견이 끝나자마자 바로 반격에 나섰다. 원희룡 지사를 대신해 박영부 기획조정실장이 총대를 멨다.

제주도는 의회의 ‘예산 협치’ 제안을 예산 편성권 침해로 받아들였다. 박 실장은 “법률적으로 분리된 예산 편성권과 심의권을 한꺼번에 행사하는 것은 모순”이라며 불수용 입장을 분명히 했다.

도의회는 예산편성 단계 이전의 사전협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이지만, 제주도는 이를 예산 편성권 공유라는 표현을 써, 편성권 침해로 본 것이다.

제주도는 의회의 재량사업비 편성 요구도 단칼에 잘라버렸다.

구성지 의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20억’이라고 단정하지는 않았지만, “일정규모의 범위 내에서는 의회에서 민생현장의 소리가 반영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사실상의 재량사업비 반영 요구했다.

이에 대해 박영부 실장은 “폐지된 제도의 부활을 통해 예산제도 자체를 무력화하는 것으로, 수용하기 어렵다”고 맞받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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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성지 의장의 기자회견이 끝난 직후에 기자실을 찾은 박영부 기획조정실장. ⓒ제주의소리
예산편성 권한이 제주도에 있고, 제도적으로 편성권과 심의권이 구분돼 있다는 박 실장의 주장은 원론적으로 맞다.

하지만 도의회의 예산편성 이전 협의 요구를 “재량사업비 부활 시도”라거나 “예산제도 자체를 무력화하는 것”이라고 표현한 것은 지나친 논리의 비약이라는 지적이다.

구성지 의장이 기자회견에서도 밝혔듯 해마다 예산 심의 과정에서 대폭 손질되는 일이 반복되는 것을 피하자는 취지로 제안한 것이었음에도 이를 수용하지 않겠다는 근거로 재량사업비 부활 시도라고 일방적으로 단정 짓고 있기 때문이다.

재량사업비를 무조건 ‘나쁜 예산’으로 보는 것도 문제다. 중앙정부는 국회의원들에게 특별교부금을 통해 지역 숙원사업을 해결할 수 있도록 한다. 재량사업비가 바로 이 특별교부금과 같은 성격임에도 지방의회만 이 제도를 폐지한 것은 중앙집권적 사고라는 지적이 많다.

게다가 제주도의 경우는 기초의회가 없다. 각 지역·단체들의 요구가 곧바로 도의원들에게 집중되면서 의원들 역시 민원해결에 골머리를 앓기는 마찬가지다.

구성지 의장이 “지역구 의원들처럼 지역주민의 목소리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 사람도 드물다”며 “따라서 도민의 대의기관인 의회가 에산편성 이전에 협의를 요구하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행위”라고 주장한 배경이다.

다만 도의회도 예산편성 단계에서 ‘의원 몫’이 반영된다면 이후 심사 과정도 예전과는 달라져야 한다는 지적은 새겨들어야 한다. “불요불급한 예산에 대해 감액을 할 수 있지만 증액은 최소화해 예비비로 돌리고, 의회가 신규 편성할 경우에는 집행부가 집행을 거부하도록 하는 등의 ‘룰’을 마련하고, 서로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지적에 대해서는 구성지 의장도 이날 “심사 과정도 지금까지 관행에서 벗어나 선진화될 것”이라고 수긍했다.

결국 이번 새해 예산안을 둘러싼 도와 의회의 갈등은 서로 주도권을 놓치지 않겠다는 데서 빚어진 측면이 강하다.

다음달 3일부터는 행정사무감사, 11월17일부터 12월16일까지는 도정질문과 새해 예산안 심사가 줄줄이 예정되어 있다.

결국 제주도가 의회의 제안을 받아들지 않을 경우 예년처럼 예산심의 과정에서 제주도가 편성한 예산안에 ‘난도질’이 가해질 것은 뻔하다. 서로가 ‘선심성 예산’이라며 으르렁댈 것도 뻔하다.

한 가지 사안을 놓고 반박에 재반박을 이어가며 갈등을 키우는 것보다 서로가 머리를 맞대 해법을 모색하는 것이 훨씬 덜 소모적이다.

제주도는 지난 2008년 10월 조례까지 제정해 도의회와 정책협의회를 분기별로 개최토록 제도화하고 있다. 여론전을 통해 제 주장만 펼칠 게 아니라 서로 마주앉아 진정성을 가지고 실현 가능한 타협점을 찾는 게 훨씬 효과적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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