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개편 논란] (2) '본청 인력 소규모학교 배치' 찬반 속사정은?

이석문 제주도교육감은 지난 7월 취임 직후 조직개편에 착수했다. 밑그림을 그리기 위해 제주대 이인회 교수팀에게 연구용역을 맡겼다. 지난달 26일, 이 연구의 최종 결과가 발표되자마자 교육청공무원노조의 반발이 이어졌다. 논쟁의 핵심은 두 가지. 본청 인원을 23명 또는 32명 줄여 소규모 학교에 배치한다는 내용과 교사의 영역으로 보이는 업무를 행정공무원에게 넘기는 업무분담 모형이 제시된 것. 제주 교육계 최대 현안으로 떠오른 교육청 조직개편 관련 논란을 두차례에 걸쳐 짚어본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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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6일 취임 100일 기자회견을 가진 이석문 제주도교육감. ⓒ 제주의소리

연구용역 최종 보고서에 담긴 논쟁거리 중 하나는 ‘본청(교육청) 인원 재배치’. 본청 인원 23명(1안) 또는 32명(2안)을 소규모 학교 중심으로 재배치한다는 내용이다. 소규모 학교 교사들이 과다 업무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는 것은 공공연하게 알려진 사실이다.

기자가 만난 한 초등교사는 “시내 대형 학교의 경우 60명이 나눠 할 일을 소규모 학교는 6명이 나눠서 해야한다”고 상황을 전했다.

연구팀은 본청 인원 재배치라는 연구결과를 내놓은 데는 ‘덜어내고 지원하는 행정’이라는 이석문 교육감의 지향점에 의한 것이라고 밝힌다.

연구용역을 수행한 이인회 제주대 교수는 “교육청에서는 몇 명을 줄이라고 한 적이 없었지만 조직 슬림화가 목표였다”며 “가까운 사례로 광주교육청은 본청인력 10%, 전북은 13%를 줄였다”고 말했다.

교육청노조는 이에 반발하고 있다. 노조는 수 차례의 성명서와 기자회견 등을 통해 "본청 인원이 감축되면 남아있는 행정공무원들은 큰 피해를 보게 된다"고 주장해왔다.

김완근 노조 위원장은 "교육청이 주요업무를 30% 줄인다고 했지만 이는 교육청 사업을 줄이는 것이고, 법령에 의해 행정공무원이 해야하는 업무는 기본적으로 남아있다“며 ”(인력)배치 후 남아있는 본청 공무원들은 큰 업무부담을 겪게 된다“고 우려했다.

노조 반발이 일종의 '밥그릇 챙기기'라는 지적도 있으나, 노조는 또다른 이유를 들고있다.

교육청 담당 부서와, 이 교육감 공약실천의 밑그림을 그리는 희망교육추진단 간의 말이 조금씩 다르다는 점. 여기서도 불신의 싹이 텄다.

교육청 담당부서에서는 최근 설명회와 기자브리핑에서 아직 재배치 인원이 확정된 것도 없고 여러 가지 가능성이 열려 있다고 밝혔다.

희망교육추진단 이병진 팀장은 21일 [제주의소리]와의 통화에서 “본청 인원의 학교현장 재배치는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며 “정확히 어떻게 배치할 것에 대해서는 논의 후 결정 하겠다”고 말했다.

전체적인 뉘앙스와 강조되는 부분에 미묘한 차이가 있다. 이에 대해 이정원 교육청 대변인은 큰 방향성은 이 교육감이 갖고 가지만, 의견 수렴은 "진행중"이라고 설명한다.

이 대변인은 “구체적인 안은 아니지만 본청 인력을 줄여 소규모 학교에 배치해 수업과 교실을 지원하겠다는 큰 방향성이 있다”며 “정원 조정 문제는 노조가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교육현장에 미치는 영향도 크기 때문에 TF팀 운영 등 면밀한 검토와 논의가 진행될 것”이라고 조심스런 반응을 보였다.

또 “아무래도 지금 소통의 과정에서 진통이 있는게 당연하다”며 “교육노조는 한가족이니 잘 논의해 큰 탈없이 해결해가려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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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일 제주학생문화원에서 열린 교육청노조의 토론회. ⓒ 제주의소리

“조직개편은 교육감 고유권한” vs “노조와 합의 해야”

현재 노조와 교육청 실무진들은 수 차례 논의를 진행했지만 아직까지는 양측의 입장차가 크다.

노조는 “대화는 일방적인 설명 수준이었다”며 “교육감의 정책이니까 일단 함께 가보자는 정도였다”고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이정원 대변인은 “학교 현장 배치에 대한 반대인지, 인력 증원 요구인지, 교무행정을 아예 맡기지 말라는 것인지 노조의 입장이 좀 더 명확하게 정리됐으면 하는 부분이 있다”고 명확한 입장을 요구했다.

김완근 노조 위원장은 23일 [제주의소리]와의 통화에서 노조의 기본 입장을 묻는 질문에 “지방공무원을 배치하지 말고 당초 공약대로 행정실무사를 선발 배치하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교육청은 정부의 지방교육재정교부금 축소로 수백억원의 부담을 떠안은 만큼 행정실무사 추가 선발 요구를 받이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조직개편 자체가 선거직 당선자들에게 주어진 고유권한이라는 시각도 만만찮다.

이 교육감은 지난 9일 [제주의소리]와의 취임 100일 인터뷰에서 “대통령이 선출이 되면 국가조직이 바뀌고, 도지사가 바뀌면 도 조직이 개편이 된다”며 “교육감이 바뀌면 그 정책을 진행하기 위해서 조직 개편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말했다.

양덕순 제주대 교수(행정학과)는 “정책을 수행할 수 있는 가장 밑바탕의 동력이 사실은 조직”이라고 말한다.

양 교수는 “대통령이 당선되면 자신의 색깔을 드러내기 위한 조직개편을 한다”며 “정부조직법이 제출되면 국회에서는 ‘당신이 일할 수 있는 판을 깔아준다’는 기본적인 합의사항이 있어서 많이 도와주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단  “찬성하지 않는 일부가 있기 때문에 정부 조직개편을 두고 여야가 합의를 하는 것”이라며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게 아니라 일정 부분 의견을 수렴하는 등 절차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그는 ‘구조적 불신’을 문제의 출발점으로 본다.

양 교수는 “진보적 교육감과 현재 공무원들이 가진 보수적 성향과의 충돌”이라고 진단했다.

양 교수는 “‘현장중심’은 익숙지 않은 내용이기 때문에 이에 대해 ‘현실에 맞지 않다’, ‘현실인식을 잘못한다’는 시각이 있다”며 “이런 구조적 불신이 문제를 야기한 한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이 구조적 불신을 해소하는 게 해답이라는 얘기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교육학과 교수는 다른 대안을 내놓는다.

이 교수는 “소규모 학교 교사들이 업무가 많은 것도 사실이고, 그렇다고 일반직이 시간이 남아도는 것도 아니”라고 진단한 뒤 “근본적으로는 교원업무를 경감할 수 있는 실무사들을 신규로 선발·배치하는 게 합당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현재 교육청 재정에는 여유가 없는 상황”이라며 “그렇다면 노조와 교육청이 대립할 게 아니라 예산을 확보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서 머리를 맞대는 게 낫지 않냐”고 조언했다.

이 교육감이 정한 조직개편 시한은 2015년 3월. 취임 초기 자신의 정책을 펼칠 바탕이 될 조직개편과 노조와의 갈등 해소라는 이중 과제를 어떻게 해결해낼 지가 그의 첫 시험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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