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 제주도-의회, 사사건건 충돌…“정치의 중심은 도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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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우려했던 일이 벌어졌다. 한 쪽에서는 “협치를 가장한 협잡놀음”이라고 비난하고, 또 다른 쪽에서는 “인사권까지 넘보는 것”이냐고 받아친다.

제주도와 제주도의회가 법에도 없는 인사청문회를 두고 파열음을 내고 있다.

물론 앙금은 그 전부터 차곡차곡 쌓였다. 감귤 1번과 처리 문제를 놓고 삐걱대기 시작하더니, 새해 예산편성을 놓고는 급기야 거세게‘충돌’했다. 마치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 식이다.

청문회 과정도 위태위태했다. 이기승 제주시장 예정자가 의회의 혹독한 검증 끝에 ‘부적격’ 판정을 받으며 낙마하자, 의회는 “한 건 했다”며 위안했고, 집행부는 사전검증 실패라는 비판에 안절부절 못했다.

그러나 이를 지켜본 도민 대다수는 청문회 이슈가 오로지 20년 전 음주운전교통사고 밖에 없었느냐며 냉소적 반응을 보였다. 게 중에는 “도의회가 지나쳤다”는 비판도 많았다.

이를 의식해서인지 구성지 의장은 10대 의회 출범 100일째 되던 날 기자간담회에서 청문회 개선 필요성을 언급했다. 도덕성 검증과 함께 정책·능력 검증을 위한 시간 배분, 심사보고서에 ‘적격-부적격’ 문구를 빼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인지 지난 27일 이성구 제주에너지공사 사장 예정자에 대한 청문을 맡은 농수축경제위원회는 수많은 의혹·문제점들을 제기했지만, ‘적격-부적격’ 판단은 유보했다. 7페이지 분량의 심사보고서를 ‘부정적’ 의견으로 도배했지만, ‘부적격’의견을 명시하지 않았다.

원희룡 지사의 선택은 “의회에서 지적한 점을 매우 아프고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지적된 부분에 대해서는 공동책임을 지겠다”며 야권과 시민사회의 지명철회 요구를 정면 돌파했다.

다만 “청문회에서 제기된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업무수행 과정에서 해소되지 않을 경우 언제든 진퇴의 책임을 묻겠다”며 ‘중간평가→진퇴 결정’이라는 보완책을 제시했다.

의회는 즉각 반발했다. 행정자치위원회는 30일 예정된 강기춘 제주발전연구원(KDI) 원장 예정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보이콧’했다. 원희룡 도정을 향해서는 “협치를 가장한 협잡놀음을 하려하느냐”고 직격탄을 날렸다.

독기가 느껴진다. 도의회는 “‘부적합’ 의견을 완곡한 표현으로 전달했음에도 이를 거부한 것은 청문결과에 상관없이 제 갈 길만 가겠다는 아집의 표현에 다름 아니”라고 비판의 수위를 높였다. 꼭 맛을 봐야 바닷물이 짠 것을 아느냐는 투다.

화살은 곧바로 원희룡 지사에게로 향했다. “도지사 스스로 정한 인사청문의 가이드라인을 인정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더 이상 들러리로 전락한 인사 청문은 의미가 없다”고 했다. “이로 인한 책임은 전적으로 도지사에게 있다”며 대립각을 바짝 세웠다.

일면 타당성 있는 지적이다. ‘책임도정의 구현’을 요구한 게 6.4지방선거의 뜻이기에 원초적 잘못은 어설픈 ‘협치’를 꺼내든 원희룡 도정에 있다. 법과 규정에도 없는 청문회를 먼저 제안한 것도 원 도정이다. ‘이미지 정치’를 신경 쓰다 자충수를 둔 것 같은 느낌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청문회 보이콧’은 의회 스스로 자초한 측면이 없지 않다.

지난 27일 이성구 에너지공사 사장 청문회에서 각종 의혹·문제점을 지적해놓고도 정작 ‘적격-부적격’ 의견을 명시하지 않은 보고서를 채택, 원 지사가 이 예정자를 사장으로 임명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줬기 때문이다.

강기춘 발전연구원장 예정자 청문회로 불똥이 튀면서 “의회가 엉뚱한 데 화풀이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은 그래서 나온다.

애초 이성구 예정자에 대한 심사보고서를 채택하면서 ‘부적격’ 의견을 명시했더라면 원 지사로서도 임명을 강행하기 어려웠을 것이고, 발전연구원장 청문회 보이콧이라는 파행적인 상황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냉정해질 필요가 있다. 감정을 누그러뜨리고 대신 그 자리를 이성으로 메워야 한다.

따지고 보면 ‘청문회 보이콧’은 득보다 실이 많다. 행정시장과 ‘빅5’기관장에 대한 인사청문회는 법과 규정에 따라 진행되는 것이 아니다.

인사권자 입장에서는 문제가 많다는 데 굳이 강행할 이유가 없다. 이제라도 안 하면 그만이다. 그렇게 되면 의회는 다시 “청문회를 먼저 제안해놓고 다시 걷어차느냐”고 비판할 것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이 참에 ‘인사권’을 내놓으라고 요구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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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용철 기자.
제주도의회가 직접 인사권을 행사하겠다는 게 아니라면 이런 식의 상황 전개는 제주도와 도의회 모두에게 부담이다. 두 기관이 으르렁거리며 ‘기 싸움’을 펼치는 동안 그 피해는 고스란히 도민들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파국을 향해 마주 달리는 열차를 보는 것 같아 불안하다. 누가 먼저 손을 들 때까지 막가보자는 식의 치킨게임은 끝낼 때가 됐다. 그렇지 않으면 정말 ‘막가파’가 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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