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200일] 의인 김동수씨, 경제.정신적 고통에 삶 피폐 '세월호 현재진행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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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호 침몰사고 이튿날인 지난 4월17일 당시 제주로 돌아온 뒤 상황 증언에 나선 김동수씨. ⓒ 제주의소리DB

[기사수정=11월 3일 17:00]“정말 나쁜 생각까지 했습니다. 제가 왜 이렇게 됐는 지 모르겠더라구요.”

세월호 침몰 당시 승객 20여명을 구조한  제주의 화물기사 김동수(49)씨. 6개월 만에 들은 그의 근항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했다.

목숨이 경각에 달린 급박한 상황에서도 탈출 대신 소방호스를 이용해 승객들을 구조해 언론으로부터 ‘파란바지의 의인(義人)’, ‘영웅’으로 불리며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지만 그것도 잠시.

경제적 문제는 당장 목을 옥죄는 현실이었다.

김씨의 전재산이나 다름없던 트럭은 세월호와 함께 바다로 잠겼고, 아직까지 새 트럭을 구입할 엄두를 못내 실업자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바다에 가라앉은 트럭 할부금도 갚지 못한 상태다. 세월호 피해자들을 위한 할부금 상환 유예 기간마저도 끝나면서 앞으로가 더 막막하다. 병원비 부담도 상당하다.

세월호 사고 당시 충격으로 치아 부상을 입었고, 류머티스 내과에서 ‘근막통증증후군(충격을 갑자기 받거나 갑자기 무리를 했을 때 오는 병)’을 진단받았다. 소화기 내과와 흉부외과도 다니고 있다. 얼마 전에는 잠을 못 잘 정도로 속 쓰림이 너무 심해 입원을 했는데 병원에서는 ‘세월호와 직접 관련이 없다’고 했다. 입원비는 고스란히 김씨 몫이 됐다.

몸이 이 지경이니 일을 시작하기가 쉽지 않다. 불행은 겹쳤다. 이 와중에 아내가 유방 종양 시술을 받게 된 것. 이 때문에 큰 딸은 물론이고 고등학생인 둘째 딸까지 주말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상태.

더 큰 문제는 정신적 고통. 사고 당시에는 워낙 큰 충격이라 얼떨떨해 몰랐는데 시간이 흐르고 보니 그 잔상이 외부로 표출되기 시작했다. 극심한 불안증세를 보이며 횡설수설까지 하는 상황까지 왔다.

“어느 날 살펴보니 제가 이상증세를 겪고 있더라구요. 뭔가 당장 바다에 가지 않으면 이상하고, 밤에 산에 가지 못하면 견딜 수 없을 정도고. 아무것도 없는데 무슨 흰 게 눈 앞을 지나가는 것 같은 공상도 들어요. 정신과 약에 의존하고 있지만, 푹 잠들기가 거의 불가능하더라구요.”

김씨가 지금까지 받은 정확한 보상액은 얼마일까.

정부가 피해가족 4인 기준 1가구에 책정한 긴급생계비는 월 108만원. 이 마저도 얼마 지나지 않으면 끊긴다. 피해자 보상 내용이 담긴 세월호특별법 처리가 늦어지면서 추가 보상을 기대하기도 힘든 상태.

108만원은 김씨의 경우처럼 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경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정부가 정한 올해 4인가구 한 달 최저생계비는 163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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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씨에게 조심스레 최근 모습을 부탁했다. '이왕이면 그래도 잘 나온게 좋지 않겠느냐'며 9월 초 아내의 손에 이끌려 나선 나들이에서 찍은 사진을 보내왔다. 지난 4월 보다 훨씬 야윈 모습이다. <김동수 제공>

김씨를 비롯한 트럭운전자들에게 정부는 초저금리 대출을 제공하고, 생활안정자금 명목으로 저이자 2000만원 대출이라는 기회를 주고 있으나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다.

할부금도 남아 있는데다 새로 트럭을 구입해야하는데 이자 걱정을 빼더라도 구입비 자체가 만만찮다. 아예 몸이 정상이지 않은 김씨 같은 경우에는 당장 일을 다시 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

김씨가 얼마 전 이런 상황을 빼곡히 적은 아내의 편지를 들고 도의회를 찾아간 이유도 여기에 있다. 도저히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이라 혹시나 다른 방법이 없을까 하고 발걸음을 한 것. 김씨에게는 상당히 큰 맘을 먹은 일이었다.

사실 김씨는 지난 4월 세월호 사고 직후 승객 20명을 구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언론의 취재가 이어지자 “너무 민망스럽고 죄송스럽다. 기사를 안 쓰시면 안되겠냐”며 난처해 했을 정도로 선한 성격이다.

지난 몇 개월 간 어려움에도 아무 소리를 하지 못했던 건, 목숨을 잃은 다른 희생자들에 비하면 그래도 목숨은 건졌다는 부채의식과 미안함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버티기 힘든 상황이다.

이는 비단 김씨만의 특별한 상황이 아니다.

“얼마 전 같이 배를 탔던 아는 동생을 만나 저녁을 먹었습니다. 알고 보니 그 친구도 자꾸 자기도 모르게 뒤에서 뭔가 물체가 나타나 덮칠 거 같다는 생각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더군요. 경제적 처지요? 다 비슷합니다. 차 할부금을 갚지 못한 사람도 많은데 이 상황에서 새 차를 사는 건 큰 부담이지요.”

아내 김형숙(46)씨도 조심스럽게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병원에서도 당국에서도 안 된다 기다리라고만 하지 말고 남편의 처지를 이해해서 도움을 주었으면 해요. 얼마 전 작은 딸이 아빠가 하도 횡설수설하니까 울면서 '아빠도 다른 사람들처럼 그냥 나오지 왜 그렇게 구조를 하다가 이 지경까지 됐냐'며 원망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희로서는 이해하기도 받아들이기도 어려운 현실입니다. 지나가는 도둑을 잡아도 잘했다고 표창을 주는 시대인데 이렇게 남편을 외면해도 되는 것인지 말입니다.”

세월호 참사 200일. 그들에게 세월호는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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