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현의 제주살이] 한울공동체의 '국산 사료 한우 키우기'

옛날 제주도에서는 뒷간에 똥돼지를 키웠다. 부산 사람인 나는 어렸을 때 초등학교 선생님한테 그 말을 듣고는 볼일을 보기 위해 엉덩이를 까고 앉아 있는데 돼지가 핥으면 어쩌지라는 괜한 걱정을 했다. 그 뒷간을 제주에서는 ‘돗통시’라고 불렀다. 돗은 돼지이고, 통시는 뒷간이다. 제주도 사람들은 ‘돗통시’를 비위생적인 곳으로 생각하고 부끄러워했다. 1980년 후반까지 있다가 사라졌다. 그랬던 ‘돗통시’는 제주도 전통사회의 생태적 지혜가 고스란히 배어 있는 곳이다. 농사짓고 남은 부산물 뿐만 아니라 사람과 돼지의 똥오줌마저도 자원으로 만들었다. 요즘 말로 하면 ‘리싸이클링’이고 ‘생태순환’이다. 윤용택 제주대 철학과 교수는 “제주사람들이 어려운 역경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생태적으로 살았기 때문이다”며 “제주도의 전통문화는 생태문화였고, 제주도의 전통사회는 생태사회였다”고 강조했다.

제주 전통사회의 지혜를 살려 농업을 하는 제주 사람들이 있다. 농사를 지으면서 생기는 부산물을 소에게 사료로 먹이고, 소의 축분을 농작물 퇴비로 돌려준다. 한살림 제주 생산자인 ‘한울공동체’가 바로 그들이다. 다섯 농가가 한울공동체에 함께 하고 있다. 11월 중순 한울공동체 작업장에서 신만균 대표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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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울공동체 신만균 대표 ⓒ 박진현

“10여 년 동안 친환경 유기농업을 했다. 그런데 친환경농업의 유기질 비료 등 자재 대부분을 외국에서 수입했다. 다른 대안이 없는지 고민했다. 대여섯 농가가 선도적으로 대안을 만들어보자는데 동의했다.”

친환경 유기농업하면 우리 땅에서 독한 농약과 화학비료를 쓰지 않고 우리 농산물을 건강하게 키우는 것을 떠올린다. ‘신토불이’라는 말이 가장 어울리는 농사다. 그런데 친환경농업의 유기질 비료나 자재들이 우리 땅에서 난 것이 아니라 외국에서 수입한 것이라면 완전한 ‘신토불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래서 한울공동체 농가들이 생각한 대안은 축산을 통한 순환농업이었다.

“유기축산도 사료의 원료를 일부 외국에서 수입한다. 수입한 옥수수 사료 중에 유전자 조작 옥수수가 포함될 수도 있어 이에 대한 문제제기도 있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냐는 논의가 있었다. 수입사료를 대신해 지역에서 생기는 농사 부산물을 가지고 자생적으로 축산을 해보자고 생각했다.”

한울공동체는 친환경 유기농업으로 감귤, 콩, 보리, 무, 브로콜리 등을 생산하고 있다. 여기서 나오는 부산물(콩깍지, 보리겨 등)과 비상품(크기가 작거나 상처가 나서 상품이 될 수 없는 농산물)이 국산사료가 됐다. 신 대표는 “한울공동체가 국내에서 처음으로 100% 자급형 국산사료로 소를 키우고 있다”고 강조했다.

한울공동체는 우리농업을 지키고, 식량자급율을 높여야 한다는 소명의식도 있었다. 전체 식량자급율은 22.6%, 쌀을 제외하면 3.7%다. 북한의 식량자급율은 70%대 수준인데도 저렇게 굶어 죽는 사태가 발생했다. 세계 식량위기가 왔을 때 우리나라에서 벌어질 일을 생각하면 등골이 오싹해진다. 신 대표는 “콩이나 보리농사를 지으려 하지 않고, 돈이 되는 브로콜리나 콜라비 같은 것만 한다”며 “이렇게 농사가 계속되면 보리, 콩 농사기반이 무너진다. 식량자급율이 계속 떨어지는데 그냥 놔둘 수는 없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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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의 축분으로 만든 퇴비로만 재배한 브로콜리 ⓒ 박진현

신 대표는 “농사 부산물과 비상품으로 만든 사료를 줬을 때 소가 잘 클 것인지, 또 소비는 잘 될 것인지 확신은 없었다”면서도 “일단 뛰어들었다”고 말했다. 역시 구체적인 대안은 연구자나 이론집단 보다는 현장에서의 실천과 경험이 만들어가는 것. 하지만 ‘밑으로부터 대안 만들기’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이를 가능하게 하는 ‘위로부터의 도움과 개입’ 역시 필요하다.

“국산사료 한우 키우기가 우리 힘만으로는 성공하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한살림 전국연합회에 같이 답을 찾아보자고 요구했다. 소비자 조합원이 돈을 모아 송아지를 입식하고 2,3년 키워 다시 돌려주는 방식으로 국산사료 한우 키우기 운동을 하자고 제안했다. 이 제안을 한살림 성남용인생협이 받아들였다.”

한울공동체는 지난 2011년부터 한살림 성남용인생협과 국산사료 한우 키우기 입식사업을 시범적으로 시행했다. 소비자 조합원이 모금한 돈으로 송아지를 입식하고, 그 송아지가 커서 3마리를 낳으면 소비자에게 고기로 돌려주는 방식이다. 한살림 성남용인생협은 2013년까지 3년 동안 1억3700여만 원을 모금했다. 한울공동체는 이를 기반으로 한우 38마리를 입식했다.

“올해 1차로 성남용인에 소를 보냈다. 2015년과 2016년 설에 2,3차 소를 보내고 나면 한살림 성남용인생협과의 사업은 마무리된다. 2017년부터는 한살림 전국연합회가 국산사료로 키우는 한우를 전량 소비하기로 했다.”

한살림 제주생협도 제주를 순환농업 지역으로 만들기 위해 발벗고 나섰다. 한살림 제주와 한울공동체가 지난 14일 한울공동체 작업장에서 ‘국산사료 한우 책임소비 약정 협약’을 체결했다. 한살림 제주는 2015년 1마리, 2016년 1마리, 2017년 2마리 등 3년 동안 4마리를 책임소비하기로 했다. 한살림 제주와 한울공동체는 제주지역 축산과 농업의 전환, 축산분뇨와 환경오염 문제 등에 대한 대안모색을 위해서도 서로 협력키로 했다.

대규모 축산단지가 제주의 식수와 환경을 오염시키고 있다. 축산단지의 분뇨 때문에 주민들에게 오랜 시간 식수원 역할을 했던 수원지가 폐쇄되기도 한다. 먹을 물이 없는 섬의 미래는 없다. 생태적으로 살았던 제주 사람들의 지혜가 다시 요구되는 때이다.

산업화된 축산농업은 제주 뿐 만이 아니라 지구 전체에 나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축산농업이 전 세계 온실가스의 18%를 배출하고 있다. 이 세상의 모든 자동차, 배, 비행기가 내뿜는 온실가스보다도 높은 수치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피해는 이미 세계 곳곳에서, 우리 일상 곳곳에서 감지할 수 있다. 기후변화로 제주도 해수면이 매년 5.1mm씩 높아지고 있다. 1kg의 소고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곡물 20kg이 소비된다. 부유한 나라의 소고기 소비를 위해 가난한 사람의 접시가 비는 형국이다. 동물복지를 생각하지 않는 열악한 축산환경은 사스, 조류독감, 에볼라 등 동물매개 감염질병을 발생시켰다. 육류소비 증가로 전 세계에서 매년 도살되는 가축의 수는 무려 560억 마리다. 2008년 발생한 식량가격 폭등은 여러 이유가 있지만 산업화된 축산에서 대량으로 소비하는 곡물사료도 그 주요한 이유 중 하나였다.

한울공동체 농가의 축사에 가면 하루 종일 노래 소리가 들린다. 소들에게 들려주는 노래다. 엄격한 한살림 축산기준도 철저히 지키고 있다. 소를 가두지 않고 개방식 사육을 하고 있으며, 한 마리당 2.5평 이상 면적을 확보해주고 있다. 축사환경관리도 엄격하게 해서 축분 냄새가 거의 나지 않는다. 뿔 자르기 역시 하지 않는다. 항생제와 성장촉진제도 일절 주지 않는다. 신 대표는 “동물복지 차원에서 소를 잡기 전까지 최대한 편안하게 키운다”고 말했다. 한울공동체 농가들은 소들에게 ‘우순이’라는 이름도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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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순이'들이 사는 축사 ⓒ 조남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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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 대표가 소들에게 귤을 사료로 주고 있다 ⓒ 박진현

신 대표는 “국산사료 한우 키우기가 한울공동체 뿐만 아니라 제주지역, 그리고 전국적으로 펴져나가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내년 초에 한우 축분으로 만든 퇴비만 준 브로콜리도 출하된다. 고성복 제주대 농대 교수는 한울공동체의 순환농업을 ‘통시농법’이라고 부른다. 제주 전통농업의 지혜를 이은 ‘국산사료 한우 키우기’는 우리 농업의 오래된 미래다.

국산사료 한우는 지방율이 낮다. 곡물사료로 키워 불포화 지방을 최대한 늘린 소고기와 다르다. 국산사료 한우는 지구에 덜 미안할 뿐만 아니라 건강에도 좋다. 알고 보면 몸에 나쁜 마블링이 예술은 아니지만 맛은 어떨까. 신 대표는 “맛있다는 평가를 받았다”고 말했다. 나도 아직 먹어보지는 못했지만, 어릴 적에 먹었던 그 귀한 소고기의 맛이 아닐까.

* 이 기사는 <프레시안>과의 협약에 따라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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