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 원로시인 김시종 ‘광주시편’ 한국어 번역본 발간

‘나는 잊지 않겠다. 세상이 잊는다 해도 나는, 나로부터는 결코 잊지 않게 하겠다.’ <김시종의 '서시' 중>

수 만 명의 목숨이 사라진 제주 땅을 등지고 일본에서 숨죽인 채 살아온 시인. 그가 1980년 광주에서 벌어진 동족살상의 현장을 지켜보며 고통 속에 쓴 시집이 30년 만에 모국어로 발간됐다.

재일 1세대 원로시인 김시종(86) 옹이 1983년 일본에서 출간한 시집 ‘광주시편’(光州詩片, 출판사: 후쿠다케 쇼텐)이 2014년 12월 1일 한국어로 번역돼 출판됐다. (김정례 번역, 출판사: 푸른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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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시종 시인.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시인은 1929년 함경남도 원산에서 태어나 어머니의 고향인 제주도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1942년 광주사범학교에 입학했다. 

1948년 제주에서 4.3의 소용돌이를 겪은 그는 1949년 4월 일본으로 밀항했다. 이후 조선인이 모여살던 오사카의 이쿠노에 정착하면서 지금까지 재일 조선인의 삶을 살고 있다.

1986년 <‘재일’의 틈에서>로 제40회 마이니치 출판문화상, 1992년 <원야의 시>로 오구마 히데오상, 2011년 <잃어버린 계절>로 제41회 다카미 준 상을 수상하는 등 일본 현지에서도 무게감 있는 시인으로 평가받는다.

광주시편은 시인이 1980년 광주 5.18민주화운동을 멀리 떨어진 일본에서 소식을 접하면서, 비통한 마음으로 집필한 작품이다. 

당시 그의 후기를 보면 비통하다 못해 처절한 감정이 고스란히 묻어나온다.

“이 얇디얇은 시집에도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3년이라는 세월을 들였다는 말이 아니다. 너무나도 참혹한 광경에 입을 다물 수 밖에 없었던 세월, 벌벌 떨며 말을 아꼈던 3년을 말하는 것이다…3년이 지난 지금도 내 마음은 황폐한 그대로이다. 그 끔찍했던 광주사태(5.18민주화운동)는 조금도 잠잠해지지 않고 여전히 내 사념의 밑바닥에서 응어리진 채로 남아있다. 말은 뜨거운 기억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온몸이 비틀리는 고통처럼 뼈저리게 느꼈다…나는 있으나 마나 한 나의 말에 상복을 입혔다. 압살당한 ‘자유 광주’를 조금씩이라도 토해내는 것이 일본에 있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주문(呪文)이었다.”('광주시편' 후기)

한국어판 광주시편은 총 3부로 나뉘어 ‘바람’, ‘입 다문 말-박관현에게’, ‘3년’, ‘미친 우의’ 등  모두 21편의 시가 실려 있다. 

1984년 문화예술총연합 사무국이 광주시편 번역을 시도했지만, 시 속의 일본어가 너무 까다로워 이루지 못했다는 후문이 있을 만큼, 광주시편의 문장은 경직돼 있다. 그러나 그 속에서 느껴지는 호흡은 깊고 무겁다.
 
5월을 토마토처럼 짓이겨진 죽음이여.
쏘아 꿰뚫어진 하늘이여.
살랑이는 나뭇잎들이여.
눈을 가리는 죽음에도
빛만은 비춰들고 있었던가
한국의 여름이여.
악마의 귀동자인 
색안경의 아들이여.
… 
('명복을 빌지말라' 중)

날은 간다.
나날은 멀어지고
그날은 온다.
꽉 막힌 폐기(肺氣)가
늘어진 직장을 똥이 되어 내리고
검시의는 유유히 절명을 고한다.
다섯 개의 청춘이 매달려 늘어뜨려지고
항쟁은 사라진다.
범죄는 남는다.
('뼈' 중)

광주시편을 번역한 김정례 전남대학교 일어일문학과 교수는 옮긴이의 글에서 “그는 일제 강점기 시절 모국어 대신 강제로 자신의 의식을 형성하게 했던 그 일본어를 향해 복수하는 시점으로 일본어로 시 창작을 한다고 한다. 그러므로 그의 시 속에는 일본어라는 표현 언어 자체에 대한 위화감이 내재해 있다”며 번역 과정에서의 애로 사항을 전했다.

또 “일본 전통 시를 연구하는 역자는 그의 시와 많은 고투를 한 끝에 일본어 원시 속의 언어적 위화감을 한국어로 그대로 전하기 위해 할 수 있는 한 직역을 시도했다”며 “일본이라는 이국에서 고투하고 있는 디아스포라 시인 김시종의 삶과 사유의 흔적이 배어 있는 시 한 편 한 편이 부디 큰 훼손 없이 한국의 독자에게 전해지기를 기도하는 마음”이라고 밝혔다.

김시종 시인은 오래전 자신의 작품이 뒤늦게 빛을 보는 소감을 기쁘게 전하며 김창후 전 제주4.3연구소장의 노력에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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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시종 시인의 광주시편 한국어판. ⓒ제주의소리

시인은 한국어판 광주시편 '간행에 부치는 글'에서 “광주민중항쟁이 30주년을 맞이하기 1년 전인 2009년에 제주4.3연구소장이었던 김창후 씨로부터 5.18기념재단에서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광주시편을 번역 출판하기로 결정했다는 연락을 받았다”며 번역을 맡아 준 관계자들에게 심심한 사의와 경의를 표했다.

시인은 무자비한 폭력이 지배했던 군사정권 시기에 탄생한 광주시편이 현재 2014년에도 새로운 울림을 가져 온다고 밝혔다.

그는 “솔직히 말씀드리면, 바다 건너 팔짱을 끼고 앉아 있을 수 밖에 없었던 나에게 연작시 광주시편은 말로 다 못 할 분노와 무력감을 담아낸 시집”이라며 “내가 살고 있는 일본의 정치 상황은 근래 눈에 띄게 전전(戰前)으로 급선회하고 있다. 또한 본국인 대한민국에서도 군사정권 시절을 그리워하는 세력이 사라졌다고는 말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어 “나의 광주시편은 자리만 지키고 앉아 시대적인 역행을 좌시하는 일은 두 번 다시 없으리라는 소박한 울림이기도 하다”며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본국의 친구들에게 악수의 뜻으로 손을 내민다”는 소감을 남겼다.

김창후 전 소장은 “광주시편의 한국어판 간행은 무엇보다 5.18기념재단이 창립 20주년을 맞는 차원에서 이뤄진 것이어서 더욱 의미를 가진다”고 덧붙였다. 

책의 겉표지와 내부는 5.18민주화운동을 화폭에 담아온 일본 화가 도미야마 다에코, 재일 화가 김석출의 판화가 장식하고 있어 의미를 더하고 있다.

한편 김시종 시인은 내년 2월 자신의 일대기를 정리한 자서전을 일본 현지에서 출간할 예정이어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입 다문 말

-박관현에게

때로 말은 
입을 다물고 색을 낼 때가 있다.
표시가 전달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거절의 요구에는 말이 없는 거다.
그저 암묵이 지배하고
대립이 맞버팀 한다.
말은 이미 빼앗긴 사상(事象)에서조차 멀어져 있고
의미는 원래의 말에서 완전히 박리(剝離)된다.
의식이 눈여겨보는 것은
바야흐로 이때부터이다.

살아 있는 몸을 의지로 바꾼 남자가 죽었다.
육체로 얻을 수밖에 없는
단 하나의 요구를 살았기 때문이다.
죽음 말고는 더 이상 잃을 것도 없는 사람에게
죽음은 죽음을 죽음답게 하는 산 증거의 전부였다.
제압은 평온을 의미하지 않는다.

악랄한 폭력은 기억까지 깨부수지는 못한다.
광주는 요구이고
거절이고
회생이다.
하나로 합쳐진 복합적인 의미를
그 어떤 힘이 으스러뜨린다는 것인가.
끊을수록
선명해져 가는 것은 새로운 단면이다.
살아가야 할 인생을 걸고
남자는 벽 속의 평온을 끊었다.
음식을 끊고
협박을 끊고
거짓을 끊고서
생명을 끊었다.
시들어서 죽은 죽음이 아니라
굶주린 입속에 압제(壓制)의 썩은 고기를 던져 준 죽음이다.
죽음에도 죽음을 거부하는 죽음이 분명히 있다.
이 밤의 깊이는 
부끄럼 없이 죽은 젊은이의 원통한 마지막 숨을 거둔 검은 휘장.
조용히 창을 열어젖히고
밤을 향해 가만히 입술을 맞춘다.

나라가 통째로 어둠 속에 깔려 있을 때
감옥은 스며 나오는 빛의 상자다.

* 박관현은 전 전남대학교 총학생회장. 광주 폭동 사건(광주5.18민주화운동) 관련 혐의로 징역 5년의 판결을 받고 광주 형무소에 수감됐으나, 광주민중항쟁이 갖는 의거의 정당성과 군부에 의한 참혹한 시민 학살에 항의해 3차에 걸친 40일 동안 죽음알 각오한 단식투쟁을 결행, 끝내 1982년 10월 12일 새벽에 절명했다. 당시 나이 29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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