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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 6월24일 병원사업장 여성노동자 건강권 쟁취를 위한 제주지역 공동대책위(준)가 제주의료원 정문에서 집단유산의 철저한 역할조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서울행정법원 "태아의 법적 권리, 모체에 귀속"...여성근로자 산재소송 영향 클 듯

선천성 장애를 가진 자녀들을 출산한 제주의료원 간호사들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적용 관련 소송에서 승소했다.

태아 장애에 대한 국내 법원의 산재법 적용 판단은 이번이 처음이어서 향후 여성근로자들의 관련 소송에도 적지않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서울행정법원 행정7단독 이상덕 판사는 제주의료원 간호사 변모(36)씨 등 4명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요양급여신청 반려처분 취소 소송에서 19일 원고 승소판결했다.

2009년 당시 제주의료원에 근무하던 간호사 중 15명이 임신을 했다. 이중 5명이 유산을 했다. 이듬해에는 간호사 12명이 임신을 했으나 33%인 4명의 간호사가 유산의 아픔을 겪었다.

나머지 8명은 출산을 했지만 변씨 등 4명의 간호사는 선천성 심장질환을 가진 아이를 낳았다. 계속되는 유산에 간호사들은 과도한 업무량과 스트레스 등 열악한 근무환경을 문제 삼았다.

급기야 2012년에 서울대학교 산학협력단에서 역학조사가 이뤄졌다. 그 결과 업무상 연관관계가 있다고 판단한 간호사 8명은 2012년 12월11일 근로복지공단에 업무상 재해를 신청했다.

근로복지공단은 산재법상 태아를 근로자로 볼 수 없다며 2012년 12월27일 신청을 반려했다. 이듬해 9월12일 원고들은 다시 요양급여를 청구했지만 11월6일 재차 거부 결정이 내려졌다.

결국 변씨 등 간호사 4명은 올해 2월4일 산재를 인정해 달라며 서울중앙법원에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간호사들은 근무환경과 업무량으로 태아 장애가 발생했다며 산재적용을 주장했다.

재판과정에서 근로복지공단은 태아에 대한 재해를 산재로 볼 수 없다며 맞섰다. 태아의 질병을 산모인 여성 근로자의 업무상 질병으로 단순히 판단할 수 없다는 취지를 강조했다.

쟁점은 당사자가 근로자임을 전제로 만들어진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을 근로자가 아닌 몸 속의 태아에도 적용할 수 있느냐는 점이다. 산재법에는 태아에 대한 재해가 명시되지 않았다.

법원은 우선 태아의 건강손상이 업무와 연관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태아의 산재적용에 대해서도 엄마와 태아를 단일체로 보고 태아의 법적 권리와 의무는 모체에게 귀속된다고 해석했다.

이상덕 판사는 “태아의 건강손상은 모체의 노동능력에 미치는 영향 정도와 관계없이 모체의 건강손상에 해당한다”며 “임신 중 태아 건강손상은 근로자의 업무상 재해로 봐야 한다”고 밝혔다.

이 판사는 또 “출산으로 모체와 태아의 인격이 분리된다는 사정만으로 그 전까지 업무상 재해였던 것이 이후에 업무상 재해가 아닌 것으로 변경된다고 해석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법원이 여성근로자의 산재 범위를 넓게 해석하면서 향후 임산부 근로자에 대한 산재 적용 등 긍정적 파장이 미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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