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영화 <카트> 연출 제주출신 부지영 감독, "비상업영화 상영관 제주에 필요"

올해 개봉한 국내영화 <카트>는 2007년 대형마트 홈에버에서 벌어진 대규모 직원 해고사태를 소재로 하고 있다. 당시 홈에버 정규직·비정규직 근로자들은 512일 동안 사측과 투쟁을 벌이며 부당한 해고에 맞섰다. 

관객의 선택을 받아야 하는 상업영화라는 점에서, 많은 제작비와 화려한 캐스팅을 앞세운 쟁쟁한 영화 속에 <카트>의 개봉은 많은 영화인들의 주목을 받았다.

연말 <인터스텔라>, <나를찾아줘> 등 할리우드 영화들이 강세를 보인 가운데, 카트는 손익분깃점에는 모자라지만 80만 8700명(12월 19일 기준)이라는 의미 있는 관객 수를 기록했다. 

12월 19일부터 22일까지 열리는 제10회 제주영화제에서 오멸(지슬), 한재림(관상), 부지영(카트) 등 제주출신 영화감독들의 작품을 상영하는 트멍 섹션이 마련됐다. 

부지영(43) 감독은 유년 시절을 제주에서 보냈다.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에 진학하며 고향을 떠났지만, 어머니와 할머니 손에서 자란 시간은 그녀의 영화 인생에 큰 영향을 줬다.

그녀의 첫 장편영화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는 성격이 판이하게 다른 자매가 주인공이며, 두 번째 장편영화이자 첫 상업영화인 <카트>는 대형마트에서 해고된 비정규직 여성들이 이야기를 이끌고 있다. 감독이 연출한 다른 작품들도 대부분 여성이 영화의 중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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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카트>를 연출한 부지영 감독. ⓒ제주의소리

그녀는 “나의 정서적인 DNA는 제주도에서 보낸 15년의 시간에서 왔다”고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부 감독은 지난 20일 제주지역 언론사들과 가진 인터뷰에서 “어릴적 어머니, 할머니, 그분들의 친구들 모두 집안일을 하고 일도 하면서 집안을 이끌었던 사람들이었다. 제 영화 속에서 발견되는 여자 이야기는 어린 시절 가족의 모습에서 비롯됐다”고 털어놨다.

가정을 책임지는 제주여성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자라온 성장과정이 가족과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으로 변모한 셈이다. 

부 감독은 부당한 해고에 맞서 500일 넘게 싸워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다루면서, 무엇보다 연대하며 싸운 아줌마들의 이야기에 스토리를 집중했다고 밝혔다.

그녀는 “자녀 밖에 모르고 살아온 평범한 아줌마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성장하는 과정을 그리고 싶었다”며 “파업이라는 것이 아주 특별한 것이 아니라 평범하게 일하는 사람들이 어려움에 닥쳤을 때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방법이라는 것을 관객들에게 말해주고 싶었다”고 피력했다.

10회째를 맞은 제주영화제에는 “지역의 문화공공성 차원에서 제주에도 상업영화가 아닌 다양한 영화들이 상시 개봉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돼야 한다”며 “많은 영화들이 원하는 자연환경을 가진 제주도에서 열리는 제주영화제가 계속 이어지길 바란다”는 격려의 메시지를 남겼다.


다음은 감독과의 일문일답.

- 카트는 2007년 이랜드 홈에버에서 일하던 근로자들이 대량 해고된 사건을 다룬 영화다. 상업영화로서는 쉽지 않은 소재인데 영화를 제작하면서 어떤 점을 중요시했나.
"시나리오는 받고 각색하는 과정에서 다른 무엇보다 아줌마들의 이야기로만 영화를 만들겠다고 생각했다. 

실제 500일이 넘는 싸움 속에 시민단체, 노동단체, 언론, 정당 등 많은 단체들과 더 많은 이야기들이 있었다. 그렇지만 나도 그렇고 제작사도 그렇고 생계를 위해서 마트 계산원으로 일하던 평범한 아줌마가 부당한 해고에 맞서 노조에 가입하고 파업도 처음 해보고 500일 넘게 싸우는 과정이 마음을 움직였다.

그래서 철저히 다른 부분을 생략하고 아줌마들의 이야기로만 영화를 만들었다. 아줌마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자신을 성장하는 과정을 그리고 싶었다.

무엇보다 파업이 아주 특별한 것이 아니라 평범한 근로자들이 부당한 일을 당했을 때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영화가 완성되고 나서 당시 홈에버 근로자들과 시사회를 가졌다. 고맙다는 이야기도 해주셨고 영화를 많이 좋아해줘서 보람을 느꼈다. 

실제 당사자들이 <카트>를 가장 좋아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일반 대중이 거부감을 느끼지 않게 영화를 봐야한다는 생각도 가지고 영화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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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카트>의 한 장면. (출처: 카트 공식홈페이지)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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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카트>의 한 장면. (출처: 카트 공식홈페이지) ⓒ제주의소리

- 대기업, 자본과 맞서 싸우는 ‘약자’들의 이야기를 그린 만큼, 영화가 보다 희망차고 주인공들이 이기는 스토리로 진행하는 것이 더 낫지 않았을까?
"우리나라에서 노동자들이 기업에 맞서 법적다툼이든 뭐든 이겼던 실제 사례는 정말 드물다. 가령 중앙노동위원회가 기업에 구제명령을 내리지만 명령을 이행하지 않고 부과금도 내지 않는 대기업이 정말 많다. 

저도 이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됐는데 어마어마한 벌금을 납부하지 않으면서 영업을 이어간다. 그러나 언론에서는 정작 법을 어기는 기업들은 조명하지 않고 노동자들이 불법을 저지른다고 나온다.  

우리가 평소 뉴스를 보면 노동자들의 파업을 불법이라고 자주 말하지만, 기업들이 파업자를 대신해 대체인력을 투입하는 모습을 불법이라고 이야기하는 경우는 거의 보지 못하지 않느냐.

영화가 노동자들이 이기는 모습을 그린다면 관객들이 한 순간 위로는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 우리나라에서 이기는 사례는 너무나 없다. 이 문제가 현실과는 다르기 때문에 영화의 내용을 함부로 결정할 수 없었다. 

사람들이 <카트>를 보고 영화 속 이야기과 같은 싸움을 현실에서 겪고 있는 사람들을 조금이나마 지지한다면, 이 영화는 그것으로 역할을 다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 염정아, 문정희, 김영애, 김강우 등 <카트>에 출연한 배우들은 상업영화, 드라마에 다수 출연했던 배우들이다. 영화를 찍으면서 배우들과의 호흡은 어땠는지? 에피소드는 없었나.
"주연, 조연배우 가리지 않고 대부분의 캐스팅이 순탄했다. 소재가 다소 민감해서 생각할 법도 하지만 그런 모습을 보인 배우들은 거의 없었다.

명필름이란 제작사의 신뢰도가 크게 작용했다고 볼 수 있지만, 여배우들이 자신의 연기력을 불태울 만한 기회를 기다렸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40대 여배우가 단독 주연을 맡는 상업영화 시나리오는 우리나라에서 드물다. 대부분 남자들이 주연이거나 여성이 주연이어도 멜로 장르다. 

염정아 씨는 <카트>의 시나리오를 좋아했고 흔쾌히 수락했다. 시나리오에 다른 의견을 제시하지도 않았고 ‘잘 할 수 있는 역할’이라고 의지를 보이기까지 했다. 배우가 그렇게 의지를 보이면 감독은 당연히 캐스팅할 수밖에 없다.

천우희(올해 청룡영화제 여우주연상) 씨도 자신의 나이에 맞는 역할을 하고 싶어해 호감을 표시했고, 도경수(아이돌 그룹 EXO 멤버) 씨는 일단 주인공 아들역할을 두고 회사 차원에서 청춘스타를 캐스팅하자고 전략적으로 접근했던 부분이 있었다. 

도경수 씨는 귀엽고 개구쟁이 같은 이미지였지만 실제로 만나보니 바른 이미지가 있었다. 오디션도 굉장히 잘했고 영화 속 배역이 가난하면서도 자존심이 강한 역할인데, 자신의 경험도 솔직하게 밝혀준 점이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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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지영 감독. ⓒ제주의소리
- 4살 때 부터 고등학교(신성여고)때까지 제주도에서 보낸 것으로 알고 있다. 다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내 정서적인 DNA는 제주도에서 보낸 15년의 시간에서 왔다’고 말했고, 특히 어머니와 할머니 손에서 자라며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도 했다. 어릴 적 감독 주위에 있던 제주여성들은 어떤 여성들이었나?
" 제 첫 장편영화(지금, 이대로가 좋아요)도 그렇고 이번 영화까지 여자들이 많이 나온다. 첫 영화는 자매, <카트>는 아줌마들이다. 이것은 제 성장과정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어머니, 할머니들 속에서 자란 가족이 콤플렉스라기보다는 다른 사고를 가능케 한 토양이었다. 당시에는 잘 느끼지 못했지만 제 영화 속에서 발견되는 여자 이야기는 어린 시절 제 가족에서 비롯된 부분이다. 

젊었을 적엔 몰랐지만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엄마, 엄마친구, 언니, 외할머니, 친할머니 등 여자로 이뤄진 가족과 어울렸던 기억을 자연스럽게 반추했다. 

당시에는 어머니도 할머니도 그렇고 집안일뿐만 아니라 밭이든 어디든 꼭 일을 해서 돈을 벌었다. 내가 보는 여자어른들은 늘 일을 했다. 그런 영향을 받았는지 나도 당연히 커서 일을 해야 한다는 인식이 자리잡았다. 아이를 낳고 5년 정도 집에 있었는데 솔직히 힘들었다.(웃음)"


- 제주영화제가 10회째를 맞았다. 제주영화제에 당부하고 싶은 말이나, 제주도의 영화예술 정책에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제주도에는 일반 상업영화를 주로 취급하는 멀티플렉스만 있고 독립영화나 단편영화 같은 다른 영화를 볼 수 있는 시네마테크(전용극장)이 없다. 멀티플렉스 안에서라도 다른 영화를 볼 수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면 결국 영화제를 통해서만 비상업영화를 만날 수밖에 없다.

시민들이 다양한 문화를 접하는 문화공공성 차원에서 비상업영화 상영공간은 필요하다고 본다. 당연히 수익적인 면에서 뒤떨어질 수 있지만 제주도민들이 다양한 문화를 향유하기 위한 최소한의 공간은 마련돼야 하지 않을까. 영화제의 안정적인 운영을 위한 제도적인 지원과 시설적인 부분 둘 다 필요하다. 

제주영화제에 왔던 후배 감독들의 말을 들어보면 제주영화제를 굉장히 좋은 영화제로 기억하고 있다. 제주의 뛰어난 경관, 환경은 많은 영화들이 선호하는 요소다. 제주의 경관 자체만으로 감독들에게 힐링을 준다. 좋은 곳에서 열리는 좋은 영화제의 역사가 계속 이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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