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가 이겸, 제주 중산간을 걷다] (1) 납읍리

납읍, 이렇게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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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활이 창작의 힘을 빌려 예술이 되듯이 자연스러움에는 어떤 것도 견주지 못한다. 감귤 밭 바람막이 그물.

나는 중산간을 좋아한다. 바다를 거쳐 나무를 통과하는 순한 바람이 좋다. 여름 한 낮 그늘의 온기와 찬 겨울 상큼한 햇살은 생기를 전한다. 제주 중산간은 사계절 생명을 보여준다. 삼춘들의 숨소리는 땅을 쉬지 않게 한다. 그 결과 어디를 가나 초록의 밭작물이 풍성하다. 겨울, 이 계절에도 매서운 바람보다 강인한 채소들은 성장하며 견딘다. 살아 있음을 곁에서 볼 수 있어서 나는 중산간이 좋다. 납읍리 사무소를 끼고 길을 오른다. 어디에서나 만나는 돌담, 어디에서 만나도 정이 간다. 돌담 사이로 오가는 바람과 냄새는 금세 흩어지고 모인다. ‘뭐 볼 거 있어서 카메라까지 들고 다니냐’식의 눈짓을 받으며 걷는다. 익숙한 것에서 다름을 발견하기란 힘든 것일 것이다. 사랑도 익숙해지니까. 

납읍리에서는 자연스런 색깔을 발견할 수 있다. 그 칼라는 생활에서 나오는 것으로 각자의 개성이 잘 드러나 있다. 자유로움에서 개성이 나오고 그것들이 길가에 흩어져있다. 견고하지 않은 색들이 모이고 흩어져 윤택한 마을의 색을 만들었다. 중산간의 다른 마을에서 찾아보기 드문 풍경이다. 대문과 벽, 지붕과 창고의 빛 바랜 색은 화려함에 조용함까지 갖췄다. 시골 생활을 하는 이들은 자연스럽게 자신을 표현하는 능력이 있다. 나는 그것들 중 하나가 여기에 이렇게 색으로 표현되었다고 생각되어진다.

▲ 생활이 창작의 힘을 빌려 예술이 되듯이 자연스러움에는 어떤 것도 견주지 못한다. 감귤 밭 바람막이 그물.

도로변 귤밭을 지나다 Javacheff Christo의 작품 ‘달리는 울타리’를 떠올리게 되었다. 규모야 비교할 수 없이 작지만 예술을 대지로 끌어 들인 ‘대지미술’과의 다름은 무엇이겠나 싶다. 오히려 삶이 투영된 살아있는 예술작품이라 느껴진다. Fabrizio Corneli의 빛과 그림자를 이용한 작품을 떠올리기도 했다. 태양보다 큰 빛과 그림자를 만드는 것이 우리에게 있으랴. 시멘트로 덮인 올레는 시칠리아의 작은 뒷골목을 연상시킨다. 흙길만 올레겠는가? 시멘트 길에도 삶은 있다.

한 달을 전 후로 중산간 도로가 확장 개통하였다. 무수천에서 상가리까지 길이 넓어졌으니 이제 납읍리와 제주시를 오가는 일은 한 층 빨라졌다. 납읍리는 아직 편도 1차선 도로를 쓰고 있어서 마을이 둘로 나뉜 느낌이 적어서 좋다. 길이 크게 나뉠수록 사람은 멀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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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익숙함이 습관을 만들진 않지만, 다름이 특별함을 보여줄 수는 있다. 주택과 창고의 일상적인 특별함.

납읍 사람들은 현명했다.

제주도 이주를 결정한 나는 아내와 딸이 함께 할 둥지를 마련해야 했다. 이런 요량으로 7개월 동안 제주지역을 살폈다. 주거지로 적당한 중산간 마을 중 납읍리를 선택했다. 가장 중요한 선택의 기준은 ‘초등학교가 있어야 할 것’이었다.

마을에서 학교의 중요성은 매우 쉽게 알 수 있다. ‘학교가 사라진다’를 가정하면 된다. 학교가 없으면 아이들이 사라지기 시작한다. 아이들의 소리가 끊기면 젊은이들도 이동한다. 마을은 늙고 공동화가 가속화된다. 마을에서 학교가 사라진다는 의미는 심하게 말해 사라지는 마을이 될 확률이 높아진다는 뜻과 동일하다. 특히, 초등학교는 학생을 공유하는 지역이 좁기 때문에 더욱 중요하다. 나는 마을에서 아이들의 소리가 사라지는 것을 상상만 해도 절망적이다. 아이는 나와 마을의 미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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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익숙함이 습관을 만들진 않지만, 다름이 특별함을 보여줄 수는 있다. 주택과 창고의 일상적인 특별함.

‘납읍초등학교’는 단일 마을로 초등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1946년 정식개교 인가를 받았고 1947년 교사가 완성되어 기초교육을 담당해왔다. 그러던 중 1992년 총학생수 100명 미만이었던 납읍국민학교는 분교장 격하 통지를 받는다. 1993년에는 분교장 기준이 60명 이하로 조정되었으나 학생 수 감소는 계속되었다. 마을 사람들은 1991년부터 학교살리기운동에 착수하였는데 1996년 초의 학생 수는 53명이었다. 1997년 8월 학교살리기운동 목적으로 다가구주택을 완공하였고, 그 결과 1998년도의 학생 수는 93명으로 증가하였다. 이 시기 전국의 많은 초등학교들이 폐교되었고, 분교로 격하되었다. 그리고 다수의 마을에선 아이와 젊은이들이 떠났다. 그런데 납읍리는 전국최초로 학교살리기운동에 성공한 것이다. 7년 노력한 결과가 현재의 ‘납읍초등학교’이다. 가까운 앞날과 먼 미래를 준비하는 사람은 현명하다. 이들과 이웃으로 지내게 되어 좋다. 이곳에서 내일을 준비한다. 

2012년 12월 31일 기준으로 납읍리는 541세대 1348명이 살고 있다. 면적은 8.06 제곱킬로미터로 애월읍 26개 리 중 10번째로 넓다. 이 크기는 얼마나 되는 걸까? 참고로 우도면의 면적은 6.18제곱킬로미터이다. 납읍리는 임야와 전이 각각 약 29% 정도, 과수원은 약18% 정도이다. 납읍리 주민들이 급수를 해결한 것은 저수탱크를 설치한 1973년 이후인데 같은 해에 납읍리의 모든 가정에 전기가 공급되었다. / 이겸(여행과 치유, 제주도여행학교 대표)

이겸은 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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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진치료학회 수퍼바이저. 아동후원 비영리단체 '밝은 벗' 대표. 사진가이며 작가. '가고 싶은 만큼 가고, 쉬고 싶을 때 쉬어라', '메구스타 쿠바', '돌에 새긴 희망, 미륵을 찾아서' 등 책을 썼다. 월간‘샘이 깊은 물’ , 월간'한국화보','SEOUL'의 기자였다.

KODAK PHOTO SALON, SAMSUNG PHOTO GALLERY, DURU GALLERY, '더딘 대화, 경주' 사진갤러리 류가헌 등에서 열 번의 개인초대전을, '아시아의 젊은 사진가 20인전'(나라 국립미술관, 일본), '남가주 사진가협회전'(LA 한국문화원,미국) 등 단체전에도 참가했다.

※ 여행과치유 카페(http://cafe.naver.com/megustajej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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