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가 이겸, 제주 중산간을 걷다] (1) 납읍리
납읍, 이렇게 보다
나는 중산간을 좋아한다. 바다를 거쳐 나무를 통과하는 순한 바람이 좋다. 여름 한 낮 그늘의 온기와 찬 겨울 상큼한 햇살은 생기를 전한다. 제주 중산간은 사계절 생명을 보여준다. 삼춘들의 숨소리는 땅을 쉬지 않게 한다. 그 결과 어디를 가나 초록의 밭작물이 풍성하다. 겨울, 이 계절에도 매서운 바람보다 강인한 채소들은 성장하며 견딘다. 살아 있음을 곁에서 볼 수 있어서 나는 중산간이 좋다. 납읍리 사무소를 끼고 길을 오른다. 어디에서나 만나는 돌담, 어디에서 만나도 정이 간다. 돌담 사이로 오가는 바람과 냄새는 금세 흩어지고 모인다. ‘뭐 볼 거 있어서 카메라까지 들고 다니냐’식의 눈짓을 받으며 걷는다. 익숙한 것에서 다름을 발견하기란 힘든 것일 것이다. 사랑도 익숙해지니까.
납읍리에서는 자연스런 색깔을 발견할 수 있다. 그 칼라는 생활에서 나오는 것으로 각자의 개성이 잘 드러나 있다. 자유로움에서 개성이 나오고 그것들이 길가에 흩어져있다. 견고하지 않은 색들이 모이고 흩어져 윤택한 마을의 색을 만들었다. 중산간의 다른 마을에서 찾아보기 드문 풍경이다. 대문과 벽, 지붕과 창고의 빛 바랜 색은 화려함에 조용함까지 갖췄다. 시골 생활을 하는 이들은 자연스럽게 자신을 표현하는 능력이 있다. 나는 그것들 중 하나가 여기에 이렇게 색으로 표현되었다고 생각되어진다.
도로변 귤밭을 지나다 Javacheff Christo의 작품 ‘달리는 울타리’를 떠올리게 되었다. 규모야 비교할 수 없이 작지만 예술을 대지로 끌어 들인 ‘대지미술’과의 다름은 무엇이겠나 싶다. 오히려 삶이 투영된 살아있는 예술작품이라 느껴진다. Fabrizio Corneli의 빛과 그림자를 이용한 작품을 떠올리기도 했다. 태양보다 큰 빛과 그림자를 만드는 것이 우리에게 있으랴. 시멘트로 덮인 올레는 시칠리아의 작은 뒷골목을 연상시킨다. 흙길만 올레겠는가? 시멘트 길에도 삶은 있다.
한 달을 전 후로 중산간 도로가 확장 개통하였다. 무수천에서 상가리까지 길이 넓어졌으니 이제 납읍리와 제주시를 오가는 일은 한 층 빨라졌다. 납읍리는 아직 편도 1차선 도로를 쓰고 있어서 마을이 둘로 나뉜 느낌이 적어서 좋다. 길이 크게 나뉠수록 사람은 멀어진다.
납읍 사람들은 현명했다.
제주도 이주를 결정한 나는 아내와 딸이 함께 할 둥지를 마련해야 했다. 이런 요량으로 7개월 동안 제주지역을 살폈다. 주거지로 적당한 중산간 마을 중 납읍리를 선택했다. 가장 중요한 선택의 기준은 ‘초등학교가 있어야 할 것’이었다.
마을에서 학교의 중요성은 매우 쉽게 알 수 있다. ‘학교가 사라진다’를 가정하면 된다. 학교가 없으면 아이들이 사라지기 시작한다. 아이들의 소리가 끊기면 젊은이들도 이동한다. 마을은 늙고 공동화가 가속화된다. 마을에서 학교가 사라진다는 의미는 심하게 말해 사라지는 마을이 될 확률이 높아진다는 뜻과 동일하다. 특히, 초등학교는 학생을 공유하는 지역이 좁기 때문에 더욱 중요하다. 나는 마을에서 아이들의 소리가 사라지는 것을 상상만 해도 절망적이다. 아이는 나와 마을의 미래이기 때문이다.
‘납읍초등학교’는 단일 마을로 초등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1946년 정식개교 인가를 받았고 1947년 교사가 완성되어 기초교육을 담당해왔다. 그러던 중 1992년 총학생수 100명 미만이었던 납읍국민학교는 분교장 격하 통지를 받는다. 1993년에는 분교장 기준이 60명 이하로 조정되었으나 학생 수 감소는 계속되었다. 마을 사람들은 1991년부터 학교살리기운동에 착수하였는데 1996년 초의 학생 수는 53명이었다. 1997년 8월 학교살리기운동 목적으로 다가구주택을 완공하였고, 그 결과 1998년도의 학생 수는 93명으로 증가하였다. 이 시기 전국의 많은 초등학교들이 폐교되었고, 분교로 격하되었다. 그리고 다수의 마을에선 아이와 젊은이들이 떠났다. 그런데 납읍리는 전국최초로 학교살리기운동에 성공한 것이다. 7년 노력한 결과가 현재의 ‘납읍초등학교’이다. 가까운 앞날과 먼 미래를 준비하는 사람은 현명하다. 이들과 이웃으로 지내게 되어 좋다. 이곳에서 내일을 준비한다.
2012년 12월 31일 기준으로 납읍리는 541세대 1348명이 살고 있다. 면적은 8.06 제곱킬로미터로 애월읍 26개 리 중 10번째로 넓다. 이 크기는 얼마나 되는 걸까? 참고로 우도면의 면적은 6.18제곱킬로미터이다. 납읍리는 임야와 전이 각각 약 29% 정도, 과수원은 약18% 정도이다. 납읍리 주민들이 급수를 해결한 것은 저수탱크를 설치한 1973년 이후인데 같은 해에 납읍리의 모든 가정에 전기가 공급되었다. / 이겸(여행과 치유, 제주도여행학교 대표)
이겸은 누구? 한국사진치료학회 수퍼바이저. 아동후원 비영리단체 '밝은 벗' 대표. 사진가이며 작가. '가고 싶은 만큼 가고, 쉬고 싶을 때 쉬어라', '메구스타 쿠바', '돌에 새긴 희망, 미륵을 찾아서' 등 책을 썼다. 월간‘샘이 깊은 물’ , 월간'한국화보','SEOUL'의 기자였다. KODAK PHOTO SALON, SAMSUNG PHOTO GALLERY, DURU GALLERY, '더딘 대화, 경주' 사진갤러리 류가헌 등에서 열 번의 개인초대전을, '아시아의 젊은 사진가 20인전'(나라 국립미술관, 일본), '남가주 사진가협회전'(LA 한국문화원,미국) 등 단체전에도 참가했다. ※ 여행과치유 카페(http://cafe.naver.com/megustajej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