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관사 행정대집행 '강경카드'에 제주도 "협상 중인데"...'기관 갈등'으로 번지나

해군이 제주해군기지 군 관사 건립과 관련해 행정대집행 카드를 꺼내자 제주도가 부글부글 끓고 있다.

특히 해군이 대화와 협의를 할 것처럼 원희룡 지사를 만나놓고 하루만에 행정대집행 계고장을 강정마을에 보내자 뒤통수를 얻어맞았다는 반응이다. 자신들을 완전히 무시한 듯한 해군의 행태에 제주도는 황당함을 넘어 분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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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섭 해군 참모차장(왼쪽)과 원희룡 제주지사.  ⓒ제주의소리
해군은 27일 오후 서귀포시 강정마을회를 찾아 군 관사 부지 앞 농성천막 철거를 위한 행정대집행을 예고하는 계고장을 직접 전달했다. 

이번 계고장은 지난 4차례와 달리 '국방부장관' 명의였다. 그동안은 '제주민군복합항건설사업단장' 직인을 사용했다. 

계고장에는 29일까지 해당 부지 내 강정마을회 측의 모든 시설물을 철거하라는 내용이 담겼다. 응하지 않을 경우 31일 행정대집행에 나서겠다는 내용도 들어있다.

국방부장관 명의를 쓴 것에 대해 해군이 행정대집행의 주체가 될 경우 법률적으로 다툼의 소지가 있다고 판단했다는 분석이 있다. 군 관사 건설을 위한 국방부의 단호한 의지가 반영된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이번 행정대집행 계고장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많다.

기본적으로 제주도와 해군 수뇌부는 그동안 여러 차례 군 관사 문제를 놓고 물밑에서 협의를 벌여왔다.

해군도 한때는 주민 갈등을 우려해 군 관사 이전에 대해 긍정적이었다. 또한 제주도는 강정마을에서 5분 정도 거리에 있는, 해군측이 필요로 하는 부지(9700㎡)보다 훨씬 넓은 2만여㎡의 대체 부지를 대안으로 내놓기도 했다.

게다가 4번째 행정대집행 계고 이후 해군 참모차장이 23일 원희룡 지사 면담을 요구하면서 군관사 문제가 전향적으로 풀리지 않겠느냐는 기대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정호섭 해군참모차장과 원 지사의 면담은 서로의 입장만 확인한 채 별다른 성과없이 끝났다. 

이어 원 지사는 27일 세계평화의섬 지정 10주년 기자회견 자리에서 "제주도는 강정마을회를 중심에 두고, 마을공동체 회복과 명예회복, 주민 갈등을 해소시키는 방향이 아닌 어떤 방향이나 행동에 대해 동의할 수 없다"며 군관사 문제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밝혔다.

이런 상황에서 해군이 곧바로 행정대집행이라는 강공카드를 꺼내 든 것이다.

해군이 행정대집행 절차를 밟기 위해 원 지사를 만나는 등 '명분쌓기'를 한 것이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게다가 행정대집행 예정일인 31일은 원 지사가 제주에 없는 날이다. 원 지사는 29일부터 31일까지 3박4일간 한일시도지사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일본 출장을 떠난다. 

제주도 관계자는 "협상 중에 국방부 명의의 행정대집행 계고장을 강정마을에 전달한 것은 한마디로 뒤통수를 친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제주도를 완전히 무시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당장 해군이 군 관사 건립을 강행하면 법적으로 막을 방법은 없다. 

다만, 지난해 국회에서 군관사 건립 예산 98억원을 '수시배정 예산'으로 분류함으로써 제주도와 협의 없이는 집행이 불가능한 상태다.

수시배정예산이란 국방부 예산으로 편성하지 않고 기재부 예산으로 편성한 상태에서 조건이 이행될 때마다 기재부가 예산을 넘겨주는 것이다.

원 지사는 "강정 공동체의 상처를 치유하고, 명예를 회복시키고, 사법적인 문제도 해결해 갈등으로 묶여있는 현 상황을 도민화합 차원에서 해결한다는 입장"이라며 "제주도는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대안으로 해군이 2014년 예산 30억원으로 군관사 건설을 강행하면, 제주도는 수시배정 예산 협의를 하지않을 수도 있다.

군관사 문제가 해군과 강정마을 간 갈등을 넘어서 자칫 국방부와 제주도의 기관간 갈등으로 번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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