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수열이 30여 년 시를 쓴 이유 "시라도 쓰지 않으면 미안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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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씌인 사람’이란다. 나무가, 풀이 못 다한 이야기를 인간의 언어로 대신 받아 적을 뿐이란다. 김수열(57) 시인이 새 시집에 <빙의>라는 이름을 붙인 이유다.

최근 다섯 번째 시집 <빙의>를 출간한 김 시인을 지난 26일 [제주의소리] 사무실에서 만났다.

1982년에 등단해 시를 써온 지 30년이 넘었다. 지난 시집이 호평을 거두자 시인은 생각이 많아졌다. ‘나는 정말 시인이 맞나?’ 스스로 조심스러워졌다. 지우는 것도 많아지고 신중해졌다. 그러나 낮은 것, 여린 것, 약한 것들을 마주하면 시를 쓰는 수밖엔 도리가 없었다. 받아 적었더니 한 권의 시집이 됐다. 쥐어짜낸 시는 한편도 없다고 그는 말했다.

이번 시집에선 모리셔스, 베트남, 연변 등 배경이 넓어졌다. 모리셔스에선 막일을 하는 노동자에게, 베트남에선 학살로 가족을 잃은 유족에게, 연변에선 목숨을 걸고 먹고 살기 위해 도망 온 북조선 사내와 눈을 맞췄다. 시라도 쓰지 않으면 미안했기에 펜을 들었다. 

그는 시인을 가리켜 ‘매개자’라고 표현했다. 그가 정의하는 시는 단순한 사물을 두고 남들이 놓친 의미를 새롭게 만드는 것이다. 시인의 일은 ‘의미부여’. 좋은 시인은 대상과 눈높이를 맞추고 대화를 나누고 그것을 시로 적는다.

후배들을 위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문학보다 밥벌이가 먼저인 시대. 글을 쓰는 일이 예전 같지 않더라도 ‘조급해 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지역에서 진정성을 가지고 활동하는 작가들이 더 많이 알려질 수 있는 풍토가 조성되기를 바랐다.

지난 30 여 년 동안 교직에 몸담아 온 시인은 오는 2월로 정든 교단을 떠난다. 오랜 시간 그의 시 세계의 근원이 됐던 곳이다. 떠나는 아쉬움을 “더 노력하다 보면 얼마든지 다시 만날 수 있다”는 말로 간추렸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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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씌인 사람이다. 나무가, 풀이 못 다한 이야기를 듣고 인간의 언어로 대신 전할 뿐이다.”
- 네 번째 시집 <생각을 훔치다> 이후 4년 만에 시집을 냈다. 소회를 여쭙고 싶다. 
= 지난 시집이 기대 이상의 좋은 평을 받았다. 제가 좋아하는 문학인인 ‘오장환 문학상’도 받았다. 그래서인지 시 쓰기가 구속이 되기도 하고 무게감도 생겼다. 여느 때와는 달랐다. 내가 1982년에 등단해 이제 33년이 다 돼 간다. 돌 던지면 시인이 맞는다고 할 정도로 시인이 많아지는 시대인데, ‘나는 정말 시인이 맞나?’하는 생각에 조심스러워졌다. 지우는 것도 많아지고 신중해졌다. 그러나 쥐어짜낸 시는 없다. 저는 고민했지만 판단은 독자의 몫이다.

- 이번 시집 제목이 ‘빙의’이다. 사전적인 의미로 귀신에 들렸다는 건데, 시집에선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 제목을 고민했다. 이 제목이어야 했다. 빙의라는 건 혼 씌임을 가리킨다. 망자의 혼이 씌어서 망자의 말을 대신하는 것이다. 시인은 씌인 사람이다. 나무가, 풀이 못 다한 이야기를 듣고 인간의 언어로 대신 전할 뿐이다.

- 서평에 ‘시의 배경이 한층 드넓어 졌다’는 표현이 있다. 시인께선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 경계할 것 중에 하나가 단순하게 시야가 넓어진다는 것이다. 사람의 시야가 넓어진다는 것은 깊이를 유지하며 넓어질 때 그게 진정하게 껴안을 수 있는 범위고 폭이라고 생각한다. 시의 배경이 넓어졌다는 건 솔직히 부담스러운 평이다. 우연한 기회에 가볼까 말까한 모리셔스에 가게 됐다. ‘어디든 상처 받은 영혼들이 살아가는 구나’ 생각이 들었다. 5박6일 짧은 일정에 느낀 게 인종에 대한 대립, 자본에 의한 대립이 있다는 걸 느끼게 됐다. <숯불 굽는 사내>는 형편이 너무 어려워 우여곡절 끝에 연변의 갈비집에서 일하게 된 사내의 이야기다. 우연히 담배 피우러 나왔다가 그 사람과 마주치게 됐는데, 같이 담배를 피우다 본인 이야기를 털어놨다. 부모에 대한 그리움은 이념보다 무섭구나, 서둘러 가는 사내의 뒷모습이 짠했다.

시인은 똑같은 것을 보더라도 자기가 좋아하는, 보고 싶어 하는 것을 보는 게 있다. 저는 정말이지 낮은 것, 여린 것, 약한 것에 마음이 간다. 처음부터 시를 쓰면서 그런 데 관심이 있었다. 그런 걸 보면서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내가 할 수 유일한 것은 짤막한 시라도 쓰는 것이었다. 그 사람은 제가 이런 시를 썼는지 모를지라도 쓰지 않으면 미안했다.

“단순한 사물을 두고 남들이 놓친 의미를 새롭게 만들어내는 것이 시다. 좋은 시인의 자세는 그런 대상과 눈높이를 맞추고 대화하려는 자다.”
- 교감을 나누는 대상도 예전보다는 범위가 더 넓어졌다는 인상이다.
= 나이가 많아져서가 아니라 언어는 소통의 수단이다. 이 수단의 범주를 확장시키다 보면 예를 들어 숲에 들어가면 숲과 소통을 하게 된다. 쓰러져 있는 나무를 보며 ‘너 참 힘들겠다’ 이야기를 한다. 그렇게 내 눈에 드는 것이 전부 대상이 됐다. 어느 시인이 이야기하던데, 시인은 발명이 아니라 발견을 한다. 시인의 일은 이미 있는 것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하는 거다. 이미 존재하고 오래 있던 것과 내가 소통하면서 의미부여를 하는 것뿐이다. 도종환 시인의 ‘흔들리며 피는 꽃’을 보면 누구인들 비 맞은 꽃을 본 적이 없겠는가, 바람에 흔들리는 꽃을 본 적이 없겠는가. 단순한 사물을 두고 남들이 놓친 의미를 새롭게 만들어내는 것이 시다. 좋은 시인의 자세는 그런 대상과 눈높이를 맞추고 대화하려는 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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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의 자세라.
= 시인은 ‘매개자’다. 시 쓰는 후배들에게 종종 조언한다. 조급성, 성급함을 버리라고 한다. 남의 말을 듣고, 남이 쓴 시를 읽으라고 한다. 그 안에 시가 담겨있다. 시는 창조가 아니라 발견이다. 지난해 신엄중학교에 근무하면서 전교생이 쓴 시를 책으로 엮어내는 과정은 먹먹한 시간이었다. 아이들이 시를 시험문제로 생각하고 있어서 동료교사도 가능하겠냐고 묻던 프로젝트였다. 그런 아이들에게 자기 이야기를 쓰도록 했다. 못생긴 애는 못생긴 시를, 잘생긴 애는 잘생긴 시를, 키 큰 아이는 키 큰 시를 쓰도록 했다. 그렇게 모은 시가 예쁜 시집이 됐다. <공부하기 싫은 날>(도서출판 작은 숲, 값 1만2000원)이란 시집이다. 누군가 김수열이 중앙에 아는 사람이 있으니 전국 최초로 아이들이 쓴 시집을 서울에 있는 출판사에서 유가지로 발행했다고 하는 말도 하던데 그때마다 내 대답은 ‘내가 한 게 아니라 나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모아준 사람일 뿐’이라고 말한다. 

- 제주작가회의에서 회장을 맡고 있다. 시인께서 본 제주의 문학계는 어떤 분위기인가?
= 단체를 떠나서 진정성을 가지고 문학하는 분이 많다는 걸 안다. 그런데 아직도 문단권력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진정성을 가지고 문학하는 분들에게 중앙에 이름 있는 문학지에 글도 싣고 할 기회가 없다는 것이 안타깝다. 제주에도 두 단체가 문학지를 내서 글을 발표할 수 있는 창구 역할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어떤 형식이든 창구가 다양화돼서 이분들의 진정성을 내보이는 기회가 되면 좋겠다. 반면 누워서 침 뱉는 소리이지만 흉내만 내는 문학가들도 있다. 이들을 걸러내는 장치는 독자의 몫이다. 지역에서, 지역작가에게 애정을 갖고 격려를 할 수 있는 풍토가 조성됐으면 좋겠다.

- 요즘 젊은 작가가 많이 없다는 평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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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도 솔직히 문학에 목숨을 건 적은 없지만 저희 때는 문학에 목숨을 걸고, 온 힘을 쏟은 친구들도 있었다. 그때보다 진정성이 약해진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 왜 그런가 보면 먹고사는 문제, 생활이 먼저이니까 그렇다. 밥벌이가 되지 않으니까, 문학이 생활이 아닌 여흥이 돼버리다 보니까 말이다. 그리고 뛰어난 젊은 작가가 있는데도 우리가 모를 수도 있다. 하지만 자신의 작품을 몰라준다고 독자 탓을 할 게 아니라 진정성이 우선이다. 정말 기진맥진할 수 있는 자세로 한 편을 썼으면 한다. 그런 시가 쌓이다보면 시간의 문제이지만, 이해하는 독자가 분명 나타난다.

- 앞으로의 계획은 어떤지.
= 오는 2월말로 교단을 떠난다. 명예 퇴직한다. 30년 동안 몸담은 학교라는 공간은 제 시의 근원 중 하나였다. 나머지는 나의 가족이었고. 지난 30년 간 먹여살려준 모태를 떠나는 아쉬움과 섭섭함이 든다. 그러나 더 노력하다 보면 얼마든지 다시 만날 수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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