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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세는 아니다’는 선전술

권영후 kyhoo49@hanmail.net 2015년 02월 02일 월요일 08:09   0면

[권영후 칼럼] 소통은 솔직성, 투명성을 요구한다

“거짓말을 되풀이하면 대중은 결국 믿게 된다”는 말이 있다. 연말정산을 둘러싼 논란이 뜨거운 가운데 정부는 ‘증세는 아니다’고 지속적으로 주장한다. 시민들은 새로 시행된 세액공제 제도에 따라 정산해보니 환급은 커녕 세금을 더 납부해야하는 결과에 분통을 터트리며 정부의 ‘거위의 털 뽑기’ 증세를 매섭게 비판하고 있다. 연말정산 사태를 두고 정부는 ‘증세가 아니다’, 시민은 ‘실질적인 증세다‘는 주장이 맞서 있다. 과연 누구의 주장이 옳다고 봐야 하는가. 정부의 반증세프레임 전략의 결과로 거짓과 진실의 의미 구분이 모호해졌다.

연말정산이나 담배값 인상은 작년에 국회의 동의를 받아 올해부터 시행되고 있다. 이에 대해 정부는 세제를 고쳐 세금을 올리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증세가 아니라고 강변한다. 지록위마(指鹿爲馬)다. 세금폭탄론을 우려하여 간접적으로 증세 꼼수를 피우고 있기 때문이다. 서민들의 잔돈을 모아 부족한 재정을 충당하겠다는 전략이다. 국회의 동의를 받아 국민들에게 부담을 더 무겁게 지우는 행위가 증세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정부는 아직도 민주사회에서 용도폐기된 낡은 선전술에 의지하여 국민들을 설득하려고 한다. 세금은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내기 싫어하는 아주 민감한 문제다. 민주주의는 조세저항의 역사를 거쳐 발전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반복해서 세뇌하는 선전술은 증세 꼼수에는 적합할지 모른다. 디지털 문명이 발전할수록 시민들의 집단적 사고를 조직화하고 단순화할려는 시도는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 정부가 아무리 인기가 높고 우호적인 매체환경이 조성되었어도 설득과 동의를 배제한 선전은 참혹한 결과를 낳을 뿐이다.

정부는 연말정산 사태를 홍보부족, 소통부재 탓으로 돌리는 데 급급하다. 현대 정치에서 시민의 여론을 수렴하여 정책에 충분히 반영하고 설득하여 동의를 구하는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은 필수 요소다. 세금을 대하는 인간의 본성을 이해한다면 쌍방향 소통의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권위주의 시대에나 가능했던 선전이나 공보전략에 대해 아직도 미련을 갖고 있다면 큰 오산이다.

이번 연말정산이나 담배값 인상에서 정부는 소통을 강조하지만 실제로는 ‘증세는 아니다’고 외치는 퇴행적인 선전의 모습만 보여 주었다. 소득세제를 누진적으로 고쳐 ‘부자증세’를 꾀했다고 주장하지만 극단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양극화 현상을 해소하기 위한 대책이라고 볼 수 없다. 고소득자 증세는 성역이 되어 설득이 어려우니 중저소득자를 대상으로 하는 선전은 통할 수 있다는 자만심에 빠졌던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과연 국민의 여론을 제대로 파악하여 반영했는지 묻고 싶다. 왜 국민들이 연말정산에 대해 크게 화를 내고 있는지 통렬한 성찰이 필요하다.

정부는 공식 조직의 명칭으로 선전, 공보보다는 홍보, 소통을 사용하고 있다. 홍보보다는 소통이 더 진전된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소통은 여론시장에서 가장 이상적인 상태를 말한다. 파국적인 사회적 갈등과 완고한 모순 덩어리를 해체하여 새로운 화합의 모습으로 재탄생시키는 종결자다. 권위적인 정부는 사이비 소통이라는 가면을 쓴다. 거짓 소통은 반짝 성공할 수 있으나 결국은 병으로 곪아 국민에게 피해를 준다. 소통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할 때 사회적 비용이 높아지고 정책은 실패할 수 밖에 없다.

우리 정치의 공론장에서 전근대적인 선전, 공보와 민주사회의 홍보, 소통이 혼재되어 나타나는 현상은 독일 철학자 에른스트 블로흐가 체계화한 ‘비동시성의 동시성’으로 규정할 수 있다. 동시에 존재할 수 없는 시간이 동시에 나타난다는 의미다. 국민행복을 부르짖으면서 독소, 암덩어리, 바이러스, 기요틴 같은 혐오와 배제의 용어들이 정치적 메시지로 남용되고 있다. 국가권력의 독단적인 권위주의가 굳건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민주 발전을 뒷걸음치게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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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영후 소통기획자.
소통은 솔직성, 투명성을 요구한다. 그래야 시민의 설득과 동의가 이루어질 수 있다. 독일 사회학자 위르겐 하바마스는 소통 정의와 관련 “첫째, 누구나 배제되는 사람없이 평등하게 참여해야 한다. 둘째, 어떤 주장이나 관점도 자유롭게 개진될 수 있어야 한다. 셋째, 상대의 말을 자신의 관점에서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관점에서 해석함으로써 상보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전제조건을 제시하였다. 이러한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정부가 노력할 때 소통의 권위와 신뢰가 생겨 진정으로 국민과 함께하는 정치를 펼칠 수 있을 것이다. /권영후 소통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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