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선충과 전쟁] ③ 친환경 제주형 방제 매뉴얼 마련해야...'숲을 보는' 방제모델 필요

2년 사이 급작스럽게 증가한 소나무 재선충병 감염목으로 제주 산림 전체가 신음하고 있다. 수백억원의 예산을 쏟아 부으며 3년째 방제 작업에 목을 매고 있지만 1차 방제는 사실상 실패했다. 일부 사업장은 비위 행위로 경찰 조사를 받고 있다. 제주도는 또다시 수백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2차 방제를 벌이고 있다. 무차별적인 고사목 제거로 환경 파괴와 생태계 붕괴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제주도는 뒤늦게 지역에 맞는 방제 매뉴얼 마련에 착수했다. [제주의소리]가 세 번째 소나무 재선충병 기획기사로 제주 산림을 보호하기 위한 ‘제주형 방제 매뉴얼’의 현 주소를 짚어봤다. -편집자주  

[글 싣는 순서]
1. ‘빗나간 예측’ 무차별 일방적 방제 화 키워
2. ‘부실한 1차 방제’ 수백억 혈세 곳곳서 누수
3. 친환경 제주형 방제 매뉴얼 서둘러 마련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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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시 오라동의 한 야산. 소나무 재선충병에 추가 감염된  고사목을 제거하는 벌채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김정호 기자 ⓒ제주의소리>
제주도 출신 이학박사인 이종우(43) 박사는 지난 1월14일 [제주의소리]에 낸 특별기고 <여름 왜 제주에선 매미 소리 사라졌을까?>를 통해 재선충 방제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2013년 제주시내 고사목을 대상으로 진행한 샘플링 조사와 외국의 방제 사례를 근거로 한 문제제기였다. 유럽에서 열린 재선충학회에도 직접 참여해 전문가들의 의견도 들었다.

기고가 소개된 뒤 반향은 컸다. 지난 6일 제주도의회에서 열린 제주도 환경보전국 소관 2015년 업무보고에서는 이 박사의 논문을 토대로 한 의원들의 질문이 쏟아지기도 했다.

이 박사는 소나무 고사 원인에 관한 정확한 조사 없이 방제사업이 이뤄진 점을 문제 삼았다. 진단 없이 이뤄진 일방적 고사목 제거로 예찰부실과 방제실패의 악순환이 이어졌다는 것이다. 

그는 분자생물학적 방법을 포함한 최근 재선충병 관련 연구성과를 폭 넓게 받아들여 효율적이고 환경 친화적이며 장기적인 방제와 관리 매뉴얼을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2004년 첫 소나무재선충병이 발견된 이후 10여년이 흘렀지만 제주도는 지금껏 자체 방제 매뉴얼조차 마련하지 못했다. 그 사이 방제에 쏟아 부은 돈만 800억원을 훌쩍 넘어섰다.

재선충이 급속히 확산된 2013년 이후에도 고사원인 조사와 매개충 활동 등에 대한 조사없이 나무 자르기에만 열을 올렸다. 성공적 방제라며 백서까지 발행했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그 사이 민간에서 고사목 원인 조사와 매개충의 활동 시기 조사, 친환경 방제방법에 대한 연구가 이뤄졌다. 민간이 움직이는 동안 제주도는 방제의 기초자료 조차 제대로 제시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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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시 한림읍의 한 야산에서 고사목을 제거하는 소나무재선충병 2차 방제 작업이 한창 이뤄지고 있다. <김정호 기자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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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시 해안동 애조로 주변의 고사목 제거 현장. <김정호 기자 ⓒ제주의소리>
산림청의 재선충병 매뉴얼에 따르면 매개충(솔수염하늘소)이 활동하는 시기는 5~9월이다. 반면 이 박사는 토착화된 솔수염하늘소의 연중 우화 가능성을 제기했다.

지금껏 제주에서 재선충을 옮기는 매개충의 활동기간 등에 대한 기초적 연구는 없었다. 기후변화에 따라 매개충이 봄과 가을에도 활동을 할 경우 방제 시점 자체를 달리해야 한다.

산림청의 월별 계절별 고사목 발생률도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 수천만원을 들여 고사목 발생량을 예측했으나 결과는 빗나갔다. 큰 격차 만큼 도정을 향한 도민들의 신뢰도 추락했다.

예찰 결과에 따라 방제 예산과 인력, 장비 등을 확보해야 하는 중요한 사안이었지만 대응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예찰 부실은 곧바로 방제계획 차질과 품질 저하로 이어졌다. 

나무주사와 항공방제 등 약품 사용에 대한 문제도 고민해야 할 부분이다. 제주도는 보호수와 조경수를 살리기 위해 나무주사를 주입하고 있다. 약품 가격만 4리터에 17만원이 오간다.

하늘에서는 매개충의 활동시기인 4~10월에 약품을 살포한다. 재선충병 감염 방지가 목적이지만 일부 현장에서는 소나무와 생태계를 파괴하는 독이 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나무주사의 경우 명확한 기준 없이 다량의 약품을 여러 차례 주입하면서 오히려 건강한 소나무를 고사시킬 수 있다. 문제 제기는 많았지만 제주도는 상관관계 규명조차 못하고 있다.

항공 방제도 고민해야 할 부분이다. 헬기 방제는 넓은 면적을 손쉽게 방제할 수 있다는 장점과 달리 곤충 등에 피해를 줘 생태계 파괴를 오히려 가속화 할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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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시 한경면의 한 오름. 감귤밭 주변으로 재선충병에 감염된 소나무가 즐비하다. <김정호 기자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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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시 오라동의 한 야산. 벌채한 소나무를 이동시키기 위해 중장비가 오가는 진입로를 만들었다. 진입로를 만들면서 멀쩡한 나무도 잘려 나갔다. <김정호 기자 ⓒ제주의소리>
이종우 박사는 “환경파괴적인 화학약품 방제 대신 최근 개발된 친환경적 방제법을 적극적으로 적용해야 한다”며 “제주도의 기후, 지형에 맞는 방제법 개발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외부의 지적이 잇따르자 제주도는 24일 ‘새로운 방제전략’ 수립 대책을 내놓았다. 매개충 생활사 연구와 월별 고사목 발생률 조사, 약제주입 기준 마련 등이 주요 내용이다.

대부분 외부에서 지적했던 것들이다. 제주도는 자체 조사에는 무리가 있다며 산림청 국립과학산림과학원에 연구를 의뢰했다. 세계유산․한라산연구원의 공동참여도 계획하고 있다.

4월 고사목 제거가 끝나면 곧바로 3차 방제 계획을 세워야 할 시점에서 국립과학산림과학원의 연구 결과가 때맞춰 나올지는 의문이다. 3차 방제의 우려가 나오는 것이 이 때문이다.

김창조 제주도 산림휴양정책과장은 “산림청 매뉴얼 외에 뚜렷한 방제기법은 없다. 지적된 부분들은 연구가 이루어질 것”이라며 “제주에 맞는 방제 매뉴얼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이종우 박사는 이와 관련 “관료가 주도하는 현 체제로는 재선충병 방제에 한계가 있다”며 “방제 주체 간 경쟁을 유도해 실효성 있는 방제가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박사는 또 “지금껏 진행한 방제는 애초에 모델부터 잘못됐다”며 “소나무만 보지 말고 숲과 환경을 생각하는 친환경적인 제주형 방제 모델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정상배 제주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는 “불안정한 행정 조직으로는 전문적인 대응이 어렵다”며 “민간이 참여하는 논의를 통해 더 늦기 전에 숲 정책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정 대표는 "제주는 기후변화에 따른 식생 변화 등 지리학적으로 중요한 곳"이라며 "민과 관, 시민단체가 참여하는 공론의 장을 마련하고 더 늦기 전에 관련 연구도 시작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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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시 한경면의 한 오름. 입구부터 정상까지 재선충병에 감염된 소나무가 곳곳에 보인다. <김정호 기자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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