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는 역사적으로 한반도의 변방인가? 이는 중앙의 잣대로 본 관념에 지나지 않는다. 탐라왕국의 시대, 저 열린 바다의 시대에 제주도는 동아시아 해양문화권의 중심이었고 드넓은 태평양을 중심으로 볼 때 오히려 중국의 서부, 일본 그리고 한반도가 제주도의 변방이다. 

1500년을 이어온 탐라국은 한반도, 중국, 일본과 등거리외교를 펼쳤으며 당나라 때 대륙 비단길이 막혔을 때 해상 실크로드가 열리면서 탐라는 그 중심에 섰고 장보고 시대에는 해상세력의 전진기지였다. 그러나 한반도가 바다를 향한 문을 닫아걸 때 제주도는 유배의 땅, 착취의 땅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올해는 을사늑약이 체결된 지 110년, 해방을 맞은 지 70년이 되는 해다. 일본은 역사왜곡과 반역사적 행태로 반성은커녕 식민지화를 미화하려하고 있다. 한국 근현대사를 연구해온 강만생 선생은 일본이 제주도에 저지른 침탈과 비인도적 행위에 대하여 분노하고 있다. 

지난 2월 26일 인재개발원에서 개최한 ‘탐라의 얼 아카데미’에서 강단에 선 그는 일제가 제주도에서 저지른 만행과 인권탄압에 대하여 여러 예를 들어가며 고발하고 있다. 

한일합방 후 일제가 제일 먼저 저지른 것은 제주민의 어업권의 몰수와 해산물의 탈취였다. 일제는 제주도를 중국본토 침략의 전진기지로 삼고자 알뜨르 비행장을 건설했고 여기서 전투기를 발진하여 상하이와 난징을 폭격했다. 필리핀에서 미국에 밀리자 일본은 관동군 사령부를 제주도로 옮기고 약 7만5000명의 병력을 제주도에 배치했다. 일본에서 보나 미국에서 보나 제주도는 한반도와 상해와 동경이 지근거리이기에 전략요충지였다.  

급기야 일제는 옥쇄작전을 계획하면서 제주도의 해안과 고지대 오름에 지하갱도를 파고 해안가 오름에 해군자살특공기지를 만드는 등 각종 군사시설을 짓기 시작했다. 이 작업에 약 4만여 명의 제주도민이 동원되고 육지에서 광산노동자가 끌려왔다. 동원된 사람들은 임금은커녕 굶주림과 매질에 시달려야 했다. 제주도야말로 태평양전쟁을 경험한 유일한 지역이다. 

오후에 우리 40명의 교육생들은 사라봉·별도봉·서우봉의 진지동굴을 관람하였다. 강만생 선생은 일제의 만행은 4·3과 관련이 있음을 언급했고 제주도가 정체성을 확고히 지키는 일은 평화와 인권이 전제되어야 함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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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강좌는 너무나 뜻 깊었고 인재개발원이 계획·시행하는 나머지 강좌도 기대된다. 다시 열린 바다의 시대에, 그리고 육지와 외국의 문물이 물밀듯 밀려오는 시점에 정녕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제주도의 정체성이며 제주도민의 얼과 자존심이기 때문이다. / 권무일(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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