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초 아르브뤼(Art Brut) 미술관, 제주 서귀포시에 개장 앞둬

정신 장애를 앓고 있는 사람들의 예술작품을 모아놓은 미술관이 국내 최초로 제주도 서귀포시에서 개장을 앞두고 있어 화제다. 

국내서는 아직 널리 알려지지 않은 미술 장르인 아르브뤼(Art Brut)는 ‘정신장애인 및 재소자, 어린이의 그림에서 나타나는 다듬어지지 않은 거친 형태의 미술’을 지칭한다.

지난 2008년 한국 아르브뤼 협회를 만들며 우리나라에서 아르브뤼를 알리는데 선구적인 역할을 자임한 김통원 성균관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지난해부터 서귀포시 신시가지 고근산 인근에서 ‘제주 아르브뤼 상설미술관’(가칭)을 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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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귀포시 고근산 자락에 국내에는 생소한 아르브뤼 미술관이 들어선다. 현재 공사가 진행 중이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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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관 내부. ⓒ제주의소리
빽빽한 소나무 숲 안에 들어선 미술관 건물은 아직 공사가 마무리 되지 않은 상태다. 밖에선 흡사 평범한 창고를 연상케 한다. 

목수 한 명과 김 교수가 직접 연장을 들고 창고를 개조해서 만들기 시작한 미술관에는 주영애, 김정명, 김용인 등 일반인들에게는 낯선 아르브뤼 작가들의 작품 50여점이 전시돼 있다. 

아직도 대중들에게 미술관은 왠지 조금 낯선 공간으로 인식된다. 그래서 ‘조금 특별한’ 사람들이 그리는 작품인 아르브뤼는 관람객들에게 과연 어떤 메시지를 던질지 궁금해졌다. 

지난 2월 27일 미술관에서 [제주의소리]와 만난 김 교수는 이런 물음에 대해 “일반 작가들에게서는 거의 만날 수 없는 독특한 예술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르브뤼 만의 특징”이라고 답했다.

아르브뤼 작품들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미술 작품과는 많은 점이 다르다. 아르브뤼 작가들은 전문적인 기법이나 미술도구와 재료가 없이 작품을 만들어내기 때문에 A4용지, 크레파스, 볼펜, 색연필, 매니큐어 등도 작품에 사용된다.

내용도 개성이 넘친다. 무슨 의미를 내포하는지 언뜻 봐서는 알 수 없는 형이상학적인 모형부터 고혹적인 여인의 신체, 로보트, 부처까지 일반적인 상상을 뛰어넘는다.

김 교수는 체계적인 교육을 거쳐 예술성을 정립하는 일반 작가들과 달리, 정신장애 작가들은 아예 다른 방식의 예술 감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느 것에도 비교할 수 없는 유니크(unique)한 결과물을 만든다고 설명한다.

김 교수는 “아르브뤼 작가들은 겹치는 것이 없다. 자기머리 속에서 맴도는 생각을 바탕으로 그리기 때문에 비슷한 그림이 나올 수 없다”며 “해외서는 아르브뤼 작품을 관람하며 창의성을 기르는 교육프로그램도 있을 정도”라고 덧붙였다.

모든 정신장애인들의 그림이 전부 아르브뤼 작품으로 볼 수는 없다. 미술로서 인정받을 수 있는 결과물을 생산하는 인원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그래서 김 교수가 파악하는 국내 아르브뤼 작가 수는 불과 20여명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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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영애 작가의 작품 <Seated image of Lady Chatterley>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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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영애 작가의 작품. <Tiffany's studio>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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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용안 작가의 작품<Mandala>.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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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명 작가의 작품. 왼쪽부터 <Acclamation>, <A nightmare of Mr. Rabbit>, <Love and scribbling> ⓒ제주의소리
이런 수준 높은 예술성과 희귀성으로 유럽과 미국에서는 아르브뤼 장르에 대한 가치를 높게 인정해, 전용미술관 뿐만 아니라 전시회 및 정기적인 아트페어가 열리며 미술의 당당한 한 축으로 자리 잡았다. 

여기에 사회적약자에 속하는 정신장애인들이 사회 속 일원으로 참여하는 하나의 방법으로서도,아르브뤼는 고유한 가치를 인정받는 분야다. 

아시아에서는 일본이 앞서서 영역을 넓히는 가운데, 한국도 2008년 김 교수가 협회를 만든 이후 2009년 10월 국내 최초로 아르브뤼만을 주제로 한 전시회를 열어 대중들에게 가치를 알리고 있다.

대구가 고향인 김 교수는 자신이 대학생인 시절 제주도를 찾았을 때 황홀했던 한라산과 제주의 경관을 잊지 못해, 일찌감치 제주를 삶의 터전으로 점찍어뒀다. 

그리고 10년전 아르브뤼라는 예술을 만나 온 힘을 쏟아오면서 자연스럽게 제주에 아르브뤼 미술관을 건설하게 됐다. 

그러나 김 교수의 아르브뤼 미술관은 현재 발이 묶여있다. 창고를 미술관으로 용도변경하는 과정에서 행정절차에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김 교수에 따르면 상하수도가 없어도 공익적인 목적에 따라 창고를 사립미술관으로 용도변경 할 수 있다는 서귀포시 의견과 달리, 제주도청은 ‘사립미술관은 공익사업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의견을 내면서 6개월 째 공사에 손을 놓고 있다. 

창고를 미술관으로 리모델링하면서 나무 하나 함부로 훼손하지 않도록 공을 들여 짓고 잇는, 그는 화려한 예술시설을 원치 않는다고 했다.

김 교수는 “관광버스 수 십대가 오고가면서 관광객이 스쳐가는 여느 의미 없는 관광지로 만들 생각이 아니다. 사회적 약자인 장애인들을 위한 공간으로 만들고 나아가 일반인들이 정신장애인들을 보다 이해하는 가치 있는 장소를 만들고 싶은 것 뿐”이라는 바람을 남겼다.

누군가 '우리가 두려워 할 것은 낯선 것이 아니라 익숙한 것'이라고 했다. 익숙함은 익숙해지는 순간 그 속의 특별함까지도 의미없이 스쳐지나가는 습성이 있다. 

부디 행정에서도 익숙한 습성으로 아르브뤼 미술관에 갖다 댄 단순한 잣대를 거두어 주길 바란다. 아르브뤼 미술관 개관이 흔한 사립미술관 하나 개관하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신장애인의 인권향상을 위한 교류의 공간이다. 개관을 희망처럼 기다리는 많은 사회적 약자들이 있다. 자연·문화·사람의 가치를 키우겠다고 한 것이 원희룡 도정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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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최초 아브르뤼 미술관이 제주에서 하루빨리 문을 열게 되길 바란다는 김통원 교수.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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