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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준석 씨, 낮엔 사회복무요원, 밤엔 야학교사..."우리사회에 보답하고 싶었다"

저녁 늦은 시간. 야학 교실 안에선 20대의 젊은 선생님이 열띤 강의를 토해내고 60~70대는 족히 넘어 보이는 만학도들은 젊은 선생님의 강의 내용을 단 한줄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배움에 목마른 눈빛을 연신 쏟아낸다. 

방황 끝에 독학으로 명문대학에 입학한 제주의 한 사회복무요원(옛 공익근무요원)이 매주 2차례 야간학교에서 자신의 과거를 반면교사 삼아 만학도들에게 공부를 가르치고 있어 화제다. 

주인공은 서귀포종합사회복지관에서 지난 2013년부터 사회복무중인 오준석(28)씨다.

한국외국어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다니다 군 복무로 휴학을 한 오 씨는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에 공익 근무를 마친 뒤 서귀포오석학교를 찾고 있다.

오석학교는 초.중.고등학교 검정고시 시험과 한글을 가르치는 야간학교다.

오 씨가 봉사활동에 나선 것은 중학교 은사의 역할이 컸다.

지난해 2월 오 씨는 공익근무를 마치고 퇴근하는 길에 중학교 은사를 만났다. 오씨가 중학생 시절, 사춘기로 방황하던 그를 오직 사랑으로 다독이며 이끌었던 은사다. 우연히 마주친 은사가 오씨에게 야간학교 교사 봉사활동을 제안했고 그가 흔쾌히 마음을 내면서 야학의 자원봉사 교사가 됐다. 

중학생 시절 오씨는 학교 교육에 대한 거부감을 갖고 무단 결석을 일삼았다. 사춘기 시절, 교실을 마치 '가두리 양식장'으로 여기며 툭하면 결석을 일삼았다. 그런 오씨가 결석할 때마다 은사는 오씨의 집을 직접 찾아 오씨를 포기하지 않고 설득하고 다독였다.

오씨는 은사의 이 같은 열정에 힘입어 중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다. 

중학교 졸업과 함께 고등학교에는 진학했지만, 오씨 머릿속에는 여전히 '굳이 학교가서 꼭 공부를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가득했고, 결국 오씨는 자퇴를 선택하고 말았다.

자퇴한 이후 오씨는 2개월간 맘껏 놀았다. '아프니까 청춘'이라고 했던가. 그렇게 놀아도 여전히 학교밖 생활도 마음이 편하거나 녹록치 않았다. 무작정 놀다보니 학교가 그립기까지 했다. 결국 어느 날 스스로 '이제 다시 공부를 시작해야지'라는 마음을 먹게 됐다.

서서히 철이 들었던 걸까. 그렇게 독학하는 모습에 지역 주민들이 앞장서서 오씨에게 도움의 손길까지 건넸다. 학원 강사, 카운셀러 등 다양한 직종에 일했던 주민들이 오씨에게 무료로 공부를 지도해줬다.

오씨는 지역 주민들 도움에 힘입어 고등학교 검정고시를 합격하고, 지난 2008년 서울에 있는 한국외대에 당당히 진학했다.

오씨는 혼자서 공부하는 것의 어려움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그리고 지역 주민들과 중학교 은사 도움에 보답하고 싶어 오석학교에서 교육 봉사에 적극 참여하기로 맘을 먹었다.

오씨는 오석학교에서 컴퓨터 프로그램 사용법 등을 가르쳐오다 현재는 고등반 담임으로 고등 사회와 초등 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재능기부하는 이런 오씨의 훈훈한 모습은 주변에도 퍼지기 시작했다.

오씨에 자극받아 제주에서 사회복무요원으로 근무 중인 현지우 씨도 사회복지 시설을 찾아 봉사활동에 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오씨는 "내가 특별한 사람도 아닌데, 나이가 많은 어르신들도 공부에 대한 열정으로 저의 수업에 귀 기울여줘 오히려 감사하다"고 몸을 낮췄다.

이어 “공익 근무 기간이 끝나면 곧바로 대학에 복학해 학업을 마치고, 노동 관련 시민단체에서 일하고 싶다”며 “사회복무를 하면서 만났던 사람들과의 경험, 감정을 잊지 않고 다른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다짐했다. 

늦깎이 만학도들의 배움의 공간 '야학'에서 참다운 재능기부로 찬란한 청춘을 바치고 있는 사회복무요원 오준석 씨. 아름다운 제주의 청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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