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홍의 또 다른 이야기> 전통을 일상의 삶에 동화하는 깊이가 바로 미래를 여는 근본적인 자원입니다

(미리 밝혀둡니다. 여기에서의 ‘전통’은 독단적인 권위주의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 물줄기에서 사상과 문화가 지속적으로 흘러나오는 원천임을 의미합니다.)

2박3일 일정으로 제주를 돌아본 지인(知人)이 떠나면서 던진 한마디가 의미심장합니다. “변하지 않은 게 딱 하나 있더군. 저 빛나는 눈 덮인 한라산…! 인심이 달라지면 자연도 달라진다는데, 이제 한라산도 변하려나…” 좀처럼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친군데…. 어쩌면 우리는 이처럼 우리도 모르는 새 우리의 자연과 인심을 조각내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렇습니다. 지나친 개발로 망가지는 게 어디 자연과 인심뿐이겠습니까. 그것은 우리의 전통마저 낯설게 만듭니다. 그래서 오늘도 저의 물음은 도전적입니다. “국제자유도시라는 화려한 구호에 매몰된 전통적 삶의 운명을 보았는가” 전통에 대한 물음은 곧 우리가 추구해야 할 가치에 대한 물음입니다. 저는 주제넘게도, 그것으로부터 우리를 분리하려는 그 어떤 시도에도 한사코 저항합니다.

‘제주사람’이 ‘제주’라는 자연적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지혜로 엮어낸 것이 바로 전통입니다. 그건 뿌리라는 의식과 연결됩니다. 우리의 뿌리의식에 공유된 의미를 정립하자는 것, 그게 전부입니다. “뿌리가 말라버린 고목과 같은 흔적일 뿐, 거기에 웬 의미냐”고 되물으면 대체로 난감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은 항상 전통으로부터 우리의 정통성을 도출해내는 역사 속에 편입돼 있습니다. 우리는 필연적으로 역사적 존재입니다. 우리 모두는 마음에 들건, 들지 않던 간에, 결국 제주 전통의 담지자입니다. 이렇듯 전통은 우리가 존립하는 뿌리이며, 벗어날 수 없는 한계입니다. 일상을 산다는 건 바로 전통을 사는 것임을 의미합니다.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그 큰 흐름을 나뭇가지 하나로 막을 수는 없습니다. 그건 어리석음입니다. 어쩔 수 없이 우리도 그 큰 흐름에 동참해야 합니다. 거기서 과거의 습관적인 생각에 머물거나 반복하는 것은 지혜롭지 못합니다. 복고적 회고에 젖어 스스로를 객관화하는 여유를 갖지 못한 개인에겐 발전이 없듯이, 지역사회 역시 고정된 어떤 특질에 집착하는 것은 그 지역이 화석처럼 굳어 있다는 증거입니다. 거기엔 발전이 없습니다.

버릴 것은 과감히 버려야 합니다. 전통도 따지고 보면 ‘지금의 관심과 요청’이라는 상황에 의지하여 다시 불러온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현실적 실용과 미래적 전망을 획득하지 못하는 사유는 언제나 빛을 잃게 마련입니다. 경직됨은 결코 강함의 표시가 아닙니다. 외래의 문물에 탄력적으로 대응하면서 그것들을 통합할 수 있는 능력의 상실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전통을 보존하자’는 건 다른 문제입니다. 우리의 정체성을 위해서도 전통은 언제나 이야기돼야 합니다. 아무리 개발바람이 밀어닥치고 외부의 문물이 하루가 다르게 들어온다고 해도 ‘전통의 이름’으로 우리 속에 체화되어 우리의 삶을 형성하는, 의식 무의식의 코드는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습니다. 이렇듯 인간의 삶과 자기 정체성을 형성하는데 있어 전통이 갖는 선험적 성격을 강조하는 것은 결코 새삼스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오해없기 바랍니다. 서두에서 이미 밝혔지만, 여기에서의 전통은 지역주민을 규율하는 문화적 타성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저는 그것을 혐오합니다.

전통은 아직도 ‘살아 있는 과거’입니다. 그건 ‘기억’입니다. 붙들면 보존되고 놓으면 사라집니다. 그것은 끊임없이 기획되고 재현되면서 자신의 생명력을 유지해 나갑니다. 그러나 분명한 게 하나 있습니다. 개발의 홍수 속에서도 지역사회 스스로 전통을 지키는 보존력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대단히 순진한 생각입니다. ‘오름 하나를 태우는 이벤트행사’로 보존되는 것은 더 더욱 아닙니다. 그것은 오로지 충성과 사랑으로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곳을 되돌아보고 존경하는 자들의 노력에 속합니다.

모든 기회와 경로를 통해 ‘제주 전통’에 대한 이론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지금이 바로 그때입니다. 이른바 ‘중국자본’문제가 불거지고, 개발의 필요성이 강조될수록 더욱 그래야만 합니다. 우리의 전통이 바로 ‘지금 여기에 그리고 미래’에 어떤 의미를 지니며 어떤 가치를 갖고 있는지 판단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것을 바로 세워야 합니다. 거듭 강조하지만, 전통을 일상의 삶에 동화하는 깊이가 바로 미래를 여는 근본적인 자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명심할 게 있습니다. 편의성이 곧 가치는 아니며, 이익만 노려서는 인간적 가치는 이룩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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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이야기했습니다. “순간순간 새로운 시간이 가져오는 신선함에 눈뜰 수 있다면 순간은 기적의 연속”이라고…. 맞습니다. 그러나 신선함은 과거가 있음으로 가능합니다. 전통이 제대로 서면 개발을 바라보는 시선도 분명 달라집니다. 이게 바로 아쉬움을 안고 떠나는 지인(知人)의 등 뒤에 던진 저의 초라한 응답입니다. / 강정홍 -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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