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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서귀포 출신 <님아, 그강을 건너지마오> 현진식 편집감독

지난해 국내 영화계를 발칵 뒤집은 한 작품이 있었다. 76년을 한 짝으로 살아온 노부부의 가슴 짠한 삶의 끝자락을 담은 다큐멘터리 독립영화 <님아, 그강을 건너지마오>가 주인공이다.

다큐·독립영화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올해 3월 24일 기준 480만명이라는 어마어마한 관객을 동원하며, 2014년을 가장 빛낸 한국영화로 꼽힌다. 480만명은 역대 국내 개봉영화 누적 관객 수 57위에 달하는 기록이다.

진모영 감독이 연출한 이 영화는 제주출신 제작진이 핵심적인 역할을 맡았다. 영화를 완성하는데 가장 중요한 부분인 편집을 담당한 현진식(43) 편집감독이다.

서귀포시 서홍동 출신인 현 감독은 유년 시절을 제주에서 모두 보내고 제주대학교 산업디자인과를 졸업한 ‘제주토박이’다.

25일 오후 7시 제주문예회관 대극장은 좌석이 가득 차는 것도 모자라 복도까지 빼곡하게 찰 만큼 많은 사람들이 찾았다. 인상적인 것은 대부분 중년 이상이라는 점이다. 매월 마지막 주 수요일로 지정된 <문화가 있는 날>을 맞아 <님아, 그강을 건너지마오>를 무료 상영했기 때문이다.

특히 현진식 편집감독, 진모영 감독이 직접 무대에서 관객들과 인사하는 자리가 마련돼 더욱 관심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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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제주문화예술진흥원에서 도내 언론사들과 인터뷰를 가진 현 감독은 “이렇게 많은 고향 어른들 앞에 서니 마치 동네 잔치에 온 기분”이라며 함박웃음을 보였다. 무엇보다 서귀포에 거주하는 어머니 고부금씨가 아들을 격려하기 위해 함께하면서 더욱 좋았다고 덧붙였다.

현 감독은 2005년 단편영화 <알러지> 연출, <시바, 인생을 던져> <누구에게나 찬란한> <님아, 그강을 건너지마오> 편집 등 주로 단편영화에서 활동하면서 대중에게는 아직 낯선 영화인이지만, 업계에서는 일찌감치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현 감독과 진 감독이 함께 속해있던 독립PD들의 자생공동체 ‘창작집단 917’을 이끈 故 이성규 감독은 생전 <님아, 그강을 건너지마오>의 편집 작업에 대해 “당연히 현진식이 해야지”라고 강력 추천한 바 있다.

이날 진 감독도 “다큐멘터리 영화는 가상의 세계를 창조하는 극영화와는 호흡이 전혀 다르다. 시나리오가 없는 실제 현실에서 스토리를 만들어내야 하기에, 영화 속 이야기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유지하는 역할은 온전히 편집의 힘”이라며 “<님아, 그강을 건너지마오>가 완성하는 3/4 역할은 현 감독이 차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현 감독은 “이렇게 많은 분들이 사랑해주시다니 아직도 얼떨떨하다. 물론 영화가 완성됐을 때 제작진 내부적으로 결과물에 만족스러웠지만 이 정도까지 호응을 받을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기적을 보는 기분”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거리낌 없이 스스로를 ‘제주사람’이라고 말하는 현 감독은 제주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영화인이다.

우도해녀인 장모님을 보면서 “언젠가는 제주해녀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고 싶다”는 포부를 가지고 있을 정도다.

현 감독은 “영화의 길을 가면서 제주인이라는 점이 스스로에게 어떤 영향을 주냐”는 질문에 “개인적으로 영상에 있어서 시각적 미장센(mise-en-scéne)을 중요시한다. 우리나라에서 제주도 만큼 아름다운 환경이 없는데, 이런 곳에서 보고 자라다 보면, (영화의) 그림을 그리는 ‘눈’이 달라질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며 고향에 대한 애정을 담아냈다.

특히 제주4.3을 다룬 영화 ‘지슬-끝나지 않은 세월2’가 전국적으로 큰 관심을 모은 것에 대해 “지슬 소식을 듣고 정말 기분이 좋았다. 내가 현재 만들고 있는 <바람커피로드>라는 영화도 흑백으로 찍고 있는데, 흑백영화 스타일을 고집할 수 있었던 것도 지슬의 영향이 매우 컸다”고 소개했다.

몇몇 대형멀티플렉스 브랜드가 영화 상영의 목줄을 쥐고 있는 국내 영화 생태계에서 가시밭길인 독립영화의 길을 걷고 있는 현 감독은 느끼는 것도, 하고 싶은 말도 많았다.

"독립영화라면 극장에서 대부분 개봉관을 주지 않는다. 몇몇 극장을 잡는 것 자체만으로 어려운 일이라 관객을 만나기 힘들다"며 <님아, 그강을 건너지 마오>는 정말 운이 좋은 케이스라고 말했다.

그는 “중간 흥행이 되는 영화가 많아져야 영화판의 살이 찌는데, 우리나라 영화 시장은 ‘대박’ 아니면 ‘쪽박’ 밖에 없는 것 같다. 결국 영화인들 사이에서도 부익부 빈익빈이라는 양극화가 일어난다”고 설명했다.

현재 현 감독은 커피 하나로 전국을 누비는 한 사나이(이담)의 삶을 그린 영화 <바람커피로드>를 찍고 있다. 편집이 아닌 연출을 맡고 있으며 <님아, 그강을 건너지마오>의 제작진도 함께 한다.

뉴스펀딩(http://m.newsfund.media.daum.net/episode/524)을 통해 뜻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 제작하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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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하지 못한 거대한 성공에 취할 법도 하지만, “시작하는 힘을 얻었다”고 조급해하지 않은 현 감독은 미래 영화인의 꿈을 꾸는 고향 후배들에게 특별한 격려를 보냈다. 예술의 눈을 키우는 데는 서울, 수도권이 아닌 제주가 더 유리하다는 것이다.

현 감독은 “내가 대학교를 다니던 1990년대만 해도 촬영을 배우고 싶어도 제주에서는 인프라나 여건이 마련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문제는 더 이상 없다고 생각한다. 서울에서 해봐도 제주와는 별 차이가 없다”며 “중요한 것은 어떤 것을 보고 느끼고 만나냐가 작품에 영향을 준다는 점에서, 제주도가 다른 지역에 비해 훨씬 유리하다”고 제주의 장점을 꼽았다.

현 감독은 “왜 많은 예술인들이 제주도를 내려온다고 생각하느냐. 제주에서만 느낄 수 있는 '무엇'이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제주는 인프라, 시설이 안된다’는 생각은 버리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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