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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고창, 처음 밟는 데 낯설지 않은 까닭이..

동백 숲에 미당의 시혼까지, 너무도 내 고향 위미를 닮아

장태욱 taeuk30@naver.com 2015년 03월 27일 금요일 07:30   0면

고창읍성.jpg
▲ 모양읍성 너머로 고창읍내가 내다보인다. 읍내는 예상보다 번화롭다.

모처럼 비행기를 타기 위해 새벽에 일어났는데, 밤새 내리던 비는 그칠 줄을 모른다. 젖은 몸을 이끌고 광주행 여객기에 몸을 실었다. 잠이 부족한데다, 옷이 온통 젖었으니 기분이 상쾌할 리가 없다.

어물전 홍어를 보면서 호남 땅에 온 것을 실감해..

전북 고창까지 가는 길은 광주공항에 도착한 이후에도 한참 남았다. 아침밥을 거르고 왔으니 광주 양동시장에 들러 국밥으로 허기를 달래기로 했다. 이른 시간인데다, 거리에 비까지 내리니 장은 한산하였다. 어물전마다 한 결 같이 홍어들의 선홍빛 신선함을 과시하기에, 내가 호남 땅에 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식당 사장님은 국밥 그릇에 장터의 인심을 듬뿍 담았고, 난 거기에 여행의 운치를 말아서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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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창 가는 길에 광주 양동시장에 들러 끼니를 해결했다. 양동시장에 늘어선 어물전 홍어들을 보면서 호남 땅을 밝고 있음을 실감했다.
살다보면 자신을 꼴 빼닮은 이가 어디에 산다는 얘기를 들을 때가 있다. 그러면 찾아가서 눈으로 직접 만나보고 싶은 생각이 들게 마련이다. 그리고 그 유사함이 우연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피할 수 없는 운명에 따른 것인지도 확인해봐야 한다. 전북 고창은 내게 그런 곳이다.

여행을 좋아하는 이들은 고창이라 하면 보통은 선운사와 그 주변의 동백 숲을 떠올린다. 유홍준은 선운사 동백 숲을 '땅의 연륜과 인간의 채취가 함께하여' 최고라고 극찬했는데, 그 영향 때문인지, 동백꽃이 필 무렵 선운사 주변에는 전국 각지에서 많은 여행객들 몰려든다.

동백 숲과 미당의 시, 고창과 위미를 관통하는 주제들

그런데 전국에 자랑할 만한 동백나무 군락지는 내가 태어나고 자란 위미마을에도 있다. 문화재로 지정된 위미 동백군락지가 그것인데, 우린 어릴 적부터 멀리 갈 것도 없이 근처에서 동백 숲을 보며 자랐다.

고창은 인촌 김성수와 미당 서정주라는 두 걸출한 인물의 고향이다. 인촌은 일제강점기에 경성방직과 동아일보를 설립하여 운영하였고, 미당은 '벽'이라는 시를 동아일보에 발표하면서 문단에 데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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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창읍 선운리에 마련된 미당 시문학관에 전시된 미당의 생애 일부분이다. 미당은 문단에 데뷔한 이듬 해 제주도에서 방랑하며 작품활동을 했는데, 그 주된 장소가 우리 마을 앞바다에 있는 지귀도다.
인촌은 해방 후 반탁운동을 거쳐 이승만 정부에서는 2대 부통령을 지냈고, 미당은 토착적 언어로 시적 세련미를 달성하여 '우익(右翼) 시(詩)의 정부'로 지칭되었다. 결국 인촌과 미당은 공히 우익정부를 떠받칠 운명을 타고났나 보다.

한편, 미당은 ‘벽’이라는 시로 문단에 데뷔한 이듬해에 제주도에서 방랑의 시간을 보낸 적이 있다. 미당이 스스로 고백했듯이 ‘심신의 상흔을 말리며’ 시작에 전념했던 곳은 우리 마을 앞에 있는 지귀도(地歸島)라는 섬이다. 미당은 화사집(花蛇集)을 발표할 때, 지귀도에서 쓴 시 네 편을 모아 ‘지귀도의 시’라고 구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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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운사 뒷산에 있는 동백이다. 우리 마을에도 선운사의 동백나무보다 더 키가 큰 나무들이 자라는 동백나무 군락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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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란 산수유 꽃이 비를 맞으니 더욱 영롱하다.

그런데 미당이 자신의 시혼을 위미에 남기고 갔는지, 미당이 다녀간 지 50년이 지날 무렵 위미에는 제주도에서는 드물게 시인들의 등단이 줄을 이었다. 오승철(81년 동아일보), 고정국(88년 조선일보), 고명호(92년 현대시조), 안정업(92년 문예사조) 등이 그들인데, 이들은 공히 지귀도와 동백꽃 등을 소재로 작품을 남겼다.

훗날 우리 마을에는 걸출한 시인들이 나타난 게 우연일까

광주 시외버스터미널을 출발한 버스는 전남 장성을 거쳐 굽이굽이 산길을 지나 고창읍에 도착했다. 광주를 출발한 지 한 시간여 만이다. 읍내는 상가 건물들이 빽빽하게 들어선 게 예상했던 것보다 번화롭다. 마치 태어나기도 전에 떠나온 고향을 다시 찾은 것처럼 마음은 설레는데, 부슬부슬 내리는 비는 여전히 그칠 줄을 몰랐다. 비에 젖은 산수유 노란 꽃이 도드라지게 영롱한 날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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