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홍의 또 다른 이야기> 이 아름다운 제주에서 자유롭게 호흡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더 이상 알지 못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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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땅은 우리의 영원한 고향입니다. 모든 인간존재와 생물체를 다시금 가슴으로 끌어당기는 땅의 중력적 매력은 여전합니다. 우리 자신의 길을 발견하기 위해 우리는 땅의 솔기 속으로 파고들어야 합니다. 땅을 지켜야 합니다. 조상이 묻힌 이 대지위에 똑바로 서게 될때 우리의 영혼은 최상의 영광을 위해 위로 뻗쳐 나갈 것입니다. ⓒ 제주의소리DB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땅을 팔고픈 사람이 어디 이서/ 할 수 어시난 팔암주/ 땅 파는 사람들을 너무 나쁘게만 보지 말어/ 아이들 공부시키젠 허민 돈 나올 데는 없고 땅이나 팔수밖에/ 우리도 땅을 함부로 팔면 안 되는 거 알고 이서/ 당장 힘든데 어떨거라/ 땅 가지고 있어도 무슨 수 없을 것 같고/ 막말로 땅은 팔암주만 땅이야 어디가…/

1978년 여름으로 기억합니다. 이른바 ‘외지인’들이 도내 중요지역을 포함하여 중산간 일대를 집중적으로 매입할 당시, 그 상황을 취재하는 일선기자에게 던진 한 지역주민의 말입니다. 자기를 합리화하는데 이골이 난 세련되고 복잡한 말놀음보다는 ‘돈 나올 데는 땅뿐’이라는 그 순수한 감정의 진실성을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소박한 언어의 강렬함이 더 큰 설득력을 가질 수 있다는 것, 저는 그것을 당시 ‘지역정서’로 읽었습니다.

그동안 많은 세월이 흘렀습니다. 지역정서도 많이 달라졌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도 ‘돈 나올 데’를 찾는 그 주민의 물음에 답할 수 없습니다. 각종 개발계획이 발표될 때마다 ‘제주개발의 주체는 제주도민여야 한다’는 것, ‘개발이익은 지역에 환원돼야 한다’는 것, 그리고 ‘지역주민들의 개발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것을 주장해 왔지만, 그때마다 공허한 울림만이 있었을 뿐, 끝없는 절망만을 경험해 왔습니다. 그래서 누군가의 말을 빗대어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우리들에게 일어나는 일들이 ‘망상적인 비약’과 ‘쓰디쓴 착각’의 끊임없는 연쇄 이외에 아무 것도 아닌, 그러한 상황 속에서 우리는 과연 참다운 삶을 유지할 수 있을까”

이른바 ‘중국자본’에 대해 말이 많습니다. 제주의 부동산을 마구잡이로 사들인다는 소식입니다. ‘제주의소리’는 그걸 ‘차이나머니 대공습’으로 표현합니다.(1월6일자) 중앙의 어느 언론은 ‘중국 왕서방에 잠식된 제주도’라고도 합니다. 심지어 외국에서까지 ‘걱정의 소리’가 들립니다. 참 부끄럽습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모든 것의 상품화를 강요하는 시장 논리에 따라 뿌리 없는 지식과 정보가 홍수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누가 있어 그걸 기획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오늘날 우리의 주의력은 끊임없이 분산되고 흩어지려 합니다. 그리하여 지금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장밋빛 환상’과 ‘무수한 잡담’속에 갇힌 채, 이리저리 뛰면서 힘만 소진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주의력을 한데 모아야 합니다. 스스로 문제를 떠맡고, 그 해결책을 찾아 나서야 합니다. 필요하다면 ‘새로운 개발방향’을 위한 지역주민의 대토론회라도 가져야 합니다. 한 지역의 주체로 존재한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알아차리는 양상 속에 존재함을 의미합니다. 아무리 외국인의 토지 소유와 이용에 대해 차별적 대우를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하지만, 그것이 우리의 삶의 정체성을 훼손하고, 지역주민들의 생활과 충돌할 때는 문제가 달라집니다.

이제 다시 생각해야 합니다. 그동안 ‘국제자유도시’운운 하면서 땅만 내다파는 꼴이 되지 않았는지, 우리는 이 시점에서 통렬하게 반성해야 합니다. 물론 그것에 대해서는 반론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지금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개발전략이라고 하더라도, 마치 제주를 국제시장에 내놓는듯한 전략이 아무런 이의제기 없이 넘어가는 사회분위기에는 우려할만한 사회변화의 방향이 드러납니다. ‘제주의 상품화’로 읽혀지는 그 전략의 근저에는 우리의 삶의 공간인 이 지역에 다양하게 존재하는 정신적 문화적 가치마저도 상품화될 수 있다는 엄청난 물신숭배에 다름 아니기 때문입니다. 엄연히 ‘내다 팔 수 없는 것’이 존재한다는 관점을 무시한 채, 지역사회 구성원의 의식을 경제적 가치와 효율성의 지배아래 묶어두려는 생각은 한마디로 ‘쓰디쓴 착각’입니다. 팔지 말아야 할 것과 팔수밖에 없는 상황을 이율배반적으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이념의 잣대를 들이댈 일도 아닙니다. 정체불명의 국제자본이 무분별하게 들어오고, 그것이 결국 지역주민을 이 땅으로부터 밀어내는 결과가 된다면, 그 전략은 반드시 재검토돼야 합니다.

“너무 실정을 모른다”고 할지 모릅니다. 자신의 힘으로 설 수 있는 능력이 없는데도 순진하게 허세만 부리고 있다는 주장도 있음직합니다. 맞습니다. 세계가 하나의 경제단위로 변하고 있습니다. 국제간의 장벽이 이미 무너졌습니다. 우리도 그 흐름에 동참해야 합니다. 누군가 이야기합니다. “자신만의 땅굴을 파고 그곳에 먹이를 축적하는 ‘두더지 시대’는 이미 지났다”고…. ‘우물안 개구리’는 어리석음입니다. 저도 우리의 시계(視界)가 지역에 한정되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일정한 선을 그어놓고 완고한 발톱을 세우는 것은 한마디로 시대착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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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땅은 우리의 것이 아니라 후세로부터 빌려온 것입니다. 땅 등 우리의 자원이용과 개발방향, 그리고 제도 변화가 지역주민들의 현재의 욕구뿐만 아니라, 미래의 그것과 조화를 이뤄야 합니다. ⓒ 제주의소리DB

그러나 이 땅은 우리의 실존적 근거입니다. 제주땅은 결코 넓지 않습니다. 이 땅을 잃고나면, 우리의 삶마저 잃게 됩니다. 그래서 “땅은 팔암주만 땅이야 어디가”라는 말은 스스로 인정했듯 ‘막말’이 됩니다. 땅은 그저 사람들이 개인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단순한 ‘터’로 간주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태어났고, 죽어 이 땅으로 돌아갑니다. 그렇듯 이 땅은 우리의 존재 그 자체입니다. 어찌 땅을 함부로 할 수 있겠습니까. 그건 단순히 ‘땅의 위기’로 끝나지 않습니다. 바로 우리들 자신의 막다른 삶의 위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주제넘은 소리 같지만, 위기에 대한 면역성을 고려한다면, 우리들의 정신적 안이함은 전보다 더 심화되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른바 ‘중국자본’이 들어옴으로써 지역경제가 활성화될 것이라는 주장이 있습니다. ‘낙수효과’니 ‘점적효과’니 전문용어가 등장합니다. 물론 그것이 어떤 자본이냐에 따라 평가가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동산투자이민제도’가 지역경제 활성화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도 있고 보면, 그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 않습니다. (제주의소리 2월9일자 강영삼칼럼 <중국자본 건당 6억 끌어와 제주콘도 매입, 이게 경제활성화?>) 솔직히 말하면, 저는 그것에 대해 명쾌하게 설명할 능력을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다만, 자본은 다른 형태의 소유물과는 달리 그것의 이용이 객관적이거나 윤리적인 고려에 의해 제한받지 않는다는 사실만큼은 경험으로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자본은 윤리를 삼킨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외국자본에 ‘윤리’라는 건 ‘망상적인 비약’입니다. ‘토끼의 뿔’처럼 도무지 언어에 속하지 않는 영역입니다. 결코 부정적인 시각이 아닙니다. 그건 필연적으로 우리의 삶을 바꿔놓습니다. 자칫 우리의 경기활성화라는 목표로 나타나서 결국은 그 목표를 외면하고, 지역을 지배하는 수단이 될 수도 있습니다. 목적에 대한 수단의 이러한 일탈은 우리에게 있어서 주변적인 것, 외부에 존재하는 것이 우리들의 삶의 중심, 심지어 우리 자신을 지배하게 된다는 사실 속에 정점에 도달합니다. 그건 필연적으로 ‘정신성의 포기’를 강요합니다.

무거운 일을 너무 장황스럽게, 그리고 직설적으로 말했는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저의 이야기마저 ‘무수한 잡담’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땅 등 우리의 자원이용과 개발방향, 그리고 제도변화가 지역주민들의 현재의 욕구뿐만 아니라, 심지어 미래의 그것과 조화를 이뤄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이때 만일 선택이 고통스럽다고 하여 땅을 내다파는 등 손쉬운 방법만을 오로지 할 경우, 참으로 듣기 거북하겠지만, 우리들은 복덕방 수준이거나 ‘거간꾼’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지역주민들이 땅을 내다팔기 보다는, ‘땅을 소유하면 무슨 수가 생기는’ 그런 개발전략이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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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정홍 언론인.
‘우리는 무엇에 대해 고민해야 하는가’ 그리고 ‘무엇에 대해 분노하고 슬퍼해야 하는가’ 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우리의 정책입안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묻습니다. “우리의 영원한 삶의 터전인 이 아름다운 제주에서 자유롭게 호흡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더 이상 알지 못한다면, 그대들의 존재 가치는 어디서 찾아야 하는가.” 이 기회에 지역개발의 철학적 기초를 새롭게 정립해야 합니다. 어찌 알겠습니까. 그게 바로 이른바 ‘중국자본’으로부터 우리의 땅을 지키는 길이 될지도…. 우리 모두는 이 땅에서 ‘겸손하게 걷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 강정홍 -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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